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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진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제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동기진
작품등록일 :
2019.01.19 10:52
최근연재일 :
2021.10.20 19:5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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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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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3.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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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3
추천
73
글자
16쪽

소금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DUMMY

이장용은 그 한글이라는 것을 배울 때부터 놀라기 시작했다.

먼저 맹형에게서 글자의 제자원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마치 한자와 같은 상형象形이지 않은가.

그뿐인가. 그 상형에서 획수를 더해 새로운 글자를 만드니 이는 형성形聲이요 글자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호이니 이는 지사指事다.

또 다른나라 말을 능히 그 소리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가차假借니 그 한글이란 글자의 원리와 체계는 바로 한자와 같지 않은가.

그뿐인가. 어미소리에서의 제자원리는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를 가져다 만든 것이라 하는데 이는 역경의 인본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 제자원리라고 해서 그저 혓바닥의 모양을 그린 아이들 낙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글을 익힌 후 그 한글 교본이라는 책을 찬찬히 읽어보니 누군가 장난으로 만든 글자가 아닌 것이다.


또한 한수를 배워보니 이는 한자처럼 길게 쓰는 노력없이 그저 간단히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0’이라는 아주 철학적인 숫자를 삽입해 그 기능을 부여했으니 그 만든 공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뒤에 나오는 연산의 기호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과연 그것을 사용한다면 굳이 가감승제加減乘除라는 어려운 한자를 몰라도 누구나 익힐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음수니 분수니 무리수니 하는 말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그 만든 공이 대단함을 알 수 있는 숫자라 할 수 있었다.


글을 익히느라 일단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는데 나이 서른이 다 되는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울고 이렇게 좋아한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어찌 어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인가. 흠,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내 부인에게 글을 가르쳐 이 책을 읽는 모양을 분명 봐야겠다.’

그래서 이장용은 다른 책을 읽는 가운데 틈틈이 제 부인과 자식들에게 그 한글이라는 것을 가르쳤는데 과연 사흘을 넘겨서도 배우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부인 이제 글을 배웠으니 그 글을 익힌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한번 읽어 보구려.”

이장용이 책을 건네고 은근히 안방의 동향을 살피니 어느 때는 펑펑 우는 소리가 들려 집안의 종복들이 안방으로 달려가고 또 어느 때는 깔깔거리며 웃는데 종복들은 부인이 미쳤다며 수군거리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허, 과연 그 책은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 큰 어른들에게도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기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이는 마치 도깨비가 가지고 있다는 그 요술방망이와 다름이 없구나.’


그렇게 책을 익히다 마지막으로 집어든 책이 『마고와 세 형제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책은 분명 한교라는 신앙에서 그 하느님의 말씀을 다룬 책이라고 했는데 그 책의 내용은 대부분 고려인이라면 어릴 적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한번쯤은 들었던 내용이었고 모르는 이야기를 감안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이 세상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고려백성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거 자칫 이 책은 풍파를 일으킬 수 있겠는데.

이 책대로라면 고려와 몽골은 본디 한 형제라는 것인데 그 말은 몽골이 고려를 침범하는 것이 형제가 다시 만나는 일로 미화될 수도 있겠어.

이 책이 고려에 퍼지는 건 막아야 해.

잘못하면 우리 고려는 사라지고 우리 강역은 몽골의 강역이 될 수 있는 일이야.

빨리 폐하와 진양후를 만나봐야겠어.’


생각은 그랬지만 이장용이 여벌의 목숨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진양후를 놔두고 황제를 먼저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시기 고려의 황제는 그 집권기간 동안 최씨들의 무단정치의 희생양인 왕철王㬚로 죽은 후 고종이라는 시호로 그리고 다시 반세기가 지난 후에는 원에서 강제로 내린 충헌왕忠憲王이라는 시호로 불리게 되는 인물이니 그가 가진 권력이란 최대주주가 전무인 회사의 대표이사에 불과한 정도였던 것이다.


