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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진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제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동기진
작품등록일 :
2019.01.19 10:52
최근연재일 :
2021.10.20 19:50
연재수 :
1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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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594
추천수 :
6,826
글자수 :
621,570


작성
19.04.18 20:00
조회
1,998
추천
56
글자
14쪽

이안사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DUMMY

고려와 한울루스의 관직명과 그 품계가 전혀 맞지 않다하더라도 우수리 역시 한울루스에서 오뜨겅과 치기야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장군중 하나라 할 것이다.

물론 오뜨겅과 치기야를 고려의 상장군인 정3품에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 정도로 그 위상에 차이가 있다 하겠지만 남의 집에 온 처지에 그런 것을 따져봐야 누구도 알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뜨겅과 치기야를 상장군에 비교한다면 자신은 바로 그 아래라 할 것이니 고려식으로 대장군이라 할 것이고 품계로는 종3품에 해당한다.

그리고 고려의 병마사라는 직위 역시 종3품에 해당하므로 자신이 의주병마사에 꿀릴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자신이 병사들을 대동하지 못하고 단지 학생 몇 명만을 데리고 적이 될지도 모르는 호굴에 들어간다는 차이가 있다지만 결코 기개를 잃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졸본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의식은 아주 간소해서 우수리 역시 칸을 볼 때도 그저 잠시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정도의 예만 취하곤 한다.

그나마 칸께서 장군들은 공식석상에서는 그 지위에 어울리는 멋을 부려야 한다고 해서 일을 할 때 입는 옷과는 달리 정복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옷을 만들어 입게 하였는데 옷은 고려처럼 치렁치렁하지 않고 몸에 딱 맞았으며 고려의 장군들이 쓰는 갓이 아니라 모자라는 이름의 다른 형태의 갓을 착용하고 상의의 왼쪽에는 한울루스의 상징인 세발까마귀를 작게 수놓았으며 또 상의의 소매에는 금색으로 물들인 실로 빙 둘러 바느질을 했고 다른 옷처럼 고름으로 앞섶을 묶는 게 아니라 단추로 앞섶을 여미는데 기존의 단추와는 달리 그 구멍이 옷 자체에 나 있어 단추를 채우면 아주 가지런한 멋이 있기도 했다.

또 하의의 허리 왼쪽에는 칼집이 있고 그 안에는 살상용이 아닌 의장용의 검이 있는데 그 재질은 철이 아니라 황동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차림을 차린 후에 자신을 따르기로 한 학생들에게는 부선장을 비롯한 고위 군관들의 정복을 빌려 입도록 한 후 대양호에 있는 몇 마리 말을 꺼내 부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행과 함께 말 위에 올라 안내를 하러 온 군관으로 보이는 이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손님은 말을 타고 가는데 주인으로 안내를 맡은 이는 걸어서 가는 모습이 일견 경마잡이의 모습으로 보여 뒤를 따르는 우수리의 입가에는 작은 호선이 그어졌다.

‘확실히 졸본에서 하는 그 극이라는 것에서는 이렇게 몸종은 앞장서 걷고 주인은 뒤에서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이 있긴 하지.’


이안사라는 이는 겉보기에 이미 손자는 볼 나이로 보였는데 그나마 마주 앉은 자세는 꼿꼿한 게 몸은 건강해 보였다.

“나는 한울루스의 동해 탐험대장으로 우수리라고 합니다.”

“대장이라면 대장군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비슷하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그 옷차림은 처음 보는 것입니다만.”

“이 옷은 우리 한울루스의 장졸 중 바다의 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정복으로 입는 옷입니다.

여태까지 고려나 금이나 또 요나 송과는 다른 복색이라 보기에 어색해 보이지만 입어 보면 나름 장점이 많은 옷입니다.

무엇보다 치렁치렁하지 않아 좋지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듣기로 한울루스는 백성들에게 역을 시키면서 그 대가를 준다고 하던데 참말로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군역도 마찬가지고 부역 역시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고 일을 시킵니다.”

