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부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무바락의 아들 하무자 외에 다른 세 명의 소년은 차음 내가 바스라에 와 사령관으로부터 사들인 노예들이었다.
벤누, 바부, 팔이라고 하는데 하무자와 팔은 16이고 벤누와 바부는 18의 나이다.
그들 모두는 무바락이 선원으로 만들 생각에 진작부터 배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하며 특히 하무자는 아주 어릴 적부터 제 아비인 무바락을 따라 배를 다루고 또 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뭐 그래 봐야 아직 나이가 있으니 얼마나 배웠을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바부는 흑인이었다.
뭐 사하라 이남의 흑인이 아닌 21C 에티오피아에 있었다고 하는 악숨왕국의 백성이었다가 악숨왕국의 세가 약해지면서 그의 조상이 노예로 팔려 이리저리 떠다니다 예까지 온 모양이었다.
뭐 이 시대 역시 대부분의 흑인들은 아랍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노예로 생활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특별한 건 없다.
물론 처음으로 흑인을 보는 치기야 등이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이나 바부나 피부가 검은 건 큰 차이가 없는 지경이다.
바부는 커피색의 피부를 가진데다 조상 중에 아랍인과의 혼혈이 있었는지 흑인들 특유의 곱슬머리를 제외하고는 이목구비도 여타의 아랍인과 별 차이가 없다.
나는 호다다드에게는 아직은 관리라는 것에 서툰 무바락을 좀 더 도우라고 한 후 치기야와 오뜨겅 그리고 치기야의 처인 쉬바니와 네 명의 소년들만을 데리고 바그다드로 향했다.
물론 쉬바니는 특히 자신의 아이와 헤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지만 내게는 쉬바니의 잉크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니 당분간 아이와 헤어지는 것을 감수하도록 해야 했다.
물론 아이는 이미 아이를 키운 경력이 있는 오뜨겅의 부인인 아프라이마가 맡아 주기로 했지만 아직 누구도 쉬바니의 잉크 제조기술을 알지 못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 여덟은 길을 나서 바그다드로 향했는데 장장 이십여 일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확실히 바그다드는 이 시대 기준으로 엄청난 대도시이기는 했다.
뭐 기록으로는 최대 100만의 인구가 살던 도시라고 하지만 지금은 세가 많이 줄어 그런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에 있는 집들의 화려함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일단 사령관이 써준-사실은 상당한 은을 주고 샀다는 게 맞는-소개장을 가지고 바그다드의 유력자를 찾아 강가에서 종이 공방을 차릴 건물을 소개받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종이 공방을 하던 곳이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공방이지만 일단 나와 내 동료들이 먼저이지 않겠는가.
오뜨겅에게 종이공방의 일을 맡긴 후 쉬바니가 잉크를 만드는데 필요하다고 하는 재료들을 사다 날랐다.
그리고 그 유력자를 통해 소개받은 유리공방에 네 명의 소년을 데리고 가 보수가 없이 일을 배운다는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유리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단단히 주의를 주었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유력자에게 뇌물을 건넨 것은 당연했다.
확실히 『지혜의 집』이라는 이 도서관은 내가 알고 있던 규모보다 더욱 거대했다.
아마도 내가 『지혜의 집』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 서적들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고 강물에 쓸려간 후 남은 찌꺼기들에 불과한 모양이다.
이곳에는 유스티니아누스의 대법전도 있고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도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모으고 저술한 히포크라테스 의학 집성이라는 논문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여 있어 그 언어를 아는 이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여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랍어도 그리스어도 아니라 이오니아 지방의 방언이라고 하니 내가 알 턱이 없는 일이다.
헤시오도스가 쓴 신들의 계보라는 책에서 찾은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에 관한 얘기는 언제 보아도 재미있는 얘기였으며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아랍어로 번역해 놓은 책 역시 소중한 자료였다.
그뿐 아니라 피타고라스가 썼는지는 불명하지만 현의 길이를 통한 화음에 대한 저술 역시 찾을 수 있었다.
또 누군가가 적어 놓은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크기 측정 방법에 대한 글도 있었고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에 대해 반박한 아리우스의 글도 읽어볼 수 있었다.
그런 책들을 보자 약간의 활자중독 증세가 있는 내가 그 수많은 얘기들이 나를 부르는 손짓을 마다하고 그저 한 권의 논문을 가지고 며칠에 걸쳐 그것을 베끼는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까지 내 중독 증상을 치유했던 글이라고는 고작 그 우자이니에서 읽고 베꼈던 베다들이 전부였으니 당분간 내 중독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활자의 홍수에 빠져 있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정말 한동안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 『지혜의 집』에 들어갔다 저녁 해가 기울어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종이공방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오뜨겅이 만든 종이는 쌓여만 가다 결국에는 하무자를 통해 종이상에게 납품을 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쉬바니가 만든 잉크는 나를 기다리다 모두 증발돼버렸다.
그렇게 몇 개월을 활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꺼내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부였다.
바부는 본래 흑인인지라 어디를 가든 좋은 대우는 받지 못한다.
