텝텡게르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테무게가 많은 군사를 끌고 나를 찾아온 때가 이미 하지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간 지체를 한 후 요양을 떠난 것은 소서(양력 7월 7일)쯤이다.
처음에 육반산까지의 여정을 한 달을 잡았지만 그거야 그저 머릿속의 생각이고 나와 테무게가 육반산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입추가 지나 처서에 가까워지던 때라 저녁이면 무언가를 덮어야 잠을 잘 수 있는 계절이었다.
그리고 먼저 달려간 아르밧이 많은 장수들을 이끌고 테무게를 마중나왔는데 변발이 없어진 테무게와 그의 병사들을 보고는 잠시 놀랐지만 마치 지금은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대칸의 숨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는 말을 고한다.
아무래도 테무친의 부인인 보르테가 이곳에 없는 이상 테무친 사후의 일은 가장 큰어른이며 집안의 옷치긴인 테무게와 상의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그런 것이리라.
‘하긴, 그럴 시점이 되긴 했군. 내가 기억하기로 테무친의 사망일에 대해서는 8월 17일설과 8월 25일 설이 있었으니 아마 8월 17일 이후에는 테무친이 제대로 된 말을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테고 이 즈음이라면 분명 삶과 죽음의 어디쯤에 있었을 테니 말이야.’
테무게와 함께 테무친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해 보니 그곳에는 송나라 출신임이 분명해 보이는 의원들이나 도사들 및 승려들이 있었고 몽골 전통의 텝텡게르들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이슬람의 이맘으로 보이는 자도 있었으며 또 분명 경교의 사제로 보이는 누군가도 있었다. ‘허, 이거 종교전시장도 아니고.’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몽골의 군사들이 엄중하게 감시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테무친의 사망이 확인되는 순간 그들 역시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테무게는 일단 나에 대한 소개를 했다.
“이분은 텡그리이자 하느님의 종으로 사람과 하느님을 연결하는 진정한 텝텡게르이신 분이다.
그는 하느님의 허락만 있으면 죽어가는 이도 살릴 수 있고 멀쩡히 산 사람 역시 말 한마디로 죽일 수 있는 분이시다.
저 멀리 요양 지방에 계신 분을 내가 찾아가 일부로 모셔온 분으로 한님은 대칸이신 나의 형님과 다름이 없이 모셔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대칸이신 나의 형님의 생사는 여기 한님과 그분의 하느님이 결정하실 터이니 누구의 반대도 용납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옷치긴.
당신은 연전에 우리 몽골의 텝텡게르들이 모두 거짓이라며 죽여 놓고는 이제 와서는 우리 몽골도 아닌 저기 여진의 텝텡게르를 데리고 와 대칸의 생사를 결정한다는 것이요.
정말 우리 텝텡게르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니요?”
“그럼, 너희는 대칸이시자 나의 형님을 낫도록 할 수 있느냐?”
“그거야 좀 더 많은 재물을 하늘에 바치고 좀 더 많은 텝텡게르들이 모여 기도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요. 단지 여기에 모인 텝텡게르들의 수가 적어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을 뿐이오이다.”
“헛소리. 대칸께서 사고를 당하신 지가 이미 1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 1년 동안 너희는 충분히 그들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소이다.
그건 당신이 연전에 다수의 텝텡게르들을 죽여서 이미 도가 높은 텝텡게르들이 사라진 때문이 아니요?”
“뭐라! 좀 전에는 텝텡게르들이 모이지 않아 치료가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텝텡게르들이 죽어 없어져 치료를 못한다고?
너는 네가 한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봐라! 저 텝텡게르의 목을 당장에 잘라 늑대의 먹이로 주도록 해라.”
“흠, 옷치긴! 옷치긴께서 누군가에게 벌을 줘야 한다면 당연히 그리 하셔야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마당에 그에 앞서 명계의 사자를 불러들일 필요는 없는 일이지요.
지금까지 그 분을 명계의 사자들로부터 잘 숨겨왔는데 어찌 이제 와서 그것을 명계에 알리려고 하시오.”
“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저 텝텡게르는 일단 다른 의원들과 같이 가두어 두어라. 판단은 차후에 할 것이다.