“그럼 장군께서도...”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허면 군인전은 어쩌는지?”

“우리 한울루스의 장졸들은 누구도 군인전같은 것은 받지 않습니다. 오로지 쌀이나 그에 상응하는 것으로 그 대가를 받을 뿐입니다.”

“쯧쯧, 병사들이야 역을 지면서도 대가를 받는다니 좋을지 모르지만 장군들은 토지를 대가로 받지 못해 많이 서운하시겠습니다, 그려.

더구나 그런 복색도 맞춰 입어야 한다니, 쯧쯧쯧.

내 언젠가 한울루스의 소식을 듣고는 그곳이 살기가 좋아진지 알았는데 외려 장군들은 더욱 살기가 어렵겠군요.

보니 장군께서는 고려말도 아주 잘하는 듯한데...”

“하하, 받는 녹봉으로도 아니 우리는 그것을 월급이라고 하는데 그 월급으로도 충분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소이다.

더구나 고려처럼 모든 것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정에서 지급하니 별로 드는 비용도 없습니다.

또 남자가 처자식 굶기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이지 무슨 재물에 그리 욕심을 내겠습니까?”

“알겠소이다. 뭐 한울루스와 고려는 같은 듯 다른 구석이 많으니까.

그럼 필요하시다는 물을 보충하시고 조심해서 가시기 바랍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무지렁이들 말로는 함주가 그리 멀다고는 하지 않더군요.”

“그렇습니까? 병마사 영감께서 후의를 베풀어 주신 것에는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수리는 의주병마사가 자신을 조금은 얕잡아 본 것을 알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적진이랄 수 있는 곳에서 무사히 몸을 빼기만 해도 다행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고려의 의주병마사가 재물에 관심이 많다는 것에는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우리 칸께서도 재물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것은 한울루스 백성들 모두를 잘 먹이기 위함인데 저치는 말하는 투가 제 뱃속을 채우기 위해 재물을 탐하는 이로구나.

저렇게 제 잇속에 밝은이는 결코 가까이 해서 좋을 일은 없지.’

그것이 이안사라는 의주병마사에 대한 우수리의 소감이었다.


의주를 떠나 함주에 도착한 것은 불과 하루만이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줄 알았다면 부선장 말대로 의주에 들르지 않을 것을 하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그리고 도착한 함주에는 칸께서 우수리에게 보내는 밀봉된 글이 도착해 있었다.

그 글에는 오뜨겅 장군이 보낸 탐험대 제2부대가 조사한 내용과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당연 기밀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칸이 전한 말에는 지도에 표시된 곳을 찾아가 과연 항구로써 적지인지를 살피고 그 주위를 탐험하면서 겨울에도 얼지 않을 항구의 적지가 더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내용이었고 더 북쪽으로는 날이 풀린 후에야 탐험을 지속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항구로써의 적지라는 곳은 이미 칸께서 이름까지 지어놓으셨는데 만의 이름은 발해만(포시예트만)으로 하고, 만의 안쪽에 마을로 삼을 만한 곳은 염주鹽州(크라스키노 토성)라는 이름으로 정하셨단다.

과거 발해가 있던 시기 이곳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발해사의 배가 출항하던 곳이어서 발해만이고 그곳의 발해시대 이름이 염주였다는 것이다.

‘칸께서는 정말 어찌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신지 놀라울 뿐이야.

그 학교 건물에 써진 대로 정말 앎이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모양인지 아니면 칸께서만 그런 것인지.‘


그리고 칸께서 보내준 지도에는 미타호(힝가호)라는 호수도 있었는데 미타호의 동편을 미주 그 서편을 타주로 이미 정하시고, 미타호 주변을 곧 농지로 바꿀 계획이니 혹 탐험 중에 여진인이 아닌 이들을 찾을 경우 잘 구슬러 그 미타호로 와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도 있었다.

