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고약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상인의 최종목적지는 푸르샤푸라Purushapura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내가 알아들을 수는 없다.
13C초, 그것도 한국의 지명도 아닌 파키스탄이나 인도 혹은 아프가니스탄일지도 모르는 곳의 지명을 내가 알 리가 있겠는가.
그저 내가 믿는 것은 우리가 만난 이들이 칼라쉬족이고 칼라쉬족이 파키스탄의 치트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라는 내 전생의 지식일 뿐이다.
그리고 이 산속까지 장사를 위해 움직이는 상인이 아주 먼 거리에서 오지는 않았을 거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믿을 뿐이다.
아마도 상인은 칼라쉬 족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다니는 곳은 모두 금발벽안의 칼라쉬 족들의 마을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 넷은 상인의 짐꾼이 되어 칼라쉬 족들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다 푸르샤푸라에 도착했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푸르샤푸라로 가는 중에 커다란 강을 건너는 일이 있었다.
나는 이 강이 혹시 힌더스 강인지 궁금해 물었더니 카불 강이란다.
‘카불 강을 건너 큰 도시라면 페샤와르군. 페샤와르의 옛지명이 푸르샤푸라인 모양이지.’
그리고 그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 넷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산으로 들어가 사냥을 해야 했다.
물론 당장에 먹을 것을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상인이 짐승의 가죽을 상당히 비싼 가격에 매입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신기하게도 산에 들어가 짐승을 사냥하면서 누구 하나 다치는 사람이 없소, 그려.
내가 듣기로 사냥꾼들이 다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하던데 말이야. 더구나 이 겨울에 동상이 걸리지도 않고.”
“아, 그건 이 분이 치료사이기 때문입니다.”
“호, 가장 젊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치료사였소이까. 그것도 동료들이 공경하는 걸 보니 신분도 높은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벙어리여서 대화는 주로 호다다드가 대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여러 곳을 다닌 상인으로 말을 배우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정체를 일단은 치료사로 하기로 했다.
종교라는 게 어느 정도 세를 이루기 전에는 그저 남에게 퍼줘야 하는 일이라 나는 일단 치료사로 돈을 벌기로 한 것이다.
그 칼라쉬 마을에서도 그렇지만 치료마법을 펼치면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지게 되기는 하지만 내게 경외심을 가지는 이에게 돈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리 한다면 경외심은 한순간에 신의 사자가 돈을 밝힌다는 소문으로 변질될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이 소문이 나면 돈 있는 이들보다 없이 사는 이들이 더욱 몰릴 판인데 그들을 치료하고 돈을 달라고 한다?
내가 보태주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 뻔하다.
푸르샤푸르에 도착해 가죽을 상인에게 넘긴 돈을 밑천으로 치료사 일을 하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나마 말이 통한다는 호다다드지만 그저 말이 어느 정도 통한다는 거지 현지인같은 회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진 돈으로 며칠을 지내다 다시 산으로 가 사냥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할 때쯤 앞서 만났던 상인의 소개로 찾아왔다는 이가 나타났다.
“여기 용한 치료사가 있다고 하던데 누구요?”
호다다드를 가운데 두고 말을 나누니 어느 부자가 등에 종기가 났는데 그 종기로 인해 열병이 나고 거동도 못하고 있단다.
다른 치료사들이 모두 손을 놓은 종긴데 치료가 가능하냐는 물음이었다.
일단 환부를 봐야 한다고 말을 하고는 길을 나섰다.
종기라는 게 그저 손에 힘을 주고 짜버리면 쉽게 사라지는 것이지만 이 종기를 잘못다루면 나중에는 칼로 째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거기서 조심하지 않으면 생명을 앗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지금과 같이 청결이나 예방이라는 개념도 없는 시대에는 유독 종기도 많다. 잘 씻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전생의 한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 초의 계유정난의 원인이 종기고 정조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가 종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는 가정이 무용이라고 하지만 문종이 종기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조선 왕들 중에 가장 머리가 뛰어났다는 천재인 문종의 치세가 펼쳐졌을 것이다. 단종이니 세조니 하는 임금은 당연 사라질 것이고.
또 정조가 종기로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그 열한 살 순조가 즉위해 조선을 세도정치라는 구렁텅이로 끌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에서 가장 의술이 뛰어난 이들의 보살핌을 받는 조선의 왕이라는 이들도 종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시대일진데 그 보다 수 백 년은 전의 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도착한 곳은 정말 으리으리한 거택이었다.
‘호, 이거 딱 사기 치기 좋은 집이군. 아주 천천히 낫게 해서 한밑천 끌어내야겠어.’
집을 보자마자 견적이 나왔다.
