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동기진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제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동기진
작품등록일 :
2019.01.19 10:52
최근연재일 :
2021.10.20 19:50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294,624
추천수 :
6,826
글자수 :
621,570


작성
19.04.03 20:00
조회
2,407
추천
73
글자
13쪽

1차 순례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DUMMY

한편 몽골에 의해 금나라가 멸망하고 그 나머지 잔당들이 모두 잡혀 처형되는 일이 고려에 알려지면서 고려 역시 한바탕 홍역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본래 역사대로라면 고려도 몽골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절단 날 위기에 처해야 했지만 조정에서는 그런 위기의식을 느끼기 보다는 한울루스의 전쟁 위협에 대한 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이 누구 덕이냐는 문제로 시끄러워졌다.

그것은 진양후를 중심으로 하는, 이제는 일부라는 표현을 써야만 하는, 무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 한울루스의 등장으로 갑자기 등장한 외무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신세력 사이의 대치로 나타났다.

물론 외무사를 대표하는 세력의 중심은 당연 지외무인 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려의 문신들이 유택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처음에 유택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을 유방이라 불렸는데 이는 진양후가 만든 각종 방에 대한 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문인들이 거의 유방으로 몰리며 서방이 유명무실해지자 유방의 이름은 유당으로 바뀌더니 진영후가 자신을 지지하는 무인들을 모아 무당武黨으로 부르자 자연스럽게 유당은 문당文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모양새는 어쩔지 모르지만 고려에 처음으로 붕당정치가 출현한 것이다.


졸본에서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조선이 겪어야 할 붕당정치가 한 500년 일찍 시작했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근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한번쯤 겪어야 할 일일 수도 있으니까.’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고려의 무신들을 깡그리 쳐 없애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만약 서경-의주간 도로가 조금만 늦게 만들어졌다면 나는 모종의 계획을 실행해 진양후를 제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지 그 도로가 생기면서 고려와 한울루스가 경제적으로 가까워질 가능성을 보였기에 진양후를 자연도태시키는 방향으로 내 계획이 수정되었을 뿐이다.

내가 진양후와 그 일파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유는 당연 조정이 그 한 사람의 입맛대로 재단되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두 당여가 모여 아웅다웅하면서 견제세력이 등장을 하게 되니 좀 더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두 당여가 매양 싸우는 대상은 한울루스를 어찌 대할 것이냐였다.

금이 몽골에 무너질 때만도 조용하던 무인들의 무리는 마침내 몽골과 송이 전쟁상태에 돌입하자 이 기회를 살려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자는 『고토회복론』을 주장하였다.

즉 한울루스를 치자는 주장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지만 뜨거운 가슴만을 가진 젊은 군인들의 귀에는 솔깃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닌 주장인 것이다.

이 당시에는 이미 고려에도 졸본을 드나드는 상인들의 입을 통해 금이 변경에서 사용했던 진천뢰라는 것이 알려진 상태였는데 거기에 내가 학교에 비치해 두었던 갈홍의 『포박자』가 유출이 되어 그 사본이 고려 조정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 나는 부랴부랴 『무경총요』와 『화약이란 무엇인가』를 금서로 지정해 별도로 관리해야 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포박자』를 입수했다고 모두가 화약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초석은 대륙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물질인데다 그 『포박자』에는 오줌을 이용해 염초를 만드는 방법 따위는 없었을 뿐 아니라 초석·유황·숯의 혼합비율 같은 것 역시 적혀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안경공이 몽골의 도읍인 카라코롬에 인질로 가 있는 상태에서 한울루스와 전쟁을 한다는 생각은 고려황실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더하여 문당 측에서 들고 나온 『순망치한론脣亡齒寒論』, 곧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주장이 고려조정에서 힘을 얻으며 『고토회복론』은 어느 순간 말하는 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솔직히 당시 나는 아직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고려조정 정도야 내가 독한 맘만 먹으면 그 조정을 폐하고 한울루스와 합병을 하는 것은 여반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고려백성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 이제까지 내가 계획하고 추진하던 일들이 모두 헝클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반기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머뭇거리는 중에 고려에서 『순망치한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고려 무인들에게까지 지지를 받자 나 역시도 고려와의 전쟁같은 것은 모두 잊게 된 것이다.


