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제안 (2)
63화. 제안 (2)
태성은 핸드폰의 통화목록을 뒤졌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사람은 바로 뉴스패치의 나리 기자였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한태성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기자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찾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기자님이라면 찾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 연락드립니다. 지금 제가 부탁을 드릴 사람이 기자님 밖에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리는 기자였다. 분명 저 문자를 보면 누구를 찾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라도 답장이 올 거라 생각한 태성이었다.
“그럼 답을 한번 기다려 볼까?”
태성이 집에 돌아올 때쯤에 나리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의 예상대로 나리는 미끼를 물었다.
[설마 부탁만 하고 입 닦으시는 건 아니시죠? 밥 사세요.]
그녀의 문자를 확인한 태성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습니다. 내일 점심 어떻습니까?]
[그래요. 그럼 우리 내일 보는 거로 해요.]
다음날 점심, 두 사람은 나리가 일하고 있는 신문사, 디스패치의 사옥 앞에서 만났다.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여전히 잘 생기셨네요.”
나리는 태성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네. 기자님. 오늘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당연하죠. 제가 어제 작가님 문자 받고 뭐 먹을지 계속 생각했단 말이에요. 우리 닭볶음탕 먹으러 가요.”
“네. 좋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근처 닭볶음탕 집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식당 안은 넥타이부대로 가득했다.
“작가님. 여기 엄청 유명한 곳이에요. 분명 작가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잠시 후, 붉은 국물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닭볶음탕이 나왔다. 깨가 솔솔 뿌려진 게 제법 맛있어 보였다.
“한번 드셔보세요.”
나리는 젓가락으로 닭 다리를 집어 태성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리 씨도 많이 드세요.”
“네. 그럴게요.”
태성과 함께 하는 식사 자체가 너무 좋은 나리였다. 지금 그녀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한편, 닭 다리를 한입 베어 먹은 태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부드럽게 씹히는 살들 사이로 매콤한 육즙이 터졌다. 혀 안에서 알싸하게 감도는 매운맛과 고소한 깨가 더해지자 부드러우면서도 자극적인 맛이 완성됐다.
“어때요? 맛있죠?”
그녀의 질문에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맛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에이. 우선 밥부터 먹고요. 우리 천천히 합시다. 그 본론은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기로 해요.”
조금이라도 태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리였다. 태성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 하지만 태성에게 그런 여우 짓은 통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무래도 기자님이시니 정보도 빨리 찾으실 테고.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을 찾으실 수 있을 거 같아서 문자 드렸습니다. 가능하십니까?”
태성이 그렇게 나오자 나리도 어쩔 수 없었다.
“당연하죠. 저 정보력이야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아요. 근데 찾는 사람이 누군데요? 혹시 첫사랑?”
“그런 거 없습니다.”
“에이. 거짓말. 남자들한테 첫사랑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잖아요. 작가님도 남자인데 당연히 그런 추억 하나쯤 있겠죠. 안 그래요?”
“전 그런 거 없습니다. 기억이 없거든요. 어쩄든 가능하십니까?”
“물론이죠. 작가님이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요?”
“이름은 한유리입니다. 나이는 대략 50대 중반입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그 사람의 부모님 성함과 그분들이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주소 그리고 번호가 전부입니다. 아파트는 지금 재건축된 상태이고요. 그리고 그 번호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
“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거 같네요. 근데 이 중년의 여성분은 왜 찾으시는 거예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요?”
“그건... 너무 개인적인 일이거든요.”
“에이. 그러면 재미가 없죠. 적어도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을 왜 찾는지는 알아야죠. 이 여성분과 작가님이랑은 무슨 관계신데요?”
“그거 역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찾기 싫어지는데. 그럼 이렇게 하죠. 우선 제가 찾아드릴게요. 대신 이 사람이 누군지 작가님이랑은 어떤 관계인지 말씀해주셔야 알려드릴 거예요.”
나리가 집요하게 나올 거라 예상은 했던 태성이었다.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찾아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나리와 식사를 끝낸 후, 태성은 홀로 거리를 걸었다.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사람들의 옷도 많이 가벼워졌다.
“하... 나리 씨한테 부탁을 한 게 잘 한 일이겠지?”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한 태성이었다. 나중에 나리에게 ‘사실 50대 중반의 한유리양이 저의 딸입니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내 말을 믿을까? 아마 내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냉동인간이었다는 것도 말해야 하는 건가? 그럼 안 박사님과 S.W 바이오닉까지 연관이 있는 일인데. 지금 안 박사는 자신의 신변을 숨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기자한테 이와 관련된 일을 말하는 건 분명 나쁜 선택이었다.
“그럼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건가?”
왠지 거짓말을 하면 나리는 눈치챌거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과 자신이 어떤 관계인지 나리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역시 위험한 선택이었나?”
하지만 나리 말고는 딱히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 설마 별일 있겠어.”
지금 당장 걱정해봤자 달라질게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기 싫은 태성이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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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은 지수와 함께 소설 멜로디의 드라마화 작업을 위해 카페로 향했다. 그가 도착하자 혁준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를 반겼다.