“그럼, 현보의 생각은 이 한글이라는 것은 우리 고려가 받아들여도 좋지만 그 한교라는 신앙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우리 고려가 비록 태조대왕시절부터 고구려를 이은 적통이라고 주장은 해왔지만 그 실체는 신라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럴진대 북방 말갈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여진이나 거란 더 나아가 몽골과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이 민간에 퍼지면 백성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호적이게 바뀔 것이고 이는 장차 몽골이 우리의 강역을 범했을 때 자칫 백성들이 그들의 편에 서 조정에 반기를 들 수도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아니 그들 한교를 믿는다는 이들이 선보이는 여러 기물들에 백성들은 분명 혹할 것이니 그리 될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그리되면 백성들은 그 한울루스의 말을 따를 뿐 우리 조정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니 이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넘기게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한교라는 것은 실로 치밀하게 우리 고려를 노리고 만들어진 신앙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러니 그 한교의 경전이라고 하는 이 『마고와 세 형제의 이야기』라는 책은 민간에 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 애초에 그 한글이라는 글자 역시 민간에 퍼지지 않게 하면 되지 않겠소이까?”

“제가 생각해 보건데 그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 판단합니다.

백성들은 본래 천성이 게으른 종자들이라 좀 더 편한 것이 있으면 이를 기어이 찾아 쓰는 족속들입니다.

듣기로 이미 몇몇 상인들을 통해 그 한글이라는 글자와 한수라는 숫자가 퍼지기 시작해 이미 서북면 방면의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두를 대신해 그 한글을 사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니 이는 먹물이 퍼지는 것과 같아 이미 퍼진 글자와 숫자의 사용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흠, 그렇긴 하지요.

더구나 글자를 배우는 걸 죄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가만 거기 한울루스에 분명 다른 학문이 있다고 했지요?”


“듣기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전한 이 역시 상인이라 무슨 학문인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뭐, 상인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소이까?

그래서 말인데 현보가 그 한울루스에 가 그들이 한다는 그 학문이라는 게 어떤 건지 좀 알아오면 안되겠소이까?

그리고 간 김에 그 한교라는 것이 과연 현보의 말대로 우리 고려에 위험한 것인지 아닌지도 알아보고요.

내가 보건데 우리고려도 유학이나 불학 외에 다른 학문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듣기로 송에서는 이미 성리학이라는 다른 학문이 퍼지고 있다고 하는데 혹 한울루스에서 한다는 학문이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송의 성리학이 왜 몽골과 고려를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지도 알 수 있지 않겠소이까?”

“성리학이요? 제가 듣기로 성리학은 그런 학문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아! 알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것을 확인해 보자는 말이 아닙니까.

더구나 현보께서 이미 그런 정보를 알아왔으니 현보께서 다른 것들도 알아보는 게 빠를 것이고요.

이미 그 한글이라는 것도 배우셨다면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봄이 오면 출발하겠습니다.”

“아, 아! 아니에요. 빠를수록 좋으니 겨울이지만 준비가 되면 바로 출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리고 기왕에 가신 김에 그 한울루스의 칸이라는 이를 만나 과연 몽골에서 지난 사건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또 몽골이 금을 쳐 중도에서 변경으로 쫓아냈다고 하는데 과연 그들이 금과 전쟁을 하면서 우리고려와 동하와도 같이 전쟁을 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면 좋겠소이다.

내 동하에도 사람을 보내 알아보기는 할 테니까요.”

“진양후 대감 말씀을 명심해 한 치도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나왔지만 이장용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내가 그래도 인주仁州(=인천) 이씨 집안인데 나를 한낱 세작으로 부리려는 것이 아닌가.’

고려 문종은 이장용 6대조인 이자연의 사위였고 순종, 선종, 숙종과 대각국사 의천은 그 6대조의 외손주들이었던 문벌귀족이 바로 인주 이씨니 해 보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지금에서야 그런 문벌의 힘도 무인들의 득세로 다 지나간 시절이 되어 버려 무장이 요구하는 세작의 일도 마다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니 이장용이 제 신세를 한탄해야 별무소용이다.


더구나 이장용은 올해 그의 손아래처남이 병으로 죽는 일도 있었다.

장인에게는 하나뿐인 아들로 이제 장가를 갈 나이가 된 아들이 죽었으니 그 상심이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런 처지에 맏사위인 자신마저 먼 곳으로 떠나야 할 처지니 서러움이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찾아간 곳이 처사촌인 최온崔昷(?~1268)의 집이었다.

최온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문종 시대에 문벌을 이룬 동주東州(=철원)최씨 집안이나 역시나 지금은 무신들로 인해 과거에도 나가지 않고 그저 집에서 책이나 읽는 위인이었다.


