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지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사실 나는 대칸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 한울루스를 세우도록 한 이유나 옷치긴이 살리타이를 이곳에 남겨 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다.
지금은 동쪽으로 물러나 있지만 본래 내가 처음 마을을 떠나 몽골군에 투신할 즈음에 이곳은 포선만노라는 이가 일으킨 대진大眞국의 관할이었다.
물론 본래의 김한돌은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나는 그런 역사를 알고 있다.
그 대진국과 테무게 옷치긴 그리고 고려가 연합해 거란의 잔당을 소탕한 것이다.
그런 전례가 있으니 몽골과 대진국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포선만노가 국호를 동하東夏로 바꾼 후부터 몽골과 동하의 사이는 급격히 나빠졌다.
아니 사이가 나빠져 포선만노가 국호를 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둘의 관계는 마침내 저구유(저구유著古與)사건을 계기로 급전직하하고 만다.
결국 동하는 차지하고 있던 파속부로(단둥)를 버리고 동쪽, 곧 함경도 북쪽과 두만강 윗쪽으로 도망을 친 후 잠잠한 상태지만 그 동하라는 나라가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나라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세력에 가까운 집단이지만.
그리고 그 세력 역시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포선만노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라면 후에 포선만노는 오고타이 시절에 죽는 것이 맞다.
아마 대칸이나 옷치긴은 이왕 내게 은혜를 입었고 또 무언가 그 대가를 줘야 하니 요하 동쪽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한울루스를 인정한 것일 것이다.
포선만노의 세력을 저지하고 아래에 있는 고려가 경거망동을 하지 않도록 간수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즉 나 하나를 한울루스의 칸으로 삼으면서 멀리 동쪽으로 도망간 포선만노의 세력을 견제하고 고려를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 은혜를 갚았다는 명분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역사는 지금의 시점에 포선만노의 세는 급격히 줄어 동하라는 실체의 현존 여부도 불투명하고 고려는, 아니 고려의 최우는 저구유 사건으로 인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요양과 금의 파속부로인 단둥이 힘의 공백상태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공백을 옷치긴이 유덕용을 보내 차지하려던 중 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본래 역사대로라면 아마도 옷치긴은 요양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 테무친의 사후 대칸의 승계작업이 마무리 되면 그 차지하고 있는 요양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동하를 치고 남으로는 고려를 칠 계획이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테무친의 목표하는 금과의 전쟁에서 동하와 고려가 경거망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동하는 본래 금의 신하이던 포선만노가 상황을 보다가 얼떨결에 세운 나라고 고려는 이미 금에 복종하여(1131) 사대관계를 맺고 있었으니까.
즉 몽골이 금과의 전쟁을 이어가는 동안 자칫 뒤에서 동하와 고려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현재의 몽골과 테무친 그리고 테무게의 걱정인 것이다.
본래 오고타이가 대칸이 된 후 살리타이를 시켜 고려를 치도록 한 것 역시 그런 걱정으로 인한 것이었으니 틀리지 않은 분석일 테다.
‘자, 그럼 나는 어찌 해야 하는 게 맞는 행동일까.’
열심히 세력을 키워 동하를 치고 다시 고려를 쳐 한울루스의 세력을 키우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그저 테무친이나 테무게가 원하는 대로 그저 자리보전만 하고 있으면서 동하와 고려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을 하는 게 맞을까?
아마도 테무친이나 테무게는 나의 영역이 넓어지고 군세가 늘어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늑대와 여우를 감시하라고 보낸 이가 범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또 그렇다고 그들이 보낸 내가 동하나 고려에 쫓겨 달아나는 꼴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외길이다. 동하나 고려 모두와 선린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좋겠지.’
그렇지만 그것 역시 장차를 생각하면 문제가 있는 방안이다.
즉 내가 그저 고려와 동하 두 나라와 선란관계만 유지하고 있으면 몽골은 아니 적어도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오고타이는 나를 의심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즉 그들은 어쩌면 동쪽에 있는 세 나라가 똘똘 뭉친 것은 아닌가 근심을 할 거라는 말이다.
