해월장에 돌아오다(3)
<해월장에 돌아오다(3)>
-캬캬캬캬캬캬캬.........!
-스스스스스슷........!
-크크크크크크으으으.....!
차마 두 귀를 열고는 지속적으로 들을 수 없을 만큼 괴이한 소음들이 동공 안에 메아리친다.
어디일까, 이곳은....?
거대한 동공은 천연의 동굴인 듯 천정에서 내려온 온갖 모양의 종유석들이 주렁주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투둑....투둑.....!
-또르르릉....!
특이하게 검붉은 종유석 끝에서 피처럼 붉은 물방울이, 괴이한 소음들과 박자라도 맞추는 듯 떨어져 내리며 소리를 낸다.
-화르르르륵......!
이때, 마치 불이라도 난 듯이 화르륵, 거리는 소리가 연거푸나면서 동공의 중앙이 환하게 빛을 발한다.
무엇일까?
끝없이 높은 동공의 천장과 제일 가까운 곳에는, 마치 혈광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는 붉은 구체가 건장한 사람 키의 세배쯤 높이위에 떠있는 것이 아닌가?
저...건.....?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사람의 가죽처럼 생겼는데 호흡하듯 연신 들썩거리고 있다.
-쉐에에에에....!
-푸우우우우우..!
기묘한소리가 그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것 역시, 인간이 호흡하는 음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화르르륵......!
돌연 그 구체에서 기묘한 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오면서, 피처럼 붉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가 서서히 사그라진다.
그러나 그 섬광사이에서 얼핏 드러난 모습이 있었으니, 그건 구체 속에 잠겨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모습을 한 괴인이었다.
붉은 액체로 가득 찬 반투명한 원형의 커다란 구체안에, 벌거벗은 붉은 적발의 괴인형상, 상상이 되는가?
이런 기묘한 현상은 그 괴인의 주위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괴인의 머리는 허리 밑까지 내려뜨려 있었고, 드러난 얼굴은 수염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적발인 머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휘날리며 괴인의 얼굴조차 가리고 있었다.
-휘이익....!
-파....사삭...!
어디선가 나타난 박쥐 한마리가 동공 안을 맴돌다가 붉은 구체 쪽으로 날아드는 순간, 화염으로 휩싸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마기(魔氣).
순간, 화염으로 이글거린, 그것은 놀랍게도 분명 지독한 마기였다.
필설로 형용할 수없는 지독한 마기가 온 동공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파아아아아아.....!
-츠츠츠츠츳.....!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소음은 이제 보통의 잡음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가득 찬 마기가 서로 다른 유형의 마기들끼리 서로를 잡아 삼켜 버리기 위해, 온몸을 부딪쳐 만들어내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구체안의 괴인은 사방으로 흘러드는 마기들을 자연스럽게 온몸의 숨구멍으로 받아드리며 흡수하고 있다.
“죽인다.......피.......죽인다........피.......죽인다.........피........!”
구체안 출렁이는 액체 속에 담긴 채로 비록 두 눈은 감겨있었으나, 입으로는 연신 듣기가 오싹할 정도의 음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파아아아.......!
그런데, 그의 아래쪽으로 거의 비슷한 갈색의 구체 십여 개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건 마치 어떤 괴수의 알처럼 수증기에 휩싸인 채로, 징그럽게 벌렁거리고 있는 모습은 두렵고 무섭다.
저건 무얼까?
저것도 괴인을 담고 있는 구체와 같은 것일까?
정확히 열개의 구체들이 규칙적으로 커졌다가 작아지는 모습을 반복하는 것으로 봐서, 마치 호흡하는 것과 같은 기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괴인의 것과는 달리 그것들의 속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수증기에 휩싸인 채 약간의 소성만을 내고 있을 뿐.
-쏴아아아....!
-파아아아아....!
또다시 적발의 괴인이 있는 구체에서 적광이 흘러나온다.
-번쩍...!
-꽈광.....!
-빠지지지직....!
