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詐欺의 이유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테무게가 육반산으로 이동하는 중에 나에 대해 소홀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날 어느 들판에서 있었던 치유마법으로 인해 테무게나 그가 부리는 병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획연히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잠을 잘 때면 테무게가 차지하고 자던 천막을 내게 주려고도 하고 식사를 할 때면 내게 식사의 주도권을 주려고 하는 등의 모습이 말이다.
물론 내가 나이 많은 테무게를 두고 그런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전보다 병사들이 나를 더 어려워하고 나의 말에 더 고분고분해져 내가 편해진 건 사실이다.
아마도 모두가 나를 통해 신을 봤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신과 통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사기가 성공을 거둔 것에 나 역시 흡족하지 않을 수 없다.
21C라면 모르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고 또 그래서 절대신이 아니더라도 신이라는 존재가 현재함을 믿는다.
아마도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부를 틀어쥐고 있더라도 늙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죽음과 죽은 후의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고 몸이 아플 때면 삶의 고단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21C 그 눈부신 기술과 과학의 진보로 인해 영혼의 실체가 해체되고 인간은 단지 수많은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상식이 된 시대에도 인간은 신을 찾고 신을 향해 기도를 하지 않았던가.
또 마법이 아닌 마술적인 기술로 신기한 것을 보이기만 해도 그것이 신의 증거라고 떠들며 가진 재산을 쏟아 붓고 심지어 제 목숨까지 버리는 일이 여기 13C가 아닌 21C에 비근하게 발생하곤 하던 일이다.
그러니 나의 약간의 의례를 동반한 기도로 인해 보기에 무척이나 성스러운 빛에 쌓인 테무게가 그 빛이 사라진 후 푸석푸석하던 피부가 눈에 띌 정도로 팽팽하게 변하고 좀 전까지 피로로 앓아누워야 했던 이가 생기발랄할 정도로 활기가 도는 모습을 보이니 이 13C의 인물들이 어찌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상식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는 분명 그들의 텡그리이고 내가 말하는 하느님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는 진정한 텝텡게르인 것이다.
그들 마을에 있던, 재물이나 밝히면서 칭기즈칸의 개혁에 반대나 일삼고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텡그리의 말씀을 듣는, 기존의 텝뎅게르가 아니라 텡그리에게 직접 기도를 드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굳이 흰 제물祭物이 아니어도 받아주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텡그리의 이적을 보여주는 진정한 무당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테무게와 다시 길을 나서면서부터 그들 모두에게 내가 인도의 우자이니에서 어떤 푸쥐아리에게 말했던 마고와 세 민족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한번 꺼냈던 얘기를 다시 꺼낼 때는 당연 좀 더 충실하게 각색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기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마고가 이 우주를 창조한 얘기부터 옥황과 염라의 얘기와 그 외 수많은, 예컨대 삼신할미나 칠성신 같은 신들에 대한 얘기와 염라가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도깨비를 비롯한 악신들의 얘기까지 마지막으로는 역시나 단군과 게세르 그리고 텡그리 삼형제에 대한 얘기를 꺼내 놓았다.
물론 좀 더 각색한 부분도 있었다.
가령 단군신화의 등장하는 동물은 곰과 범에다 늑대를 추가했고 신단수神壇樹에 대해서는 어떤 섬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섬은 초승달 모양의 호수 안에 있다며 아직 지리를 모르는 이 시대 사람들은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바이칼 호수를 알리기도 했다.
뭐 아직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는 시기니 이런 얘기들은 그저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할 만한 얘기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얘기들이 모이면서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이 생기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 민족의식을 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식이 깨어나면 저 이스라엘 민족이 20C 초에 기어이 가나안을 찾았듯이 이 얘기를 들은 이들에게는 그 초승달 모양의 호수는 반드시 찾아 지켜야 하는 무의식적인 의무감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그 바이칼을 차지하는 민족이 몽골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투르크족이 될 수도 있으며 또 고려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떠랴.
