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내가 졸본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바뀌어 있었고, 작년에 사할린 탐색에 주력했던 한울루스에서는 이미 사할린에 상당수의 거점을 만들어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동안 염주와 연길 그리고 함주에서 사할린 탐색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어서 빨리 사할린섬 주위의 바닷물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내 책상 위에 올라온 사할린의 대략적인 지도를 살펴보았다. 물론 내가 사할린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전생에서도 사할린이라는 험지의 지도를 자세히 살폈을 리는 없다.
더구나 사할린이 섬이라고 해서 그 크기를 단순히 섬이라는 말로 치부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다.
비록 그 폭은 좁지만 길이로는 한반도보다 긴 곳이 사할린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탐색을 통해 드러나 내 책상 위에 놓인 섬의 구조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상태로 여인네가 작은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발판을 딛고 서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동쪽을 바라본 채 꼿꼿이 서있는 모양으로 그 여인네의 머리와 허리 아래는 산들로 빽빽한 구조이나 여인네의 가슴과 배는 작은 구릉은 있을지언정 큰 산조차 없는 평원이었다.
또한 여인네의 꼿꼿한 두 다리와 펄럭이는 치맛자락은 산지 지형이나 그 다리와 치맛자락을 구분짓는 선을 따라서는 분지나 협곡의 형태로 사람이 거주하거나 길을 내기가 적당한 지형이었다.
물론 치기야가 사할린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며 지정한 장소는 여인의 치맛자락도 아니고 여인이 발을 딛고 올라선 작은 발판의 가운데 부분이었는데 아마도 그곳이 개중 가장 따듯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야 졸본의 날이 풀리는, 그래서 아직 사할린은 분명 꽁꽁 얼어있을, 4월의 어느날 탐험의 시작을 알렸다.
먼저 염주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대양호와 졸본호에 몸을 싣고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2진이 될 연길과 함주에 있는 이들은 육로를 통해 염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총인원 2,500 중 이미 사할린의 거점을 지키느라 지난겨울 동안 고생했을 500을 제외하고 2천의 인원이 2차례에 걸쳐 사할린으로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의 고생으로 항로는 이미 밝혀진 상태였다.
총 5척의 대양호와 또 총 5척의 졸본호에 실린 인원과 물자는 사할린의 남북으로 흩어질 예정이었고 그들은 총 5곳의 대거점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었다.
즉 치기야가 짠 계획에 의하면 사할린을 충 5곳으로 나누어 한곳마다 대거점을 만들고 대거점 한곳에 중거점 5곳, 중거점 한곳에 소거점 5곳을 만들어 인원과 물자를 흩어놓고 수색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좁은 사할린의 특성상 그런 식으로의 수색이라면 하다못해 죽은 이들의 옷가지라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를 위해 이미 협상이 끝난 사할린의 주민들이 동원되었는데 아마도 이 문제에 있어서 치기야가 상당한 무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였다.
듣기로 저항하던 큰부족 한곳과 작은 부족 한곳을 소문을 낼 몇 명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남성들의 씨를 말렸다고 하니 말이다.
치기야는 또 사할린의 부족들에게 포상도 걸어놓았다.
우수리 일행의 흔적을 찾기만 하면 찾은 곳의 대거점에 있던 모든 부족원을 한울루스내 미타호 주변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포상 말이다.
내가 듣기로는 절대 그들에게는 포상으로 들리지 않을 소리였지만 나는 그 문제 역시 치기야에게 맡기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미타호 주변으로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고 가급적 사할린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이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지난 수년간의 노력으로 마침내 부여시의 흑토지대(체르노젬)에서 마침내 벼농사에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부여시와 그 위쪽에 넓게 퍼져 살던 여진인들이 부여시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이 미타호 주변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 미타호 주변을 개간할 일꾼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할린의 주민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두 곳이 고려의 남쪽처럼 이모작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 두 곳의 평원에서 제대로 경작지가 확보되면 한울루스는 더 이상 새졸본에 식량을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게 1진이 출발한 곳은 사할린의 남쪽 지역이었다.