그리고 더욱 강렬한 광채가 구체에 작렬했을 때, 영원히 감겨 있을 것 같았던 괴인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아...아.....그런데....
그는 사도옥이었다.
“흐흐흐....피........다 죽이리라.......흐흐....피......!”
***
“가주님,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많은 힘이 되어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려요.”
하림은 정중하게 두 손을 마주잡고 포권을 했다.
그의 맞은편에는 수려한 용모의 남궁일백이 은은한 미소를 띠우며 서있다.
“조막 만했던 꼬마가 이제 강호를 호령하는 사자가 되었구나.”
“가주님과 대형께서 보살펴주신 은공입니다.”
“허허....참기름 바른 듯 입은 매끄럽구나.”
“아버님, 우선 앉으시지요.”
남궁필도가 그를 탁자로 안내하고 하림과 같이 자리한다.
하림의 뒤에는 여지없이 팽도림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서있고, 아마도 문밖에는 운령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림이 향긋한 향이 나는 차를 남궁일백에게 공손히 따르고 남궁필도에게도 차를 따른다.
“처음 육년 전 쯤, 이곳에 와서 널 보았을 때, 비로소 내 아들이 왜 날 버리고 널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주님, 그때 저는 그저 어린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만....”
“그래, 어린놈이었지, 그것도 내 잘난 아들놈을 단숨에 빼앗아 가버린....”
“아버님, 그때 저는 그토록 잘나지 않았습니다만, 매일 모자란 놈이라고 꾸중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요?”
남궁필도가 참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남궁일백은 남궁필도를 향해 눈을 부라리면서 말한다.
“이놈아, 네놈이 여기에 왜 끼어드느냐?”
“아이고, 아버님, 그래도 아우 앞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시면 안 되죠. 매일 모자라다고 꾸중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계속 잘난 놈이라고 하시니, 제 팔뚝에 지렁이 몇 마리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끄응......이놈아! 그럼 다른 형제들 앞에서 네놈만 잘났다고 추켜세웠어야 한단 말이더냐?”
“그...그래도....말입니다.....”
“못난 놈...!”
남궁필도가 급격하게 말끝을 흐리자, 남궁일백의 눈이 가늘게 찢어지며 옆으로 흘긴다.
그리고 하림을 바라보며 가늘게 헛기침을 뱉어내며 말을 잇는다.
“험, 어쨌든 그 당시 너의 몸에서는 알 수없는 서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네가 하찮은 검보를 절세의 도법으로 바꿔 가는 것을 보고, 놀라워서 몇날며칠을 뜬눈으로 새운 적이 있다.”
“그러셨군요.”
“내가 여기까지 널 쫒아온 것은 너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다.”
“예,”
“네가 나를 속물이다 하여도 어쩔 수 없다만, 나도 일문의 책임자와 무공을 익힌 자로써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다.”
그는 하림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말문을 이어가려한다.
하림은 그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쯤이면 하림이 남궁일백의 궁금증을 모를 리 있을까?
그의 속까지 이미 다 들여다보고 있는 하림이다.
“가주님의 의도는 잘 알고 있으니 궁금하신 걸 말씀해보세요.”
“커험.....! 그래 알고 있다니 회피하지 않겠다. 우선 팔만사천검이 도법으로 바뀐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구나.”
“역시 그렇군요, 가주님, 우선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우리만의 비밀입니다. 왜냐하면 사문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지켜 주시겠습니까?”
“험...비밀이야 무덤까지 가지고 갈수 있다 만은 사문의 비밀이라면서 말해줄 수 있겠느냐?”
“저에게 두 분은 남이라할 수 없으니 말할 수 있지요,”
“알...알겠다, 너의 마음이 정말 고맙구나.”
하림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남궁일백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정말로 귀엽고 살갑게 보여서 남궁일백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막내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착각에 빠져 들 정도였다.
“저의 내공은 음양합일공이라는 특이한 내공을 갖고 있습니다.”
“음양합일공....그것이 무엇이냐?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더냐.”
