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때가 아닌가 보구나!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내가 합포를 나와 유람하듯 움직이며 진주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5월도 한창 때였다.
전생의 역사와는 달리 삼남지방은 최항이 본격적으로 벌인 각지의 저수지 공사와 관개시설로 인해 이미 수리답들은 모내기가 끝나 있었고 산비탈에 자리잡은 몇몇 천수답만이 며칠 전 내린 비를 틈타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진주 남강터에 아예 자리를 잡고 눌러앉았다.
'흠,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군.
이제 5월도 끝이 나고 있으니 전생대로라면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하건만 소식이 늦는 건지 아니면 또 다시 역사가 비틀어진 건지.'
그렇다. 나는 진주에 자리를 잡고 앉아 최항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합포에서 최항더러 먼저 개경으로 가라고 한 것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그가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항이 나를 개경으로 초대를 했다고 무턱대고 머리를 들이밀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도 아니고 이미 그가 곧 죽을 것을 알기에 그의 초대를 받은 것뿐인 것이다.
과거 최우가 나를 고려로 초대했을 때와 같이 앞으로의 전개될 역사적 사건을 알고 있으니 그에 맞춰 짠 계획인 것이다.
최항이 죽었다고 내가 그의 조문을 할 신분이 아니니 그의 죽음을 핑계로 배를 타고 한울루스로 넘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 미적거리는 발걸음에도 최항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허, 최우가 전생보다 일찍 죽더니만 그의 남은 명줄이라도 쥔 것인가.’
나 정도 위치라면 입밖으로 낸 말에 대해 약속을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이고 또 내가 한 말 역시 박작으로 전해져 내 일정에 삽입이 되기 때문에 쉬이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개경으로 가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게 되었구나.
역사를 안다고 까불고 찧고 한 대가를 기어이 받고 마는구나.
그래도 최항의 목숨줄이 얼마나 길겠는가. 해만 넘기면 어찌어찌 명이 다할 것.‘
나는 기왕 이리 된 것 천천히 고려 삼남지방을 유람하며 북으로 오르기로 했다.
진주목을 지나니 하동현이고 고운 모래로 유명한 섬진강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촌부에게 물은 강의 이름은 다사강多沙江이나 혹은 두치강豆恥江이라 불린다고 한다.
아마도 이제는 이곳 섬진강에 왜구가 출현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는 강의 이름에 섬蟾(두꺼비 섬)자가 붙을 일은 없을 테지만 두치강에서 도깨비니 두꺼비니 하는 말의 자취는 찾을 수 있으니 그나마 정겨움은 남는다.
강을 건너니 광양이다.
어차피 시간을 때우며 이동해야 하는 마당이니 광양이라는 지명에서 김을 떠올린 나는 바닷가를 찾았다.
과연 바닷가 마을에 사는 이들은 해조류를 먹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이 해조류를 먹는 풍습은 아마도 이 시대에 고려사람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고려사람만이 미역이나 다시마 거기에 김까지 먹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김이라는 말은 없다.
보통 해태海苔라고 부르고 좀 멋스러운 이름으로는 해의海衣라고 부르는 정도다.
바닷가 사람들이 김을 먹고는 있지만 내가 알던 김의 형태로 먹는 것이 아니라 전생의 파래나 매생이처럼 먹는데 아직 양념이 풍부한 것이 아니니 그 맛이 영 비려 먹기가 거북하다.
물론 먹는 사람도 집안에 먹을 식량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로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는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먹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기왕 시간을 보내기로 했으니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나를 따르는 호위대를 부려 본격적으로 김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공장이라고 하지만 시간도 재물도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저 깨끗한 바닷물을 길어 통에 모으고 거기에 어부들을 부려 캐온 김을 풀어 넣은 다음 갈대나 대나무로 엮은 작은 판으로 종이공방에서 종이를 뜨듯 김을 떠 좋은 볕에 몇 시간만 말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김에 이제는 제법 싸진 소금을 살짝 뿌리고 여전히 비싼 참기름을 발라 불에 살짝 구우면 바로 내가 알고 있던 김이니 말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처음에 나를 두려워 해 아무도 내게 협조를 하지 않았지만 개 중에 김이라는 성을 가진 이가 바다에서 김을 채취해 와 나를 도운 일이 있었다.