『순망치한론』이 국가의 존망과 관련한 주장이었다면 뒤이어 나온 주장인 『온고지신론溫故知新論』은 그 『순망치한론』 아래에서 고려가 한울루스를 이기는 방법론에 대한 것이었다.

곧, 기존에 고려가 익힌 유학을 중심으로 새것, 곧 한울루스의 과학이라는 학문을 익히자는 주장인데 이로 인해 고려에서 유학을 익힌 많은 문인들이 한울루스로 유학을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열병처럼 번져 나갔는데 한울루스로 오는 이들의 목적이 과학을 배우고자인지 아니면 유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서경-의주간 도로는 개경까지 그 길을 확장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원한 것은 한울루스에 어느 정도 과학의 토대가 탄탄하게 쌓인 후에 그것이 고려로 번져가는 일종의 낙수효과로 고려가 미몽에서 깨기를 바랐지 그들 고려의 귀족들이 스스로 한울루스를 찾을 거로는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배움을 청하러 졸본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내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문제는 졸본에, 한울루스에 들어오는 이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학문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오는 유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대부분은 유학에 대한 철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귀족에 대한 철학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즉 그 유학자들은 대개가 권문세족의 후손들이어서 고려에서는 귀족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들이었고 그들 입장에서 천것들이 분명해 보이는 고려의 백성들은 그들을 존중하고 대접해야 하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제대로 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었고 매일 시장구경이나 하고 다니던 한울루스와 졸본의 병사들에게 할 일이 주어지는 일이 생긴 시점이기도 했다.


물론 한울루스 역시 이 시대의 여느 왕조국가들처럼 신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울루스에서의 신분은 아직까지 세습신분은 아니었다.

뭐 이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니 그 신분의 이동이 빈번해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한울루스의 칸인 내가 나 이외의 신분을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것도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울루스에서는 이 시대 천민이거나 평민들이 하는 일들을 하는 이들이 높은 직위에 올라 남을 부리는 일을 하고 있으니 백성들이 생각하는바 역시도 재주만 좋으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었으니 고려에서 온 유학자들이 귀족입네 하면서 거만하게 구는 것을 보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특히 그런 유학자들이 거만하게 구는 이유인 글을 안다는 것이 한울루스에서는 전혀 통할 리가 없었다.

한울루스, 특히 졸본에서는 16살에서 40살 사이의 사람이라면 그 성별을 불문하고 한글과 한수를 익혀야 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고려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학생입네 하는 이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계획된 일이 나의 1차 순례였다.

즉 나는 고려에서 졸본으로 배우러왔다는 이들 중 쭉정이들을 뺀 제대로 된 학생들과 나의 학교에서 배우던 이들을 모두 이끌고 한울루스 영역에 대한 순례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거기에는 한울루스의 몽골 기마대 일부가 동원되었고 요양에서 길러진 보병들 역시 동원되었으며 많은 품꾼들이 보군으로 동원된 대단히 거창한 행렬이었다.


이 순례의 목적은 첫째는 그 동안 한울루스내에 닦아 놓았던 길에 대한 확인이었는데 이때는 이미 요양에서 무순으로, 무순에서 장춘으로 또 장춘에서 연길로 도로가 만들어진 상태였기에 칸인 내가 이를 확인하는 일이 요식적이나마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던 것이다.

둘째는 당연 졸본에 밀려든 학생들을 데리고 떠나는 일종의 현장학습이었다.

분류하고 해석하는 공부라는 게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알릴 필요가 있었고 또 과학이라는 학문은 그 시작이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해석하는 데서 시작하는 학문이기에 이런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박작시에서 순례를 시작하면 한울루스에 남아 귀족인 냥 하면서 나의 백성들과 소란을 일으키는 모든 고려인들에 대한 추방령이 군에 내려진 상태였다.


그런 세 가지 목적하에 이뤄진 나의 1차 순례는 박작시에서 시작해 요양을 거쳐 무순으로 다시 무순에서 장춘까지 이어졌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서 주위의 숱한 여진인들을 상대로 내가 데리고 다니는 극단에서 펼치는 각종 극을 상영했고 또 함께 떠난 곡마단을 통해 여러 기예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모아 그들에게 한글과 한수를 가르치고 그들이 사는 곳이 과거 발해와 금의 뒤를 이어 몽골의 제후국인 한이라는 나라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다닌 것이다.