감시하라고 보낸 살리타이의 군사야 기껏 기병 1개 밍캇이니 맘만 먹으면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은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즉 선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그 두 나라와 다툼 역시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사이가 좋아 보이면 몽골의 기마병이 나를 먼저 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분쟁을 위한 초석이 바로 내가 자쿳으로 쪼개 보낸 몽골의 기병들이다.
아마 내가 보낸 자쿳 중 몇 군데 혹은 모두에서 동하와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포선만노의 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고 해도 한때는 나라를 세운다고 떠들던 작자니 일개 자쿳에게 떠밀려 순순히 내 말을 듣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포선만노가 자존심이 있다면 자쿳 하나 정도는 만신창이가 되어 오겠지.’
그리고 사실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는 중이다.
뭐, 군사 몇이야 잃겠지만 그 일로 내가 한울루스의 칸이라는 것을 여진인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을뿐더러 포선만노의 세력을 없애지 않고 그들의 세력권에 한글과 한교를 전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려라면 모르지만 동하가 자리한 연해주 일대는 식량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 지방에 사는 이들이 끊임없이 고려를 침입하고 어느 정도 세력만 키우면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연코 어느 일개인의 야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진인들이 좀 더 풍족한 먹거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범을 비롯한 산짐승들이 굶주리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기어이 민가에 출현하는 것처럼 여진인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한글과 한교를 전파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내 전생에 기독교가 그랬듯이 먹을 것을 주면 되는 문제다.
유명한 마오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민을 통제하려면 식량을 통제하라고 말이다.
적어도 이 시대에는 그 말이 진리다.
아직 인간의 욕망은 제1단계인 생리적·생물학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 시대의 사회나 국가 역시 그 욕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려면 결국 답은 돌고 돌아 돈이 필요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 시대의 돈인 식량 말이다.
그리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저 마을이나 도시에서 말하는 부자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를 먹여 살릴 만한 부자 말이다.
‘그나저나 미타호에서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궁금하네.
내가 알기로는 그 지역에서 농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아마 미타호 주변에서 농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람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농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니 말이다.
더구나 연해주 방면의 여진인들은 반농반목도 아니고 주로 사냥과 채집이 그들의 주요 먹거리 공급 방법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미타호 주변에서 쌀농사는 힘들어도 봄과 여름을 기해 밀농사는 충분히 가능할 정도의 기후조건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관개시설을 충분히 만들어야 하겠지만 그 정도야 먹고 사는 문제니 어느 곳의 인간이라도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니야! 내가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
그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내 역할을 제한해야지 모든 걸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이야.
지금 시대에 비행기나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움직이는데 기본 1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데 모든 일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지.’
나는 머릿속에서 터져나오는 생각들을 접고 일단은 졸본으로 가기로 했다.
요양에서 며칠을 머물러 있었더니 내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다.
요양을 나서 마두가 만드는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 앞에는 마차 2대가 몇 개의 가마니를 짊어지고 각 두 마리의 말에 끌려가고 있었다.
“한님, 확실히 말은 샤를락보다는 힘이 부족합니다. 아니 하네크보다도 약해요.”
“그러냐? 그렇지만 이곳에서 샤를락은 살 수 없지 않느냐. 이곳은 샤를락에게는 너무 더운 날이니 말이다.
하네크는 혹 살 수 있을지 모르겠디만 어차피 그 짐승은 샤를락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짐승이고.”
“그거야 그렇지만요.”
“왜, 벌써 집이 그리운 게냐?”
“그렇지는 않은데 엄마하고 아리크부카가 어찌 지내는지 걱정이 돼서요.”
“그래? 아마 잘 지낼 거다. 너는 예서 있는 동안 훌라구를 잘 살펴야 하니 집이 그립더라도 참아야지. 네 동생은 엄마가 더 그리울 거야.”