“저런! 현보, 자네가 그 한울루스로 간다고 하면 백부님(최종준宗峻 ?~1246)께서 상심이 크시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광㫛(이장용의 손아래처남)이도 그렇게 갔는데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자네 근래 한울루스에 대해 들어는 봤지?”

“듣기는 들었지. 저 압록수 위에 생긴 몽골의 지방정권이라며?”

“맞아. 그런데 그 한울루스에서 말이야.......”

“그래? 그럼 언제 그 책 좀 가져다주게나. 아니지 글을 배워야 한다고 하니 글도 좀 알려주고 그 책도 좀 가져다주게나.”

“내 책은 저녁에 종놈을 시켜 보내겠네. 그리고 글은 바로 여기서 얼려주겠네. 그 한수야 글만 익히면 배울 것이니 말이야. 아마 금방 배울 것이야.”


그렇게 이장용은 자신의 친우이자 처사촌이며 집에서 빈둥거리는 최온에게 한글을 알려주었는데 과연 딱 세 번을 알려주니 그가 글자를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거 무슨 글자가 이리 쉽고 단순한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이제까지 내가 읽은 그 수많은 책은 무어라 말인가.”

“그러니 내가 걱정을 하는 것이야. 이렇게 글을 쉽게 배운다면 고려의 백성 중에 이 한글이라는 글을 모르는 이는 없게 될 것인데 그 한교의 경전이라는 책이 퍼진다면 읽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그 『마고와 세 형제의 이야기』라는 책이 퍼지면 고려와 몽골의 백성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 게지.”

“아무튼 내가 아직 그 책을 읽지 못했으니 뭐라 말을 할 수는 없네.

자네는 어차피 그 한울루스로 가야 한다니 자네가 가진 책을 모두 내게 건네고 가도록 하게나.

내 읽어보고 자네가 돌아오면 과연 그러한지 같이 상의를 하겠네.”


이장용은 친우에게 한바탕 신세한탄을 하고는 가족과 헤어져 종놈 하나를 앞세워 일단 서경으로 향했다.

가더라도 한번 갔다 온 맹형과 함께라면 그나마 신상에 위해가 적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추운 날씨를 뚫고 도착한 서경에는 그의 맹형이 없었는데 하는 말이 영청의 소금밭으로 나가 있단다.

‘아니 이 형님은 이 추운 겨울에 소금밭은 뭐 하러 간다고.

이미 내가 형에게 사용하라고 허락을 했으면 내년을 기해 소금농사를 어찌 지어야 잘 지을 지를 생각해야지, 원‘


이장용은 주인도 없는 집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또 같이 온 종놈이 마침 종종 영청까지도 심부름을 하던 놈이라 다시 길을 잡았다.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날이 추우니 고생고생을 해 마침내 도착한 영청에도 맹형은 없었다.

종놈이 수소문을 해 왔는데 바닷가 소금밭에 가 있단다.

저녁에는 영청의 집으로 돌아온다고는 하지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다시 종놈을 앞세우니 앞선 종놈이나 뒤를 따르는 주인이나 겨울 찬바람에 입에서는 궁시렁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그렇게 도착한 소금밭을 보는 이장용은 그만 이 추위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야 물론 추위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제 맹형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소금밭으로 인한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이 형님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나. 이건 논을 만드는 거 아닌가.‘

”형님, 저 왔습니다.“

”아니, 동생이 예까지 무슨 일인가. 이 추위에.“

”이 추위에 형님께서도 바닷바람을 맞는데 제가 못할 것은 없지요. 그나저나 이건 논 아닙니까?“

”그렇지. 나도 그리 말했는데 저기 파신이라는 이가 이렇게 하도록 그 칸에게 설명을 들었다며 굳이 이렇게 하는구만.“

”예? 한울루스의 칸이요? 그도 욌습니까?“

”아니, 그가 여기를 어찌 오겠나. 그 졸본에서 그리 말을 들었다고 하네.

아, 졸본은 그 칸이 있는 마을을 이르는 말이네.“

”졸본이요?“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응. 아무튼 일이 모두 끝날 때까지는 딴지를 걸지 않기로 했으니 두고 보자고.

저 파신이라는 이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니 실패를 한다면 그 호다두에게 가 따져야지.

지금 여기에 들어가는 품이 장난이 아니야. 우리집 노복들 고생을 빼고 말이야.“


이장용이 보니 파신이라는 이는 과거 벽란도가 번성할 때 그곳에 오곤 했다는 회회교인처럼 생겼는데 그 자신도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또 그가 만드는 소금논인지 소금밭인지를 보니 이건 정말 잘 가꾼 논과 진배가 없다.

