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캇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그날은 유덕용과의 술자리로 밤늦은 시각까지 보내야 했다.
유덕용은 내가 울루스의 칸이 되어 돌아온 것을 특히 기뻐했는데 그것은 여진인들이 좀 더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날 술자리에서 나는 아주 특별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테무게가 유덕용에게 맡긴 2개의 밍캇, 곧 2개의 천인대 중에서 몽골군으로 이루어진 밍캇의 밍칸이었는데 이름을 살리타이라고 하는 이였다.
처음에는 그 이름을 듣고도 무심코 넘겼는데 유덕용이 종종 ‘살리타이 장군은...’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그제야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호, 여기에 있는 살리타이가 그 살례탑撒禮塔이었군.’
솔직히 본래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이 살리타이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여몽전쟁의 서막을 올리는 이가 바로 살리타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는 사라진 역사일 뿐이다.
이제는 내게 충성해야 하는 일개 장군이 되지 않았는가.
‘죽도록 부려 먹어야겠군. 그러려면 아무래도 코가 쑥 빠질 정도로 기운을 빼 놔야 되겠지.’
다음날 오후가 되어 나는 유덕용과 오뜨겅 그리고 살리타이를 호출했다.
‘그래, 이제야 실감이 나네. 내가 칸인 게 맞긴 맞구만.’
지금 있는 2개 천인대만으로도 고려라면 몰라도 이미 지리멸렬한 이곳 여진은 쑥대밭으로 만들 전력이고 그 전력이 내 손아귀에 있다는 생각에 내가 칸인 것이 실감이 난 것이다.
확실히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누구의 말처럼 군을 손아귀에 넣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그리고 이 군대를 잘 만 다루면 내가 하려는 사업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지만 잘못 다루면 칸이라는 이 자리마저 살리타이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부른 것은 지금 놀고 있는 몽골의 밍캇의 활용 방안과 향후 우리 울루스의 군사력에 대한 방침을 정하기 위함이오.
일단 어제 술자리에서 대충이나마 말은 전했으니 각자가 생각한 바가 있으면 기탄없이 말을 해 보시기 바라오.”
“한님, 먼저 대칸께서 한님을 이곳의 칸으로 지명하시면서 투멘의 직위를 주시지 않은 것을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흠, 투멘이라?”
생각해보면 육반산에서 쿠릴타이가 열리기 전에 테무친을 만나 한울루스와 그 칸의 자리를 받으면서 투멘의 직위 역시 받기는 했다. 다만 내가 거절을 했을 뿐.
나는 지금 대륙에서 벌어지는 땅따먹기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가 받은 이 한울루스라는 땅은 근본적으로 무武가 아니라 문文이라는 것으로 인한 것이다.
대칸은 분명 내게 한울루스를 주면서 몽골글자에 대한 것과 마고와 세 형제의 이야기에 대한 그 두 권의 책에 대해 1년에 1만권씩 몽골로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한울루스는 군사력이 아니라 초원 사람들의 문화적·정신적 지주가 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내게는 투멘이라는 만부장의 직위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투멘이라는 직위를 받아 자칫 몽골이 벌이는 대금·대송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보다 내가 하려는 이 사업이 더욱 거대한 전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칼로 사람을 위협해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보다는 그들의 머리에 내가 그들의 친구요 스승이며 텝텡게르라는 것을 심어주는 것은 더욱 무서운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막말로 내가 전쟁에 참여를 한다고 해도 지난 10여 년 전과 같이 전쟁을 치른 부대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부대로 전락하지 않겠는가.
분명 내가 맡을 부대는 몽골의 병사들이 아니라 여진의 병사들일 것이니 말이다.
“맞소이다. 나는 분명 대칸께 투멘의 직위를 받지 못했소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건 지금 이곳에 와 있는 몽골의 병사 외에 더 이상 몽골의 병사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몽골의 병사요? 그 말은 달리 말해 몽골의 병사가 아니면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전에 이곳에 있는 두 개 천인대를 데리고 옷치킨께서 오셨을 때도 분명히 1개 밍캇이라고 하셨으니까요.”