그저 그런 집이었다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후딱 치유마법을 펼쳐 치료를 끝내고 몇 푼 챙겨 뜰 일이지만 이 정도로 큰 집의 인물이라면 병은 오래 갈수록 좋다. 물론 나와 내 동료들에게 말이다.
그 동안 홀쭉해진 몸매에 살도 붙이고 낡아 헤진 의복도 좀 깨끗한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환자는 기대대로 이 집의 주인이었으며 이 도시의 권력자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사경을 헤맬 정도는 아니지만 종기로 인해 거동도 불편하고 편두통까지 찾아와 짜증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종기는 등에 났는데 초기에 잡지 못해 종기의 크기는 등판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진 상태로 붉게 변해 두툼하게 부어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종기가 피부에만 국한하지 않고 이미 근육까지 퍼진 상태로 보였다.
아마 뼈까지 침투하면 죽기 십상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내 치유마법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물론 비교 대상은 없었지만.
“이 종기는 초기에 잘못 다뤄 이제는 손을 쓰기에는 한참 지난 상탭니다.
제가 전심전력을 다해 치료에 매달려도 서너 달은 걸릴 겁니다. 그래도 치료를 받으실 생각입니까?”
“끙, 열이 올라 죽을 거 같네. 서너 달이면 내가 죽은 뒤가 아닌가?”
“제가 있는데 어찌 성주님을 죽도록 놔두겠습니까.
당장은 그저 종기의 활동을 억제해 고통을 좀 줄여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는데.”
“그 필요한 건 밖에 있는 집사에게 말하게나. 그저 이 고통이나 빨리 낫게 해 주게.”
세상사람 누구나 제 몸 아픈 게 가장 급한 일이다.
제 부인이고 자식이고 심지어 부모보다 제 몸 아픈 걸 낫게 해주는 이가 가장 존귀한 이가 되는 순간인 것이다.
집산지 하인인지에게 정향이니 하는 귀한 약재를 요청하고 침을 요구했는데 침이라는 건 이곳에 있는 물건이 아니다.
결국 여인들이 쓰는 바늘을 가져왔는데 사실 바늘도 아주 귀한 물건이다.
사기를 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흉내는 내야 했기에 정향을 달인 물로 종기가 있는 등판을 씻어 내고 또 그 물에 바늘을 담가 두었다가 바늘 끝을 불로 지져 뜨겁게 달구었다.
“고통스러워도 잠시 참으십시오.”
일단 침으로 커다란 종기의 몇 군데에 꽂아 고름이 어느 정도 빠지게 한 후에 아주아주 약하게 치유마법을 펼쳤다.
동료들이 느끼는 황홀한 느낌도 없고 비물질이 물질을 태우면서 나타나는 하얀 빛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종기 안에 바이러스가 죽지는 않고 그저 일정시간 활동을 멈출 정도로.
그 후 다시 정향 달인 물로 등판을 씻어내니 환자의 표정이 당장에 활짝 펴진다.
“이제야 살 거 같네, 그려. 이렇게 쉬운 것을 어찌 다른 치료사들은 치료를 하지 못한 건지 말야. 그래 치료가 끝난 건가?”
“앞서 말했다시피 아직 치료가 끝난 건 아닙니다.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치료를 해야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 있습니다.”
“알았네. 자네도 고생했으니 이만 가서 쉬게나.”
우리 네 사람은 그날 밤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씻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라는데 어쩌겠는가.
며칠 잘 먹으며 그저 건성으로 정향 달인 물로 등판이나 닦아내고 있으니 집사가 와서 상당한 디르함을 주면서 이만 나가란다.
그래도 양심이 없는 이는 아닌지 상당기간 먹고 살만한 돈을 주기는 했다.
아마 환자는 종기가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바이러스들이 내 치유마법에 활동을 멈추었을 테고 등판에 있던 고름은 제거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기다렸고 말이다.
본래 물건의 가격이란 필요로 하는 이의 심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물건이라도 부모님의 유산이라면 만금을 주고도 되찾고 싶은 게 인간이듯이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를 느껴야 주머니를 여는 법이다.
처음의 치료는 그저 잘 아는 상인의 권유에 허실삼아 해봤을 것이다.
말로는 만금이라도 내놓을 듯이 말했지만 인간은 화장실 갈 때와 나와서의 행동에 차이가 있는 특이한 존재다.
치료는 만족스러웠고 치료사가 서너 달은 걸릴 거라는 말은 한푼이라도 더 뜯어낼 요량의 과장이라고 여길 건 뻔한 일인 것이다.
더구나 치료의 방법도 충분히 익혀둔 상태다.
정향을 비롯한 약재를 사온 것도 집안의 하인이고 또 그 약재를 섞어 달인 것도 집안의 하인이다.
아마도 성주는 치료사가 어리석어 자신의 비법을 낱낱이 토해 놓은 줄로 알 것이다.
