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돌풍 (1)
23화. 돌풍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현재 S.W 바이오닉의 사옥 앞은 수십 명의 경찰들이 통제를 하고 있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직원들도 철저한 검문을 통과해야만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사옥 입구에는 촬영을 온 기자들로 가득했다. 다들 며칠 전부터 계속 터지는 S.W 바이오닉과 관련된 사건들을 취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흠..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한가보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태성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안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 없이 곧바로 음성 메시지로 넘어갔다. 현재 안 박사의 핸드폰이 꺼져있는 듯했다.
‘박사님이 정말 납치를 당하신건가..?’
그렇게 쉽게 누군가한테 당하실 분은 아닐 거 같은데. 그 똑같이 생긴 여자 세 명도 있었잖아.
- 하나는 나에게 화났다고 절대로 폭력을 쓰면 안 되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애인들이 곧바로 달려와 자네를 죽이려고 들 거야
분명 안 박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 세 명이 보통이 아니란 소린데. 하긴. 생긴 것도 보통은 아니었으니. 그리고...
태성은 고개를 들어 S.W 바이오닉의 건물을 쳐다봤다. 안 박사는 분명 저 안에서만 생활하는 듯 보였다. 그러면 안 박사를 납치하기 위해서는 저 안에 몰래 침입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무슨 확신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성의 촉으로는 현재 안 박사는 어딘가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거 같았다. 태성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안 박사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안 박사님. 이 문자를 확인하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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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야!!!”
최 이사는 화가 잔뜩 났는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을 바닥에 던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승우는 참으로 추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당장 한 작가 데리고 와!”
최 이사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승우에게 외쳤다.
“지금 작가님은 작업 중 이십니다.”
“그러니 당장 데리고 와! 우리도 남은 거 동시에 출판하게.”
“대표님. 저희가 굳이 하늘 출판사를 따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 출판사의 전략이 통할 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하늘 출판사는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우선 이번 주 순위를 지켜보시죠.”
백번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전권 출판이라는 강수를 두어도 성공할 보장은 없으니.
“아니. 분명 작품에 자신이 있으니 은우 그년이 그랬을 거 아니야! 분명 너도 계약하고 싶다고 한 작품이었고. 분명 작품이 좋을 걸 거야. 네가 놓친 작품이니 무조건 네가 이겨버려. 알았어?”
도대체 왜 최 이사는 은우에게 이토록 예민하단 말인가?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최 이사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다섯 권의 시작부터 만렙이야를 쳐다봤다. 은우. 그녀는 과거 최 이사에게는 정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을 준 여자였다.
“그리고 나가서 당장 예리 보고 들어오라고 그래.”
“예리는 왜요?”
“뭐?”
“예리는 갑자기 왜 부르시는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대표님은 무슨 일만 있으면 예리를 부르시니깐요.”
“너랑 은우가 대학교 동창이었지?”
“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가끔 너한테서 은우의 모습이 보여. 재수 없게 질문 하지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겠어? 너희 할머니를 생각하란 말이야.”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최 이사 앞에서 작아지는 승우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최 이사에게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이제 예리를 호출하러 가야 했다. 도대체 이 안에서 예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승우의 입에서 한숨이 크게 나왔다.
승우는 무거운 마음으로 예리에게 걸어갔다. 괜히 자기 때문에 예리가 최 이사에게 한 번이라도 더 당하는 거 같아 미안했다.
“저기.. 예리야.”
“선배! 기쁜 소식이에요. 문장소 공모전에서 저희 작품이 다시 1위를 차지했어요.”
그녀는 매우 뿌듯한지 해맑게 웃었다. 그런 그녀의 웃음을 보자 승우는 대표님이 너 찾으셔 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 다행이네.”
“근데 그때 그 작품 순위에서 사라졌더라고요. 제 생각엔 하늘 출판사에서 그 소설을 출판하려고 하나 봐요.”
“맞아. 사실 어제 그 책이 나왔어. 전권 모두.”