물론 부차하카 해협과 사할린이라는 섬 그리고 그곳에 사는 엔추족이라는 이들에 대한 정보와 이미 그곳을 탐험했던 이가 육로를 통해 사할린으로 출발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결국 우수리는 함주에서 두만강으로 오르다 두만강을 지나 처음으로 나타나는 만안으로 들어갔는데 과연 칸의 말씀대로 그곳은 전 지역이 천혜의 항구였다.

거기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또 바다쪽으로는 천연의 방파제가 길고 반듯하게 있으며 만안에는 바람도 고요하고 날도 따듯해 추운 줄을 모를 정도였다.

‘어찌 이런 곳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발해가 멸망하고 여진인들이 바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 우수리가 이제 바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이곳은 한울루스의 북방 탐험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또 만안에는 여진인 몇이 밭을 가꾸고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말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에 이곳으로 사람이 올 거라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들은 우수리가 전한 이곳에 항구를 만들고 사람을 부르며 또 칸께서 사또 역시 파견을 할 거라는 말에 환호작약을 하는 것이 기존의 주민들과 다투지는 않아도 돌 듯 싶어 적이 안심이 되었다.


염주의 주민에게 연길이나 발해시로 가는 길을 물으니 가까운 곳은 연길이나 겨울에는 눈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고 눈이 녹은 후에나 움직일 수 있으니 가다려야 한단다.

우수리는 이렇게 겨울이라고 발이 묶이는 것이 바로 길이 없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다.

한울루스가 들어서기 전에는 지금의 연길이나 발해시, 부여시 역시 겨울이면 누구 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한울루스는 겨울에도 주요 도시로 마차가 움직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나르고 있지 않은가.

눈이 오더라도 만들어 놓은 길이 있다면 충분히 눈을 치우면서라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수리는 자신의 부하들을 재촉해 주위의 산들을 넘어 주변 지형에 대한 지도를 만들고 이곳에서 연길로 가는 길을 내는 최적의 위치를 찾아나갔고 또 주위의 바다를 조사했다.

그렇게 겨우내 염주에서 지형을 조사하던 우수리는 봄이 되자마자 대양호를 출항시켰는데 이번에는 졸본호는 염주에 남겨두었다.

그 이유는 바다와 두만강을 통해 이곳으로 각종 물자와 인력을 나르고 또 길을 만들 기술자들에게 지리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북풍이 사라지면서 대양호의 속도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달의 여정 끝에 드디어 한울루스의 상징인 세발까마귀의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아주 좁은 해협이었는데 눈이 밝은 이는 이쪽에서 저쪽까지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일단 임무가 중요한지라 깃발에서 며칠을 기다리니 사람이 왔는데 한울루스의 몇몇 장졸과 또 학생 그리고 가죽을 뒤집어 쓴 100여 명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칸께서 말씀하신 미타호에서 농사를 짓기로 한 이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일종의 탐험대라 할 것입니다.

이들 역시 우리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지 우리가 말한 곳이 과연 살기에 좋은지 확인하기 위해 보내지는 탐험대이자 조사대인 것이지요.“

”이들의 삶은 어떻던가?“

”그 새섬의 사람들이 제가 들은 바와 같다면 아마도 이들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이곳에는 새섬보다는 사람의 숫자는 많아 어느 정도 세를 형성하면서 동물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한 모양이지만 이 추운 지방에서의 생활이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그나저나 이곳 사람들이 이주에 대한 생각은 어떻던가?“

”뭐, 일단은 긍정적입니다. 그렇지만 말씀드린 대로 준다고 하는 땅에 아직 확신은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더구나 사냥이나 하던 이들이라 정착생활을 얼마나 잘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뭐, 정착을 한다고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여진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활했거든.

그럼 나는 이들을 목적지로 데려다 주기만 하면 임무는 끝인가?“

”웬걸요. 아마 가을쯤에 오셔서 이들 중에 몇을 다시 이곳으로 데려다 주어야 할 겁니다.

