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그날 나는 호다다드와 치기야, 오뜨겅 순으로 동료들의 순서를 정했는데 유사시 나와 헤어졌을 때 닥칠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는 순서로 정해둔 것에 불과했다.
지난번 푸르샤푸라에서는 모두 같이 성주의 집에 잡혀갔지만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따라온 병사들 넷은 후탄, 아마반드, 아바단 및 호람이라는 네 명이었다.
나이는 모두 우리들보다 많았는데 후탄과 아마반드가 34으로 가장 나이가 많고 아바단은 30 그리고 호람은 26이었다.
확실히 이제 24이 된 호다다드나 21인 오뜨겅이나 치기야보다 세상 경험도 풍부할 것은 자명했지만 어디 이와 같은 관계를 단지 나이순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 넷은 나이순으로 순서를 정해 만일을 대비한다고 하지만 역시 평시에는 모두 호다다드가 맡아 관리하도록 했다. 물론 대화가 통하는 이가 호다다드뿐이기도 했고.
그래도 그 성주의 저택에서 나를 창으로 찌른 후탄이라는 자는 바로 앞에서 내가 벌인 이적을 보아서 그런지 나를 상당히 두려워했는데 나는 그가 내게 한 일은 그저 감정이 아닌 일이라는 판단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제는 여덟로 늘어난 일행은 부지런히 말을 몰아 마침내 파슈툰족들의 영역을 벗어나 발루치족과의 경계지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언제까지 말을 몰아 다른 부족의 영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쿠람 강과 힌더스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조금은 번잡한 마을에서 사람을 부려 산에서 나무를 해 뗏목을 만들기로 했다.
말까지 이동하려니 마을에 있는 작은 배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무를 자르고 칡넝쿨을 구해 구한 나무를 엮는 일들이야 손재주가 필요한 일이어서 나와는 관계가 없지만 뗏목의 구조와 그 설계에 있어서는 내가 가진 지식이 마을의 누구보다 나을 것이다.
뗏목을 타고 그저 하루이틀 정도를 여행하는 게 아니라 근 한달 가까이를 여행해야 했으므로 나는 아주 튼튼한 구조에 비까지 막을 수 있는 형태의 뗏목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힌더스 강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려가는 여정에 나는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것은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아니 지금 몸의 주인인 김한돌로서의 삶이었다.
본래의 김한돌과는 달리 나는 몽골의 군사로 일할 생각이 없었으니 무슨 염탐질을 할 생각도 없었고 상인으로 부를 이뤄 이쁜 여자를 맞이한다는 김한돌의 꿈 역시 내게는 관심이 없는 일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한돌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애틋한 생각이 없으니 고향으로 가야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저 지금은 푸르샤푸라의 성주를 피해 더 정확히는 귀찮은 일을 피해 남으로 가고는 있지만 내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남으로 가는 것도 아닌 것이다.
어느 날은 주위에 있는 이 일곱 명을 이용해 무슨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세상에 평지풍파를 일으켜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시대는 종교의 시대라기보다는 야만의 시대요 칼의 시대다.
설교보다는 칼이 먼저인 시대라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예수도 무함마드도 부처도 칼에 베이고 잘리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 칼을 막는다고 고려는 대장경 판본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만들었다고 해서 칼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또 내가 영원히 김한돌로 살 수도 없는데 세상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다시 하나를 보태 인간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럼 지금까지 한 행동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도 모른다고 말할 뿐이다.
뭐, 그저 몸을 얻었으니 먹고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에 한 행동일 수도 있고 긴 시간 『지식의 방』에 갇혀 있다 물질계로 나온 김에 마법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싶어 저지른 행동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내게 별 의미없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 중에 마침내 뗏목은 힌더스 강과 체납 강이 만나는 양수리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물길을 아는 이를 고용해야 했다.
듣기로 힌더스 강이 만드는 거대한 삼각주는 수시로 지형이 변해 아는 이들만이 다닐 수 있다고 하니 다시 나귀 한 마리를 주고 사람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호다다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래도 호다다드는 의무감에 그런 것인지 제가 나서서 손짓발짓을 해가며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언어에 재능이 있는 듯하다.
사람을 구해 다시 남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왜 남으로 가는지는 우리 누구도 내게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저 바다나 한번 보자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었고 이 구질구질한 야만의 땅이 싫어 무작정 도망을 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한여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안내인의 말에 따라 뗏목을 버리고 말을 타고서 항구가 있다는 카라치로 향했다.
한여름의 이곳은 덥고 습했는데 아마도 곧 장마가 올 모양이었다.
