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본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내가 살았던 21C 한국과는 달리 지금 시대는 지구온난화니 엘리뇨니 하는 것들이 없다.
있다면 때가 되면 찾아오는 동장군과 염제가 있을 뿐이다.
동짓달이 되면서 내가 자리 잡은 터전은 이미 동장군이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렇지만 마을은 아직 마을이라고 할 수도 없이 그저 공동으로 거주할 공간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고 아직 할 일 역시 많다.
나는 일단 저 남쪽으로 떠난 호다다드와 치기야를 대신해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할 책임자로 오뜨겅을 지목한 후 겨울에 마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먼저 다른 일로 인해 아직 완성을 보지 못한 대장간을 완성하도록 하고 몇 가지 농기구를 주문했으며 다음으로는 유리가마를 만들도록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마을에 남은 하무자를 책임자로 지목했다.
또 손재주가 좋고 머리가 좋은 파신에게는 바다호의 거중기를 참조해 뭍에서 사용가능한 거중기를 서너대 만들라고 주문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오뜨겅이 만들고 있던 종이 공방에서 종이의 생산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
비록 겨울이지만 마을 사람 모두를 놀고 먹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산에서 잡목이라도 캐 종이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그런 후 소복이에게는 지난 가을 이곳에서 일을 했던 이들에게 가마니 열에 보리 한 홉이라는 가격을 정하고 소문을 퍼트리도록 했다.
내 생각에는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이지만 가마니를 만들 재료는 천지에 널렸고 눈 오는 계절에 놀고 있는 인력은 넘쳐난다.
소복이 말에 의하면 겨울에 하릴없이 방구석에서 장작만 죽이고 있는 중에 심심풀이로 하는 가마니 짜기로 보리 한 톨이라도 받는다면 그거야 말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이란다.
소복이에게 물으니 열심히 하면 하루면 가마니 하나는 만들 수 있단다.
열흘에 보리 한 홉이라면 겨우내 가족이 모두 매달려 아무리 열심히 해도 1 가구당 보리 두 되가 될 정도일 것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보리로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그렇게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나는 한 묶음의 종이와 필기구를 챙기고 또 두 사람이 서너달은 먹을 양식을 챙긴 후 나귀 두 마리에 짐을 싣고 각자가 말에 오른 후 차돌이를 앞세워 길을 나섰다.
마을사람들에게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러 장백에 오른다고 했는데 이 장백이라는 산은 바로 백두산이다.
현재 백두산이 있는 곳에는 주로 여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여진인들이 백두산을 일컫는 말은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Šanggiyan Alin인데 이는 ‘크고 흰 산’이라는 의미다.
곧 장백長白산이요 태백太白산인데 고려 광종 때부터는 백두白頭산이라는 말로도 불리는 중이다.
모두의 걱정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섰다.
마을에서 비류수를 따라 내려오면 압록수이고 거기서부터는 압록수를 따라 오르기만 하면 되는 길이다.
초반에 압록수는 그저 살얼음이 낀 정도였지만 이틀 정도를 오르니 압록수는 아주 단단한 얼음으로 덮여 있다.
몇 번을 실험을 해 본 후에 압록수를 밟고 오르니 오히려 길은 편하다.
한동안 말이 없이 길을 가다 언제부터는 어린 동생인 차돌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없는 10년 동안의 팍팍한 삶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가던 중 하루는 산속에 있는 마을을 만났는데 차돌이 산에서 짐승을 잡아 생계를 잇는 사냥꾼 마을이란다.
이미 해가 저물기에 마을에 들러 쉬다 가기로 했다.
“누가 있는가?”
“이 산속에 누구요? 아니 한님이 아니십니까?”
내가 마을에서 불리는 호칭이 한이다. 내 일행들이 나를 한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소복이 마저 한돌이라 부르지 않고 한이라고 부른다.
나를 보고 한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마을에 왔었다는 얘기다.
“나를 아는 것을 보니 마을에 왔었던가 보구만?”
“아이고, 한님. 저 소칠입니다요. 그때 지붕공사를 하다 크게 다친 걸 한님께서 저를 살려주시지 않았습니까요.”
솔직히 기억에 없다.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일로 인해 소문이 빨리 확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뿐이다.