적어도 세 민족은 그런 사실을 공유할 것이니 적어도 러시아 민족에게 그 땅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현재의 내 입장은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또 시원적始原的으로 우랄산맥 동쪽은 몽골리안의 땅인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종종 테무게는 많은 질문을 했다.
가령 왜 큰형인 단군과 작은 형인 게세르는 고향을 떠났는데 막내인 텡그리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에 나는 그것이 막내의 의무이자 권리다.
테무게가 옷치긴이 되어 아비인 예수게이의 터전을 물려받은 것도 그것과 다름이 없다라고 하는 식으로 대답을 했고 그들 3형제가 모여 살 때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어느 병사의 질문에는 알려진 고조선의 팔조법금에 그럴싸한 몇 가지 금법을 추가해 말하기도 하고 또 하늘에 지내는 의례에 대해서는 몽골의 텝뎅게르들이 의례를 지나치게 형해화形骸化해서 몽골의 백성들에게 원성을 듣는 것을 알고 의례가 백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축제의 형태가 되도록 간소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의례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얘기는 점점 그 얘기가 탄탄해지고 역사를 가지게 되었으며 가지런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세가 구전하는 얘기를 엮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5경을 기술했듯이 나 역시 인도의 우자이니에서 시작한 나의 마고와 삼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이 몽골리안의 초원에서 완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초원민족 전체의 탄생과 이동 과정 그리고 그 고난에 대한 얘기가 되었다.
하나의 신화가 완성이 된 것이다.
사실 내가 했던 얘기들의 중간 중간 어디쯤은 몽골인들 사이에 알려진 이야기도 있고 또 고려인이나 여진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이야기도 있으며 저 시리다리야 넘어 사는 투르크인들 사이에 알려진 얘기도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 듣는 이들은 과연 언젠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어 봤음직한 내용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더욱 듣는 이로 하여금 내 얘기에 심취하고 또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 사기를 치려면 이 정도는 쳐야 되지 않겠어. 전체 인종이나 그 민족을 상대로 말야.’
그리고 나는 나의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이 거대한 사기극의 밑바탕이 되는 얘기가 완성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의 금괴를 인양한다는 사기를 치려면 적어도 울릉도 앞바다에 돈스코이라는 배가 지나가기라도 한 기록이 있어야 그 사기가 만들어질 수 있듯이 몽골과 투르크 그리고 고려인들이 본래가 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는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구전으로라도 말이다.
물론 21C라면 유전자를 추적하거나 언어적 공통점을 찾거나 아니면 역사적 고증을 통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지만 지금은 유전자라는 말도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싸우기 바쁘며 아직 고증이라는 학문을 하기에는 이 시대의 학문과 기술의 발전이 많이 부족하다.
그럼 나는 왜 이런 사기를 굳이 치려고 하는가.
그저 고려의 백성들을 계몽해 깨우친 후 그들에게 총이라도 한 자루 쥐어주고 세계를 정복해도 될 터인데 말이다.
현재 이 지구라는 별에서 화약이라는 것은 송나라의 도가사상가들 사이에 연단술의 형태로나 존재할 뿐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일 터이니 내가 화약과 총을 만들어 고려인들에게 쥐어준다면 저 칭기즈칸의 군대가 무어 그리 무서울 것이고 화포를 만든다면 이 별의 바다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이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지난 지구에서의 삶에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있더라도 결국 민족과 국가의 운명은 그 인구수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21C 우스갯소리로 지구에 핵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인과 인도인만은 살아남는 이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기초하여 새롭게 탄생할 이 고려라는 나라에는 좀 더 많은 인구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과연 내가 우연히 발을 디디게 된 이 또 다른 지구라는 별에서는 거란인, 여진인과 고려인의 차이는 그저 경상도 사람과 평안도 사람의 차이 밖에는 없다는 판단이다.
