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구려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한, 환자들이 어느 정도나 돼야 몸을 추스를 수 있겠나?”
“환자들? 아지즈 아직 환자들이 병이 낫지도 않았어. 병이 나았다고 해도 당장에 몸을 움직이기는 힘들고.
내 생각에 심한 탈수증세를 보이는 세 사람은 생명을 장담할 수 없어.
다만 다른 이들은 열흘 정도 지나면 병에서 회복은 할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당장 배를 탈 수 있다는 건 아니고.
아마 병에서 회복하고 한 달 정도는 잘 먹고 쉬어야 움직일 수 있을 걸로 봐.”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 하긴 몸져 누었다가 일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래서 말인데 나는 남은 인원을 데리고 일단 캘리컷Calicut(현재의 코지코드Kozhikode)으로 떠나야 할 거 같아.
여기서 발이 너무 오래 묶여서는 내 일에 지장이 있을 거 같거든.”
“캘리컷? 그곳이 정향이 나는 곳인가?”
“맞아. 지도를 보니 아버지께서 여기서 그곳까지 보름 정도 걸린다고 적어놨더라고.
물론 거기서 정향을 구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말로코나 반담까지도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래야지.”
“그럼 여기 있는 이들은 어찌 하려고.
더구나 항해사인 무바락도 없이 상행을 한다는 게 꺼림칙한데 말야.”
“나도 무바락이 없다는 게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일단 캘리컷까지는 어렵지 않다고 하니까.
그리고 이건 내가 이 지도를 모사한 거야.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을 모르니까 이 지도를 가지고 있다가 나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캘리컷까지는 찾으러 오라고 무바락에게 말을 해 주면 돼.”
“휴, 네 일이니 말릴 수는 없다만 나는 네가 무바락도 없이 상행을 떠난다는 게 영 마뜩지 않다.
일단 알아는 들었다. 무바락이 정신을 차리면 네 말을 전하도록 하마.”
그렇게 아지즈는 내게 열하나의 환자들을 짐처럼 떠넘기고 만약을 대비한다며 배 한 척을 남기고는 일행들과 항해를 떠났다.
그러는 중에 내가 생각한 대로 열 하나의 인원 중에 탈수증세가 심한 셋이 결국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여덟은 몸을 회복하고 일어났는데 그 중에 무바락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바락은 깨어나자마자 당장에 아지즈를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이런 몸으로는 가다가 죽고 말 거라는 내 엄포에 일단은 이곳에서 내 일을 도우며 몸을 돌보기로 했다.
이곳 수라지푸르의 말을 아는 이가 무바락 외에는 없기 때문에 나 역시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든지 어디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당장에 무바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호다다드가 여러 말을 알지만 이곳의 말까지 아는 건 아니니 말이다.
나는 환자들 중 죽을 놈은 죽고 살아날 놈들은 차차 몸을 회복하는 걸 보면서 일단 이곳에서 그 고려고약으로 장사를 해 보기로 했다.
푸르샤푸라에서 떠날 때 고려고약은 모두 상인에게 넘겼지만 유향과 몰약은 가지고 왔고 또 이곳에서도 비싸기는 하지만 구하지 못할 물건은 아니라는 무바락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목적이야 우자인을 방문하기 위해서지만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고 푸르샤푸라의 성주에게서 호다다드가 빼앗은 금과 은이 있고 말을 판 디르함도 있다고는 하지만 내 동료 일곱에 떠안은 환자 여덟의 생계를 위해서는 당장 무언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바락을 통해 유향과 몰약을 더 구하고 다른 이들에게 산을 뒤져 필요로 하는 약재를 구한 후 고려고약을 만드는 중에 캘리컷으로 떠난 아지즈의 배 한 척이 선원 넷과 함께 수라지푸르로 돌아왔다.
그들이 나와 무바락에게 전한 말은 캘리컷에서 정향을 구하지 못해 아지즈가 말로코 쪽으로 움직이기로 했다면서 무바락에게는 캘리컷으로 올 생각을 하지 말고 몸을 추스르며 기다리라는 전갈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나나 무바락은 공히 불길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바락에게서 아지즈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여러 얘기를 전해들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아지즈는 이번 상행이 처음이고 캘리컷을 넘어서는 아지즈의 아버지 역시 그저 가 본 정도지 그쪽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긴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 그나저나 아지즈가 모험심이 있는 건 좋지만 너무 무모하군. 이 많은 인원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말야.’
떠난 아지즈야 그렇다지만 남은 나는 이제는 스물로 늘은 인원을 건사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사내 스물이 모이면 당장 어디서 다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그것도 타지인 이곳에서 말이다.