이 넓은 바닷가에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줄을 맞춰 구획을 나누었는데 자세히 살피니 그 나누어진 구획마다에 검은 색의 널돌을 깔고 있는 게 아닌가.

주위에 작업을 하는 이가 있어 그 널돌을 한 장 집어 들어보니 이건 단순한 널돌이 아니라 자기를 만들 듯이 한쪽 면에 유약을 발라 구워낸 널돌이 아닌가.

’아니, 이건 만들려면 돈 깨나 들었겠는데. 더구나 이 들판에 모두 이걸 깐다면 돈으로 따져도 어마어마하군.‘

”형님, 이건 뭐라고 하는 겁니까?“

”그거. 그냥 널돌이라고 부르는데.

졸본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인데 저 파신이라는 이는 아직 고려말이 서툴러서인지 우리에게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지 뭔가.

그래서 내가 적당한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지.

그건 그냥 널돌이라고 지었어. 동생이 좋은 이름이 생각났는가?“

”아니요. 그저 널돌인데요, 뭐.“

”그렇지. 그리고 저기에 있는 것은 물수레라고 부르기로 했네. 물레처럼 생기기는 했는데 만조 때 바다에서 물을 퍼올려 저 앞에 있는 논이 보이지 그것에 물을 채우는 용도라더군.“

”여기는 안 채우고요?“

”응. 저 맨 앞에 있는 곳에만 물을 채우고 그냥 볕에 물을 열흘간 말렸다고 그 다음 칸으로 보내면 된다고 하더라고.

그 다음칸부터는 써레질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에서도 열흘만 있다 다시 다음칸으로.

그런 식으로 바로 예까지 오면 여기서는 소금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저 파신 말로는 겨울에도 각 칸마다 5일 정도를 더 두면 소금을 만들 수는 있다고 하는데, 모르지.“


이장용이 이광수의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생각을 해 보니 만들어 지고 있는 소금밭에서 어떻게 소금을 얻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아하, 그렇구나. 이 널돌이라는 것도 또 이렇게 검게 만든 것도 이해가 되고 또 굳이 널돌을 까는 것은 아마도 모래가 섞이지 않도록 함이겠구나.

정말 알고 보면 간단한 이친데 왜 그 동안 고려의 백성들은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정말 간단한 이치였다.

바닷물이 모래와 섞이지 않도록 한 이 널돌이라는 게 신기하지만 역시나 그 널돌을 고려에서 만들지 못할 것도 없다. 아니 고려의 기술이 더 뛰어날지도 모르고 말이다.

또 저 물수레라는 것도 결국은 물레나 물레방아와 같은 이치니 마찬가지다.

’왜 고려의 백성들은 수백 년간 알고 있던 것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소금]

짠맛이 나는 백색의 결정체로 인간에게 있어 없어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되는,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여름날 심하게 훈련을 받으면 상관들이 먹으라고 강요를 하던 물질이다.

 

소금이 小金에서 유래한 말로 아는 이도 있는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小金은 꽹과리를 이르는 말이고 소금은 소곰이라는 순우리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가뭄 등으로 심하게 굶는 이들에게는 식량 대신 구황염이라는 이름으로 소금을 보내주었다고 하는데

식량이 없을 때는 초근목피로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소금이 없으면 죽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천일염이라는 것이 흔해 많은 나라에서 천일염을 먹을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천일염을 먹는 국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암염이나 소금호수나 소금우물에서 소금을 얻는다고 한다.

물론 정제염이라는 것이 가장 많다.

 

한반도에서 소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고려 이전의 기록은 『위지 동이전』에 고구려가 소금을 해안에서 운반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며 고려 때는 도염원都鹽院에서 소금에 대한 관리를 맡고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소금의 생산은 자염煮鹽의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소금을 만드는 연료가 많이 드는 방법으로 매우 비싸게 거래되었다.

 

그러면 한반도의 사람들은 천일염에 대한 생각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록에 따르면 바닷가 바위 위에 바닷물을 두고 거기서 소금을 얻었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또 바닷물을 끓이면 소금이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바닷물을 자연 건조시키면 소금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한반도에서 천일염이 생산되지 않은 이유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조건이 의외로 까다로운 데 있지 않나 싶다.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한 조건은 높은 평균 기온과 많은 증발량이 필요한데 한반도에 그런 조건에 맞는 지역은 없기 때문이다.