아마도 아라비아 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아니었다면 나는 남으로 온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물론 어디를 간다고 내게 좋은 환경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사람을 지치고 짜증나게 하는 이 후텁지근한 날씨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카라치에 도착해서도 나는 이 김한돌이라는 몸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번민에 쌓여 있었다.
마침내 후텁지근한 날씨는 비를 뿌리기 시작했지만 일행 일곱은 난생 처음 보는 바다라는 것에 흥분해 매일 해만 뜨면 바다가로 가 구경을 하고 나는 그저 우두커니 방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일이 우리가 한 일이 전부였다.
일행들은 이 비가 그치면 내가 일행들과 함께 다시 여행을 할 것이라 믿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역시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그저 먹고 사는 문제로 정신이 없다가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을 보면서 중2병이 도진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던 어느날 바다가를 다녀온 일행들이 하는 말이 이 비를 뚫고 배를 타고 온 이들이 있다고 한다.
“마을의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돌아온 것인가?”
“아닙니다. 그들은 저 멀리 메카가 있는 곳에서 정향을 구하기 위해 동쪽으로 가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다가 비가 그치면 출발한다고 하더군요.
저희도 그때 같이 가면 좋을 걸로 생각됩니다.”
‘허, 벌써 향신료무역이 생겼던가.
아니지. 내가 기억하기로 아직까지는 해상을 통한 무역로를 만들 정도의 자본가들이 생길 시점은 아닌데.
한번 만나봐야겠군. 아마도 아랍의 어떤 상인인가 본데.
하긴 아라비안 나이트에 대한 얘기들이 한창 만들어지고 있을 시기이기는 하니 누군가 모험을 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겠지.’
아무리 모험을 담은 아라비안 나이트가 만들어지고 있고 신밧드가 고래 뱃속에서 나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해도 이제 13C 초였다.
이런 시점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곳 카라치까지 나아가 더 멀리 동으로 간다는 이들이 있다니 조금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호다다드에게 일단 우리 일행이 동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했다.
어차피 우리 일행 여덟은 모두 이 지역의 주민이 아니기에 여행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었다.
모두가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이 필요했으니까.
다만 그 여행의 종착점이 고향이라는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고향을 향하는 게 아니라 내가 김한돌로서 무언가 할 말한 일을 찾아다닌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호다다드는 뱃사람들과 교섭을 통해 다시 나를 판 모양이다.
용한 치료사가 있는 건장한 남자들 여덟로 우리를 팔았고 우리는 뱃사람들이 동쪽으로 향할 때 배에서 선원으로서 일을 한다는 조건으로 배를 얻어 탈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익힐 필요가 있어 우리는 뱃사람들을 찾아갔다.
나는 무리를 지어 찾아가면 자칫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호다다드만을 대동하고 메카에서 왔다는 이들을 찾아나셨다.
내가 찾아간 이들은 한 무리의 남자들로 이루어진 무리로 얼핏 살펴본 바에 의하면 확실히 뱃사람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태반은 처음 배를 타는 이로 보였다.
더구나 분위기도 좋지 않았는데 들어보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두 척의 배를 잃었고 그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과 다른 여덟 척에 타고 있던 이들 중에서 바다에 빠진 이들이 상당수 있는 모양이었다.
바닷가를 살펴보니 이들이 타고 왔다는 배는 기껏해야 적정 인원이 열 사람 정도인 배로 배 앞뒤로 돛이 하나씩 있고 또 배의 좌우로도 노가 각 넷씩 장착되어 있는 작은 소선에 불과했다.
‘허, 이런 배로 용케 여덟 척이나 살아남았다면 행운이지 슬퍼할 일이 아니구만.’
일행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확실히 아랍어라는 것은 알겠지만 내가 21C에 배워 알던 아랍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말이라는 게 문물이 발전하면서 다양해지고 변화를 겪는데 반해 기본적인 단어의 변화는 적은 것이라서 어느정도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호다다드는 그가 외웠던 꾸란으로 인해 어느 정도 지금의 아랍어를 알고 있어 뱃사람들과 대화는 가능했다.
그러고 보면 아랍어만큼 변화가 적은 언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또 지금부터 내가 아는 그 21C까지 꾸란을 암송하고 꾸란을 필사하던 민족이니 글로 적힌 말이 존재하는 한 말이 변하는 일은 적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와 호다다드를 맞이한 이는 상당히 늙수구레한 무바락이라는 이름의 사내와 이제 어른을 흉내낼 나이의, 곧 내 또래의 아브달아지즈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모든 남자들은 적어도 30대는 되어 보이는 이들이고 그 아브달아지즈 또래의 청년은 그 혼자였다.
