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조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흠, 그러고 보니 안 부의 아들도 이제는 충분히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는데 어째 소식이 없네.
전생을 생각하면 어릴 때부터 신동소리가 널리 퍼질 텐데 말이야.’
그 아들이 전생과는 달리 유裕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미 비틀어진 역사로 인해 안향安珦(1243~1306, 초명은 유裕)이라는 인물이 사라진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분명 천재여야 할 안 부의 아들에게서 신동이라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으니 나로 인해 한 명의 천재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말로 하기 힘들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겠지. 갑돌이만 보더라도 전생의 역사에 없던 인물이지만 수학과 천문학에서 시대에 앞선 업적을 이루는 반면 안향이라는 인물은 사라졌으니 고려에의 성리학 도입은 아무래도 많이 지체될 것은 뻔하니까.
어쩌면 삼국유사나 제왕운기같은 한반도를 하나로 묶는 저술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하긴 이미 『마고와 세형제의 이야기』로 인해 두 책에 있어야 하는 내용이 좀 더 세상에 빨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생각난 김에 안유라는 아이가 어떤지나 살펴봐야겠군.’
내가 안유라는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선생을 불러 안유에 대해 물으니 유는 아명으로 학교에 들어오면서 이름을 향珦으로 바꾸었단다.
그리고 선생의 말에 따르면 안향이 뛰어난 아이이긴 하지만 다른 학생들에 비해 특출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뭐야, 그럼 안유가 안향이란 말이잖아. 그런데도 특출나지 않다면 뭐가 문제지?
흠, 본래 천재형이 아니고 노력형인가.
뭐 기초학문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학문에 발을 들여야 그 재주를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곳 졸본은 유학의 그림자가 약하니 주자를 배우겠다고 나대지는 않겠지.’
더구나 이미 졸본에는 조금씩 민족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니 무턱대고 대륙의 학문이 좋다고 따라할 분위기로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학(역사와 문학)에서 학생들 사이에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는 『마고와 세형제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세 형제를 모두 같은 뿌리로 여겨야 하는지 아니면 그 중에서 단군의 뿌리만 조상으로 여기고 다른 두 뿌리는 그저 가까운 겨레 정도로 여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것이다.
특히 졸본의 학생들은 내가 『마고와 세형제의 이야기』와 『한글교본』을 하느님에게서 받았다고 한 것을 그저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는 비유로 여길 뿐이다.
그저 내가 저술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학생들의 태도가 종종 일반백성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는 하지만 나나 내 동료들이 그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 학생들 사이에는 하느님이니 하는 말보다 책의 저자는 나라고 믿는 경향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 안에서만 그럴 뿐이다. 밖에서 그런 말을 잘못했다간 백성들에게 돌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뭐라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과학적 방법론에 맞기 때문이다.
실체도 모르는 하느님을 외쳐봐야 학생들 귀에는 그저 공염불일 뿐인 것이다.
다만 백성들 중에는 초창기 졸본에서 내가 보여준 마법으로 인해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아무튼 학생들 사이에 겨레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느냐의 문제는 근래 한창 뜨거운 논쟁거리다.
다만 그것을 공론화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내가 『마고와 세형제의 이야기』에서 그 세형제를 모두 같은 뿌리로 언급했고 또 한울루스의 지배층에 호다다드와 오뜨겅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데 조심스러울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려와 여진, 거란을 같은 뿌리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진과 고려는 경상도와 함경도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한뿌리로 볼뿐 다른 겨레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은 나의 마음을 아주 흡족하게 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고려인이고 또 학생들의 많은 수가 고려인 출신이며 한울루스의 상위 권력층에 많은 고려인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근래 들어서는 졸본과 박작, 요양, 연길까지는 여진인이라도 고려말을 못하는 이는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니 그럴 만도 하다.
여진인들도 고려인 사이에서 몇년만 살다보면 모두 고려말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마치 경상도 사내가 과거에 합격해 개경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개경말을 쓰듯이 말이다.
물론 고려에서는 아직까지 여진인과 고려인을 구분하지만 그것도 그나마 서북면에서는 상당히 희미해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기존에 가지는 인식을 고치는 데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시간 역시 상당히 필요한 법이다.
노력이야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은 그것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어렵다.
그저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법이니까.
내 전생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지는 공산주의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아니 내가 있던 그 기간 동안 끝내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안다.
물론 세대가 바뀔수록 그 정도는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려인들이 여진인에게 가지는 인식이 바뀌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한울루스내 여진인과 거란인에 대한 고려말과 고려글에 대한 교육이 병행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아무튼 나는 한울루스 26년부터 5년간의 기간 동안 꼼짝을 않고 내정에 신경을 쓰려고 했지만 한울루스 29년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바투가 사망한 것이다.
물론 바투는 대칸도 아니고 또 그의 가족도 아니다. 거기에 그 장례식이 카라코롬에서 열리지도 않는다.
비록 내가 바투와 가깝게 지내기는 했지만 내 위치상 당연 내가 조문을 갈 수도 없는 처지다.
그런데 그저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대칸인 몽케에게서 입조를 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상합니다.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칸이 부르는데 가지 않는다고?
그건 몽골 울루스와 우리 한울루스의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르나.
나를 걱정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리 할 수는 없는 일이야.”
“칸, 지난번 소르칵타니 조문 때 그 고려의 최항이 갔던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도 예감이 좋지 않아.
만약 이번에 굳이 가야겠다면 우리 몽골의 군사를 끌고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야.
앉은 자리에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오뜨겅, 네 염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오히려 그 일이 몽케를 자극할 수도 있단 것을 알아야 해.
우리가 군사를 끌고 가 봐야 몽골군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야.