뭐 장군님께서 바쁘시다면야 육로로 해서 해협이 얼 때 건너면 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길이 없는 곳을 다니려면 이들보다 우리 한울루스의 병사들이 더 죽어나니까요.“

”이런 벌써 병사들이 나태해진 거 아닌가. 편한 것만 찾고 말이야.“

”절대 아닙니다. 장군님도 겨울에 토끼털신 하나에 의지해 눈길을 걸어보시면 그런 소리는 하지 못할 겁니다.“

”알았네. 일단 이들을 데려다 준 후 일정을 상의하기로 하지.“


그렇게 엔추족들을 데리고 염주에 내려다 주니 다시 칸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는데 여름에 사할린이라는 섬을 한번 일주해 보라는 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불감청고소원이라 할 것이다.


우수리는 일단 가을이 되기 전에 다시 염주에 오기로 하고 졸본호까지 데리고 사할린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바람이 좋을 때는 사할린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항해에 걱정은 없었다. 항해에서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큰바람인데 태풍은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하니 바다에서 하는 걱정이라고는 물을 얻는 일뿐인 것이다.


그렇게 우수리는 부차하카 해협을 지나 배를 동쪽으로 틀어 섬을 일주하기 시작했는데 동으로 간지 얼마나 됐다고 배는 벌써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섬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배가 북으로 오르다가 금방 서쪽으로 가고 다시 남으로 가는데 그제야 그것이 사할린 섬에 붙어 있는 아주 커다란 반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또 몇 날을 내려가니 다시 배가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우수리는 이번에도 분명 섬에 딸린 반도라고 짐작해 배의 방향을 북이 아닌 남으로 잡도록 했다.


남으로 방향을 잡은 후 남쪽에서 거센 남풍이 불어오는데 혹시 태풍인가 하니 태풍 정도는 아닌 바람이다.

배의 속도가 더디지만 계속 남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니 과연 우수리의 예측대로 다시 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어진 물을 보충하기 위해 또 얼마간의 휴식을 위해 대양호가 정박할 곳을 찾느라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 우수리는 발해만처럼 아주 긴 천연의 방파제로 둘러싸인 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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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이안사李安社(?~1274) 목조穆祖]

31편 ‘사기의 이유’에서는 이성계가 고려인이 아닐 수 있다는 시각으로 살펴보았지만 여기서는 이성계의 조상인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 삼척으로 옮겨가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일단 우리가 아는 용비어천가 17, 18장을 보면

17장은

『宮女(궁녀)로 놀라샤미 宮監(궁감) 다시언마 問罪江都(문죄강도) 느치리가

官妓(관기)로 怒(노)샤미 官吏(관리)의 다시언마 肇基朔方(조기삭방) 뵈아시니다』이고,

18장은

『驪山(여산) 役徒(역도) 일샤 지로 도라오제 열희  하히 달애시니

셔 使者(사자) 리샤 바 건너제 二百戶(이백호) 어느 뉘 청니』라고 되어 있는데,

앞 절은 당 고조와 한고조 대한 얘기니 생략하고 뒷 절이 바로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이안사에 대한 얘기다.

직역을 하자면 17장은

『관기로 노한 것은 관리의 탓인데 이로 말미암아 삭방(북쪽, 함경도를 삭방도라 함)에 터전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이고

18장은

『서울(개경)에서 오는 사자를 맞이하기 곤란해 바다를 건너는데 이백호의 사람들이 (따를 것을) 청했다.』는 얘기다. (조기肇基=개원開元)

 

배경을 살피면 이 당시 고려는 말로는 중앙집권을 이룬 왕조국가라고 하지만 실상은 개경에서 파견한 관리와 지방의 호족들이 연합해 지역을 다스리던 체계였다.

그리고 이안사의 집안인 전주 이씨는 전주에서는 알아주는 호족으로 상당한 힘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당시는 몽골군이 고려를 침략해 각지에서 몽골군에 대항해 싸우던 때다.