“호, 나는 이곳에 2개 밍캇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1개 밍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물론 전장에서는 여진인들로 구성된 밍캇 역시 밍캇으로 불리지만 옷치긴께서 하신 말씀이나 제가 몽골군에 있으면서 보고 배운 바에 따르면 특별하게 밍캇이라고 할 때는 그건 몽골군만으로 구성된 밍캇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대칸께서는 한님에게 지금 이곳에 있는 1개 밍캇만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여진인으로 병사를 늘린다면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까?”
“그 문제는 제가 아뢰겠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살리타이 장군께서 말씀해 보시지요.”
“유 장군님 말씀도 맞는 말씀이지만 정확히 밍캇이라고 하는 것은 몽골의 기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옷치긴께서 유장군에게 1개 밍캇이라고 하신 것은 저와 같이 온 여진의 기병들은 아직 기병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우리 몽골에서는 군대는 기병만을 이르고 이른바 보병이라는 것은 군대로 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장군이 어느 성을 1개 밍캇으로 무너뜨렸다고 할 때 그 밍캇은 기병만을 이르는 말인 거지요.
그 기병을 따라 이동하는 보병이나 후속부대는 그 밍캇에 그저 따르는 개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말이지요.”
“호, 그거 무척이나 재미있는 개념이군요. 하긴 걷는 몽골군을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그러면 나는 이곳에 기병으로 1개 밍캇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역시 대칸에게 보고할 때도 기병의 수만 보고를 올리면 되는 것이겠군요.”
“맞습니다. 사실 우리 몽골의 군사들 입장에서는 보병들은 아무리 많아야 그저 수만 채우는 거니까요.
물론 성을 방비할 때는 보병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일반 백성들을 조금만 훈련시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뭐 궁병이야 우리 기병에게 위협이 된다지만 그 궁병이라는 게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좋아요. 어차피 나는 금을 치거나 송을 치는 전쟁에는 참여를 할 생각이 없으니 굳이 기병이 필요하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살리타이 장군, 지금 있는 몽골의 그 밍캇은 뭘 하고 있습니까?”
“예? 저 그게 몽골의 밍캇은 본래 기병으로 길러진 군댑니다.
여진군이 작업을 하시는 것을 보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몽골의 병사들에게 그 일을 시키면 모두 탈영을 하고 말 겁니다.
사실 몇몇은 전쟁이 없어 소득이 없다고 불만이 많기도 하거든요.
그들은 전쟁에서 재물을 얻어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야 할 책임이 있는 이들입니다.”
“살리타이 장군도 그렇습니까?”
“커흠, 저야 이미 가족을 이리로 불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전쟁이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흐흠, 그렇다라. 그럼 일단 내가 지시하는 일이라도 해 보시렵니까?”
“칸, 그 여진인들이 하는 일이라면 사양하고 싶습니다.”
“아, 일단 그런 일은 아닙니다. 뭐 전쟁도 아니지만요.
여러분 모두 우리 한 울루스가 요하 동쪽이라는 것은 이미 아실 테고.
뭐, 그래봐야 사람들이 요하 이쪽저쪽으로 다녀서 그들이 내 백성인지 아닌지 알기는 어렵지만요.
살리타이 장군에게 있는 병사의 수가 700 정도라고 하니 일단 500으로 다섯 개 자쿳을 만드는 겁니다.
물론 자쿤을 임명하셔야 하고요.
내가 그 1개 자쿳마다 여진인 두셋씩을 붙여줄 테니 각 지역을 다니면서 여진인 마을을 찾아 그 위치를 표시하고 찾은 마을에 가 이곳이 한울루스라는 이름의 몽골의 울루스가 되었음을 알리고 마을에서 좀 똑똑하다고 하는 젊은 사람을 두셋씩 내가 있는 졸본마을로 데리고 오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글자를 가르치고 또 마고와 세 형제의 이야기를 전한 후 다시 그들 마을로 돌려보낸 후 마을사람 모두가 그 글과 그 이야기를 배우도록 하는 겁니다.