“아, 그래 기억이 나는구만. 그래 몸에는 이상이 없지.”
“없고 말구요. 오히려 마을에서 일을 해 받아온 보리로 식구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되어 올 겨울은 좀 더 낫겠지 싶은데요.”
그렇게 산속에 몇 가구가 모여 사는 사냥꾼 마을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칠의 소문을 들었는지 집집마다 사람들이 병을 치료해 달라고 몰려 오히려 쉴 틈이 없었다.
대부분이 관절과 관련한 통증이었고 하나는 짐승에게 받쳐 크게 다친 이도 있었는데 나는 소문이 좀 더 퍼지길 바라며 모두를 치료해 주는데 아낌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그 소칠이가 손수 나를 장백까지 안내를 하겠다며 따라나서는데 산길을 잘 아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소칠이를 길안내로 하기로 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 마침내 이 한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못이 몇 군데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었다.
“이곳이 산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곳입지요. 산 정상에 오르면 눈이나 바람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흠, 그래. 오호! 그런데 이곳에는 흑요석이 참으로 많군.”
“흑요석이요? 아, 저 반짝거리는 검은 돌맹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곳에는 지천입니다.
그렇지만 저건 돌도 아니고 쇠도 아니어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지요.
뭐, 잘 다듬어 바둑돌로 쓰기는 하지만요.”
“세상 만물이 쓸모가 없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단지 인간이 그 쓸모를 알지 못해 쓰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자네가 이 흑요석 두 가마니를 마을로 가져오면 내가 보리 한 가마를 주겠네.”
“예? 이 쓸모없는 돌을 가지고 오면 보리를 준다굽쇼. 아니, 뭐하러.”
“그 뭐하러는 자네에게 해당하는 말이고 내게는 어디에이네. 어떤가 한번 해 볼 텐가?”
“참말입니까? 혹 저를 놀리려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신지.”
“내가 자네를 놀리는 것이야 말로 뭐하러일세.”
“당연히 하구 말굽쇼.”
“단, 모아야 하는 것은 흑요석일세. 여기 보면 이렇게 흑요석 외에 다른 것이 섞인 것도 있는데 당연히 이런 것은 이렇게 깨서 흑요석만을 분리해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네.
물론 검사를 해서 섞인 것이 있으면 값은 다 못 받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당연합지요. 그러면 이렇게 깨진 것도 가능합니까?”
“당연하네. 내가 필요한 것은 흑요석이지 무슨 모양을 내 바둑을 두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아니 오히려 이렇게 잘게 깨오면 나야 더 좋은 일이네. 어차피 잘게 깨야 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하지요, 하구 말구요.”
“좋아. 어차피 자네도 예서 일을 해야 하니 여기에 얼마간 머물 움집을 짓도록 하게나.
내가 여기 두 나귀를 빌려줄 테니 우리 차돌이가 머물 곳도 같이 짓도록 하고.
차돌이는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 여기서 머물면서 조심히 말을 타고 다니다 이 근처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해라. 그렇다고 겨울이니 너무 나다니지는 말고.
나는 바로 산에 올라 하느님께 기도를 할 테니 말도 잘 돌보도록 하고.”
일단 나귀에 작은 천막을 칠 물품과 얼마간의 먹을 것 그리고 종이를 비롯한 문방구를 챙긴 후 차돌이와 산을 올랐다.
천지는 21C에 보았던 것과 별 차이는 없었다.
일단 작은 천막을 치고 주위에 있는 작은 관목들을 잘라 불을 피운 후 늦기 전에 차돌이를 내려보냈다.
“나는 여기서 7일간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그분의 말씀을 적어야 한다.
그러니 너는 내려가 형이 한 말을 따르다가 7일째 되는 날에 이리로 올라오도록 해라.”
차돌이가 떠난 후 사실 바로 후회가 들었다.
‘괜히 산에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나. 그냥 마을에서 기도를 한다고 하고 알고 있는 한글이나 적을 걸.
나야 본래가 영이니 이 몸이 죽어버리면 몸이야 버리고 다른 몸을 찾는다지만 자칫 이곳에 아무도 오지 않으면 물질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 역시 이곳에 갇힐 수도 있는데.’