즉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저 말이 조금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약간 달라서 마치 다른 민족처럼 보이지만 21C 언어학을 비롯한 지식에 기반한 나의 판단으로는 그 세 민족의 언어는 아직까지는 그저 한 언어의 분화과정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분화는 그저 사투리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고려의 학문이 아직까지는 유학에 치우치지 않고 다른 학문을 폭 넓게 받아들인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나면 안향이 기어이 성리학을 고려에 들여올 것이고 그 학문으로 인해 고려 나아가 조선은 그 성리학의 세계관에 빠져 소국이 대국을 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까지 만듦은 물론 나라의 글까지 대국의 글을 우선으로 하면서 남아 있는 이두마저도 없애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결과는 뻔하다.
보통 산을 넘으면 말이 달라지고 강을 건너면 풍습이 달라지며 사막을 건너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한다.
조선이 북쪽의 두 강을 국경으로 삼아 백년만 여진이나 거란과 교류를 끊으면 당장 두 지방의 말은 소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아가 기존의 역사대로 조선의 말이 한자어를 중심으로 퍼지게 되면 나중에는 두 말의 근본조차 달라지게 될 것이니 말이다.
21C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문제가 말의 차이라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도 불과 몇십년 전에 한 나라의 백성이었던 이들이 더구나 지금과는 달리 고유의 문자를 사용해 말을 표시하는 이들이 또 그 헤어진 기간에도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했던 사람들이 불과 100년이 안 되는 기간 만에 말이 달라 애를 먹는 것이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피부가 같아서 민족이 아니다.
풍습이 같다고 민족이 아니다.
말이 같아야 민족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같은 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글을 사용해야 할뿐더러 같은 이야기를 공유해야 한다.
그 같은 이야기가 말을 통하게 하고 그 같은 이야기를 표시할 같은 문자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내가 판단하기에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전쟁은 사람의 이동을 빈번하게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와 글 역시 빈번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그 이야기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언젠가 들은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면 느끼게 될 것이다.
고려와 여진과 거란이 사실은 한 형제였다는 것을.
또 자신이 속한 집단과 몽골과 투르크가 사실은 한 집안의 친척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가 이 거대한 사기극을 펼치는 이유다.
그런 이야기가 퍼지게 된다면 장차 몽골이 대륙에서 물러나 화족華族들이 일어설 때 대륙의 황하 이북 지방에 널리 퍼져 살고 있는 여진과 거란은 결코 명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선택사항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갈 곳이 없으면 다른 곳의 지구처럼 역사가 흐르겠지만 고려가 내가 퍼트릴 한글과 한수를 받아들이고 또 내가 퍼트리는 이용후생의 학문을 받아들인다면 학문이 굳이 권문세족이나 지방 호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글과 한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것이 될 것이니 누가 있어 성리학에 경도되겠는가.
그렇게 고려에 성리학의 지분이 줄어들면 당연 누구도 대국이니 소국이니 하는 말을 만들지 않지 않겠는가.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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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조선인이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 이성계의 가계에 대한 비밀을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작가가 쓰는 소설의 재미를 위해 간략하게 써 보기로 한다.
이성계나 이성계의 조상이 조선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들이 고려인이었느냐 하는 문제는 논란이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의 가계를 보면 7대조에 이린李璘이라는 이가 있고 이린의 아들이 이양무陽茂(?~1231)고 이양무의 아들이 이안사安社(?~1274)로 이 이안사가 이성계의 5대조인 고조부로 목조穆祖라는 이다.
문제는 이린에서 출발한다.
이린의 부父는 대장군을 지낸 이용부勇夫로 그의 처인 이씨와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는데 그 둘째가 의방義方이고 셋째가 린璘인 것이다.
이의방은 1121년에 출생해 음력 1174년 12월 18일 양력으로 1175년 1월 12일에 죽은 사실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다른 형제들에 대한 것은 기록이 없이 그저 이의방이 죽은 후 죽었거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의방이 누구인가?
KBS에서 한 사극 『무인시대』에서 서인석 씨가 열연한 그 이의방이 아니겠는가. 철퇴를 휘두르던.
작가가 그 드라마를 모두 보지 않아 죽는 장면을 어찌 묘사했는지 모르지만 역사에서는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게 칼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고려사의 반역 열전에 실렸으며 전주 이씨 족보에서도 퇴출당했다고 한다.