“무바락, 자네가 본래 배를 만들던 이라고 했으니 이곳에서 그냥 시간만 보내지 말고 아지즈가 올 때까지 내가 쓸 배나 하나 만드는 게 어떤가?”
“배요? 그게 상당한 돈이 드는 일입니다. 산에 나무가 있고 선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러 물건들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렇겠지. 필요한 건 내가 제공해 주겠네. 그러니 자네는 여기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들을 고용해 일단 나무를 베어 건조작업을 해 보도록 하게나.
아무래도 아지즈가 금방 올 거 같지는 않으니 사람들에게 무언가 일거리를 주어야 분란도 줄어들 거야.
또 그래야 음식을 먹어도 떳떳할 거고. 그러는 중에 호다다드에게 이곳의 말도 좀 가르치고.”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그리고 기왕에 배를 만들려면 아지즈의 배보다는 좀 더 크게 만들자고.
여기 내가 만든 설계도가 있으니 이대로 한번 만들어 보게나. 그러다보면 시간도 잘 가겠지.”
“배도 만들 줄 아십니까?”
“만들 줄 모르네. 다만 과거에 고려에서 만난 이가 알려준 것을 기억할 뿐이야.”
“허, 설계도를 보니 대충 만든 설계도가 아닌데, 고려는 배를 만드는 기술이 아주 발전한 나라인가 보군요.”
가슴이 뜨끔했다.
내가 그려준 설계도는 고려에서 온 게 아니라 내 기억의 과거 곧 앞으로 200~300년은 지나야 유럽에서 만들어질 배인 갤리온Galleon을 모델로 설계한 배였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빠른 지식의 전파가 되지 않을까 하여 망설이기도 했고 또 갤리온이 아니라 캐락Carrack을 모델로 설계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아지즈 아버지의 하인인 그리하여 아지즈의 하인이기도 한 무바락이 비록 아랍의 글을 안다고는 해도 추후 건네준 설계도만 돌려받는다면 그가 갤리온을 세상에 잔파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과 캐락을 가지고 태풍이 몰아칠 남지나해나 동지나해를 지날 자신이 없어 갤리온으로 모델을 결정한 것이다.
아지즈가 타고 온 그 작은 소선으로는 도무지 대양을 건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나는 아지즈가 돌아오면 그와는 별도로 만들어질 배를 가지고 고려나 중국으로 갈 생각인 것이다.
물론 내 동료들에게 선원으로 가져야 할 지식과 경험을 익히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뭐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다 보면 되지 않겠는가.
갤리온이라는 배가 만들어지면서 선주와 선장의 개념이 나누어지게 되듯이 갤리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자본이 든다.
물론 나는 그 정도의 자본을 댈 자신이 없어 일반적인 갤리온보다 크기를 줄였고 따라서 마스트의 수도 줄어지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갤리온이 가진 장점인 높은 속도와 많은 적재량은 유지하고 아직 시대에 맞지 않은 포격전을 위한 시설들은 모두 제거해 버렸다.
그렇게 배의 건조에 대한 일은 무바락과 호다다드에게 맡기고 나는 오뜨겅과 치기야를 데리고 고려고약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 푸르샤푸라에서도 그렇지만 고약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고약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이 작은 어촌 마을인 수라지푸르에 상인들이 드나드는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드나들자 정보가 모이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고도 나는 한동안 고려고약의 판매에 매진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기에는 아지즈의 소식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산따가 지나 그리스마가 된 시점에도 아지즈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무바락은 준비된 목재로 본격적으로 배를 건조하기 시작할 때가 되어 나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은 치기야만을 대동하고 떠날 예정이다.
“호다다드, 내가 없는 동안 자네가 이곳에 대한 총책임자라는 걸 명심하게나.
배에 대한 문제는 무바락에게 맡기고 자네는 무바락을 지원해주면서 주변에서 각종 씨앗들을 모아 주게. 오뜨겅도 마찬가지고.
나무든 풀이든 씨앗을 모아 그 이름과 특징을 기록해두는 일이 내가 없는 동안 자네 둘이 할 일이야.”
그렇게 일을 호다다드에게 일임을 하고 나는 삼보라는 코끼리 한 마리와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치기야와 길을 나섰다.
이미 수라지푸르에 온 상인들을 통해 21C 우자인Ujjain이 현 시점에서는 우자이니Ujjayini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인도 아대륙의 서쪽에 자리한 서고트산맥의 끝자락인 이곳 수라지푸르에서 한달 정도의 여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우자이니까지는 아니지만 그 중간 지점까지는 동행할 상인도 수배해 둔 상태니 큰 걱정은 없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서고트산맥의 끝자락과 빈디아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는 지점을 지나니 평원이 펼쳐졌고 우리는 그 평원에서 사자나 치타도 구경할 수 있었다. 21C 인도 아대륙에서 사라진 동물 말이다.