나는 공방에서 만들어진 김을 먹어본 후 마음에 들어 맨 처음으로 그를 불러 하얀 쌀밥에 김을 내놓고 먹어보라 하였다.
평생에 백미밥을 먹어본 것이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었을 가난한 이니 김은 거들떠도 안 보고 밥만 먹다가 배가 어느 정도 찾는지 그제야 나를 따라 밥에 김을 얹어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라워한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몰라서 묻는 겐가? 자네가 바다에서 캐온 그 해의가 아닌가?”
“아니 이건 제가 캐온 해의와 같다고는 할 수 없겠는데요.”
“그래? 그럼 그걸 자네가 캐왔으니 자네 성을 따 김이라고 부르기로 하세나. 부르기도 간편하고 좋군.”
“김이라굽쇼?
마마님, 제가 마마님께서 이 김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을 유심히 보았사온데 그것을 따라 만들어 장사를 해도 좋겠습니까?“
“그러라고 자네에게 이 김이라는 것을 맛보여 준 것이네.
나는 한울루스 사람이니 잘 만들어 습기가 침범하지 않게 해 박작으로 가지고 오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최소한 나는 사먹도록 하지.
그러니 한번 한울루스에서 유행하는 그 공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 김이라는 것을 생산해 보도록 하게나.“
“아이구, 마마님! 감사하옵니다.”
비록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지는 않았지만 몽골의 풍습은 몽습이라는 이름으로 한울루스의 풍습은 한풍이라는 이름으로 개경을 넘어 고려 백성들 사이에도 조금씩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몽습 중 하나가 바로 마마님이라는 말인데 듣기로 고려백성들 사이에 높은 신분의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정착되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아마도 시간이 좀 지나면 마마님도 귀찮다고 마님으로 줄여 부를게 뻔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나는 그 김이라는 이가 내게 붙이는 마마라는 말을 들으면서 문득 천연두에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천연두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구나.’
물론 나는 과거 바스라에 있는 그 고려마을에서 사람들의 핏속에 있던 천연두의 항체를 찾아 다른 이들에게 항체를 옮겨준 적은 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바스라에서 고려로 온 이들은 천연두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한울루스나 고려에는 아직 이에 대한 대처방법이 없을 것이니 인두법이든 우두법이든 천연두에 대한 대처방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후, 일단 기록이나 해 두자.’
내가 아무리 시간을 허비하며 고려를 여행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그 치료법을 만들 수는 없는 법.
나는 종이에 천연두의 특징을 적고 그 병의 대처방안으로 우두법에 대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아마 혹 내가 없더라도 누군가 이 기록을 본다면 아니 적어도 한울루스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누군가가 이 기록을 본다면 분명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검증을 시도할 것이고 그런 중에 치료방법도 분명 확인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기왕 생각난 김에 천연두 외에도 각종 전염병에 대한 기록을 하면서 이동을 했다.
그러다 영암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 기록이 광양에서 영암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룻밤을 묵기 위해 들른 월출산 아래 작은 마을의 어느 농부의 집에서 늦은 밤 열린 방문을 통해 들어온 휘황한 달을 보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아! 나는, 내 영혼은 이미 나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구나. 다만 나의 백이 그것을 거부할 뿐.’
그렇다. 나는 이미 고려로 올 때부터 나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한참 전에 이미 내 죽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런 예감이 나로 하여금 못 다한 일에 대한 미련을 느껴 이렇게 전염병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일본의 사도섬 따위를 점령해 한울루스화하라고 한 것도 이미 내가 죽음을 알고 대비한 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백과 나의 육체는 그런 나의 죽음을 거부하고 싶어 개경으로 가는 발걸음을 늦추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나의 그런 예감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적으로 오는 깨달음이요, 영감이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리 내가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또 혼에 백이 침범한 영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미래의 일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지만 오랜 기간 수도를 한 승려들이 자신의 미래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듯이 나 역시 나의 앞날에 대해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개경으로 가 죽어야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나 명분으로 인한 일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어떤 사명감같은 것이었다.
