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사탕수수를 대만에서 심어 볼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며 배를 출항시켰다.
대만이 루손 섬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있다는 생각에 항로는 북북서다.
그렇게 이틀을 가니 멀리 육지가 보이는 데 내 기억에 대만 근처에 섬은 별로 없다는 생각에 일단 섬의 서쪽 방향으로 바다호를 틀었다.
아니 배의 방향을 서쪽으로 틀지 않더라도 배는 누군가 잡아끌기라도 하는지 조금씩 서쪽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태풍이라는 바람 말이다.
오뜨겅이 위에서 작은 섬이 아니라 엄청난 크기의 땅이라는 말에 일단 대만 본섬이라는 확신을 하고 섬의 서쪽 방향을 따라 오르기로 했다.
물론 가급적 섬에 붙으려고 하지만 바람은 우리의 바다호를 자꾸만 서쪽으로 밀어낸다.
그래도 아직은 그렇게 태풍이 가까이 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태풍이 하루나 이틀거리까지 가까이 왔다면 바다호를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처음의 목표는 타이페이였지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다호를 대만 섬 가까이 붙여 배가 정박할 곳을 찾지만 어디에서고 배가 정박할 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 하는 마음으로 배를 북상시키는 중에 마침내 풍랑은 거세지고 바다호는 일엽편주마냥 풍랑에 휩쓸리는데 배 안에 있는 모두는 난리가 아니다.
누구도 이런 거대한 풍랑 위에 서 본 적이 있는 이가 없는 것이다.
배의 불안한 움직임에 간난아이들은 울어제끼고 큰 아이들은 그저 겁먹은 얼굴로 제 부모의 품에서 떠나지를 않으려고 하고 가두어 둔 염소들 역시 난리를 피우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누구 하나 갑판에 나오지 않는 가운데 결국 바다호는 어딘가에 부딪혀 우측 선체에 구멍이 나고 말았다.
아직은 구멍의 크기가 작다고는 하지만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물의 양은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캄란, 마두, 파신. 셋이서 책임을 지고 뚫린 구명을 막아라. 나는 배가 정박할 곳을 찾아보마.
나머지는 내가 신호를 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와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내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한두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갑판에 올라 주 마스트로 오르는 사다리를 잡고 견시 바구니로 오르기 시작했다.
눈이야 오뜨겅이나 바부가 더 좋다고 하지만 누가 견시 바구니에 오르고 싶겠는가.
지금까지의 항해가 운이 좋았다거나 바다라는 것이 본래 이런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겨우 견시 바구니에 들어가 흔들리는 몸을 견시 바구니 가운데로 올라온 주 마스트에 묶고 저 멀리 보이는 대만 섬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 섬 방향을 관찰하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뭍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였다. 강인 것이다.
부지런히 바구니에서 내려온 나는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게 어떤 돛은 접고 또 어떤 돛은 펼치게 한 후 나 역시 타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꽉 잡고는 나머지는 이제는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배가 강의 하구에 닿자 타가 부러질 정도로 타를 돌려 배의 방향을 바꾸고 돛이란 돛은 모두 접은 상태로 기다리니 들이닥치는 밀물과 함께 바다호는 강 안으로 밀려들었고 다시 방향을 조정하니 배는 마침내 거대한 파도와 함께 강변의 모래사장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물론 바다호는 그 선체를 기우뚱하게 좌측으로 기울이게 되었지만 일단은 모두의 목숨은 구한 것이다.
“자, 모두들 필요한 것만 챙겨 밖으로 나가자. 일단 강변에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도록 해라.
그리고 닻을 풀어 줄에 묶은 후 저기 있는 바위에 매어라.”
피를 피할 만한 곳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배에서 가죽이나 천을 가지고 와 나무 사이에 묶어 천막을 만든 후 일단 피를 피하고 나는 남자들에게 당분간의 거처를 만들도록 했다.
비는 나흘을 쉼없이 내렸는데 바람의 세기 역시 만만치 않아 나는 임시로 만든 거처에 아이들과 여자들을 몽땅 집어넣고 혹시라도 배가 강으로 떠나갈까 봐 안절부절이다.