“알겠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벌써 이렇게 날이 따듯한 게 믿기지가 않아요.”
“내가 아주 먼 곳에 있다가 이곳으로 올 때 배를 만들어 타고 왔는데 세상은 넓어서 어느 곳은 1년 내내 더운 곳도 있고 또 네가 사는 초원보다 더 북쪽은 1년 내내 더운 날이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정말 넓은 것 같아요. 1년 내내 덥기만 한 곳이 있다니.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 바다라는 것은 어떤가요? 달라이 누르보다는 크겠죠?”
“달라이 누르? 하하! 당연히 달라이 누르보다는 크다.
바다는 세상에 있는 모든 땅을 품고 있는 물이란다.
그러니 달라이 누르와 바다를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달라이 누르는 세상의 땅은커녕 고작해야 몽골의 초원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정도의 누르일 뿐이잖니.
아마 한번은 바다를 볼 수 있을 게다. 우리가 가는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으니까.”
“한님, 그런데 이렇게 길을 만들 필요가 있는 건가요.
그저 길이란 건 말이 달릴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초원에서는 짐들은 대부분 말이나 샤를락 혹은 하네크에 싣고 다니거든요.
저기 마차라는 것에 실은 것도 좀 나눠 실으면 어차피 말들로 옮길 수 있지 않나요.
이렇게 길을 만드는데 사람이나 말이 많이 필요하다면 굳이 길을 만들 게 아니라 그 사람과 말로 옮기면 그만일 텐데요.”
“그렇구나. 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초원의 삶이지 여기 농사를 짓는 사람의 방법은 아니구나.
초원에서는 수시로 옮겨 다니니 굳이 길을 만들 필요가 없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한곳에 머물며 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계속 제가 사는 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는 거다.
그러려면 길이 있으면 아주 편리하지.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초원의 사람들처럼 모두가 말을 탈 줄 아는 건 아니거든.
또 초원에서는 사람보다 말이 많지만 이곳은 말보다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그렇긴 하더라고요. 정말 그 유장군의 집에 무슨 사람이 그리 많은지.
초원에서는 겨울이 돼야 그나마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
“어이구, 한님 오셨다는 전갈은 들었는데 이제야 오시는 길이십니까?”
“오! 마두 씨. 이곳에서 길을 내고 있었군요.”
“웬걸요. 현재 공사구간을 총 여섯으로 나눠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각 100 여 명씩의 군인들을 붙이고 거기에 마을에서 작년에 손발을 맞춰본 이들에게 각 구역을 맡겼지요.
또 그 각 부대에 밥을 해줄 군인들도 붙이고 또 마을까지 가서 보급품을 옮기는 병사도 있고 해서 총인원은 700여 명 정도가 됩니다.
저야 매일 말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진척상황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보고 다니는 형편이고요.”
“그런 말씀 마세요.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요.
그나저나 공사를 하다가 보면 다치는 이도 있을 텐데 그런 이들은 어찌 하고 있습니까?”
“일단 크게 다친 사람은 마을로 보내 가료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죽은 이는 없습니다.”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일의 진척도 중요한 일이지만 가급적 사람이 상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다들 누구에게는 귀한 자식들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좀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길을 따라 졸본으로 가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길을 살피고 있다.
길은 내가 이른 대로 충분히 마차 두 대가 다닐 정도의 폭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곳은 산을 깎으면서 충분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간도 있었다.
‘흠, 소칠이한테 석회 광산을 찾으라고 했는데 찾았는지 모르겠군. 도로 현장에서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아직 찾지를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용법을 몰라 그런 것인지.’
이 시대에 이미 석회석은 사용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시멘트가 아니더라도 석회석을 사용한다면 길을 만드는데 좀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해 보는 생각이다.
‘이참에 시멘트나 만들어 볼까.’
사실 내가 소칠이에게 석회광산을 찾으라고 한 이유는 유리제조 때문이었지만 길을 내는 현장을 보니 시멘트가 필요해 보이니 해 보는 생각이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