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의 제안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합포에서 일기도로 향하는 배는 끝없이 줄이 이어졌다.
합포에서 목적지인 일기도까지는 넉넉히 이틀 정도의 시간을 잡고 있다.
그것은 한울루스의 배들이 대부분 바람과 인력을 이용하는 배들이기 때문으로 밤에도 항해사와 견시수만 깨어있으면 배가 항해하는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려의 영역만 벗어나면 일기도까지는 대마도만 빙 둘러갈 뿐 중간에 항해를 방해하는 암초 따위가 없다는 것이 이미 한울루스의 선박들에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항해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또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하는 곳은 고려의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 뿐이고 그 고려의 영역은 환한 대낮에 지나갈 것이니 항해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서서히 봄이 오고 있는 시점이라 삭풍은 잦아들고 있었고 그에 따라 바람은 하늬바람이었다.
한울루스는 지난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선박의 건조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선박이 대양호가 10척에 졸본호가 20척 그리고 박작호가 10척이었는데 이는 한울루스가 총력을 다한 결과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원을 싣기 위해 1인당 소지하는 식량의 양을 열흘치로 제한했다.
또 배를 움직이는 선원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한 후 사람이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배에 인원을 집어넣으니 대양호에는 400, 졸본호에는 100까지 인원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기존에 움직일 수 있는 대양호와 졸본호까지 합쳐 15척과 31척의 배로 한번에 운송할 수 있는 최대인원이 9,100명이니 총 네 차례에 걸쳐 일기도까지 왕복을 해야 하는 여정이다.
거기에 각종 물품과 말을 실어 나를 박작호가 한번에 운반하는 말의 두수는 최대 80마리가 한계니 열척의 박작호는 합포와 일기도를 13번에나 왕복해야 하는 일이다.
일기도라는 작은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만 명 정도에나 이를지도 알 수 없는 지경에 한 번에 쏟아진 만 명 가까운 군사는 일기도가 감히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일단 제1진이 아주 수월하게, 그렇지만 수많은 일기도 주민들의 희생위에, 일기도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를 했고 그 소식을 들은 최항은 이만 개경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하긴, 일기도를 점령했으니 이제 여기 정동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있지도 않긴 하지.’
“최공께서는 몸이 편찮은 듯이 보이니 이만 바닷바람을 피해 개경으로 올라가도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영 좋지 않은 게 그리해야 할 듯합니다.
칸께서는 언제까지 계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예서 송포에 안전하게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오시면서 고려땅을 한번 둘러보시고 고려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한 번 살펴주실 수 있겠습니까?
칸께서 고려땅을 살펴 고쳐야 할 것을 지적해 주신다면 저나 고려황실, 아니 고려왕실은 칸의 고언을 듣기 위해 귀를 씻고 기다리겠습니다만.”
‘허허, 최항이 졸본과 박작을 둘러보며 감탄을 하더니 이제 정신을 차린 것인가. 좋은 일이 아닌가.
내 어찌 이 일을 마다하겠는가.’
“그렇습니까? 그러시다면야 저 역시 고려의 백성이 어찌해야 잘 살지를 살펴 작은 충언이라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최항을 먼저 보내고 나는 다시 2진을 싣고 떠나는 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4진마저 떠나고 다시 말을 싣고 가기 위해 도착한 박작호에는 일기도 주민 수백이 실려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차꼬를 찬 상태로 배의 마굿간에 짐승처럼 매어 있었고 사령관인 훈둔이 적어 보낸 목록에 섬에서 저항하던 이들로 몽골에 끌고가 노예로 사용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후, 섬에서 노략질할 것이 없으니 사람이라도 끌고 갈 생각인 모양이구나.’
나는 사람을 분류하고 그들에 대해 조사를 해 다시 목록을 작성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조사를 하던 중에 지방관인 고쿠시國司로 파견된 후지와라藤原基政(1251년 1월부터 일기도 고쿠시로 재임)씨 일가족과 막부에서 슈고로 파견된 지바千葉胤継(1244년부터 일기도 슈고)씨 일가족이 훈둔이 보낸 인물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밝힌 내용은 아니고 옆에 있는 주민들의 눈치를 보고 정동성 관리들이 취조해 알아낸 것이었다.