또 조건을 맞춘다 해도 써레질에 패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땅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갯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맞는 입지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소설 등에서 신안에 대규모의 염전을 만드는 이유는 기후조건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의 염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소금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지 그곳이 염전을 위한 기후에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신안은 비도 많이 오고 특히 해무가 많은 곳으로 염전과는 맞지 않은 기후이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천일염이 등장한 것은 1907년 일본에 의해 인천 주안에 염전이 만들어지면서라고 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소금은 왜염이라 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맛이 썼기 때문이란다.

천일염의 쓴 맛은 바닷물에 있는 마그네슘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간수를 뺀다.』는 말은 이 마그네슘 기를 뺀다는 말이다.

 

[영청현永淸縣]

본래 고구려 땅이었는데 오랫동안 버려졌다가 고려때 정수定水현이 설치되었다.

그 뒤 永淸영청으로 되어 용강현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고종43(1256)때 현을 폐하고 안인진安仁鎭에 속했고 원종10(1269)에 원에 점령당했다.

이후 충렬왕때 수복되었고 공민왕7(1358)에 용강현에서 분할되어 영유현永柔縣이 되었다.

이후 분할과 합병을 거치다가 조선조 고종32(1895)에 군으로 승격했고 1914년 평원군에 편입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현에는 816호 2,171명이 있으며......중략......간전墾田(개간한 밭)이 7,138결......중략......염소鹽所는 4곳이며 가마(盆)는 103개인데 모두 현의 서쪽에 있다.......후략.』라고 한다.

 

세종조때 전국에서 소금가마의 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전라도 영광으로 113개였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곳이 바로 세종조의 영유현으로 103개 가마였으니 이곳 영청현이 그나마 한반도 내에서 소금 생산의 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염전의 대부분이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에 있었다고 하는데 평안도에 있던 귀성염전貴城鹽田이나 청천염전淸川鹽田이 대표적인 곳인데 바로 영청현과 그 근방인 곳이다.

 

영청현의 위치는 평남 평원군에 있는 곳으로 청천강 하류와 바다가 면하는 지역이다.

세종실록지리지 표현을 빌리자면 미두산米頭山을 진산으로 삼으며 사방 경계는 동으로 순안에서 7리, 서로 바다에 이르기 25리, 남으로 평양까지 23리, 북으로 숙천肅川에 이르기 7리이다.

 

그럼 왜 영광이고 영청일까.

아마도 다른 곳보다 그곳들의 지반이 단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영광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설 정도로 지반이 안정되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소금 생산에 있어 땅이 무르다는 것은 소금과 흙이 섞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입지조건으로 좋지가 않은 것이다.