그리고 앞서 어디선가 언급한 대로 고려조정의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피난가기 바빴을 뿐 싸우는 이들은 바로 지방의 호족들과 백성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지방의 호족들은 자체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이안사는 과거에 급제한 후 전주에 있으면서 전주 감영의 관기 하나와 눈이 맞았는데 하필 그 기생에 눈독을 들인 이가 전주 감영의 별감이었으니 둘 사이에 삼각관계가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 시대 관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아의 재산이다.

즉 이안사가 관기와 눈이 맞은 것은 관의 재물에 손을 댄 것과 같으니 잘못은 이안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주 관아에서도 이안사를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게 이안사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고 여긴 때문이다.(200호라는 말로 그 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관기를 둘러싼 사건은 전주에서 해결을 짓지 못하고 서울(개경)에까지 보고가 되고 개경에서는 이안사를 잡아들이기 위해 금부도사가 급파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들은 이안사는 가산을 정리해 변산반도 쪽의 바다로 빠져나와 동해안의 삼척으로 도망을 가려고 하는데 이백호의 인원이 이안사를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안사가 그 이백호에 무슨 대단한 인심을 얻어 그리 한 것은 아니고 그 이백호 역시 이안사네 집안이 아니면 전주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으니 그리 한 것일 것이다.

가령 이안사의 농지에서 소작을 하면서 사병으로도 근무한다던가 하는 등의 이유 말이다.

그렇게 이안사는 무리를 이끌고 전주를 떠나 강원도 삼척이라는 생소한 곳으로 피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삼척으로 이주한 후 어느 날에는 노승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 곳을 가리키며 소 백 마리를 잡아 제사지내고 관은 금으로 하면 5대손에 제왕이 날 자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아비인 이양무가 1231년에 죽자 흰소(白牛)로 제사 지내고 보리짚(노란색)으로 관을 싸 이양무의 무덤으로 삼았다.(백우금관白牛金棺의 전설)

그리고 태조가 창업 후 그 무덤을 찾지 못하다가 세종 29년에 그 무덤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이다.

 

문제는 이안사가 아비(이양무陽茂, ?~1231)의 상을 치르고 얼마 있다 전주의 그 별감이 승진을 해 안렴사 벼슬에 올라 삼척고을로 순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이안사가 다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이안사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다시 의주宜州(원산)로 이주를 하게 된다.

의주는 당시 고려의 국경 지역이니 당연 침략하는 몽골군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에 이안사는 따르는 무리와 함께 몽골군에 저항했을 것이다.

이에 고려조정에서는 이안사에게 의주병마사라는 직위를 내리고 몽골군에 저항하도록 했다.

 

조정으로부터 의주병마사의 벼슬을 받은 후 몽골군을 살펴보니 몽골군이 화주和州(현 북한 요덕, 금야군 일대)에 있는데 그 무리가 많아 대항하기 어려운데다 몽골군의 장수인 산지散吉가 2번에 걸쳐 회유하니 이안사는 그만 고려 조정을 배신하고 몽골에 투항을 하게 된다.

이때가 고려 고종 41년, 1252년이다.

 

투항한 이안사는 의주에서 다시 개원로 남경 오동(정확한 곳은 알 수 없으니 지금의 두만강 위쪽 연변조선족자치주내 어디쯤으로 추정한다.)으로 이주해 오동 일대의 수천 호를 다스리는 오천호 겸 다루가치가 되어 22년 동안 호사를 누리다 원종 15년 1274년에 죽어 경흥부에 묻혔다가 태조 10년에 함흥 가평사로 이장되고 능호는 덕릉德陵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만 본 소설에서는 이안사가 화주에 있던 산지의 세력을 보고 고려를 배신해 몽골에 투항한 것처럼 눈치가 있고 정세에 밝은 위인이라는 점을 들어 소설 상에서 한울루스로 인해 혼란해진 고려조정과 진양후 세력의 위축으로 인한 틈을 타 세력과 로비를 통해 의주병마사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한 것이다. 또한 이안사와 이안사의 자손들 모두 처지를 빌어 그 자리를 쉽게 바꾸는 기회주의적인 양태를 보인 점에 비추어 재물을 밝히는 인물로 추정해 소설에 그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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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6 네오3
    작성일
    19.04.18 20:29
    No. 1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to******
    작성일
    19.04.19 05:05
    No. 2