아무래도 산이 많은 남쪽 지역에 세 개의 대거점을 잡았는데 우수리 일행이 조난을 당했다면 그 쪽 지역일 확률이 높다는 판단과 또 남쪽 지역이 차지하는 면적 역시 더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사할린에 대한 탐색 명령을 내린 후 한가지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마법지식을 이용해 일종의 아티팩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지난번 카라코롬에서 마못을 이용해 구유크의 게르에서 그곳의 상황을 살피면서 느낀 것이 만약의 사태에서 내가 내 주위의 동료들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면 우수리의 일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지구의 인간들 중에 마나를 가진 것은 둘째치고 마나를 아는 이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즉 내가 만든 아티팩트를 가진 이가 어떤 상황을 내게 보내려면 그의 마나가 필요한데 그것이 이 지구에서는 불가능한 문제라는 말이다.
탐색대 1진이 사할린에 갔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결국 내가 겨우 만든 것이 흑요석에 내 마나를 잔뜩 집어넣고 유사시 내가 흑요석에 있는 마나를 이용해 내 의사를 전달하는 정도의 물건을 만들었는데 이는 사실 별무소용인 물건이니 말이다.
누가 있어 갑자기 내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또는 내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가 이 지구에 있겠는가.
괜히 귀신이라는 둥 이상한 말만 돌게 되어 나나 그 물건을 가진 이나 사람들에게 ‘미친 놈’이라는 말만 듣게 할 물건인 것이다.
더구나 좀 더 연구를 해 볼까 하는 중에 함주에서 급보가 날아와 내 연구는 저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는데 함주에서 날아온 급보는 우수리가 함주에 나타났다는 소식이었으니 내 연구 따위가 중요할 리가 없었다.
2년 만에 한울루스 영역으로 돌아온 우수리나 그 밑의 장졸들은 다행히 다치거나 죽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외려 사람이 늘었는데 그것은 내가 북해도라고 알던 섬에서 데려온 이들 때문일 뿐 아니라 같이 온 여인들의 태중에 한울루스의 자손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탐색대 2진의 출발은 취소가 되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고 1진의 역할 역시 수색에서 그 본래의 탐험으로 변경이 되었는데, 치기야나 오뜨겅이 기왕에 이미 시작된 탐험을 마치는 것이 좋겠다니 그 의견을 수용한 결과이다.
더구나 새롭게 발견한 섬과 그곳의 위치로 인해 오뜨겅은 아이누모시라는 섬을 탐험하고 가급적 그곳을 한울루스의 영역으로 할 것을 건의 했는데 나는 그 안건에 대해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사할린에 대한 조사와 그 주민들에 대한 미타주로의 이주가 끝난 후에 논의하자고 미뤘다.
다만 한가지 안건은 의결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군부대의 창설에 대한 건이었다.
즉, 우수리가 건의하고 치기야가 적극 찬성한 안건은 기마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일명 육전대라는 부대와 육전대의 치중부대와 같이 바다를 통해 인원과 물자를 운반하면서 배의 운용을 맡을 운송대라는 부대 외에 적극적으로 한울루스 주변의 여러 곳을 탐험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한교로 개종시키며 한말과 한글을 전파하는 탐험대라는 부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오뜨겅과 치기야의 찬성에 힘입어 탐험대의 수장은 우수리가 맡기로 한 것이다.
다만 우수리는 수장을 맡되 그 스스로도 탐험대로 복무할 것을 강하게 주장해 여전히 일선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또한 특별히 탐험대를 위한 별도의 배를 만들기로 했다.
대양호처럼 바람에만 의지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과 또 졸본호처럼 배가 너무 작으면 물자를 싣고 다니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탐험에 적당한 배를 새로이 설계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탐험을 위한 별도의 인력 역시 양성하기로 했는데 특별히 언어와 지도 작성에 능숙하도록 훈련을 시키기로 한 것이다.