하림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요, 그럴 거예요. 제 한 몸에는 음과 양의 두 가지 내력이 합일하여 쉴 새 없이 돌고 있습니다.”
“그럴 수가.......?”
“어떻게......?”
방안에 있는 팽도림까지 모두가 대경실색하여 일순, 할 말을 잃고 입만 벌린 채로 하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하림은 그들의 표정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십시오, 양강지공을 익힌 자가 팔만사천검보를 바라본다면, 검보의 한쪽 면만 보이는 겁니다. 내공의 운용과 운행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음과 양이 같이 공존한자가 그 검보를 본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가져 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아.......! 음과 양으로 보는 궤적이 다르다?”
남궁일백의 두 눈에 경탄이 쏟아져 나온다.
“예, 맞는 말이십니다. 즉, 저는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보더라도 두 배로 더 볼 수 있고, 두 배로 더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정말 듣도 보도 못한 무리로구나.”
남궁일백과 방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끝없는 탄복의 눈빛이 흘러나온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으...음....! 그런 해석이 가능하겠구나. 그래서 팽가의 도도 그런 해석의 일종이더냐?”
“예, 하지만 음양을 지닌 제가 풀어내는 도와, 여기 도림이 풀어내는 도는 비록 똑같은 도라 하여도, 위력 면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바로 내공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죠. 나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궤도의 결을 풀어서 보충해 준거에요, 저보다는 못하지만 결을 보완하면 완전히 다른 절기로 변하게 되니 그건 대단한 절기로 보일 수밖에요.”
“아, 대단하구나, 그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한사람의 몸에 음양의 내력이 같이 공존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내공 비밀입니다.”
“그...그럼...혹시...사문을 물어도 되겠느냐?”
남궁일백이 조심스럽게 하림을 바라본다.
하지만 하림은 고개를 쉽게 끄덕인다.
“말해 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아마 들어보신 적이 없어서 모르실거예요. 저의 사문은 천요문이랍니다.”
“천요문....?”
“.........?”
하림은 임기응변으로 성승의 불명을 넣어 말해주었다.
어찌 보면 사실인 것이고, 그는 지금껏 하지 않았던 비밀들을 이 자리에서 가감 없이 밝히고 있었다.
“들...들어본 적이 없구나.”
“그러실 거예요, 이제 궁금증이 좀 풀리셨어요?”
“허....어찌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구나.”
“하핫......아직도 더 궁금하세요?”
“얘야.”
“예, 가주님, 말씀하세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구나.”
“네,”
“혹시....혹시 말이다.”
“예, 혹시요.....”
더듬거리던 남궁일백이 큰 용기라도 낸 것처럼 빠르게 말을 내놓는다.
“본세가의 제왕검결도 재해석할 수 있겠느냐?”
“...........?”
이번에는 하림이 말을 잇지 않고 가만히 남궁일백을 바라만 본다.
혹시라도 자신의 물음이 잘못됐나싶어서 남궁일백을 찔끔한 눈치다.
그러나 하림은 곧 말문을 열었다.
“가주님. 재해석이 가능하지요.”
“오....! 정말...?
“그럼요, 지금까지 익혀 오셨던 그 제왕검형과는 완전 다른 위력을 보여주는 검이 될 것입니다.”
“오.......!”
남궁일백의 두 눈에서 환희에 찬 눈빛이 마구 풀려나온다.
하림을 진정 보물단지처럼 바라보는 눈빛도 그윽하다.
그러나 눈앞의 하림은 그저 담담하다.
“정말 가능하더란 말이더냐?”
“예, 그럼요.”
“우하하하하....! 이럴 수가....이럴 수가.....우하하하하....”
“저....그런데 가주님.....?”
통쾌하게 웃는 남궁일백을 바라보며 하림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남궁일백은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말해보게.”
“아까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제가 제왕검형을 건드린다면, 가주께서는 저보다 그 변화를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정적,
서서히 굳어가는 남궁일백의 표정,
그리고 쥐 죽은 듯이 찾아온 조용한 방안의 정적,
- 작가의말
소름끼치는 사도옥의 등장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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