마치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굳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과 같이 말이다.
‘아아! 그렇구나. 그것은 김한돌이 가진 야망이구나.’
그 사명감은 김한돌의 혼이 육체를 떠나기 전에 자신의 백에 남긴 소망이자 야망이자 포부였다.
고려에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야망 말이다.
그리고 그 백에 남아 있는 김한돌의 생각이 나의 영에 새겨진 것이고 말이다.
아마도 내가 그 농부의 집 방문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모양이다.
그 기간동안 나는 나란 존재를 알게 되었다.
『따족』의 『지식의 방』에서 어찌 나만이 마법을 배우려고 했는지도 알 수 있었으며 내 전생의 김태석과 강필두 역시 바로 나라는 준재의 변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바로 내가 그 『타』라는 존재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너무도 긴 삶에서의 지루함으로 물질을 가진 생명으로의 유희를 떠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이제 물질의 껍데기를 벗고 본래의 나인 『타』로 돌아갈 때가 된 듯하구나. 그러니 이런 깨달음이 왔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본래의 자아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장장 7일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몸에 휘황한 후광을 두른 채 방문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월출산 아래로 수많은 이들이 찾아온 것은 알지 못했다.
그 많은 이들 중에는 촌부도 있었고 영암의 사또도 있었으며 근처 사찰의 고명한 승려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방문 앞에 자리를 깔고 내게 오체투지하며 모두가 경건한 자세를 갖추고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대좌한 후 7일만에 깨달음을 얻었듯이 그 자리에 있던 승랴들 역시 내가 7일째에는 깨달음을 가지고 눈을 뜰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보게 호위군관. 이미 7일째가 지나고 있네.
비록 그가 자네의 칸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미 대각을 이룬 자.
우리는 그의 말을 들어볼 자격이 있다 여기니 그에게 한마디 말을 해주라고 말을 건네 보게나.“
“아니 되옵니다. 누구도 칸에게 말을 걸거나 그 육체에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허허, 내 한울루스의 병사들이 고리타분하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그리 앞뒤가 막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지는 몰랐군.
자고로 인간은 사흘을 굶으면 죽을 수도 있는 법이네.
그런데 자네의 칸께서는 자그마치 7일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만약 자네가 깨우지 않아 탈진으로 열반에 드신다면 자네는 평생 그 죄를 어찌 감당하려하는가?
또한 우리와 같은 승려들은 깨달음을 얻은 이에게 귀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억울함을 누구에게 보상받는가?
그리고 어쩌면 한울루스 조정에서 자네가 자네의 칸을 깨우지 않아 자네에게 벌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네.
원칙이라는 게 중요하지만 그것도 상황을 보아가며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깨우시도록 하시게.
만약 자네가 깨우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승려들이 힘을 합해 자네의 호위대를 끌어내고 직접 깨울 것이니.
그런 불상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내가 본래 그 『타』라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미련도 고려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아쉬움도 충분히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본래의 나인 그 『타』로 돌아갈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가지고 있던 약간의 호기심과 욕망을 떨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나의 오감에 어떤 이물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내가 마지막 욕망을 떨쳐내기 직전이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코끼리가 메마른 사막에서 물을 얻기 위해 아카시아 나무를 쓰러트리는데 그곳에 집을 짓고 살던 꿀벌에게 침 한방을 맞은 것과 같았다.
덩치가 큰 코끼리는 그 침 한방을 무시했지만 꿀벌은 자신이 놓은 침자리를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8자춤을 추었고 마지막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들이받기 위해 나무로 다가가던 코끼리가 수많은 벌떼의 공격으로 나무에서 달아나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나 역시 마지막 욕망을 떨치느라 사력을 다하던 중 내 오감에 들려온 나를 깨우는 소리가 마지막을 잠시 멈추게 하였고 그로 인해 내 오감에는 수많은 소리와 냄새와 배고픔과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때가 아닌가 보구나!”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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