그리고 나의 행렬은 마침내 아직까지 한울루스가, 내가 성주를 파견하지 못하고 있던 금나라의 초기 도읍이었던 상경회령부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상경회령부에는 여전히 금을 추종하는 무리가 다수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까지 여진인이 아닌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완안 씨가 금을 세운 동기가 이곳 상경회령부에 대한 요나라의 지나친 학대와 착취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원인이었는데 몽골의 제후국인 한울루스 역시 마찬가지라 여긴 때문이다.

즉 그것은 몽골이 대항하는 여진인들을 과도하게 학살한 것뿐 아니라 금과의 마지막 전쟁을 치르면서 황하 이북에 남은 여진족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3개월치의 곡식을 제외한 모든 곡식을 징발하면서 금의 수도였던 중도 근처에서 살던 수많은 여진인들이 굶어죽은 일이 일어난 게 불과 몇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진인들 중 상당수는 우리 한울루스에서 수용하기도 했지만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역시 일부는 제 고향으로 돌아간 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나와 한울루스에 대한 원성은 같이 동행한 나의 보병들 사이에 낀 여진인과 또 보군으로 참여한 여진인들로 인해 일부 희석되었고 내가 특별히 그들에게 푼 상당량의 곡식으로 또 다시 희석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상경에 거주하는 백성들 중에서 발해의 후손으로 금의 창업공신이기도 했던 양박楊朴(?~?)의 후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성주라는 직책을 내리고 상경을 부여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도록 한 후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얼마나 비옥한 땅인지를 알리고 기존에 농사를 짓던 수수 농사에 더해 사탕무의 재배를 권하고 연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전매를 졸본에서 책임져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나는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동북대평원의 흑토지대와 미타호(힝카호의 발해식 표현) 일대를 쌀의 생산기지로 삼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물론 벼의 품종을 개량해 좀 더 추운 지방에서도 자랄 수 있는 벼를 만든 후의 일이 되겠지만.

이미 이곳은 19C 중반부터 중국내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던 오상대미五常大米(우창다미)로 유명한 곳인데 오상은 이곳 상경에서 동남쪽의 지역에 있던, 아직은 마을조차 들어서지 않은 지역이다.

내 계획대로 이곳 부여를 중심으로 하는 흑토지대와 미타호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으로 바뀐다면 이곳은 엄청난 인구부양력을 가진 성장잠재력이 엄청난 도시가 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부여를 둘러보고 과거 발해의 도읍인 상경용천부가 있던 곳(현 중국 무단장시)을 통해 연길을 거쳐 졸본으로 돌아온 일이 바로 나의 1차 순례의 여정이었다.

이 여정은 고려 고종 23년(서기 1236)부터 25년까지 자그마치 만 2년여의 시간이 걸린 일이었는데 한울루스가 내가 졸본을 떠나 있어도 반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국내 권력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인 일이었고 또 보군까지 합쳐 근 2천여의 인원이 하는 일없이 그저 세상을 둘러보는 일을 해도 될 정도로 경제적인 안정 역시 갖추게 되었음을 보이는 일이었다.

물론 아직 고려조정이 그런 세세한 상황을 분석할 능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와 동행했던 그 고려의 학생들이 나의 이 순례가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는지를 똑똑히 확인하고 또 그것이 과학이라는 학문의 뒷받침으로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행사인 것이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양박楊朴(?~?)]

금을 세운 완안 씨에게 부족명을 완안으로 하도록 건의하고 칭제건원을 건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성(부족명)을 완안으로 한 것은 완안이 여진어로 왕王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고려의 왕인 왕씨와 동성同姓임을 보이려고 한 때문이란다.(정사는 아니고 야사니 그대로 믿지는 말자.)

본래 양박은 발해의 백성으로 발해족이었으며 발해가 멸망한 후 고영창이 거란으로부터 발해 해방운동(요나라 입장에서 일종의 반란)을 일으킬 때 같이 참여하기도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요양이 함락되자 여진인 아골타에게 귀순해 그에게 중용된 인물이라고 한다.

