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1)
83화.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1)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러듯 한번 시작된 이야기에도 끝이 있다. 인생도 그러하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이야기가 생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 이야기. 친구들과의 우정 이야기. 혹은, 출생의 비밀과도 같은 막장 이야기 말이다. 그 이야기가 뭐가 됐든 결국에는 엔딩이 있다.
태성과 지수가 공동으로 작업한 멜로디도 어느새 결말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15화와 16화 두 편만 방송되면 멜로디의 본편도 종영이었다.
멜로디의 경쟁 드라마인 아레스와 희망도 그러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시작한 아레스도 어느새 종영을 앞두고 있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는 희망도 조기종영이라는 생각보다 빠른 끝이 다가왔다.
희망의 11화는 전편보다 0.3% 소폭 상승하며 3.3%를 기록했다. 조기종영이 결정되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빨라졌다. 덕분에 느슨했던 이야기가 훨씬 재밌어졌다. 하지만, 희망은 여전히 세 드라마 중에서 꼴찌였다.
한편, 아레스는 여전히 세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레스의 19화 시청률은 전편보다 동일한 17.2%를 기록했다. 아레스의 제작비인 200억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시청률은 결코 만족할만한 수치는 아니었다. 심지어, 방송 기간 내내 시청률이 연이어 하락했다. 이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라는 타이틀은 아레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20회만 잘 버티면 그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멜로디는 이러한 아레스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멜로디의 15화 시청률은 전편보다 0.9% 상승하며 17.0%를 기록했다. 이제 아레스와의 시청률 차이는 0.2%였다.
멜로디의 1화 시청률은 3.0%였고 아레스의 5화 시청률은 20.1%였다. 두 드라마의 시청률 차이는 무려 17.1%였다. 그렇게 초라하게 시작한 멜로디는 어느새 시청률이 14.0%나 상승했다. 반대로, 아레스는 3.1%의 시청률이 하락했다.
멜로디의 시청률 상승 폭이 큰대 비해 아레스의 하락 폭은 생각보다 낮았다. 이는, 멜로디가 그 시간에 드라마를 보지 않던 많은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고 왔음을 뜻했다.
“오늘로서 드디어 마지막 회네요.”
지수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태성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지막이라니요. 아직 번외편이 두 개나 남았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말하죠. 오늘로서 멜로디의 대본 집필이 마지막이네요.”
그렇다. 지금 두 사람은 카페에서 번외편 마지막 대본의 끝부분을 수정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 번외편 2화의 대본을 탈고하면 작가로서 이번 드라마에서 맡은 일을 끝내는 거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봄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거 같습니다.”
태성의 말에 지수는 지난 4개월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러게요. 그동안 할아버지를 만나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쇼킹했던 일은 역시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거겠죠? 그것도 이렇게 젊은 할아버지를. 신기해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인 할아버지와 함께 대본을 집필했다는 게.”
“저 역시 신기합니다. 어느새 다 커버린 손녀와 함께 대본을 집필한다니. 그 어느 작가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습니까?”
지수는 태성에게 할아버지라 불렀지만 태성은 여전히 지수를 함께 대본을 집필하는 동료로서 대했다. 사실,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지수에게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직은 어색한 태성이었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저희가 마지막에 시청률에서 역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할아버지라는 소리는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아 왜요! 제가 홍길동도 아니고.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너무 어색합니다.”
“저도 처음에 작가님을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을 때 어색했어요. 근데 부르다 보니 편해지던데요. 그리고 이렇게 멋있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든든하고 기분이 좋은데요. 할아버지도 곧 편해지실 거예요.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할아버지라고 안 부를게요.”
지수의 말에 태성은 괜히 뿌듯한 듯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이제 태성은 아빠와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생겼다. 그것도 36살에 말이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였다. 남편. 이 순간, 태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인 은우가 보고 싶었다. 그런 태성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수는 계속해서 마지막 회 시청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레스의 시청률 하락이 생각보다 적단 말이에요. 역시 사람들은 한번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웬만해서는 잘 안 바꾼다니깐요.”
“요즘 아레스가 예전과 달리 많이 재밌어졌습니다. 초반에 보였던 대본의 허술함도 업고. 시시해 보였던 액션 신도 최근 들어 화려해졌습니다. 아무래도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에 정신을 차린 모양입니다.”
“어머. 아레스 여전히 챙겨보고 계시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경쟁 드라마이지 않습니까?”
“우와... 오늘도 이렇게 할아버지한테 배우네요.”
“그럼 이제 슬슬 대본 작업 마무리합시다.”
“네. 알겠어요.”
두 사람은 다시 멜로디 번외편 대본에 집중했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수가 이메일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제 정말 멜로디의 대본 집필이 모두 끝이 났다.
“휴. 드디어 끝났네요.”
지수는 노트북의 화면을 닫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그녀는 자신의 다섯 번째 드라마를 끝냈다. 그동안 고생했을 지수를 보며 태성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할아버지도요. 저 만나서 그동안 고생하셨네요. 감사해요. 할아버지 덕분에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저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으니.”