‘아니 이 훈둔이라는 놈은 그저 싸우고 죽일 줄만 알지 도대체 내정이라는 것은 눈꼽만큼도 생각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병력을 지휘하는 슈고를 보낸 거야 이해를 한다지만 섬의 도주島主랄 수 있는 고쿠시마저 보내면 앞으로 섬을 어찌 안정시키려고 그런단 말인가.’
아마도 지배자를 없애려고 한 모양이지만 섬의 지배자가 없으면 오히려 섬을 다스리기 더욱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일본 역시 초원의 여러 부족들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 착각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농경을 하는 지역과 유목을 하는 지역은 그 지배방법도 달라야 하건만 유목민인 훈둔은 그런 것을 깨우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일기도의 지방관인 고쿠시로 와 있던 후지와라를 불러 그가 협조를 하는 것이 일기도 백성들이 죽지 않고 그나마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했고 다음 박작호가 도착했을 때는 그 배에 후지와라의 장남을 제외하고 다른 가족을 배에 실어 보내며 훈둔에게 글을 써 농경민들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훈수를 두며 같은 농경민인 고려인 출신을 후지와라 옆에 두어 섬을 다스리면 주민들의 소란이 적을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렇게 합포에서 마지막 한 마리의 말까지 박작호에 실리는 것을 보고야 나는 합포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이때는 이미 4월도 한창으로 봄이 완연해진 시점이었다.
한편 치기야가 선박의 제조에서부터 선박의 운용을 위한 배치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반면 우수리는 이번 일본원정에서 인원과 물자의 수송 및 최종상륙지 결정에 대한 책임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합포에 도착해 몇 차례 직고에서 합포로의 수송을 완수했을 때 마침 칸께서 합포에 도착을 했다.
우수리가 칸을 본 것은 졸본의 확대 최고회의가 마지막이라 한동안 칸에게 붙들려 여몽연합이나 한울루스가 1차로 정복할 세 섬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칸께서 합포 앞바다에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야 배에 올라 일기도로 향했다.
즉 여몽엽합군의 일기도 점령에 있어 그가 선봉이 되기로 한 것이다.
해가 진 무렵에 대마도를 크게 우회한 1진은 새벽에 일기도에 도착했는데 15척의 대양호에서 각 두척씩 내려진 총 30척의 구조선에 탄 한울루스의 선원들은 곧 동이 틀 것 같은 일기도의 몇 개 나루를 순시간에 점령해 마을에 있는 모든 어선을 나포해 버렸다.
그 후 곧 이어 각 나루마다 졸본호 한척씩이 접안을 한 후 병사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또 대양호에서 구조선으로 옮겨 나루에 도착한 기술자들이 나루마다 대양호가 접안할 부두를 건설하느라 새벽의 일기도를 부산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1차적으로 총 4진의 인원 모두가 일기도에 도착을 하자 우수리는 섬에 대한 지배권을 사령관인 훈둔에게 인계하고 졸본호 네 척을 하카타 앞바다에 배치해 하카타만에서 밖으로 나오는 배란 배는 모두 나포하면서 자신은 졸본호를 타고 마치 상륙지점을 찾는 것처럼 하카타만 주변을 살피는 척을 했다.
그러면서 종종 대양호의 망루에 올라 여전히 비밀인 망원경을 꺼내 하카타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과연 일본은 여몽연합군의 상륙지점을 하카타로 생각하는지 하카타에 진지를 구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허, 아직 병사들이 다 모이지도 않았구나. 그냥 하카타로 밀고 들어가도 될 듯하긴 한데, 어쩐다.’
우수리가 망원경으로 살피니 하카타는 이제야 여기저기서 병사들과 물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판이다.
그런 하카타를 친다면 충분히 일본의 막부에 지대한 타격을 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칸께서 말씀하신 그 송포가 있는 만의 강 어귀도 살피니 그곳은 그저 논이 펼쳐진 땅으로 개활지에 불과할 뿐 사람이 머물 집도 많지 않아 보였다.
‘흠, 과연 칸께서 이곳을 상륙지로 삼으라 하신 이유가 있구나.
불편한 것은 쉴 집이 없다는 것이지만 이곳은 넓게 펼쳐진 곳이라 적의 급습을 받을 염려는 없겠어.’
우수리는 하카타와 송포 두 착륙지점에 대해 훈둔에게 보고하고 그와 상의를 했다.