    재미있게 잘 보고있습니다
    지도가 없어 약간 답답한
    구석이 있습니다
    지도 표기 가능하면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1 동기진
    작성일
    19.04.19 07:26
    No. 3

    혹시 사진이나 지도를 올리는 방법을 아신다면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제가 방법을 몰라 올리고 싶어도 올리지를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후원해 주신 점 역시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n5******..
    작성일
    19.04.19 06:14
    No. 4

    작가님이 전주이씨? 솔직히 귀화인이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이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는데 이 당시의 풍습상 본은 처가를 따라가다보니 전주인, 그렇게 보는게 이치에 맞을거 같은데

    찬성: 2 | 반대: 1

  • 작성자
    Lv.58 비맥
    작성일
    19.04.19 17:00
    No. 5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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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출병 19.05.13 1,553 4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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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박작 +2 19.05.10 1,681 52 14쪽
92 전쟁준비 Ⅱ +1 19.05.09 1,653 53 13쪽
91 전쟁준비 Ⅰ +5 19.05.08 1,749 50 14쪽
90 입조 +4 19.05.07 1,699 51 13쪽
89 도량형 +2 19.05.06 1,738 57 13쪽
88 바투의 선물 +2 19.05.04 1,802 54 13쪽
87 2차 순례 +7 19.05.03 1,784 53 13쪽
86 성姓을 가지다 +1 19.05.02 1,882 54 13쪽
85 호패 +4 19.05.01 1,727 50 13쪽
84 각자의 생각 +3 19.04.30 1,727 55 13쪽
83 무위로 돌아간 암살 작전 +4 19.04.29 1,789 57 13쪽
82 정보조직 +3 19.04.26 1,777 51 13쪽
81 제안 +4 19.04.25 1,770 55 13쪽
80 모의 +4 19.04.24 1,773 62 14쪽
79 복귀 19.04.23 1,849 49 13쪽
78 접촉 II +3 19.04.22 1,870 65 15쪽
77 아이누 모시와 아페시르 열도 +1 19.04.20 1,959 60 14쪽
76 좌초 +1 19.04.19 1,889 61 13쪽
» 이안사 +5 19.04.18 1,999 56 14쪽
74 항로 개척 +3 19.04.17 2,039 62 13쪽
73 탐험 +8 19.04.16 2,058 69 14쪽
72 소문 +1 19.04.15 2,104 65 14쪽
71 새졸본 +5 19.04.13 2,102 62 13쪽
70 카라코롬 +2 19.04.12 2,140 66 13쪽
69 계획 +6 19.04.11 2,182 76 13쪽
68 하카타 상인 19.04.10 2,155 68 13쪽
67 류큐 +4 19.04.09 2,227 67 14쪽
66 탐라를 가다 19.04.08 2,229 67 13쪽
65 탐라 진출 19.04.06 2,333 75 13쪽
64 과학과 기술의 발전 +4 19.04.05 2,385 75 13쪽
63 1차 순례 +2 19.04.03 2,407 73 13쪽
62 목화와 경제가 +1 19.04.02 2,383 74 13쪽
61 길에서 +6 19.04.01 2,441 80 14쪽