치료사 말대로 종기가 재발해도 비싼 돈을 들여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하인이나 집안의 치료사를 쓰는 게 싸게 먹힐 것이라 여겼을 것은 뻔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기왕에 치료사, 특히 종기를 치료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종기를 제대로 치료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전생에 사업을 하는 중에 한국의 유명한 고약 제조업체를 인수한 적이 있다.
고약이라는 게 없이 살던 시대에는 아주 중요한 종기치료약으로 쓰였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각종 연고가 쏟아져 나오는 판에 누가 몸에 고약을 붙이고 생활을 하겠는가.
그 유명한 고약을 만드는 회사는 문을 닫을 지경이었고 누군가 내게 한국의 전래 고약을 보존해 달라고 해서 그 비법을 사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 집안의 비법은 내 손 안에 들어왔고 다시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물론 고약에 필요한 약재가 한국이 아닌 이 이역만리에 모두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지식의 방에서 공부했고 그곳에서는 식물들의 다양한 쓰임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즉 환경은 다르지만 한반도에 있던 식물들을 대체할 식물들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내 일을 도와줄 동료가 세 명이나 있고 말이다.
필요한 약재를 구하기 시작했다.
유향이니 몰약이니 하는 비싼 약재는 호다다드를 시켜 돈으로 샀고 다른 일부는 놀고 있는 두 동료를 시켜 산에서 캐오도록 했다.
그렇게 모인 약재를 달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푹 달이고 굳혀 경고硬膏 형태가 되자 조금씩 나누어 기름종이에 싸 칼라쉬 부족에서 만났던 상인에게 팔아줄 것을 요청했다.
『고려고약』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물론 그 사용법을 알려준 건 당연했다.
그러나 누가 있어 아직 그 효능이 증명되지도 않은 비싼 고약을 살 것인가. 쉽게 팔릴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상인의 가족 중 하나가 종기가 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상인은 성주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지라 내가 만든 그 고려고약을 사용해 봤던 모양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고약을 사용해 사람 손을 탈 필요도 없이 화농을 녹여 터트리고 농의 뿌리가지 뽑아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약의 효능에 대한 탁월한 성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상인은 그 고약을 주변의 상인들에게 소개를 하였는데 그 일이 선순환이 되면서 이제 고약은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되었다.
물론 가격이 있는지라 가난한 서민들에게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사는 이들이라면 지금 시대에 여벌의 목숨을 챙기는 일이라 한둘씩은 챙기려고 하니 고약으로 인해 푸르샤푸라에 유황과 몰약의 가격까지 급등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는 중에 마침내 성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푸르샤푸라Purushapura]
산스크리트 어로 『인간의 도시』라는 뜻이다.
2C경 인도 쿠샨 왕조의 수도였으며 998년 투르크계 무슬림에 정복되면서 이슬람화하였다.
16C 무굴제국의 악바르 왕조에 점령되면서 『변경 도시』라는 이름의 페샤와르Peshawar로 불리게 되면서 현재까지 페샤와르로 불린다.
위치는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을 흐르는 카불 강의 파키스탄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중해까지 연결되는 비단길의 주요 교통로로 중계무역으로 크게 번성하던 도시다.
[정향丁香]
말루카 원산의 나무로 향신료로 쓰이는 부분은 꽃봉오리이다.
꽃봉오리의 모양이 못처럼 생겨 그 이름에 정丁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냄새는 치과 병원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나 한국인들은 무척 싫어하는 향신료다.
은단의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조선시대 내관들이 정향을 상시 복용했다는데 이는 구취를 없애기 위함으로 보인다.
고기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서양에서 자주 쓰였고 인도에서는 카레의 필수요소로 쓰인다.
또한 정향은 살균과 방부효과가 있다고 하며 모기기피제의 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이명래 고약]
이명래 씨께서 일제 강점기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에밀 드비즈 신부로부터 약초에 대한 것을 배워 우리의 경고硬膏에 대한 민간요법과 결합해 만든 한국 최초의 신약.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정에 한 두 개씩은 비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연세가 있으신 분은 대부분 몇 번씩 써본 경험이 있는 약으로 종기가 난 부위에 붙이고 며칠만 있으면 고름이 흐르면서 종기가 사라진다.
다만 약의 냄새가 좋지 않으면서 심하고 고름이 흐를 때 고름이 옷에 묻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흔하게 발병하는 종기에 대해 수술 없이 단지 환부에 붙이는 방법만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항생제와 좋은 연고軟膏들이 나오며 냄새도 안 좋고 모양도 볼썽사나운 이 고약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명래 씨는 일제 치하에서 나름 자존감을 살려 일제하의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있다가 해방 후인 1945년에야 면허를 취득했다고 전한다.(왠지 존경심이 든다.)
현재는 그 비법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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