“전권이 동시에 나왔다는 말이에요?”
“응. 맞아.”
그 순간 예리는 싸함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근데 그 사실 대표님도 아세요?”
“응. 아셔.”
“그럼... 혹시 절 찾으시던가요?”
“맞아. 너 찾으셔.”
“그렇구나...”
예리는 단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로 향했다. 그 순간 승우는 예리의 손목을 잡았다.
“선배...?”
“예리야. 꼭 가야 하는 거야?”
그의 질문에 예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저번에 말했잖아요. 대표님이랑 계약한 게 있다고.”
예리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승우의 손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 선배 손을 뿌리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선배가 놔줘요.”
“그래. 알겠어.”
승우는 얇은 그녀의 손목을 자신의 손에서 놔주었다. 그러자 예리는 한번 웃더니 대표실로 향했다.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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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의 신작인 시작부터 만렙이야는 전권 출판이라는 파격적인 카드와 함께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처음은 도대체 얼마나 잘난 작품이기에 전권을 출판하냐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모았다. 그리고 소설의 신선한 재미와 독특한 매력에 독자들은 매료되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이 돌풍은 애초에도 없었을 거다.
비록 장르 소설이었지만 시작부터 만렙이야는 요즘 세상을 풍자하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심지어 주인공은 모두가 원하는 리더의 표본이었다. 그러자 사회의 모순적인 모습과 맞물리며 시작부터 만렙이야는 장르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러자 온갖 SNS에서는 태성의 소설을 인증하는 사진들이 넘쳤다. 심지어 지상파 뉴스에도 신작의 돌풍이라며 시작부터 만렙이야를 보도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책의 저자인 태성에게로 향했다.
“와.. 대박이다.. 유리야 너희 아빠 텔레비전에 또 나온다.”
혁준은 자신의 무릎에 앉아 사탕을 먹고 있는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가 나온다고? 저거 아빠 아니야.”
유리는 고개를 돌려 주방에서 앞치마를 매고 요리를 하는 태성을 쳐다봤다.
“이빠 저기있어.”
“맞아. 근데 저 책을 너희 아빠가 적은 거야. 아빠 대단하지?”
혁준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올리자 유리는 그를 따라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렸다.
“아빠 짱!”
그녀의 행동에 혁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형 방금 들었어요? 유리가 아빠 짱 이래요.”
갈비찜의 갈비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고 있던 태성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를 입양한 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짓인 거 같았다. 물론 냉동인간에서 깨어나고 지금까지 말이다.
[한편 베일에 싸여진 신인작가 한태성씨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앵커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다음 뉴스로 넘어갔다. 요즘 논란의 중심인 S.W 바이오닉에 관한 소식이었다.
“형. 방금 들었어요? 형이 베일에 싸여진 신인작가래요.”
그 말을 듣자 태성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 앞치마를 매고 갈비찜을 끓이고 있는 자신이 베일에 싸여진 작가라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와. 밥 먹게.”
현재 혁준에게는 밥 먹자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넵! 유리야 밥 먹자”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유리를 안고 주방으로 향했다. 열심히 밥을 만들어 누군가 함께 먹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었다. 혁준이를 집에 들인 일도 유리를 입양한 일 다음으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 태성이었다.
[띵똥.]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응 누구지?”
혁준이 인터폰으로 확인해 보니 은우였다.
“어? 에디터님 왔는데요?”
“얼른 문 열어드려. 내가 부른 거야. 같이 축하하자고.”
태성은 갈색빛 맴도는 갈비와 식욕을 자극하는 붉은색 당근이 함께하는 갈비탕을 식탁에 가운데에 놨다. 잡채, 동그랑땡, 호박전, 감자전, 생선구이, 호박 샐러드, 더덕무침, 고추무침, 고사리, 시금치, 김치, 깍두기 그리고 김까지 더해지자 진수성찬이 완성되었다.