그런 이의방의 동생인 이린이 살아서 자식을 두고 또 손자가- 뭐, 살아서 손자까지 볼 수도 있다고 치더라도-과거에 급제하는 일이 발생한다.
즉 실록에 따르면 이안사는 전주에서 살다 1221년 4월의 과거에 급제했는데 고을 현감과 기생을 두고 다투다 강원도 삼척으로 이사를 한다고 나온다.
문제는 이안사가 이사를 하니 고을의 백성 170여 호가 이안사를 따라 같이 이사를 했고 또 이안사가 삼척에서 다시 의주宜州(현 원산 덕원리)로 옮기니 그 백성들이 따랐다는 것인데 이런 일이 과연 농경민족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일이냐는 것이다.
먼저 이린의 손자가 과거에 급제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없을 것이다.
누가 역적의 자손에게 급제를 준다는 말인가.
고려가 연좌제가 금지된 민주국가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 21C 대한민국인 지금도 아마 전두환의 자식들이 고위관료에 임명이 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할진데 하물며 고려에서?
개그의 소재로 삼기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또 그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사를 가는데 그를 따르는 170여 호가 이안사를 따라 갔다는 말은 더욱 황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멀쩡히 농사를 짓고 있던 땅을 두고 사람을 따라 터전을 옮긴다.
거기에 삼척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살만 하니 이번에는 추운 북쪽으로인 원산으로 다시 따라간다는 것은 농경민족인 고려의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170여 호면 대충 잡아도 2천 명은 돼 보이는 인원이다.(아마, 딸린 노비까지 생각하면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고을 수령은 눈뜬장님이란 말인가?
그 정도 인원이 고을을 이탈하면 아마 수령은 잘해야 탄핵이고 재수 없으면 목이 뎅강 떨어질 일일 것이다.
차라리 고을의 수령의 목을 쳐 상부에 자진한 것으로 거짓 보고를 하는 게 낫지 농토를 버리고 떠나는 한민족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안사는 고을 수령도 멋도 아닌 그저 기생문제로 수령을 피해 도망가는 입장인데 말이다.
더하여 그런 이동을 알게 되는 주변 고을의 수령들이 그것을 방관만 하고 있었다는 것도 우습기 그지없다.
그 무리가 이사를 하는지 아니면 반역도당인지 어찌 알고 방관을 한단 말인가.
거기에 이안사부터 시작해 이안사의 후손들은 고려의 동북면과 두만강 일대를 지배하는 다루가치로 재직해 왔다.
다루가치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다루가치가 상당히 고위직의 지방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역사 교과서에 등장한다.)
만약 미국 행정부에 한국계 미국인이 있다면 한국의 관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연 무슨 문제만 있으면 그에게 전화하고 또 찾아가 미국의 의도는 뭐냐? 앞으로 일은 어찌 전개가 될 거 같냐? 따위의 질문을 하기 바쁠 것이다.
보태준 것은 없지만 단지 같은 피가 약간 섞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미하원에 당선된 것만으로 한국의 TV가 얼마나 난리고 또 그것을 보는 한국인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가.
그러나 고려사 어디에도 고려의 관료가 이안사나 그 후손들을 찾아간 일은 없다.
아니 언급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고려의 관료들이 무능해 이안사나 그 후손들이 고려의 유민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안사나 그 후손들이 고려의 유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고려의 관료들이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제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또한 몽골이 고려인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고 해도 군권을 가진 다루가치에 고려의 유민을 앉힌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성계나 그의 부父인 이자춘은 결국 고려 왕실에 투신했는가?
그런 내용을 알고 싶다면 아래의 책을 읽어보자.
그 외에 많은 논거를 들면서 강원대 윤은숙 교수는 이성계의 조상이 몽골인이었거나 최소한 여진화된 혹은 몽골화된 고려인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런 주장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이런 내용은 윤은숙 교수의 저서 『몽골제국의 만주 지배사(2010), 소나무』에 나와 있다는 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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