“형!”
너무나도 자신을 반겨주자 의아하게 생각한 태성이었다.
“너 이상하다? 되게 오랜만에 본 사람처럼 인사하네.”
“그럼 오래됐죠. 아침에 보고 무려 3시간이나 지났는데.”
“솔직히 말해봐. 뭐야?”
“하하.. 그게...”
사실 혁준은 태성을 핑계로 지수에게 한 마디라도 걸고 싶었다. 자신의 눈을 피하는 혁준을 보며 태성이 말을 이어갔다.
“서지수 작가님이랑 대화하고 싶어 서지? 맞지?”
“하긴 제가 누굴 속이겠어요. 맞아요.”
“서지수 작가님이 너한테 격려하는 말 같은 거 안 해주셨어?”
“격려는 무슨요. 주문하는 거 말고는 그 이상으로 한 마디도 안 하세요.”
“그래? 너 또 무슨 실수 한 거 아니야?”
“물론 제가 서지수 작가님이 예민하신 부분을 질문하긴 했지만 그래도 모르고 질문했다고요.”
한편,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본 지수는 태성의 핸드폰으로 전화했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태성은 핸드폰을 꺼냈다. 서지수 작가에게서 온 전화임을 확인하자 태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지수는 자신의 노트북을 가리키며 ‘잡담은 그만하시고 빨리 오셔서 일하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혁준아. 서지수 작가님이 아직 너한테 화나셨나봐.”
“아마 그럴 거예요.”
“우선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블로 갖다줘. 알겠지?”
테이블로 갖다 달라는 말에 혁준은 신난 듯 대답했다.
“넵!”
그의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태성은 지수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어서 앉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태성이 맞은편에 앉아 지수가 말을 이어갔다.
“작가님은 공동 작업 해보신 적 있으세요?”
그녀의 질문에 태성은 고개를 저었다.
“전 없습니다. 작가님은요?”
지수 역시 공동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요. 저도 없어요. 이거 큰일이네요. 둘 다 경험이 없으니 이거 왠지 다툼이 많을 거 같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그러면서 배워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죠. 배워가면서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지. 우선 시놉시스부터 완성합시다. 그래야 방송국 편성도 확정되고 배우들 캐스팅도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깐요.”
“알겠습니다. 그럼 뭐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아시다시피 제가 드라마는 처음이라.”
“우선 등장인물부터 정리합시다.”
지수는 태성에게 프린트물을 건넸다.
“이게 뭡니까?”
“저번에 작가님이 보내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주인공들을 정리해봤어요. 드라마에 맞게 말이에요. 한번 보시고 원작자로서 어떤지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지난번, 태성은 지수에게 등장인물을 정리한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었다. 그걸 바탕으로 지수는 등장인물들과 관계와 설정들을 드라마에 맞게 정리했다. 애초에 설정과 많이 달라진 것 없었다. 한 가지만 제외하곤 말이다.
“혜정이가 여주인공으로 바뀌었네요?”
혜정이는 멜로디에서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피아노 연주자란 꿈을 포기한 캐릭터였다.
“네. 드라마에 있어서 여주인공은 필수요소니까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보다는 원래 있는 캐릭터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서 개발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군요. 흥미롭습니다.”
태성은 계속해서 지수가 가지고온 프린트물을 읽어 내려갔다. 또 그가 발견하게 있었으니 등장인물들의 러브라인이었다.
“혹시 지금 작가님이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로맨스의 비중이 큰 겁니까?”
“당연하죠. 그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왜 그게 당연한 겁니까?”
그의 질문에 지수는 당황했다. 그게 왜 당연하다고 묻다니. 정녕 이 사람은 한국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거란 말인가?
“한태성 작가님. 저희 지금 한국에서 드라마 하는 거예요.”
“네. 압니다.”
“그러니깐 당연히 로맨스가 큰 비중을 차지해야죠.”
“하지만 멜로디는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휴머니즘이 강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알아요. 그걸 최대한 살리면서 거기에 로맨스를 추가하는 거죠.”
“꼭 그래야 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죠!”
“커피 나왔습니다!”
그 순간, 태성이 주문한 커피를 들고 혁준이 테이블로 왔다. 그러자 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
“혁준 씨. 한국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필수죠?”
그동안 혁준에게 커피 주문 말고는 한 마디도 걸지 않았던 지수였다. 오히려 혁준이 무슨 말을 할 거 같으면 그를 외면했었다. 그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자 혁준은 놀란 눈치였다.
“네? 아... 네.”
“한태성 작가님 들으셨죠?”
지수는 혁준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도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한국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필수라고요.”
“서지수 작가님이 하고 싶으신 말이 뭔지는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 드라마도 꼭 그래야 하는 건가요?”
“당연하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의견이 일치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혁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방법은 어떠세요?”
그의 말에 태성과 지수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돌려 혁준을 쳐다봤다.
“이 방법? 그게 무슨 방법인데?”
“얘기해보세요. 무슨 방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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