“휴. 드디어 끝났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보며 태성은 매우 뿌듯했다. 이 음식을 유리와 혁준 그리고 은우와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행복했다.
잠시 후, 케이크와 화이트 와인을 들고 있는 은우가 집에 들어왔다. 그녀를 발견한 유리는 신난 듯 손을 벌리며 뛰어왔다.
“이모다!!”
이제 유리에게 은우는 엄마가 아닌 이모라고 확실히 인식이 된 모양이었다. 은우는 케이크와 와인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유리를 안아주었다. 은우도 이제 제법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안정적이었다.
“혁준씨. 케이크랑 와인 좀 챙겨주세요.”
“네.”
은우는 유리를 안고 태성이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자 그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와... 이걸 전부 작가님이 준비하신거에요?”
“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혁준이 케이크와 와인을 주방의 아일랜드 선반에 올려놓으며 대화에 참여했다.
“이중에 사온 게 하나도 없어요. 전부 형이 요리 한 거지.”
“우와... 작가님이 저보다 요리 잘하시는 거 같아요.”
“아닙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는데 이걸로 될지 모르겠네요.”
태성이 은우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정도면 차고 넘치죠. 이렇게 작가님이 직접 식사 대접을 해주신 경우는 처음이거든요. 잘 먹겠습니다.”
“에디터님이 사오신 케이크와 와인도 맛있겠는데요.”
혁준은 디저트까지 완벽하자 매우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도 케이크 좋아하지?”
태성의 옆자리에 앉은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나 케이크 좋아!”
참으로 뿌듯한 장면이었다. 이런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태성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손만 씻고 올게요.”
은우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자 혁준이 씩 웃으며 태성에게 물었다.
“형. 솔직히 말해봐요. 에디터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 있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밥이나 먹어.”
“에이. 솔직히 말해봐요. 조금이라도 있죠?”
“너 한 마디만 더 하면 갈비 못 먹게 한다.”
“헐. 치사하게 먹는 걸로 압박하다니. 알겠어요. 안 물으면 그만이지.”
혁준은 갈비만큼은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젓가락으로 가장 큰 갈비를 들었다.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은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옆자리에 있던 혁준이 확인해 보니 김나리 기자라는 이름이 스크린 위로 보였다.
“어? 기자면 급한 전화 같은데...”
젓가락을 내려놓은 혁준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 편집자님 전화입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전화를 받으시네요. 혹시 편집자님 옆에 계신가요?]
“지금 잠깐 화장실 가셨어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제가 대신 전해 드릴게요.”
[다름이 아니라 시작부터 만렙이야의 작가님을 인터뷰하고 싶어서요.]
“아 진짜요? 잘 됐네요. 지금 그 작가님 제 앞에 계세요.”
[대박! 정말로요? 그럼 실례지만 한태성 작가님 좀 바꿔주시겠어요?]
“네. 잠시만요.”
혁준은 태성에게 은우의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형 받아 봐요. 형을 인터뷰하고 싶다네요.”
“뭐? 나를?”
태성은 얼떨떨했다. 자기가 뭐라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니.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전 인터넷 신문 뉴스 패치의 김나리 기자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제가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자세한 일정은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태성이 전화를 끊는 순간 은우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은우씨 방금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네? 제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고요?”
“네. 그걸 혁준이가 받아서 저한테 넘겨 줬습니다.”
태성에게 향했던 은우의 시선이 혁준에게 향했다. 그러자 혁준이 입을 열었다.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길래 급한 전화인 줄 알고 받았거든요. 근데 형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은우가 놀라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한다고 하셨어요?”
그녀의 질문에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냉동인간 출신인 거 들키시면 어쩌시려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혁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뭐라고요? 형이 무슨 출신이라고요?”
뭐야? 혁준 씨는 몰랐던 거야? 은우는 놀라 태성을 눈치를 쳐다봤다. 난감한 표정의 태성이었다.
‘설마.. 나 지금 또 실수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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