그렇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이제와 추워서 기도를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일단은 어떻게든 견뎌 보기로 하고는 움막 안에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세종의 훈민정음을 베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와 지금은 발음에 차이가 많은 듯 보인다.
지금의 고려말은 장음과 단음의 구별도 있을 뿐 아니라 자음에서도 마찰음 계통이 상당히 많다.
더구나 아직은 한자의 습격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대체로 주고받는 말들이 한자어가 아니라 순수 고려말이 대부분이다.
‘흠, 확실히 나중의 한국어는 조선을 거치면서 한자어가 너무 많이 침투한 말이 돼 버린 모양이야.’
나는 또 몽골어와도 비교를 했다.
거기에 호다다드가 쓰는 호라즘 지방의 투르크어도 살피고 또 아바단이 사용하는 타지크 지방의 말도 기억해 보았다.
그러면서 차츰 만들어지는 글은 좀 더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고 보니 또 지나치게 자음이 많아 각각의 지방에서는 모두 필요치가 않았다.
결국 세종이 만든 한글을 기본으로 각 민족에게 필요한 것들을 첨삭해 글자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고려를 중심으로 하는 글자고 다른 하나는 몽골을 중심으로 하는 글자였다.
물론 두 글자는 많은 부분에서 같았는데 다만 장모음과 단모음을 나타내거나 세종의 한글에 나오는 순경음 비읍처럼 몇가지 기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흠, 이 정도면 되겠군. 그럼 이제는 고려의 글과 몽골의 글로 마고와 단군의 이야기를 쓰면 되겠어.’
그렇게 나는 차돌이 올 때까지 고려글과 몽골글로 글자를 만든 방법이나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한 글을 쓰고 또 신화에 대한 글을 쓰고 나니 드디어 차돌이 천지로 찾아왔다.
‘휴, 드디어 차돌이가 올라왔네. 살이 엄청 빠졌겠는데.’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에너지를 내 몸이 축적하고 있는 지방을 태워 상당부분 사용했기에 아마도 지금의 나는 살이 빠져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일 것이다.
“아니, 형님. 불과 7일이 지났는데 몸이 어찌 이리 말랐습니까?”
“내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할 때는 이리 되니 너는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 섭생만 잘하면 회복될 것이다.”
한돌의 몸이 너무 말라 내려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들었지만 차돌의 도움으로 무사히 산을 내려와 땅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칠이는 어디 갔느냐?”
“일단 모아 놓은 흑요석을 강가로 옮긴다고 나귀로 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님, 저쪽에 좀 큰 온천이 있더군요, 그쪽에 가 며칠 쉬다 움직이시지요.”
그렇게 나중에는 삼지연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는 곳에서 며칠을 쉬면서 몸을 정양한 한돌은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두 마리의 나귀에는 소칠이가 모은 흑요석을 한 짐 싣고 움직였는데 소칠이 욕심으로 인해 내가 가끔 나귀에게 치유마법을 펼쳐줘야만 했다.
“아이고, 이 나귀들이 한님께서 계시다고 힘이 남아도나 본데요. 전에 이 흑요석을 나를 때와는 달리 힘이 넘칩니다.”
“하하, 그런가. 그래 흑요석은 얼마나 모았는가?”
“일단은 네 가마 정도는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보리로 두 가만데 정말로 그렇게 셈을 치러줄 것입니까?”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내 분명 흑요석 두 가마에 보리 한 가마라고 했으니 그 약속을 분명 지키겠네.”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도 흑요석을 모아오면 그렇게 셈을 해 주시렵니까?”
“다음에? 다음에는 나귀도 없을 텐데 어찌 그 먼 거리를 운반하려고? 무게가 장난이 아닐 텐데.”
“한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셈을 치러주신다면 저는 이번에 얻게 되는 보리 두 가마에 집에 있는 가죽 몇 장을 보태 나귀를 한 마리 살 생각입니다. 아마도 한 마리 정도 살 만큼의 가죽은 될 겁니다.
흑요석을 모아 운반하는 거야 집사람하고 우리 애들이 해도 되는 일이니 저야 그 한님 마을까지 운반하는 일을 한다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 그도 그러네. 그래 내가 이 흑요석의 가격을 그리 하라고 마을에 말을 해 놓을 테니 앞으로도 그 가격으로 마을에 가져오면 되네. 그만 해야 하면 내 미리 말을 하라고 할 테니.”