 

[체르노젬Chernozem, 흑토지대]

스텝지역 중에 강수량이 비교적 풍부하면서도 그 강수량으로 인해 유기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지역에서 수만 년 동안 쌓인 유기물이 분해되어 이루어진 부식토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이 지역의 흙은 영양이 풍부해 검은 색을 띄는데 농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토양에는 비료의 요소인 인산, 인, 암모니아가 풍부해 별도의 비료 없이도 농작물의 생산량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유럽에 있는 유라시아 스텝 지역과 미국에 있는 Great Plains가 바로 체르노젬이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대평원 역시 체르노젬인데 하얼빈은 겨울이 5개월 정도로 길지만 중국내 농업생산력이 다른 어떤 성에 비해 뒤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곳이 흑토지역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반도에서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북쪽지역이지만 쌀의 품질이나 그 생산량에서 강남지역에 못지않은 지역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물론 쌀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는 수수와 사탕무, 옥수수, 블루베리의 생산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려제국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동기진 작가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19 21.10.20 847 0 -
공지 2부 알림 +8 19.05.18 2,032 0 -
공지 지도 추가합니다. +1 19.05.12 2,413 0 -
공지 그림, 삽화 19.05.10 1,549 0 -
공지 알림 +3 19.05.08 1,084 0 -
102 죽음Ⅱ - 1부 완결 +20 19.05.19 2,885 60 17쪽
101 죽음Ⅰ +6 19.05.19 1,708 36 14쪽
100 흥국사에서 +10 19.05.18 1,600 44 15쪽
99 알면서도 +3 19.05.17 1,575 40 14쪽
98 세계관과 자유 +4 19.05.16 1,639 51 14쪽
97 아아! 때가 아닌가 보구나! +2 19.05.15 1,603 52 14쪽
96 최항의 제안 +1 19.05.14 1,662 45 13쪽
95 출병 19.05.13 1,554 49 14쪽
94 정동성征東省 +2 19.05.11 1,665 47 12쪽
93 박작 +2 19.05.10 1,682 52 14쪽
92 전쟁준비 Ⅱ +1 19.05.09 1,654 53 13쪽
91 전쟁준비 Ⅰ +5 19.05.08 1,750 50 14쪽
90 입조 +4 19.05.07 1,700 51 13쪽
89 도량형 +2 19.05.06 1,739 57 13쪽
88 바투의 선물 +2 19.05.04 1,803 54 13쪽
87 2차 순례 +7 19.05.03 1,785 53 13쪽
86 성姓을 가지다 +1 19.05.02 1,883 54 13쪽
85 호패 +4 19.05.01 1,728 50 13쪽
84 각자의 생각 +3 19.04.30 1,728 55 13쪽
83 무위로 돌아간 암살 작전 +4 19.04.29 1,790 57 13쪽
82 정보조직 +3 19.04.26 1,778 51 13쪽
81 제안 +4 19.04.25 1,771 55 13쪽
80 모의 +4 19.04.24 1,774 62 14쪽
79 복귀 19.04.23 1,850 49 13쪽
78 접촉 II +3 19.04.22 1,872 65 15쪽
77 아이누 모시와 아페시르 열도 +1 19.04.20 1,959 60 14쪽
76 좌초 +1 19.04.19 1,889 61 13쪽
75 이안사 +5 19.04.18 1,999 56 14쪽
74 항로 개척 +3 19.04.17 2,039 62 13쪽
73 탐험 +8 19.04.16 2,058 69 14쪽
72 소문 +1 19.04.15 2,104 65 14쪽
71 새졸본 +5 19.04.13 2,102 62 13쪽
70 카라코롬 +2 19.04.12 2,140 66 13쪽