그나마 바스라는 지역의 특성상 이바디즘으로 인해 또 내가 그런 것을 허용할 리도 없으니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오랜 역사의 바그다드고 또한 사람들은 모두 바그다드에 산다는 것에 대해 자긍심이 충만하다.
그러니 내가 일을 배우라고 보낸 유리공방에서 바부의 대우는 그저 미개한 노예고 말하는 짐승에 불과했나 보다.
다른 셋은 그 바람을 불어 유리병 따위를 만드는 일도 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있는데 반해 바부가 하는 일은 매일 유리가마에서 액체유리를 떠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만든 틀에 붓는 것이 전부였단다.
액체유리란다.
물론 유리공방의 일은 누구에게나 위험하고 더위와도 싸워야 하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은 아마도 유리가마에서 액체유리를 떠 나르는 일일 것이다.
수백도의 온도일 것이 분명한 액체유리가 튀기라도 하면 당장에 인간의 육체는 녹아버릴 것이 분명한 그 일을 바부는 덥다는 이유로 웃통까지 벗어던지고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공방의 누구도 바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말이다.
아마 바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소년들도 바부에 대한 인식은 노예흑인이라는 인식이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외눈인 마을에서는 눈 두 개 있는 이가 장애인일 수밖에 없듯이 세 명의 소년들 역시 문화가 주는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바부에 대한 인식은 오뜨겅이나 치기야가 다른 이들보다 좋았을 정도다.
그 둘은 적어도 흑인이 신기하기는 해도 흑인은 당연히 노예라는 인식은 없었으니까.
내가 본 액체유리를 담는 그릇은 거기에 물을 담고 날라도 그것이 하루종일이라면 도저히 힘들어 견딜 수 없었을 텐데 유리라면 그 무게가 대략 같은 부피의 물의 2.5배나 나간다.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은 소년들에게는 힘겨운 일인 것이다.
결국 그릇을 나르던 바부는 어느날 힘에 겨워 그릇을 놓치고 말았고 그릇 안의 액체유리는 바부의 온 몸으로 튀었다.
내가 온종일 『지혜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니 바부를 제외한 세 소년과 쉬바니는 울고 있었고 치기야와 오뜨겅은 그들을 달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집안에서 울음소리가 나는 거야?”
“아!, 이제 오네. 빨리 바부 좀 봐줘. 죽은 건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 같아.”
“무슨 일인데? 아니 일단 바부가 있는 곳으로 가 보자.”
나는 치기야로부터 일의 내막을 들으면서 바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일단 미약하지만 숨은 쉬고 있지만 유리물이 튄 가슴과 배 그리고 종아리 쪽은 살들이 녹아 뭉개지면서 피와 진물이 뒤섞여 21C 화상 전문병원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치기야의 말에 의하면 눈에도 유리물이 튄 거 같단다.
과연 의식을 잃은 바부의 눈꺼풀을 들어보니 한쪽 눈동자가 타버린 상태였다.
지금이 아니라 21C라도 당사자나 주위의 가족들에게는 차라리 죽는 게 오히려 속 편할 정도로 심한 상처인 것이다.
일단 모두를 내보내고 바부의 혼과 백을 살펴보기 위해 내 영을 일으켰다.
내 영이 바부의 송과샘으로 들어갔는데도 바부의 혼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바부의 혼은 송과샘의 자기 자리를 이탈해버린 상태였다.
과거 칼라쉬 마을에서 미친개의 혼과 같은 상태인 것이다.
‘혼이라는 게 반드시 미쳐야만 자리를 이탈하는 게 아니군. 아마도 생존의지가 심하게 꺽였을 때 그런 모양이야.‘
나는 바부의 백에 접근해 그의 기억을 복제했다.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온 나는 바부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내가 처음 내 몸의 주인을 만났을 때보다 더 어린 나이의 바부의 노예로서 살았던 기억이 그 안에 있었다.
각종 멸시와 무시 그리고 질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의 혼 역시 작아진 것이었다.
’그렇지 이렇게 혼이 작아진 경우에나 혼이 자리를 이탈하겠지.‘
더 어린 시절로 그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그나마 행복했던 것 같다. 부모가 그를 매우 사랑했으니까.
부모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서도 그저 믿는 시늉만 할 뿐 진실로 믿지도 않았다.
그저 바부가 건강하게 자라 조상들의 고향인 악숨왕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간혹 부모가 만들어 주는 쥐툼Zythum(혹은 자이툼)이라는 것을 마시고 웃는 바부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 쥐툼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을 보니 그것은 일종의 맥주인 듯 보였다.
’호, 맥주를 만들 줄 아는구만. 쥐툼이라고, 기억해 둬야겠군.‘
그렇게 바부의 기억을 뒤져 그의 어릴 적 좋았던 시절도 살폈지만 대개의 그의 삶은 비관이었고 좌절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고려마을에서 나를 만나고 조금은 삶의 희망을 품고 무바락이 모집하는 고려라는 나라로 가는 항해에도 지원을 했다.