나는 외려 나 혼자 혈혈단신으로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 한울루스에서 대비를 할 사람은 너희들이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본래 몽골의 다른 칸들은 카라코롬에 갈 때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움직이는 게 관례 아닌가?
우리 역시 관례를 따른다고 해서 그가 우리에게 뭐가 조치를 취한다는 건 맞지 않잖아.”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바투 등이 그런 것은 본래 그리 했으니 자연스럽지만 나는 여태까지 어디를 가던지 군사를 이끌고 간 적은 없단 말이지.
내가 군사를 이끌었을 때는 과거 동하의 포선만노를 칠 때 분이야.
몽골이나 몽케가 좋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해. 굳이 침략의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단 말이지.
다만 대비를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오뜨겅 네가 현재의 병사들 조련에 좀 더 치중하면서 소식을 기다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다고 무작정 초원으로 쳐들어오는 짓은 벌이지 말고.
모름지기 왕이든 칸이든 또는 이름을 뭐라 부르던 나라를 대표하는 이는 백성들의 소득으로 배부르게 먹고 산 만큼 자신의 목숨 정도는 백성들을 위해 내놓을 각오를 항시 하고 있어야 하는 법.
내 죽음으로 몽골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다만 몽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걱정일 뿐.”
나는 말리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네 동료 셋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물로 나를 배웅하는 내 부인인 아야의 배웅을 받으며 항시 내가 카라코롬에 가는 정도의 인원만을 꾸려 마차에 올랐다.
한동안 동쪽으로만 신경을 쓰다 요하 방향으로 이동을 하면서 보는 한울루스는 이제는 반듯하고 넓은 길이 대부분의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고 요하강변에 있는 나루터는 강을 오가는 이들로 북적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공이 하는 말을 들으니 여전히 대륙에서 요하를 건너 한울루스로 건너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새삼 내가 지난 세월 이룩한 일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도착한 카라코롬에서 나는 그동안 졸본에서 나와 친구들이 한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걱정이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는데 몽케는 우리 한울루스에게 상당히 강력한 그러면서도 지나친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을 친다고요?”
“그럴 계획입니다.”
“어떻게 일본을 친다고 하시는 겁니까?
몽골의 기마병은 바다를 본 적도 없지 않습니까?
대칸께서는 혹 바다가 몽골에 있는 웁스 누르Uvs Nurr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웁스 누르가 소금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누르일 뿐이니까요.
바다를 접해 보지 못한 몽골의 기마병들은 배 위에서 서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이란 걸 아셔야 합니다.
더구나 섬이라는 것 역시 보통의 뭍과는 달리 우리가 생각도 못한 문제를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또 일본은 산지가 아주 많은 지형입니다. 우리 한울루스보다 산지가 많고 고려만큼 산지가 많다는 말이지요.
말을 달려도 시원한 맛을 느끼기 어렵단 말입니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님, 제가 몽골의 대칸에 올라 숙부께서 하시던 저 송나라를 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어야만 한단 말입니까?
할아버지는 몽골을 통일하고 제국의 반석을 쌓았습니다.
숙부께서는 송을 치셨고요. 아마 일찍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기어이 송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요?
고려는 이미 입조를 해 몽골의 우방이 되었고 또 적으나마 송을 치는 군량미를 대고 있습니다.
고려를 칠 수는 없단 말이지요.
몽골의 왼쪽은 어떻습니까? 또 오른쪽은 어떻고요?”
“칸이시여. 굳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해서 업적을 쌓을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외교로써 그들을 굴복시키면 그만인 겁니다.
고려를 보십시오. 그들은 대칸의 충실한 신하가 아니옵니까?”
“맞아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 고려를 말로써 굴복시킨 것도 제가 한 일이 아니라 한님이 하신 일이지요.
이미 훌라구에게 군사를 내 주어 이스마일파의 이맘들과 압바스 왕조를 내 앞에 무릎 꿇리라는 명을 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에게는 송을 치도록 했고요. 이미 대리국은 무너뜨렸다고 하더군요.
제가 할 일은 그 일본이라는 섬나라를 내 앞에 무릎 꿇리는 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후, 좋습니다. 대칸께서 굳이 섬나라인 일본마저 무릎 꿇리고 싶으시다니 저 역시 그에 호응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그 동래현에다 몽골군을 모아놓고 대마도를 거쳐 일본의 구주라는 곳으로 쳐들어간다는 계획은 너무 어설픕니다.
제가 졸본에 들어가 제 막하들과 상의를 해 다시 계획을 수립하도록 합지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한님께서 꺼내신 말씀은 항상 그 결과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역시 그리 말씀하셨고 또 바투 형님도 한님에 대해서는 항시 같은 말씀이었지요.
제가 믿어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안 하려고 했으면 여기 이 자리에서 안 한다고 하지 달아나는 성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일본에 대한 공략은 쉬운 일이 아니니 긴 시간을 갖고 대응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좋습니다. 한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일단 한님의 계획을 보고 다시 상의 하는 것으로 하지요.”
‘이거 난데없이 일본을 침략하게 생겼군.
후, 몇 백 년 후 일본 역사책에 나를 삼두육비의 괴물로 묘사하지 않는지 두렵구나.’
떠나기 전 잠시 카라코롬의 지인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몽케가 변한 게 바투가 죽은 후 부터란다.
아무래도 바투라는 제동장치가 사라지면서 몽케는 제 선조들의 업적을 뛰어넘고 싶은 욕망이 생긴 듯했다.
‘전생의 역사에서 몽케가 고려를 치더니만 이번에는 일본을 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는 확실히 정복군주로 이름을 날리기 원하나 보구나.
그나저나 최항 이놈을 어찌 한다. 가만 보니 최항이 몽케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이는데.'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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