69 계획 +6 19.04.11 2,182 76 13쪽
68 하카타 상인 19.04.10 2,155 68 13쪽
67 류큐 +4 19.04.09 2,227 67 14쪽
66 탐라를 가다 19.04.08 2,229 67 13쪽
65 탐라 진출 19.04.06 2,333 75 13쪽
64 과학과 기술의 발전 +4 19.04.05 2,385 75 13쪽
» 1차 순례 +2 19.04.03 2,408 73 13쪽
62 목화와 경제가 +1 19.04.02 2,383 74 13쪽
61 길에서 +6 19.04.01 2,442 80 14쪽
60 변화의 바람 +3 19.03.30 2,698 74 14쪽
59 대륙을 논하다 +2 19.03.29 2,534 79 13쪽
58 여몽화약麗蒙和約 +3 19.03.28 2,612 73 14쪽
57 외무사外務司 +2 19.03.27 2,540 75 16쪽
56 화약 시현 +7 19.03.26 2,534 65 13쪽
55 접촉 +1 19.03.25 2,418 62 14쪽
54 이광수 +3 19.03.23 2,470 60 13쪽
53 유혹 +2 19.03.22 2,584 63 13쪽
52 대화 +2 19.03.21 2,528 74 15쪽
51 졸본의 일상Ⅰ 19.03.20 2,595 68 15쪽
50 소금 +1 19.03.19 2,635 73 16쪽
49 이장용 19.03.18 2,636 67 13쪽
48 주고 받다 +5 19.03.16 2,668 76 12쪽
47 테무친 죽다 +6 19.03.15 2,886 64 13쪽
46 군권 +1 19.03.14 2,700 72 13쪽
45 살리고 죽이다 +3 19.03.13 2,645 70 14쪽
44 동하점령 +1 19.03.12 2,738 66 13쪽
43 과학 +1 19.03.11 2,777 66 12쪽
42 화약 +4 19.03.09 2,857 68 14쪽
41 문제는 식량 +1 19.03.08 2,872 65 13쪽
40 나의 처지 +2 19.03.07 2,954 63 13쪽
39 밍캇 19.03.06 2,832 75 13쪽
38 졸본으로 19.03.05 2,940 77 13쪽
37 소르칵타니 +4 19.03.04 2,936 69 13쪽
36 쿠릴타이 +2 19.03.02 2,990 70 13쪽
35 한울루스 +2 19.03.01 2,998 71 13쪽
34 테무친 19.02.28 2,989 72 13쪽
33 이야기를 퍼뜨리다 +2 19.02.27 2,914 76 13쪽
32 텝텡게르 +1 19.02.26 2,876 71 13쪽
31 사기詐欺의 이유 +6 19.02.25 2,983 74 13쪽
30 기도를 하고 의례를 만들다 +7 19.02.23 3,072 78 14쪽
29 테무게 +2 19.02.22 3,073 74 13쪽
28 유덕용 +3 19.02.21 3,083 73 19쪽
27 졸본 +2 19.02.20 3,176 75 17쪽
26 터를 잡다 +2 19.02.19 3,192 71 16쪽
25 고향 19.02.18 3,156 71 15쪽
24 대만 +2 19.02.16 3,087 68 13쪽
23 사탕 19.02.15 2,993 68 13쪽
22 여정 +5 19.02.14 3,043 65 14쪽
21 선물 +3 19.02.13 3,090 73 14쪽
20 바스라를 떠나다 19.02.12 3,085 75 13쪽
19 탈출 +1 19.02.11 3,146 73 14쪽
18 중독 +2 19.02.09 3,156 64 13쪽
17 바부 +4 19.02.08 3,194 60 13쪽
16 고려 마을 +2 19.02.07 3,318 82 13쪽
15 바스라로 옮기다 +4 19.02.06 3,306 67 13쪽
14 아랍으로 가다 19.02.05 3,411 73 13쪽
13 신화를 만들다 +1 19.02.04 3,588 74 12쪽
12 베다 +2 19.02.02 3,759 74 13쪽
11 대고구려 +8 19.02.01 4,077 71 13쪽
10 사명을 가지다 +3 19.01.31 4,033 76 13쪽
9 번민 +3 19.01.30 4,319 71 12쪽
8 이적을 보이다 +2 19.01.29 4,539 78 12쪽
7 고려고약 +5 19.01.28 4,914 85 12쪽
6 영靈을 단련하다 +1 19.01.26 5,222 80 13쪽
5 파미르 탈출 +2 19.01.25 5,953 82 13쪽
4 몸을 차지하다 +1 19.01.24 6,967 93 13쪽
3 다른 차원의 지구 +2 19.01.23 7,933 86 13쪽
2 역사의 변곡점 +5 19.01.22 9,544 95 7쪽
1 프롤로그-전면 수정 +6 19.01.21 12,039 10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