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상대성 이론
82화.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말했다. 시간과 공간은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지금 마음이 급한 태성에게는 평소보다 거리에 차가 많게 느껴졌다.
“아.. 제발 좀 가자...”
지수에게 연락을 받은 뒤, 태성은 곧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다. 지금 그는 자신의 친 딸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 엄마가 작가님이 자신의 친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핸드폰 넘어 들리는 지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이미 자신을 아빠라고 알고 있다니...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태성의 손은 떨려왔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은 여전히 떨려왔다. 지금 그는 최대한으로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태성아. 급할 거 없어. 이제 조금만 가면 만날 수 있어. 조금만 더 가면.”
그는 조급한 자신의 마음을 타일렀다. 당장이라도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차들을 밀어내고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에서 출발하여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실제적으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성은 그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그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또다시 증명되었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좀 빨리 와라.”
그는 초조한 마음에 발을 동동거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는 얼른 안으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르고 지수 엄마의 병실이 있는 층의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언제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다만,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태성의 애타는 마음보다는 늦을 뿐이었다.
“오케이. 거의 다 왔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태성은 곧바로 복도로 뛰어나와 지수의 엄마.. 아니 자신의 친 딸이 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마치 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병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병실 안으로 들어온 태성의 시선에 창문 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톱을 깨물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태성은 오늘로서 그 여성을 세 번째 보는 거였다.
한편,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소리에 그 중년의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36세의 남자와 마주친 순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우와... 꿈에서 봤던 아빠랑 똑같다.”
지수의 엄마는 마치 아빠와 헤어졌던 그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았다. 지금 그녀에게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래전에 헤어져 다시 만난 지금 이 순간, 태성과 지수 엄마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50년이라는 이별의 시간을 거스르며, 태성은 자신의 친 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태성의 감정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유리..야.”
태성의 입에서 딸의 이름이 나왔다.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지수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인 거죠? 맞죠?”
딸의 질문에 억제하고 있던 태성의 감정도 폭발했다. 어느새 그의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안. 아빠가 생각보다 젊어서.”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다. 태성은 지수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는 많은 주름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미안해요. 내가 늙어서.”
지수 엄마는 창피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냐. 돌리지 마. 우리 딸 얼굴 좀 보게.”
아빠의 말에 지수 엄마는 고개를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
“나 많이 늙었죠?”
“내가 많이 늦었구나.”
“분명히 나한테 그랬잖아요. 금방 올 거라고.”
“미안하다. 그동안 내가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있었어.”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내가 아직 살아 있어서.”
그녀는 자신의 아빠의 품에 안겼다. 비록, 자신보다는 어려 보이는 외모였지만 이 사람이 자신의 친아빠라는 확신이 생긴 그녀였다. 50년 동안, 잊지 못한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지금 느껴졌으니.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아주었다. 헤어진 50년의 시간을 전부 보상받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동안 끊어졌던 부녀 사이의 끈을 이어주기에는 충분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그동안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움이 같았음을 느꼈다.
한편, 지수는 병실 밖에서 서로를 안은 채 울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감정이란 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 마련이었다. 어느새 지수의 눈에도 두 사람처럼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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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있다. 어쩌면 시간은 모두에 공평한 유일한 개념이었다. 레벨이 높은 사람의 하루도 레벨이 낮은 사람의 하루도 24시간이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그 사람의 일주일은 7일이고, 아무리 레벨이 낮아도 7일은 168시간이었다.
하지만 같은 일주일의 시간이라도 누군가는 그보다 긴 한 달의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보다 짧은 하루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건 그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레벨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건 그 사람이 그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두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다는 건 똑같다.
아레스의 14화와 멜로디의 10화가 방송되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날 이른 아침에는 전날 밤에 방송된 두 드라마의 시청률이 공개되었다.
아레스의 15화 시청률은 전편의 17.1% 보다 근소하게 상승하며 17.3%를 기록했다. 자체 최저 시청률을 겨우 모면한 아레스였다.
한편, 멜로디의 11화 시청률은 10화가 기록했던 13.7%보다 소폭 상승하며 14.1% 기록했다. 다시 한 번,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멜로디였다.
두 드라마의 시청률 싸움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지상파 드라마인 희망의 7화 시청률은 3.4%였다. 아레스와 멜로디의 치열한 시청률 싸움에서 좀처럼 시청률이 상승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시청률이 상승한 아레스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6화의 시청률이 전편보다 0.3% 하락하며 자체 최저 시청률인 17.0%를 기록했으니. 아레스와 마찬가지로 희망의 8회 시청률도 전편보다 하락하며 3.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런 두 드라마와 달리 멜로디의 시청률은 유일하게 상승했다. 멜로디의 12화 시청률은 15.3%였다. 그렇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연이어 갱신한 셈이었다. 이제 아레스와 멜로디의 시청률 차이는 겨우 1.7%였다.