치기야는 그 신기한 동물들에 눈이 돌아가 보다 자세히 살피고자 했지만 나의 사자는 범 못지 않게 무서운 맹수니 가지 말라는 말에 치기야는 그럼 저 점범은 괜찮은가 하고 내게 물었는데 그때부터 우리는 치타를 점범이라 부르게 되었다.
치기야는 그 여진의 땅에서 범도 보고 표범도 보았으며 파미르에서는 설표도 보았지만 점범은 처음이라며 나무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하는 범이 참으로 신기하단다.
그리고 나는 창뿔염소나 말뿔양과 함께 점범이라는 단어 역시 내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기왕 하나의 말과 하나의 글이라는 목표를 정했으니 세상 만물의 이름도 고려의 말과 글로 표현한다면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길을 가다 동행하는 상인과 같이 가기로 한 마을에까지 가게 되었다.
사실 상인이 끝까지 동행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물론 거리가 먼 이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1C에서도 인도의 언어 문제는 아주 골치 아픈 것이었다.
한 나라의 언어를 그 나라의 국민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유일한 국가가 인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인도는 같은 인도 국민이라도 외국어인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런 나라였으니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내가 인도의 언어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힌디어는 아주 조금 할 줄 안다.
그러나 그 힌디어도 지역마다 다르고 인도 남부로 가면 힌디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수라지푸르에서 사용하는 말은 분명 힌디어는 아니었다.
아마도 구자라트어일 걸로 추측이 되는데 내가 구자라트어까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준 상인이 마음씨가 좋은지 마을에서 우자이니 방면으로 상행을 하는 상인을 소개해 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의 말과 하나의 글에는 강력한 중앙집권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언어를 통일하는 것, 적어도 국가의 표준어를 정하고 전 백성이 그 표준어를 말하고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교육을 할 만한 돈이 필요하고 또 그것을 강제할 만한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고려가 한반도라는 작은 울타리 안으로 기어들어온 것은 그래서 만주의 고려백성들을 버리고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가 아니라 그들을 강제할 힘과 가르칠 돈이 없어서일 거라는 생각까지 해 본다.
분명 고려를 침공한 소손녕이 서희에게 한 말은 고구려를 이은 나라는 거란이라고 강변을 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소손녕이 있던 시기의 고려와 만주에서는 어쩌면 고려와 거란 그리고 여진이 대고구려라는 울타리 안에 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고려의 북방에서는 그들이 한가족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진 김한돌의 기억에서도 그 세 민족은 비록 싸우기는 하지만 같이 어울려 살던 이들이었으니까.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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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이은 나라]
고구려를 이은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이 질문을 한국인에게 하면 누구나 고려고 조선이며 한국(혹은 북한)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에게 그 말을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할 것이다. 일본이 끼어들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다.
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지금에서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 때로 시간을 돌린다면 고구려 혹은 발해를 계승한 국가가 누구인가는 애매모호하다.
그것은 서희가 강동 6주를 얻으며 거란과 담판(993)을 지으며 나눈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거란이 고려를 침공해 한 말이 고구려를 계승한 곳은 거란이고 고려는 신라를 계승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야 고려로 하여금 당시 고려 조정에서 얘기되고 있던 할지론割地論(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거란에게 주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걸로 보이지만 어찌됐든 소손녕은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하며 고구려의 옛영토의 회복을 주장한 건 사실이다.
물론 서희는 말빨(사실은 거란이 송을 치기 위해 고려를 다독인 것에 불과하다. 왕도 아니고 일개 장군이 영토할양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로 이겼지만, 우리는 당시 만주 등지에서 살던 사람들의 의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고 위의 얘기로 따지면 거란은 고구려의 계승자를 자처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여진은 발해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거란, 여진, 고려가 한 뿌리라는 근거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역사기록이 없다는 것일 뿐. 아니면 누군가 혹은 어느 나라에선가 기록들을 없애버렸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 시기 역사는 전부 중국에 있고(혹은 중국이나 일본에 의해 취사선택되었고) 김부식(정사를 집필한)은 신라계 인간이어서인지 북쪽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진 듯 보인다. 그리고 묘청과 서경천도론자들은 실패를 했다.
이 글은 위에 언급했듯이 거란, 여진, 고려가 한 뿌리라는 전제를 가지고 쓰여 있다.
사실 거란과 여진족이 사라진(혹은 몽골과 중국에 흡수된) 것은 더하여 우리가 그들의 기록을 가지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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