“고맙습니다요, 한님.”
그렇게 소칠이가 흑요석을 모아놓은 곳까지 가 물건을 옮겨준 나는 차돌이와 부지런히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은 압록의 입구에 있어 백두산까지 가는 데만 40여 일이 걸리고 오는데 역시 40일은 걸리는 거리였다.
여행의 주목적인 천지에서 보낸 시간이라고는 고작 7일에 불과한데 이동을 하는 시간만 근 석 달이 걸린 것이다.
‘휴, 어느 세월에 길을 닦을까.’
물론 그렇다고 백두산을 오르는 길을 닦을 생각은 없지만 마을을 중심으로 사통팔달로 길을 열 필요는 있는 것이다.
문명과 사람은 길을 통해 다니니 말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이 마을 주변으로 몰려 있었는데 대부분 상당한 가마니를 가지고 온 이들이었다.
아직 농사를 짓기에는 이른 시기니 모두들 농사를 짓기 전에 가마니와 보리를 바꾸기 위해 아직 녹지도 않은 눈길을 달려 온 것이리라. 마치 늦게 가면 보리를 얻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아직 지난 해 농사로 얻은 곡식이나 또 이곳에서 일을 하고 얻은 곡식이 동이 나지 않았을 텐데도 이 시대 사람은 한 톨의 곡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리도 부지런을 떠는 것이다.
물론 아직 나나 이 마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사람들이 가져온 가마니를 헤아려 보리를 나눠주라고 했다.
누구는 가마니를 열로 딱 떨어지게 가져오지 못해 사람들을 뒤져 자신과 같은 이와 함께 수를 맞추는 이도 있었고 또 누구는 다른 이의 가마니보다 자신의 가마니가 더 좋으니 값을 더 받을 수 없는지 묻기도 한다.
그렇게 가마니를 가지고 온 이들 외에 몸이 아프거나 다친 이들도 상당수가 보였다.
아마도 이 마을에 아주 용한 의원이 나왔다고 소문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달래에게 일러 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은 병이 나은 후 머리를 자르고 일정 기간 이 마을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이르라고 했다.
달래가 와 이 마을에서 일을 하다 다치면 어찌 하느냐고 묻는다고 해 그때는 아무런 대가 없이 치료를 해 준다고 하라고 하니 치료를 위해 몰려든 모든 사람이 치료를 받겠단다.
아무래도 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은 장정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일이 몇 차례 지나가면 그 때는 여인이고 노인이고 어린아이고 찾아오겠지만 아직은 미심쩍으니 장정들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리라.
나는 그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야 했다.
아직은 무슨 암이니 하는 질병은 보지 못했다.
하긴 그런 병은 먹어서 생기는 병이니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좀체 찾을 수 없기도 하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못 먹어서 생긴 병이었다. 영양의 부족이나 영양의 불균형이 초래한 병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자네는 이곳에서 하루 세끼씩 제공하니 한 달만 이곳에서 일을 하며 세 끼를 챙겨 먹으면 병이 낫네.” 라는 말이 내가 하는 말이다.
간혹 겨울산에서 사냥을 하다 다치거나 산짐승에게 치인 환자들도 있었는데 그런 환자들에게는 여지없이 화려한 임팩트가 있는 치유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사람들은 점점 나를 신이 보낸 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시대 병이나 상처를 손 한 번 대는 것으로 치료하는 이는 신뿐이라고 믿으니 그런 것이다.
물론 21C에도 그런 이가 나오면 사람들은 신이니 신의 사도니 하면서 얼마나 사기를 당하던가.
그런 판에 이 13C에 진짜로 손 한 번 대는 것으로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니 모두를 나를 그리 믿고 또 그리 대한다.
그리고 그런 소문이 더욱 넓게 퍼져 나갔다.
내가 백두산에서 돌아와 마을 이름을 졸본이라고 한다고 공표를 했는데 소문은 ‘졸본에 가면 하느님이나 혹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있는데 밥을 주고 병을 낫게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21C라면 피식 웃고 말 일이고 심각하면 경찰을 마주할 일인 것이지만 이 시대는 지역의 권력자들이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소문을 확인할 일인 것이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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