물론 현대적인 천일염 생산에서야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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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도량형 +2 19.05.06 1,738 5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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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각자의 생각 +3 19.04.30 1,726 55 13쪽
83 무위로 돌아간 암살 작전 +4 19.04.29 1,789 57 13쪽
82 정보조직 +3 19.04.26 1,776 51 13쪽
81 제안 +4 19.04.25 1,769 55 13쪽
80 모의 +4 19.04.24 1,773 62 14쪽
79 복귀 19.04.23 1,849 49 13쪽
78 접촉 II +3 19.04.22 1,870 65 15쪽
77 아이누 모시와 아페시르 열도 +1 19.04.20 1,957 60 14쪽
76 좌초 +1 19.04.19 1,888 61 13쪽
75 이안사 +5 19.04.18 1,997 56 14쪽
74 항로 개척 +3 19.04.17 2,037 62 13쪽
73 탐험 +8 19.04.16 2,057 69 14쪽
72 소문 +1 19.04.15 2,103 65 14쪽
71 새졸본 +5 19.04.13 2,101 62 13쪽
70 카라코롬 +2 19.04.12 2,138 66 13쪽
69 계획 +6 19.04.11 2,180 76 13쪽
68 하카타 상인 19.04.10 2,154 68 13쪽
67 류큐 +4 19.04.09 2,226 67 14쪽
66 탐라를 가다 19.04.08 2,227 67 13쪽
65 탐라 진출 19.04.06 2,332 75 13쪽
64 과학과 기술의 발전 +4 19.04.05 2,383 75 13쪽
63 1차 순례 +2 19.04.03 2,406 73 13쪽
62 목화와 경제가 +1 19.04.02 2,381 74 13쪽
61 길에서 +6 19.04.01 2,439 80 14쪽
60 변화의 바람 +3 19.03.30 2,697 74 14쪽
59 대륙을 논하다 +2 19.03.29 2,532 79 13쪽
58 여몽화약麗蒙和約 +3 19.03.28 2,611 73 14쪽
57 외무사外務司 +2 19.03.27 2,539 75 16쪽
56 화약 시현 +7 19.03.26 2,532 65 13쪽
55 접촉 +1 19.03.25 2,417 62 14쪽
54 이광수 +3 19.03.23 2,468 60 13쪽
53 유혹 +2 19.03.22 2,583 63 13쪽
52 대화 +2 19.03.21 2,526 74 15쪽
51 졸본의 일상Ⅰ 19.03.20 2,593 68 15쪽
» 소금 +1 19.03.19 2,634 73 16쪽
49 이장용 19.03.18 2,634 67 13쪽
48 주고 받다 +5 19.03.16 2,666 76 12쪽
47 테무친 죽다 +6 19.03.15 2,884 64 13쪽
46 군권 +1 19.03.14 2,698 72 13쪽
45 살리고 죽이다 +3 19.03.13 2,644 70 14쪽
44 동하점령 +1 19.03.12 2,737 66 13쪽
43 과학 +1 19.03.11 2,776 66 12쪽
42 화약 +4 19.03.09 2,856 68 14쪽
41 문제는 식량 +1 19.03.08 2,870 65 13쪽
40 나의 처지 +2 19.03.07 2,952 63 13쪽
39 밍캇 19.03.06 2,830 75 13쪽
38 졸본으로 19.03.05 2,938 77 13쪽
37 소르칵타니 +4 19.03.04 2,935 69 13쪽
36 쿠릴타이 +2 19.03.02 2,988 70 13쪽
35 한울루스 +2 19.03.01 2,996 71 13쪽
34 테무친 19.02.28 2,988 72 13쪽
33 이야기를 퍼뜨리다 +2 19.02.27 2,913 76 13쪽
32 텝텡게르 +1 19.02.26 2,874 71 13쪽
31 사기詐欺의 이유 +6 19.02.25 2,982 74 13쪽
30 기도를 하고 의례를 만들다 +7 19.02.23 3,070 78 14쪽
29 테무게 +2 19.02.22 3,072 74 13쪽
28 유덕용 +3 19.02.21 3,082 73 19쪽
27 졸본 +2 19.02.20 3,174 75 17쪽
26 터를 잡다 +2 19.02.19 3,190 71 16쪽
25 고향 19.02.18 3,155 71 15쪽
24 대만 +2 19.02.16 3,085 68 13쪽
23 사탕 19.02.15 2,991 68 13쪽
22 여정 +5 19.02.14 3,041 65 14쪽
21 선물 +3 19.02.13 3,088 73 14쪽
20 바스라를 떠나다 19.02.12 3,084 75 13쪽
19 탈출 +1 19.02.11 3,144 73 14쪽
18 중독 +2 19.02.09 3,155 64 13쪽
17 바부 +4 19.02.08 3,192 60 13쪽
16 고려 마을 +2 19.02.07 3,317 82 13쪽
15 바스라로 옮기다 +4 19.02.06 3,305 67 13쪽
14 아랍으로 가다 19.02.05 3,409 73 13쪽
13 신화를 만들다 +1 19.02.04 3,586 74 12쪽
12 베다 +2 19.02.02 3,757 74 13쪽
11 대고구려 +8 19.02.01 4,075 71 13쪽
10 사명을 가지다 +3 19.01.31 4,032 76 13쪽
9 번민 +3 19.01.30 4,318 71 12쪽
8 이적을 보이다 +2 19.01.29 4,538 78 12쪽
7 고려고약 +5 19.01.28 4,912 85 12쪽
6 영靈을 단련하다 +1 19.01.26 5,221 80 13쪽
5 파미르 탈출 +2 19.01.25 5,952 82 13쪽
4 몸을 차지하다 +1 19.01.24 6,965 93 13쪽
3 다른 차원의 지구 +2 19.01.23 7,931 86 13쪽
2 역사의 변곡점 +5 19.01.22 9,543 95 7쪽
1 프롤로그-전면 수정 +6 19.01.21 12,034 10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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