물론 그들을 다시 돌려보낼 때는 몇 년 후 몽골의 병사들이 다시 마을을 찾을 거라는 것과 마을을 찾았을 때 나이 열여섯이 넘고 마흔이 되지 않은 남자들 중에 내가 알려준 글과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무조건 몽골의 병사들이 그들을 이리로 끌고 와 3년간 노에로 부릴 것이라는 엄포도 놓을 것이고요.
그리 되면 이곳 한울루스의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이 글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 초원의 백성들이 어떤 이들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님, 자칫 백성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반발이요? 먹을 것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사냥한 가죽을 바치라는 것도 아닌데 반발을 할까요?
자칫 반발을 하다가 마을 전체가 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데요.”
“정말 반발을 하면 마을 전체를 몰살시키실 겁니까?”
“왜요? 못할 것 같습니까?
이건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종인 내가 하느님의 명으로 벌이는 사업을 방해하는 이들을 두고 볼 거 같습니까?
물론 유장군이 걱정하는 바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라고 하느님께서 내게 능력을 주신 것이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저도 아는 부족들에 알려 반드시 글과 이야기를 알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그리고 살리타이 장군에게 여전히 남은 그 2백의 병사들은 여기 오뜨겅에게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예? 그럼 저는 어쩌고요?”
“살리타이 장군은 이제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 당분간 하느님께서 주신 글자와 그이야기를 배우는데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제가 물었을 때 일반 병사들은 다 아는 글을 장군께서 모르신다면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자쿤들과 여기 오뜨겅 장군이 일을 하는 동안 부지런히 글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장군께서도 글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졸본으로 오셔도 좋고요.
참, 그 2백의 병사들은 여기 오뜨겅 장군과 같이 움직이면서 요하를 따라 이곳이 한울루스라는 것을 알리는 푯말을 세우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
그 고된 일을 살리타이 장군께서 하시기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제 밑에 아무도 없다는 건 좀...”
“1년 정돕니다. 그 1년 동안 마을에 오셔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1년 금방 지납니다.
보세요. 저도 거의 8개월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지만 무슨 큰 일이 있습니까.
오히려 다들 알아서 일들을 해줘서 좋기만 한데요. 장군 내 약속하지요. 1년입니다.”
결국 살리타이는 나의 설득에 넘어갔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 마음속에 칼을 숨기고 넘어간 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때에는 유덕용도 나의 편을 들고 있어 그는 고립무원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의 상관인 테무게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었을 테고.
아마도 그는 이미 테무게가 나의 꾐에 넘어 갔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요양에 도착해 내 한울루스에서 가장 골칫거리인 몽골의 밍캇을 흩어버렸다.
그저 무위도식을 하느니 한울루스의 경계를 확인하면서 지도를 작성하고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사는 곳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일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한 행동이다.
그 일은 유덕용 역시 대찬성한 일이다.
그도 그럴게 요양이 넓은 지역이라고 하지만 그곳에 자리잡은 1개 밍캇은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무리 유덕용이 요양의 지배자라고 하더라도 제 수중에 있는 군사보다 더욱 많고 잘 훈련된 군사는 감당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밍캇에 대한 일을 정리하고 자쿳들이 떠나기 전날 나는 그 자쿳들의 수장들을 불러 그들이 해야 할 임무의 성격을 주지시킨 후 이제는 완숙한 경지에 오른 반쪽짜리 치유마법을 펼쳐 자쿤들에게 하느님이 실제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지배하는데 있어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능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졸본에 도착해 마른하늘에 번개가 친 것을 본 몇몇 병사들로 인해 한동안 술렁거려야 했던 자쿤들은 이제는 내가 하느님의 대리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소문이 확인되는 순간인 것이다.
뭐, 아르반까지 그 마법을 펼쳐주기에는 당시 가진 마나가 부족해 기껏 자쿤들이 한계였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대개의 군대는 21C 한국 군대의 대대장처럼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 호흡을 같이 하는 자쿤들만 휘어잡으면 명령체계라는 것은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살리타이가 훌륭한 장군이라고는 하지만 그 역시 무슨 대단한 지모를 가졌거나 정치적 식견을 가진 장수가 아니라 맨 앞에서 칼을 들고 설치는 하나의 용맹하고 힘센 전투원에 불과하니 말이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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