60 변화의 바람 +3 19.03.30 2,698 74 14쪽
59 대륙을 논하다 +2 19.03.29 2,534 79 13쪽
58 여몽화약麗蒙和約 +3 19.03.28 2,612 73 14쪽
57 외무사外務司 +2 19.03.27 2,540 75 16쪽
56 화약 시현 +7 19.03.26 2,534 65 13쪽
55 접촉 +1 19.03.25 2,418 62 14쪽
54 이광수 +3 19.03.23 2,470 60 13쪽
53 유혹 +2 19.03.22 2,584 63 13쪽
52 대화 +2 19.03.21 2,528 74 15쪽
51 졸본의 일상Ⅰ 19.03.20 2,595 68 15쪽
50 소금 +1 19.03.19 2,635 73 16쪽
49 이장용 19.03.18 2,636 67 13쪽
48 주고 받다 +5 19.03.16 2,667 76 12쪽
47 테무친 죽다 +6 19.03.15 2,886 64 13쪽
46 군권 +1 19.03.14 2,700 72 13쪽
45 살리고 죽이다 +3 19.03.13 2,645 70 14쪽
44 동하점령 +1 19.03.12 2,738 66 13쪽
43 과학 +1 19.03.11 2,777 66 12쪽
42 화약 +4 19.03.09 2,857 68 14쪽
41 문제는 식량 +1 19.03.08 2,872 65 13쪽
40 나의 처지 +2 19.03.07 2,954 63 13쪽
39 밍캇 19.03.06 2,832 75 13쪽
38 졸본으로 19.03.05 2,940 77 13쪽
37 소르칵타니 +4 19.03.04 2,936 69 13쪽
36 쿠릴타이 +2 19.03.02 2,990 70 13쪽
35 한울루스 +2 19.03.01 2,998 71 13쪽
34 테무친 19.02.28 2,989 72 13쪽
33 이야기를 퍼뜨리다 +2 19.02.27 2,914 76 13쪽
32 텝텡게르 +1 19.02.26 2,876 71 13쪽
31 사기詐欺의 이유 +6 19.02.25 2,983 74 13쪽
30 기도를 하고 의례를 만들다 +7 19.02.23 3,072 78 14쪽
29 테무게 +2 19.02.22 3,073 74 13쪽
28 유덕용 +3 19.02.21 3,083 73 19쪽
27 졸본 +2 19.02.20 3,176 75 17쪽
26 터를 잡다 +2 19.02.19 3,192 71 16쪽
25 고향 19.02.18 3,156 71 15쪽
24 대만 +2 19.02.16 3,087 68 13쪽
23 사탕 19.02.15 2,993 68 13쪽
22 여정 +5 19.02.14 3,043 65 14쪽
21 선물 +3 19.02.13 3,090 73 14쪽
20 바스라를 떠나다 19.02.12 3,085 75 13쪽
19 탈출 +1 19.02.11 3,146 73 14쪽
18 중독 +2 19.02.09 3,156 64 13쪽
17 바부 +4 19.02.08 3,194 60 13쪽
16 고려 마을 +2 19.02.07 3,318 82 13쪽
15 바스라로 옮기다 +4 19.02.06 3,306 67 13쪽
14 아랍으로 가다 19.02.05 3,411 73 13쪽
13 신화를 만들다 +1 19.02.04 3,588 74 12쪽
12 베다 +2 19.02.02 3,759 74 13쪽
11 대고구려 +8 19.02.01 4,076 71 13쪽
10 사명을 가지다 +3 19.01.31 4,033 76 13쪽
9 번민 +3 19.01.30 4,319 71 12쪽
8 이적을 보이다 +2 19.01.29 4,539 78 12쪽
7 고려고약 +5 19.01.28 4,914 85 12쪽
6 영靈을 단련하다 +1 19.01.26 5,222 80 13쪽
5 파미르 탈출 +2 19.01.25 5,953 82 13쪽
4 몸을 차지하다 +1 19.01.24 6,967 93 13쪽
3 다른 차원의 지구 +2 19.01.23 7,933 86 13쪽
2 역사의 변곡점 +5 19.01.22 9,544 95 7쪽
1 프롤로그-전면 수정 +6 19.01.21 12,039 10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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