그렇게 나흘 간 쏟아 붓듯이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더니 이제는 강렬한 볕을 쏟아내는데 변덕스런 날씨에 기어이 아이들을 시작으로 탈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이 개면서부터 치기야는 우리 일행을 감시하는 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은 그런 것에 관심을 둘 만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건강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한여름의 감기와 몸살이 몸이 약한 이들을 중심으로 퍼진 것이다.
이것은 무슨 병이 아니라 그저 잘 먹고 푹 쉬면 낫는 것이었지만 처지가 처지라 잘 먹이고 잘 쉬게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치기야와 오뜨겅 등 남자들에게 들짐승을 잡아 올 것을 명했는데 가축화되지 못한 물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소를 잡아 한바탕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드디어 이곳의 원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이 등장했다.
손에는 조악하게 만든 돌창을 가지고 있었고 아랫도리는 대부분 짐승의 가죽으로 두르고 있었는데 개 중 한 인간은 그 복색이 중국풍이다.
‘허, 벌써 중국인들이 이곳에 진출을 한 건가? 내가 알기로 아직은 먼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중국풍의 옷을 입은 이가 나서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다만 그 억양이라든가 하는 것이 광동 지방의 말과 비슷했지만 내가 아는 중국어는 21C 북경어고 본래의 몸 주인이 알고 있던 짧은 중국어 역시 현 시대의 북경어여서 그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한자를 적어 나갔다.
다행히 본래의 몸 주인이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웠던지라 글을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일단 상대방은 자신을 장오張五라고 소개하면서 10여 년 전에 푸저우福州에서 상행을 위해 배를 타고 원저우溫州로 가다 풍랑을 만나 일행 모두가 죽고 자신만 겨우 이곳에 떨어져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묻는 게 혹 이곳이 어디인지 아느냐는 질문이다.
바닥에 쓰여 있는 글을 보니 아마도 이 장오라는 이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이곳 원주민들에게 협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10년 전이면 저 북쪽의 몽골이 금나라와 한창 싸울 때가 아니오?
아마 지금쯤에는 금나라는 멸망하고 어쩌면 송 역시 나라가 풍비박산이 되어 있을 것이오.
고향으로 가 봐야 좋은 꼴 보기 어려우니 그저 이곳에 정착해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을 것이오.”
“당신이 그걸 어찌 아시오? 당신은 방금 전에 멀리 천축국에 다녀왔다고 했는데.”
“지금 몽골은 욱일승천의 기세라 천축국까지도 몽골의 병사들이 난리오이다. 내가 들은 소문이 그렇다는 말이오.”
“아무튼 내가 여기 무리의 수장에게 잘 말해 둘 것이니 나를 배에 좀 태워 주시구려.
꼭 원저우나 푸저우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소이다.
아니 당신들이 간다는 고려로라도 데리고 가 주시오. 이곳의 사람들과는 도무지 어울리기가 어려워서 그러오.”
“알겠소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곳을 떠날 때 당신 역시 데리고 가 주겠소이다.
물론 당신 고향인 푸저우에 데려다 준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고맙소이다. 내가 여기 왕에게, 아 참 여기는 나라의 크기가 아주 작소이다.
왕도 내가 아는 것만도 열이 넘어 가오.
내가 보기에 나라라기보다는 그저 작은 촌락들이 스스로 나라라고 창하는 듯 보이오.
아무튼 여기 왕에게 잘 말해 주리다.”
“여기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 것 같소이까?”
“글쎄요, 이곳은 바부자Babuza라는 나라인데 내가 알기로 오백 가구 정도 되는 듯하더이다.
한번은 타오카스Taokas라는 부족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 이들 왕국의 수도랄까 하는 도시가 있었고 각 처의 왕들이 모여 회의를 하더이다.
물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각자 통사들을 데리고 하는 회의지만.
아무튼 그 도시 이름을 미다그Middag(대두大肚)라고 하는 듯하고 가구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소.
아무튼 무슨 왕이 그리 많은지 내가 보기에 그 미다그 사람수보다 왕의 숫자가 더 많은 듯이 보이더이다.”
“이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아이고 말도 마시오. 이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는 여자들이 키우는 조나 수수 거기에 피가 전부요.