“할아버지. 한 번만 편하게 말해주면 안 돼요?”
“편하게.. 말입니까?”
“네. 어차피 제가 손녀잖아요. 정말 편하게 불러주면서 수고했다고 안아주세요.”
“그.. 그래.”
‘그래’라는 두 글자를 말하는 것도 힘겨운 태성이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너무 어색했다.
한편, 지수는 태성의 말을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태성이 힘겹게 말했다.
“지수야. 그동안 수고했어.”
딱딱하면서도 어색한 말투였다. 지수는 태성의 말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깐 진짜 할아버지 같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짐을 정리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혁준은 괜히 마음이 착잡했다.
‘하... 이제 카페에서 서지수 작가님을 못 보겠네...’
아닌가? 작가님이 태성이 형의 손녀니깐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는 건가?
“그래도 지금처럼 매일 보지는 못하겠지...”
혁준은 지수와 이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지수가 인사하기 위해 혁준에게 다가왔다.
“혁준 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덕분에 대본 집필하면서 많은 힘이 되었어요.”
“아. 정말로요? 다행이네요.”
“저 이번에 작가 아파트 들어가게 됐어요.”
“그럼.. 이제 여기 와서 대본 작업은 안 하시겠네요?”
“그래도 커피 마시러 자주 올게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지수는 그렇게 혁준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혁준은 속상했다.
‘작가님이랑 나랑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거지?’
이상하게 혁준은 마음 한쪽에 커다란 돌이 생긴 기분이었다.
“커피 마시러 자주 온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계속 이곳에 일하는지 물어보셨어야죠 작가님. 저 이제 카페 그만둔다고요...”
혁준은 아무도 들리지 못하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창문 밖 주차장을 쳐다봤다. 지수의 고급 승용차는 어느새 그곳에 없었다.
그날 밤, 세 편의 드라마의 마지막 회가 방송되었다. 마지막 회인만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전개되었고 마지막 갈등이 해결되었다. 그렇게 세 편의 드라마 모두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종영되었다.
이제 다음날 아침이면 치열했던 시청률 경쟁의 마지막 성적표가 나오게 된다. 누군가는 이미 포기했고 누군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 시청률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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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낮았던 희망은 마지막 회에서 전편과 마찬가지로 3.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애초에 16부작으로 기획되었던 드라마였지만 낮은 시청률 때문에 12회로 끝이 났다. 참으로 쓸쓸한 퇴장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 사회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경쟁 사회이니.
아레스의 마지막 회 시청률은 전편보다 0.8% 상승하며 18.0%를 기록했다.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에서 마침내 빠져나온 아레스였다. 어떻게든 시청률을 반등시키기 위해 노력한 작가와 감독, 그리고 배우와 모든 스태프들 덕분이었다.
아레스의 시청률이 반등했다는 기사에 지수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역시 마지막 회 버프인가? 시청률이 꽤 올랐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본가에 있는 자신의 방이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쉬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설마 역전 못하는 거 아니야?”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멜로디의 시청률을 확인했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게임에서 멜로디의 시청률은 끊임없이 상승했다. 그리고 어느새 멜로디의 시청률은 아레스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러다 보니 기대가 생긴 그녀였다.
“제발.. 제발.. 제발!!”
멜로디의 16회 시청률을 확인한 순간 지수는 김이 빠졌다.
“뭐야.. 이건 너무 아쉬운 결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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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유리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아빠가 너무 신난 듯 보이자 유리는 궁금한 듯 물었다.
“아빠. 지금 기분 좋아?”
“응. 아빠 지금 기분 엄청 좋아.”
“왜? 내가 예뻐서?”
유리의 말에 태성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우리 딸 때문에 아빠는 항상 기분이 좋지요.”
태성은 고무줄로 유리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묶어줬다. 그리고는 그녀를 들어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아빠는 내가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누구 딸인데. 유리는 아빠 안 좋아?”
“나 아빠 좋아. 아빠 최고!”
엄지손가락마저 치켜든 딸의 모습에 태성의 미소는 더욱 커져갔다.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형. 시청률 때문에 그렇죠?”
화장실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온 혁준이 태성에게 물었다.
“에이. 시청률이 뭐 별건가.”
“솔직히 말해요. 16화 시청률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고.”
“지금 행복해 보이는 건 너 같은데? 오늘 카페 마지막 날이라며.”
“네. 맞아요.”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거의 매일 하루 종일 일했으니.”
“그래서 16화 시청률 몇프로 나왔어요?”
삼촌의 질문에 유리는 궁금한 듯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시청률이 뭐야?”
“음... 간단히 말하면 아빠의 드라마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보여주는 숫자 같은 거야.”
“우와. 어제 사람들이 아빠 드라마 많이 봤어?”
“그럼 많이 봤지.”
태성은 멜로디 16화 시청률에 싱글벙글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혁준이 물었다.
“그래서 마지막 회 시청률 얼마 나왔어요?”
“그러니깐 그게 얼마냐면...”
- 작가의말
만렙작가의 끝은 아직 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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