사실 우수리가 곧 바로 다시 탐험을 시작해 아페시르 열도를 북상해 탐험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를 거절하고 우수리에게 얼마간이라도 휴식을 주기 위해 내가 꺼낸 말인데 그 말이 이치에 맞아 우수리 역시 수긍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수리의 귀환으로 근심을 털고 기분좋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고려에서 새로 지외무가 되었다며 인사차 온 이가 있었는데 김약선金若先(?~?)이라는 이다.
처음 인사를 하고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김약선과 앞에 있는 김약선이 혹 다른 인물인가 하고 의심을 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역사대로라면 김약선은 이미 죽었어야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김약선의 처는 최우의 정실인 정씨와의 사이에 얻은 장녀로 최항의 배다른 누이되는 이다.
거기에 김약선의 딸은 지금의 세자인 장차 원종이 되는 이의 비로 전생에 충렬왕이 되는 이의 친모인 것이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본래 최우가 자신의 후계자로 삼은 이는 김약선이었지만 최항이 김약선의 부인인 최씨와 짜고 김약선을 죽여버리면서 최우가 최항을 후계자로 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 최항이 입조를 했으니 당연 김약선을 죽이고 그 대항마로 떠오른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으니 적어도 고려의 역사는 이미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흠, 본래 김약선은 최우의 복심인 잔데 그런 이가 지외무에 올랐다라.
아직도 고려 조정은 진양후의 그림자가 짙구나.
더구나 진양후 역시 죽을 때가 돼서인지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 하고.’
나는 김약선을 보면서 최우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문관으로는 김약선을 지외무에 배치해 나와 한울루스를 제어하고 무관으로는 자신의 아들을 일선으로 불러 무신들을 다잡을 요량으로 읽힌 것이다.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조용히 여생이나 마무리하지 뭐하러 이런 일을 꾸미는지.’
“그래, 지외무가 되신 것을 축하하오이다.
근래 고려와는 다른 문제가 없는 듯한데 어인일로 예까지 오신 것이오.”
“다름이 아니오라 듣자니 칸께서 학식이 높고 또 새로운 학문을 열어 많은 후학을 배출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거기에 미욱한 이에게까지 가르침을 내리는데 아낌이 없다는 말도 있고요.
해서 말인데 칸께서는 혹 고려의 백성들과 같이 담론을 나누고 또 그들에게 그 새로운 학문이란 것을 알려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이미 많은 이들이 여기 졸본의 학교에 와서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 또 누가 있어 가르치겠습니까?
또한 제가 하는 학문이란 것은 유학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종의 잡학에 해당하는 학문입니다.
고려의 유학자들이 배우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요.
그래서 굳이 배우고자 하는 이들만 이리로 불러 가르치는 입장입니다.”
“저도 그리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칸께서 고려로 들어와 학문을 설파해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 유학자들이라는 이가 아니라 고려의 일반백성들에게요. 어떤가요?”
“고려의 일반백성이요? 그들을 모두 개경으로 부르시려고요?”
“아니지요.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칸께서 수고스럽겠지만 고려의 여러 고을을 두루 둘러보시면서 고을의 백성들에게 칸의 그 새로운 학문을 알려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또 그 한교라는 것도 백성들에게 설파해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고려는 지나치게 불교가 팽창해 백성들의 가진 것이 모두 사찰로 가는 형편이니 이참에 그런 것도 조금은 바로 잡을 수 있을 테고요.”
“호! 고려에 정말 이리도 훌륭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지금의 고려의 그 불교라는 것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지나치게 세속적이 되어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잡을 필요가 있지요.
그래 언제쯤에 그 일을 하면 좋겠습니까?”
“그건 조정에서 상의를 한 뒤에 날을 잡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날이 잡히면 저도 우리 한울루스의 강역인 함주를 비롯한 동북방향도 같이 둘러볼 계획이니 일정을 의논하도록 합시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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