남자들은 사냥을 한다고 하는데 당신도 봤듯이 기껏해야 돌창이 전부니 사냥은 무슨.
그저 운이 좋아 다친 짐승이나 잡는 게지.
더구나 각 왕들의 구역에는 다른 부족이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해 짐승이 다른 곳으로 피하면 닭 쫓는 개꼴이요.
그래서 이들이 당신들이 잡은 물소에 탐을 내고 있는 것이고 말이오.
아마 당신들이 물소를 잡지 않았다면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을 것이오. 이렇게 큰 배는 처음 봤을 테니까.
하긴 나도 이리 큰 배는 처음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야만의 시대에 다가온 문명은 두려움의 대상인가 보다.
아마 바다호가 중국의 해변에서 조난당했다면 우리는 모두 사로잡히고 배 역시 빼앗기고 말았을 텐데 이들에게는 이 커다란 배가 두려움의 대상이고 또 이런 배를 가진 우리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단 배도 수리해야 하고 또 물살의 힘으로 뭍에 올라온 배를 다시 강으로 내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좀 더 편안하게 쉴 숙소를 만들도록 했다.
거기에 오뜨겅과 치기야, 아바단, 호람 등에게 물소 한 마리를 잡아 장오라는 이에게 넘기도록 했다.
그렇게 며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다시 장오라는 이가 나를 찾아왔다.
아니 장오라는 이는 우리가 어느날 떠날 것이 두려운지 이곳에서 얻었다는 제 부인과 어린 자식들까지 데리고 왔는데 확실히 이곳의 사람들이 대륙이나 고려 사람과는 그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중에 다시 태풍이 들이닥쳤다.
이번 태풍은 전의 태풍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셌는데 비도 비지만 부는 바람으로 인해 우리가 만든 임시가옥이 모두 날아가 버릴 정도로 거셌던 것이다.
나는 그 두 번째 태풍을 겪고 나니 지금 시점에 바다호를 띄우는 일의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결국 일행과 상의해 당분간 이곳에 머물다 태풍이 부는 시기를 피해 북상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나저나 태풍이 그치면 그때부터는 북풍이 올 텐데 시기를 잘 맞춰야 하겠어.‘
그렇게 우리는 대만의 중부지방 어디쯤일 곳에서 두세 달은 머물 예정으로 준비를 해갔고 느긋한 준비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여유도 주게 되었다.
그리고 장오를 통해 이 지역의 지배자라는 이에게 사정을 설명하라고 보내니 장오가 돌아와 왕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단다.
’그래, 몇 개월씩이나 있어야 하니 얼굴이나 익히자.'
나는 장오를 가운데 두고 족장인지 왕인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과연 장오의 말대로 이들의 문화수준은 신석기시대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장오, 이들은 청동이나 철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이들이 가진 무기라는 게 죄다 돌창이 아니오.”
“사용하기는 하는데 아주 드물어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철을 만들 줄을 모르는 모양입디다.
다만 저 북쪽 지방에 쿠롱Kulon이라는 곳과 바사이Basay라는 곳이 있는게 그곳에서 다른 외부의 어떤 부족과 가끔가다 물소뿔과 거래를 하는 모양입디다.
아마 그때 철제품이 넘어오나 본데 언젠가 보니 그 철제품은 확실히 대륙의 것과는 다릅디다. 아주 조악하더라고요.
아마도 근처에 철을 다루는 어떤 부족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나 역시도 그 부족의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소.”
“장오, 그럼 여기 내가 옆구리에 차고 있는 칼 정도면 족장이 마음에 들어 할 것같소이까?”
“허, 그 칼 말이오. 그 칼이라면 나 역시도 마음에 드는데 말해 무엇하겠소.
그런데 꽤나 값이 나갈 그런 칼을 이 미개한 족장에게 주려고 하는 거요?”
“말이나 전해 주시오. 내가 가진 칼을 줄 테니 족장이 목에 걸고 있는 그 물소뿔로 만든 칼을 달라고.
다만 후에 내가 그 물소뿔로 만든 칼을 가진 사람을 보낼 텐데 그에게 족장의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해 달라고 말이요.”
“농사? 아니 여기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거요? 뭐하러 그런...”