한님, 일단 안으로 드셔서 대칸의 상태를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나는 이제는 기식이 엄엄해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상태의 칭기즈칸 앞으로 인도되었다.
아주 커다란 게르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는 몇몇 여성들이 칭기즈칸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정신을 수습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 주위로는 범같은 장수들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누구는 몽골인이었고 또 누구는 투르크인이었으며 또 어떤 이는 여진이나 거란의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들 모두 칭기즈칸의 배포에 감동해 스스로 칸의 경호를 자처하고 있는 이들인 것이다.
테무게가 다가가자 그들 중 하나가 다가와 나와 테무게의 몸을 뒤지려고 하는데 테무게가 나서
“나의 몸은 뒤져도 상관없으나 한님에게는 무례하지 마라.
내 이미 한님을 대칸과 같은 위치라 하지 않았느냐.
한님께서 대칸을 죽이고자 하시면 그럴 것이고 살리고자 하시면 또한 그럴 것이니 한님께서 칼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독을 가지고 계시면 마땅히 그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호, 반드시 테무친을 살려내라는 말이로군.
이거 확실히 늙은 생강이 맵다는 말이 틀리지 않아. 이미 반송장인 이를 보이며 내 몸 수색도 마다하는 게 말이야.
어쨌든 살리긴 살려야겠지. 내 거대한 사기극의 조연이 너무 빨리 사라지면 아무래도 극의 흥미는 떨어지고 사기의 규모 역시 줄어들 테니.’
“상관없습니다. 다만 여기 이 작은 통에는 은침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 도구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몸수색을 받은 내가 은침을 꺼내 테무친의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려는데 이미 테무친의 몸에는 상당한 침 자국이 있는 게 아마도 누군가 이미 사혈瀉血의 방법까지 사용한 모양이었다.
“옷치긴, 나는 대칸의 영혼을 데리고 잠시 나의 하느님과 소통해 그의 몸이 치료가 가능한지 판단을 받아봐야 합니다.
그런 중에 나의 몸이든 대칸의 몸이든 누군가 건드린다면 나는 몰라도 필히 대칸은 다시는 이승으로 오지도 못하고 명계에도 들지 못한 상태로 귀신이 될 터이니 누구도 우리 두 사람의 몸을 만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그 졸본에서 차돌의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침상에서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나라. 또한 누구도 대칸과 한님의 몸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휴, 세상의 권력을 쥔 자를 치료하려 하니 그저 간단히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괜스레 이런저런 절차만 만드는 건 아닌지 몰라.’
그래도 이런 이들일수록 무언가 절차를 만들어 그 실질을 이루어야 만이 이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들 여기니 어쩔 수 없다.
세상에 권력이라는 게 생기면서 그 형식이라는 게 권력을 높이는 수단이 되니 어떤 경우는 실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형식이 없는 일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물론 형식만 남은 일은 있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치유마법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내 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태워 치유마법 때 나타나는 그 커다란 후광을 일으켰다. 사실 성공할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외부의 마나, 곧 동물혈액에 잠자는 마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빛의 마법을 내가 가진 마나만을 이용해 내가 가진 물질에너지(지방)를 태워 빛의 마법을 일으킨 것이다. 즉 약간의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건 내가 치유마법에 능숙해지면서 후광의 효과가 없이도 치유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면서 생각했던 방법이다.
즉 본래 치유마법의 두 가지 효과인 치료와 후광을 분리하면서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 두 가지 효과 중 후광효과만 나타나도록 했는데 성공한 것이다.
본래 이런 존귀한 사람의 치료는 좀 시간도 끌고 뭔가 절차도 있어야 하니 당장에 치료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몇몇은 분명 자신들의 노고로 인해 이미 치료가 된 것인데 마지막에 그저 내가 거기에 그저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당장에 치유마법을 펼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또 주위의 사람들에게 내가 무언가 한다는 것은 알릴 필요가 있으니 이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물론 치유마법에서 발생하는 후광은 치유마법 전체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 지금의 후광만으로도 내 몸은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소란이 이는 게 분명 그런저런 모습에 놀라는 듯하다.
테무게가 모두에게 조용할 것을 명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 영을 일으켜 이미 나와 테무친의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 흐르는 피를 통해 테무친의 몸으로 들어갔다.
