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변곡점
오·탈자 지적을 바랍니다.
“일동 기립! 위대하신 『타』로부터 우리 『따족』의 재판관으로 임명된 『왕따』님이 입장하십니다. 모두들 경의를 표하시길 바랍니다. 착석”
“금번 재판은 죄수번호 588-108-19781231에 대한 것으로 상기 죄수가 저지른 588-108 태양계의 역사를 비틀어 새로운 차원을 만든 범죄에 대한 판결이다.
범죄에 대한 소명은 충분히 들었고 확인하였는바 죄수번호 588-108-19781231이 저지른 범죄는 충분히 중형을 면치 못할 죄이다.
그러나 이미 588-108 태양계의 시간이 충분히 흘러 죄수번호 588-108-19781231의 개입이 없더라도 588-108 태양계가 충분히 그 정도로 물질문명에 대한 발전을 이룰 정도가 되었다는 점,
또 상기 죄수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당시 우리 『따족』의 제도에 실수가 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죄수를 처음 이곳으로 데리고 온 『졸따』나 『졸따』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해준 『깔따』가 약간의 실수를 했을지언정 그 둘에게 이번 일의 책임 역시 물을 수 없다는 게 본 재판관의 생각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친 장난을 통해 588-108 태양계에 문제가 일어나도록 한 『한따』의 책임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역시 본 재판관의 생각이다.
따라서 죄수번호 588-108-19781231를 그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새로운 차원으로 추방할 것을 명한다.
또한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한따』에게 새로 생긴 차원으로 통하는 틈새를 찾아 상기 죄수를 추방하는 책임을 지운다. 이상.”
“일동 기립!”
나는 『지식의 방』이라는 이름의 일종의 혼魂들만을 위한 감옥이자 도서관에서 감응소통이라는 방법으로 전해지는 영상을 통해 나에 대한 재판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주 긴 세월 동안 벌어진 재판이었다.
재판관도 나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도 내가 펼쳐보였던 물질문명이 충분히 이루어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재판인 건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멀리서 빛이 번쩍이는 걸 보고 급히 몸을 틀었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비록 노쇠한 몸이었지만 당장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원래라면 유언 정도는 남길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어디론가 확 끌려가면서 나는 내가 죽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내가 갇힌 곳은 암흑이었다. 빛도 없었고 오감을 느낄 수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이곳 『지식의 방』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오감이 작동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식의 방』은 혼을 가두는 곳이었다.
단지 나는 혼이 아니라 영靈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게 조금은 다르지만.
『지식의 방』은 온 우주의 지식이 저장된 곳이다.
나나 나처럼 이곳에 갇힌 혼들은 이 『지식의 방』에서 수많은 지식들을 배운다.
과학에 대한 지식, 마법이나 무공에 대한 지식 따위 말이다.
맞다. 마법이나 무공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도 이곳에서 안 사실이다.
다만 그것들은 혼, 곧 비물질을 다룰 줄 알아야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사용을 위해서는 물질에너지 역시 필요해서 여기에 갇힌 죄수들은 그림의 떡이지만.
긴 세월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무섭게 『지식의 방』의 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아마도 나를 잡아온 이들이나 이 별의 주인은 혼은 알아도 영은 모르는 것 같다.
이 혼을 가두는 곳에 단지 죄수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식의 방』을 만든 것을 보면 말이다.
여기 죄수들이 지식을 갈구하지 않는 것도 이곳에서는 그 지식을 사용을 못하고 이곳을 벗어나면 배운 지식을 잊기 때문이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혼에는 기억의 기능이 없으니까.
다만 이곳같이 온통 비물질로만 구성된 공간에서는 비물질을 통해서 배우는 게 가능하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내 혼에 내가 배우고 익힌 지식이 새겨진 영이라는 상태로 이곳에 입장을 했다.
즉 내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지구에서 살았던 기억인 백이 내 혼에 침습해 들어온 상태였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여기 재판의 진행에서 밝혀진 걸로 유추해 보면 그 『한따』라는 이가 장난을 치면서 내 혼이 이미 영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김태석으로 살 때 나는 분명 김태석이 아닌 강필구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여기 『따족』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게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아니 이들에게는 영이라는 실체에 대한 정의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곳에서 수많은 지식을 배웠음에도 아직 이곳 『따족』들이 말하는 『타』라는 존재에 대해 배우지도 알지도 못한 건 좀 아쉬운 느낌이다.
이곳 『지식의 방』을 『타』가 만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따족』과 『타』라는 존재 사이에 소통이 있는 걸로 보이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느껴지는 건 분명 어떤 존재가 이곳의 죄수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감시라고 하기에는 좀 약한 어떤 시선같은 게 느껴지는 건 나뿐 아니라 이곳의 죄수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니까.
그렇게 감응소통을 통해 나의 재판에 대한 결과를 듣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이 『지식의 방』을 나가게 되었는데 나가자마자 나는 처음 이곳으로 들어올 때와 같이 빛도 없고 오감도 사라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식의 방』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물질세계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물질세계에서도 비물질이 있다면 느낄 수 있을 것이지만 『지식의 방』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생명체가 모여 사는 곳에서는 비물질이 비물질로서 홀로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아마 재판의 결과대로 일이 진행이 된다면 지금 나를 이 어두운 곳에 가둔 이는 그 『한따』라는 우주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새로운 차원을 찾아 나를 방기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이 필요한 여행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식의 방』에는 실로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의한 시간이라는 것은 공간을 찾아가는데 필요한 우주의 변화량이었는데 시간을 흐름의 개념이 아니라 양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아주 미약한 비물질의 존재가 느껴졌다.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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