“내 고향 고려는 당신이 살던 푸저우처럼 날이 따듯하지도 않고 또 물이 풍부하지도 않아요.
여기서 농사를 지어 그 소출을 고향으로 가지고 간다면 고향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지 않겠소.”
“그건 당신이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요.
당신이 농사를 지어 쌀을 가지고 가면 관리들은 당신의 재물을 빼앗고 당신의 목숨을 취할 수도 있는 일이오.
오히려 화를 부르는 일이란 말이오.”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그렇게 말이나 전해 주시구려.
그 말에 대한 증명으로 각자가 가진 칼을 바꾸자고.”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대만의 원주민]
동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을 언어적으로 분류하면 우리나 일본, 몽골 등의 퉁구스 계열과 중국티벳어족 계열 그리고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대별할 수 있다.
물론 현대에 있어서는 큰 의미는 없는 구별이고 수천 년의 역사가 흐르면서 언어들이 서로 섞이면서 모든 언어가 모든 계통의 특징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민족을 나누는 가장 뚜렷한 근간은 그 언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결코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닌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언어의 뿌리가 되는 사람들이 바로 대만의 원주민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라는 말이지 대만의 원주민들이 동남아 각지로 퍼졌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만의 원주민이 중국 본토에서 넘어와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라는 것은 증명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오스트로네시아 인으로 살던 이들에게 남방계 한족들, 특히 푸젠성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 춘추시대 월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섞이기 시작한 최초의 역사적 사건은 진시황에 의해 불로초를 찾으러 떠난 동남동녀들일 것이란다.
그후 손권이 뻘짓을 하기도 했고 이때의 대만에 대한 표현으로 이주夷洲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대만은 중국 본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왔다.
물론 이 소설의 장오처럼 바다에 표류한 이가 대만에서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아니 대만이 가진 문자가 없어 기록 자체가 없다.
대만과 중국이 최초 공식적인 접촉기록은 원나라가 동남아의 스리비자야 왕국을 치러 가면서 대만 앞에 있는 펑후(澎湖) 섬에 들렀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도 대만 본섬에는 들르지 않았다.
당시(1360)에 원은 펑후에 순검사巡檢司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푸젠성의 취안저우泉州에 그 통치를 맡겼다고 하는 걸로 보아 이때에는 이미 대만 본섬에도 한족들이 얼마간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펑후에 대한 기록은 남송시대 야사 등에 나오는 기록으로 그 기록에 나오는 이름이 펑후라고 한다.
따라서 적어도 14C부터는 대만의 원주민과 한족들의 피가 섞이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피가 섞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한족들과 교류를 하며 한족의 문화로 동화된 이들을 평포족平埔族이라고 부른다.
근래 대만의 원주민이라고 할 때 이 평포족은 거기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언급한 바부자니 타오카스니 쿠롱이나 바사이 족의 경우는 대만의 원주민에 이제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한족화된 것이다.
다만 사이시얏족이나 아티얄족 등 산속에 살던 이들은 아직도 원주민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대개 대만의 서부 평원에 살던 이들은 평포족이 되었고 산악에 살던 이들은 아직까지 원주민으로 남아 있다.
원주민들은 각 부족마다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어 원주민들끼리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평포족들이 모여 9C 경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대두大肚왕국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17C 경까지 존재했다고는 전하니 중앙집권화된 왕국이 아니라 연맹도 아니라 연합체적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16C 네덜란드의 상인들이 본섬에 항구를 만들면서 대만은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1662년에는 반청복명의 기치를 든 한족들이 대만에 동녕東寧왕국(혹은 明京왕국)을 세우고 네덜란드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일도 있었다.
이 왕국이 대만에 만들어진 최초의 한족 정권이었다. 물론 얼마 안가 청에 의해 왕국은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1683).
이후 대만은 청의 푸젠성 관할하에 있다가 청일전쟁 패배의 결과인 시모노세케 조약(1895)으로 일제에 할양이 되었으며,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중화민국에 반환이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제가 대만의 원주민들을 고산高山족으로 부른데서 고산족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중국은 이 단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고산족이라는 말은 일제가 대만의 원주민을 낮춰 부르는 말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조센징으로 불리는 게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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