그리고 상륙지점은 송포로 최종 결정이 되었는데 먼저 적을 급습하자고 할 것으로 보인 훈둔이 의외로 송포의 강어귀를 상륙지점으로 주장해 우수리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별일이네. 몽골군이라 일단 적부터 치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럼 말을 실으러 마지막으로 합포로 떠나는 선단을 보고 우리는 바로 같은 날 송포에 상륙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그럽시다. 송포에 상륙을 하고 병사들도 휴식을 취해야 하니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오.
또 말들도 그 동안 배를 타느라 신경이 날카로우니 들판에서 어느 정도 적응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 박작호는 말을 싣고 이 섬으로 올 것이 아니라 아예 송포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소이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인원과 말을 송포에 내려주면 그만 제 작전지로 배들을 끌고 가고자 합니다.“
”그러도록 하시오.
그렇지만 얘기했듯이 이곳에 각 배마다 몇 척씩은 머물러야 하는 걸 잊지 마시오.
이곳 섬이 우리의 1차 근거지가 되어야 하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일단 대양호와 박작호 각 두 척 그리고 졸본호 네 척을 이곳에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연후 한울루스군의 수송이 모두 끝나면 다시 그만큼의 배들을 이리로 돌리도록 합지요.
그렇지만 배의 일에 대해서는 선장들과 상의해 주시길 거듭 당부드립니다.“
”알겠소이다. 합포에서 한님께서도 그리 말씀을 했는데 내가 어찌 어기겠소.“
그렇게 4월의 어느날 우수리의 지휘하에 일기도에 있던 인원들이 송포로 상륙을 하기 시작했다.
불과 백여 리의 바닷길이고 또 송포만으로 흘러드는 강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또 송포만의 바닷가 역시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대양호같은 큰배가 접안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병사들이 뭍에 오르는데는 더 수월한 지형이었다.
더구나 때마침 합포에서 출발한 박작호까지 도착해 말들까지 송포에 풀어놓으니 송포는 일순간 몽골의 초원이라 해도 틀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서 여몽연합군의 수송이 끝나자 우수리는 선단을 이끌고 가오리섬으로 향했다.
이미 가오리섬에서는 오뜨겅 장군이 기마병 2개 천인대와 보병 1,500을 데리고 우수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우수리가 오타루 항구에 도착했을 때 오타루 항구에는 150여 채의 게르가 줄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는데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이미 오타루항은 대양호나 박작호 그리고 졸보호나 작은 구조선이 접안하는 부두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말 그대로 병사들은 개인소집품을 챙겨들고 배안으로 걸어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에 있는 부대의 규모는 합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니 우수리는 병사들은 한번에 실어나르고 말들은 두 번에 걸쳐 실어나르기로 했다.
대양호 13척과 졸본호 27척 그리고 박작호 8척은 일단 두 무리로 나뉘어 한 무리는 사가도佐渡島로 또 한무리는 일본에서 오키쿠니隠岐国라 불리는 곳인 도오고섬島後島과 주변의 섬들로 향했다.
역시나 새벽 어스름 동이 트기 전에 들이닥친 한울루스군에 저항하는 무리는 없었고 그나마 섬에 있는 병력이랄 수 있는 슈고의 병력들인 고케닌御家人들은 일순간에 한울루스 병사들에 의해 포박되어 가진 무기를 빼앗기고 허름한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뜨겅은 슈고와 고케닌 및 그들의 가족들은 모두 가오리섬으로 떠나는 배에 실어보내고 기존 섬에서 고쿠시國司로 있던 이들이나 그런 이가 없는 섬은 섬의 가장 유력자를 섬의 도주로 선정해 섬의 관리를 맡겼다.
물론 그 도주 옆에는 섬의 기존 관리가 아니라 가오리섬에서 데리고 온 학생들로 채운 것은 당연했다.
이는 물론 오뜨겅이 졸본에서 확대최고회의와 상의를 하고 또 칸으로부터 별도로 지시를 받아 행한 일이다.
’흠, 왜 이 좌도도와 저 아래 도후도를 점령해 한울루스화하라고 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지리적으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칫 후에라도 일본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말이야.
뭐 그래도 이 좌도도는 농지로 개간할 땅은 충분해 보이니 다행이군.‘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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