먼저 테무친의 몸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심하게 낙마를 했는지 그의 엉덩이뼈에 심한 골절이 있었고 등뼈 역시 부서진 상태였다. ‘이거 말에게 밟히기라도 한 모양이군.’
그리고 그 부서진 등뼈에도 불구하고 몸을 주물러대는 바람에 척수의 신경까지 다쳐 몸의 마비가 온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몸의 상태를 살핀 후 송과샘으로 갔는데 과연 테무친의 혼은 이미 송과샘을 떠나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혼이 몸을 떠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 칼라쉬족의 미친개에게서 봤던 상태까지는 아니었지만 칼라쉬 족의 그 여인처럼 테무친의 혼은 이미 그동안 차지하고 있던 몸과의 유대를 끊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렇게 테무친의 혼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선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온 나는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는 듯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테무친이 스스로 머리를 자를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를 치료해야 하는지를 하늘에 묻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마치 내가 일인극을 하는 배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 혼자서 뭐라고 말을 하다가 또 혼자서 마치 누구에게 무언가를 들은 듯 대꾸를 하는 모양이었지만 누구도 그 우스운 광경을 보면서 웃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내가 신과 대화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을 향해 어린애만이 그 사실을 똑바로 알렸다는 어느 우화처럼 누군가 어린애처럼 순수한 이가 있어 내게 ‘혼자서 무슨 말을 그리 하시오?’라고 물었다면 이 연극은 산통이 깨지듯 깨졌겠지만 다행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만큼 순수한 이는 없었는지 그런 질문은 없었고 나는 하느님에게 묻는 형식을 취해 테무친이 허락이 없지만 그의 변발을 차를 것을 허락받았고 테무친과 그의 자손들이 앞으로 나의 하느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테무게의 보증으로 받아냈으며 하느님이 내게 허락한 땅을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장수들에게서 맹세를 받았다.
빛이 사라진 후 누가 보더라도 잠시 전의 내 모습이 아닌 비쩍 마른 모습으로 변한 나는 테무게에게
“옷치긴, 먼저 흰 양과 흰 염소와 흰 거위를 준비하되 모두 암수 한 쌍으로 준비해 주시오. 물론 살아있는 채로 말이요.
그 후에 내가 그것들을 제물祭物로 하여 이미 한발을 저승에 걸치고 있는 대칸의 혼을 데려오겠소.
이는 이미 하느님에게 허락을 받은 일이외다. 제물이 준비되는 대로 내가 대칸의 혼을 되돌리고 그의 부서진 몸을 치료하리다.
그리고 그동안 대칸의 몸은 누구도 만지지 못하도록 하시오. 자칫 부정이 탈 수 있소이다.”
부정이 아니라 자칫 잘못 만지다가는 정말로 테무친이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하는 말이다.
그만큼 현재 그의 상태는 위중한 것이다.
지나친 사혈로 혈액이 부족했고 또 지나친 안마로 인해 신경손상이 심했으니 말이다.
그 제물들이 준비되는 것은 단 하루면 충분했다.
이미 몽골의 텝텡게르들의 주장에 의해 다수의 흰 동물들이 준비된 상태였는데 다만 흰거위가 없어 하루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하루 동안 폭식이랄 수 있을 정도로 음식을 섭취하며 잃어버린 물질에너지를 보충했고 말이다.
그리고 그날 깊은 밤 철저히 보호를 받고 있는 테무친의 처소와는 달리 상당히 조용하고 외진 곳에 있는 나의 게르로 세 명의 인물이 쳐들어왔는데 하나는 굿을 할 때 쓰는 장군칼을 들었고 다른 하나는 역시 굿을 할 때 쓰는 신장칼을 들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역시나 굿을 할 때 쓰는 삼지창을 들었는데 그들 셋의 복장은 마치 굿을 하기 위한 복장과 같았고 그들의 무구巫具들 역시 모두 청동으로 만든 날이 무딘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은 내 게르로 들어와 내 혼을 몸에서 분리해 천계에도 명계에도 가지 못하게 하겠다면서 그 무딘 칼로 나를 향해 휘둘렀는데 이미 마나를 알고 또 무공을 아는 내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그저 이제는 나이가 들어 들고 있는 청동제 무구 하나 제 맘대로 휘두르기 벅차하는 이들의 어설픈 창·칼질에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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