“엄마. 이러다가 우리 드라마가 시청률 역전할 거 같아!”
지수는 핸드폰으로 방금 읽은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3.0%로 시작한 멜로디의 시청률은 무려 5배로 높아졌다. 절대 이기지 못할 거 같았던 아레스를 이렇게 바짝 추격하다니. 그녀는 절로 콧노래를 불렀다.
“우리 딸. 그렇게 좋아?”
병실 침대에 누운 엄마는 딸의 행복한 모습에 덩달아 기뻤다.
“그럼 좋지. 근데 솔직히 지금 나보다 엄마가 더 기분 좋지 않아. 친아빠를 찾았으니. 한태성 작가님.. 아니 할아버지 오늘도 오신대?”
“응. 밤에 오신다고 했어.”
“그래? 그럼 같이 저녁 먹는 건가?”
“응. 오늘은 유리를 데리고 온 다고 하시네.”
“유리? 유리라면... 할아버지의 입양한 딸 말하는 거지?”
“그치. 엄마의 엄청 어린 여동생이겠네.”
“뭐야. 그럼 나한테는 엄청 어린 이모네.”
젊은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가족관계가 매우 흥미로워졌다.
“근데 엄마. 아빠랑 오빠들한테는 언제 말할 거야?”
“그러게... 곧 말해야겠지.”
태성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엄마와 지수뿐이었다. 아직 다른 가족들에게는 엄마의 친아빠를 찾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만약 말하면 아빠랑 오빠들이 그 말을 믿을까?”
“아마 처음에는 믿지 않겠지. 너도 처음에는 그랬잖아.”
“그야 말이 안 되니깐...”
딸의 말에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우선 엄마는 이 기적과도 같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 지금 엄마한테 걱정은 사치라고.”
“응. 알겠어.”
그날 밤, 태성은 6살의 유리를 데리고 병실에 찾았다. 유리는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었기에 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렇기에 태성은 지수를 직장 친구 그리고 지수의 엄마를 직장 친구의 엄마라고 소개했다. 이는 지수와 지수의 엄마도 동의한 거였다.
그렇게 네 사람은 병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어린아이와 함께해서 그런가 병실에는 활기찬 에너지로 넘쳤다. 참으로 신기한 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면 시간치 참 빨리 간다는 거였다.
지루한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처럼 즐거운 시간도 천천히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면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도 길어질 테니.
태성과 어린 유리가 떠난 이후, 병실에는 지수와 그녀의 엄마만이 남았다. 지수 엄마는 약 3시간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잠을 청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지수는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이제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암이 다른 장기로 이전된 상태였다. 의사는 더 이상의 수술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이제 내일이면 지수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향한다. 남은 마지막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으니. 그렇기에 지수는 남은 시간 동안 엄마가 가장 행복하길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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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스의 17화 시청률은 전편보다 하락하며 16.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아레스의 자체 최저 시청률이었다. 자체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건 아레스만이 아니었다. 희망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의 9화 시청률은 2.8%였다. 참으로 처참한 시청률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그게 딱 희망이었다. 드라마의 제목과 달리 희망의 시청률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한편, 멜로디의 13화는 전편이 기록했던 15.3%보다 소폭 상승하며 15.9%를 기록했다. 세 편의 지상파 드라마 중 유일하게 시청률이 상승한 셈이었다.
이제 아레스와 멜로디의 시청률 차이는 0.8%였다. 이제 정말 멜로디가 아레스를 턱밑까지 추격한 셈이었다. 까딱하다가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멜로디의 짜릿한 시청률 역전을 예상했다.
하지만 시청률이라는 건 그리 쉽게 예상을 따라가지 않는 법. 아레스의 18화 시청률은 17화보다 0.5% 상승하며 17.2%를 기록했다. 잠시 숨을 돌린 아레스였다.
세 드라마 중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희망 역시 시청률이 소폭 상승하며 3.0%를 기록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희망은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조기 종영이 결정되었다.
누군가는 이 드라마를 위해 잠을 안 자며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경쟁 사회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슬프지만 그게 냉정한 현실이었다.
한편, 멜로디의 시청률 역시 소폭 상승하였다. 15.9%를 기록했던 전편보다 0.2% 상승하며 16.1%를 기록했다. 다시 한 번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였지만 아레스와의 시청률 차이는 전편보다 조금 더 벌어졌다.
이로써 세 편의 드라마가 모두 시청률이 상승했다. 이제 이 세 편의 드라마의 싸움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록 멜로디는 번외편 제작이 확정이 되며 2화가 연장되었지만 다음 주면 멜로디의 본편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레스와 희망도 다음 주면 종영이었다. 치열했던 아레스와 멜로디의 시청률 싸움도 끝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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