인사를 나눠보니 무바락이 선장이 아닌 항해사고 선주이자 선장은 아브달아지즈라는 청년이었다.
“당신은 못보던 생김새인데 어디서 온 이요?”
“혹, 송이나 한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아십니까?”
“송은 모르겠고 한이라면 저 멀리 동방에 있다는 대제국을 말하는 것이요?”
“그 한이라는 나라는 이미 수백년 전에 망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나라가 지금은 송이라는 나라입니다.
나는 그 송이라는 나라에서도 동쪽으로 더 간 곳에 있는 고려라는 나라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메카에서 멀리 떨어진 마스캇이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마스캇? 아! 무스캇을 말하는 모양이군.’
“마스캇이라면 페르시아에서 바다 건너에 있는 곳이 아닙니까?”
“어? 어찌 아시오? 여기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데.”
“그저 견문이 많아 들었을 뿐이오.”
“하긴 젊은 나이에 치료사 일을 할 정도면 배운 지식도 상당하고 듣고 본 것도 많기는 하겠군요.
비가 그치면 우리는 떠날 예정이니 준비들을 해 주시오.
혹여라도 말이나 나귀 따위를 배에 싣자고 하지는 마시오.
다만, 염소라면 선창에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싣게 해 주겠소이다.”
장마가 그칠 때까지 호다다드에게 가지고 있는 말을 처분하는 일들을 시키고 나는 매일 그 아브달아지즈와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아브달아지즈 역시 자신의 일행 중에는 나이가 비슷한 이가 없으니 나와 얘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라했고 말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는 그의 개인사까지 듣게 되었는데 그는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고 여동생과 늙어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가진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죽으며 물려준 빚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했던 일인 정향과 후추 무역을 위해 다시 많은 빚을 지고 배를 만들어 항해를 온 것이란다.
한마디로 이번의 항해에 모든 것을 건 사내인 것이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인도의 달력과 계절]
인도의 역법은 사카Saka라고 하는데 사카는 우리가 쓰는 서기西紀만큼이나 오랜 된 역법曆法으로 리그베다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인도는 민족도 많고 그에 따라 언어도 많다.
그에 따라 그 민족과 언어에 따른 사카도 다양하며 그 부르는 호칭도 다양하다.
인도 정부에서는 물론 서력西曆도 쓰지만 민간에서는 지방마다 고유의 사카가 있다고 보는 편이 편하다.
사카의 원년元年은 서력 78년으로 서기 78년이 사카 0년이 되는 것이다.
또 새해의 첫날은 입춘이 지난 다음날인 서력으로 3월 22일이다.
참고로 이슬람 지방에서는 춘분일인 3월 21일을 새해의 첫날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서력으로는 3월 22일부터 4월 20일까지의 30일이 1월이 된다.
매달은 30일이나 31일이며 서력처럼 28일은 없다.
다만 윤년의 경우에는 첫 달이 4월 21일까지고 순차적으로 날이 밀린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명칭을 보면
차이트라Chaitra(3월 22일~4월 20일), 바이샤카Vaishakh, 지예슈타Jyeshta, 아샤다Aashaadh, 샤라바나Sharaavan, 바아드라파다Bhadrapad, 아쉬윈Ashwin, 카르티카Kaartik, 마르가쉐샤Margasheersh, 파우샤Paush, 마가Maagh, 팔구나Phalgun이다.
또 인도의 계절은 한국의 4계절과는 다른데 기본적으로 6계절로 각 2개월씩이다.
계절 이름은 바산따Vasanta(봄 Spring 3월 중순~5월 중순), 그리스마GriiSma(무더위철 Summer), 바샤VarSa(장마철 Monsoon), 샤라드Sharad(가을 Autumn), 헤만따Hemanta(겨울 Winter), 쉬쉬라Shishira(서리가맺히는철 Dewey)이다. 즉 소에서 주인공이 카라치에 도착했을 시점이 7월 말경이라는 것이다.
물론 겨울이라고 해서 눈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라가 크니 어느 지역은 겨울에 눈이 올 수도 있다.
인도 역시 고려나 조선과 같이 태양태음력을 사용해 주週라는 개념은 없이 한 달을 두 개의 팍샤Paksha(보름)로 나누는데(동아시아에서는 열흘을 기준으로 상ᆞ중ᆞ하순으로 나눈다.), 보름달이 뜰 때가지를 푸르니마Purnima(첫 보름), 초승달이 뜰 때 까지를 아마바스야Amavasya라고 한다.
물론 과거의 일이다. 현대는 문명뿐 아니라 문화마저 서구의 것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아직 문화가 살아 있는 곳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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