바부는 나를 아주 존경했는데 내가 모든 이에게 차별이 없이 아주 공평하게 대한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시킨 유리공방의 일도 아주 열심히 했던 것이다. 비록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났고.
나는 바부에게 미안했다.
그가 나를 믿은 것에도 미안했고 그 믿음에 대한 보답으로 조금이나마 유리공방의 아이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에도 미안했다.
어른이 되어 그저 책이라는 것에 팔려 아이들을 내팽겨쳐버린 것이다.
치기야나 오뜨겅이라면 혹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지식과 인식은 고작 이 시대의 기준에 머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말이다.
’그래, 이 어린아이를 살리자.
비록 그가 앞으로도 피부색으로 인해 곤란한 처지가 될지라도 또는 치료가 순탄치 못해 혹 실명을 하거나 병신이 되더라도 그를 살리자.
그리고 그에게 내가 만드는 세상을 보게 하자.
적어도 피부색으로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이놈을 살려 맥주나 만들게 해야겠다.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군.‘
그리하여 나는 바부에게 내 전력을 다해 치유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 마법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치유마법의 부작용과 자리를 이탈한 혼으로 인한 것이었다.
바부의 혼이 자리를 이탈한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마도 고통때문일 것이다.
즉 내가 그의 혼을 혹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해도 혼은 몸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으로 인해 다시 자리를 이탈할 것이 뻔해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지나친 고통으로 인해 코마상태가 된 것인데 그 코마상태 역시 자기보호라는 관점에서 바부의 혼이 일부러 자리를 이탈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직 혼의 역할에 대해 다 안다고 할 수 없으니 함부로 혼을 제자리로 가게 할 수도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바부가 가진 물질에너지 곧, 그의 체지방이 본래 적은데다 이번의 사고로 그의 치료를 위한 체지방이 더욱 부족하다는 것이다.
잠시 치유마법을 시전한 것으로도 그의 마른 몸은 더욱 말라진 상태고 심지어 상처에서 나던 피와 고름까지도 말라버리니 치유마법을 시전하는 게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더욱 빨리 모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는 정말 반송장이 되어버린 바부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지식의 방』에서 배운 여러 마법을 복기해 보기 시작했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지혜의 집]
무함마드가 죽고 아랍의 세계는 소위 정통 칼리파 시대가 되는데 이때의 칼리파는 세습이 아니었다.
즉 왕조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 제3대 칼리파가 암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아직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알리가 제4대 칼리파로 선출이 되었다.
문제는 기존의 칼리파들이 흔히 말하는 순니파인데 반해 알리는 시아파에서 나온 칼리파라는 것이다.
당연히 기존의 순니쪽의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이에 당시의 디마싯 앗샴(현 다마스커스)의 총독이자 죽은 3대 칼리파 우스만의 친척이기도 했던 무아위야가 칼리파인 알리의 권위에 도전을 하면서 군사를 일으킨다.
그 무아위야가 우마이야 왕조를 연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1대 칼리파다.
그리고 당연 우마이야 왕조의 정책은 순니파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은 흘렀고 왕조의 수명은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압바스왕조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일 개인 혹은 하나의 집단이 모두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우마이야 왕조 시절에도 예멘인이나 페르시아인들도 왕조를 위해 많은 일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는 그런 이들의 노고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순수한 아랍인들 중에서도 무슬림만을 우대했기 때문이다.
압비스 왕조는 이런 우마이야 왕조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랍인과 비아랍인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구별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 신을 받들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임에도 비신자들 역시 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준 것이다.
결과는 뻔하다.
세계 각지에서 압바스왕조를 찾아왔다.
당연 수도인 바그다드로 오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지식도 같이 가지고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그리고 대개의 지배자들은 자신의 업적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래선지 압바스 왕조의 2대 칼리파인 알 만수르(재위:754~775)는 바그다드를 건설했다.
그리고 7대 칼리파인 알 마문(재위:813~833)은 이복형인 6대 칼리파를 쿠데타로 죽이고 자리로 오른 인물이다.
대개 역사를 보면 똑똑한 인물이 쿠데타를 일으키면 나라가 번성하는 일이 많다.
조선의 세조가 명나라의 영락제가 또 현대사의 박정희가 그런 인물이다(물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아마 알 마문도 그런 인물이었는가 보다.
그는 세상의 책을 모으고 그 책들을 모두 아랍어로 번역해 도서관에 보관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도서관을 Bayt-al-Hikma, 곧 지혜의 집이라고 불렀다.
한편 알 마문이 정권을 잡고 도서관을 만드는 일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한 고민은 ‘과연 신이 다스리는 우주에 이성理性을 적용하는 것이 신에게 허용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나 이성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해 줌으로써 자신의 아버지의 서재인 『하룬의 도서관』을 확장해 『지혜의 집』을 만들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 당시 도서관을 가지는 것은 이 당시 바그다드의 귀족들이 가지는 일종의 호화로운 사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알 마문이 처음 도서관을 만든 게 아니고 그저 좀 더 크고 체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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