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시청률 대전 (1)
74화. 시청률 대전 (1)
“이거 예상보다... 낮게 나왔네?”
태성은 혹시라도 자신이 잘 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왼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핸드폰 화면을 쳐다봤다. 눈앞에 보이는 수치는 여전히 똑같았다. 잘 못 본 게 아니었다. 멜로디의 첫 방 시청률은 3.0%였다.
“까닥했으면 2%대의 시청률이 나올 뻔했네...”
그나마 다행이었다. 2.0%의 시청률이라면 거의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었으니. 그나저나 시청률이 생각보다 너무 낮게 나왔다. 못해도 5.0%의 시청률을 나올 거라 예상했었는데...
“그럼 아레스의 시청률을 몇이지?”
어젯밤, 아레스는 5화가 방송되었다. 태성은 멜로디의 시청률을 확인하는 것 만큼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레스의 5화 시청률은 20.1%였다.
“시청률이 오를 줄 알았는데... 아니네?”
20.1%. 여전히 높은 시청률이었지만 4화와 같은 시청률이었다.
“아레스의 시청률에 정체기가 온 모양이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약 아레스와 5화 시청률이 상승했다면 앞으로 멜로디가 가야 할 길이 더욱 험난했을 테니.
“그나저나... 서지수 작가님은 괜찮으실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절규를 하고 있을 거 같았다. 시청률에 워낙 예민한 사람이었으니. 이번 드라마의 대본에 매우 자신 있어 했는데... 이 시청률을 보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한편, 멜로디의 첫 방 시청률을 확인한 지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절망적인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눈앞으로 보이는 천장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만 같았다.
“아.. 망했어. 망했다고.”
상대 작품인 아레스의 시청률이 이미 20%를 돌파한 시점이었기에 낮은 시청률을 기록할 줄은 알았다. 하지만 3.0%라니! 지금까지 받아 본 성적 중에서 가장 낮은 시청률이었다. 자신의 네 번째 드라마보다 낮은 시청률을 받다니. 지수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나의 야심작이 내게 최악의 성적을 주다니...”
지수는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보다 더 낮게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시청률이 나왔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올린 커리어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 쪽팔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숨고 싶었다. 비록 말이 많았지만 어쨌든 지수는 스타 작가라고 불리는 작가였다. 스타 작가는 지수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타이틀도 반납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았다. 한마디로 이름값 못하는 작가가 된 거 같았다.
“하.. 그만두고 싶다.”
총 16개의 화중에서 겨우 1화가 방송되었다. 비록,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앞으로 방송해야할 게 15개가 남아있었다. 9화까지 탈고를 끝내 다행이었다. 지금 그녀는 대본 집필을 하고 싶지가 않았으니.
“그냥 남은 거 한태성 작가님한테 전부 맡기고 싶다...”
지금 그녀는 모든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금 스스로가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이럴 때일수록 프로답게 힘을 내고 자신의 작품에 애착을 가지며 더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결코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역시 난 멘탈이 약한 사람이었어...”
오늘 밤에는 멜로디의 2화가 방송된다. 과연 오늘은 얼마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할게 될지 벌써부터 두려운 그녀였다.
[띵똥.]
초인종 소리가 그녀의 집안에 울렸다. 하지만 지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지금은 가만히 있고 싶었다.
“택배 아니면 은하 언니겠지.”
택배면 경비실에 맡길 테고 은하 언니라면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올 테니 지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직접 현관문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삒]
그 사람은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지수의 예상대로 은하였다.
“지수야!”
“걱정 마요. 나 아직 살아있으니.”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
은하는 지수가 좋아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왔다.
“너 아직 아침 안 먹었지?”
“시청률 3.0% 나온 작가는 아무것도 안 먹어도 돼요.”
“아니. 명작이라고 칭찬 많이 받는 작가는 아침 든든하게 먹고 글 써야 해.”
응? 명작이라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지수는 고개를 들어 은하를 쳐다봤다.
“언니. 지그 뭐라고 했어요?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요?”
“그래.”
“누가요? 내가요?”
“엄밀히 말하면 너랑 한태성 작가님이지.”
은하는 들고 온 샌드위치와 테이크아웃 커피를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칭찬했는데요?”
“우선 드라마가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재밌다고 칭찬이 많더라. 사람들이 멜로디 보고 힐링 드라마라고 하더라?”
힐링 드라마? 듣기에는 좋은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지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요? 근데 아쉽게도 그 좋은 힐링을 대한민국 국민의 3%만 느끼셨네요.
“이제 겨우 1화잖아. 분명 오늘 시청률 상승한다. 큰 폭은 아니더라도 분명 상승한다고. 이건 이 바닥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생긴 내 촉이야. 틀리면 내가 드림 픽처스 너 줄게.”
은하의 말에 지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 설마 시청률 3.0%보다 더 낮게 나오겠어요? 당연히 오르긴 하겠죠.”
“아.. 그런가?”
은하는 하하 웃으며 지수에게 자신이 사온 샌드위치를 권했다.
“이거 네가 좋아하는 곳에서 사 온 거야. 아침부터 30분 동안 줄 서있었다고. 이런 회사 대표 없다. 너도 적당히 하고 빨리 아침 먹어.”
하긴. 어느 대표가 회사 직원을 위해서 아침부터 30분 동안 줄을 서서 아침을 사와 주겠는가?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은하를 생각해서 지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그녀의 모습에 은하는 만족하는 듯 웃었다.
“그래. 빨리 먹고 힘내. 힘내서 더 재밌는 대본 쓰라고.”
“알겠어요.”
“근데 한태성 작가님이랑은 통화해봤어?”
“아니요. 아마 작가님은 시청률이 낮아도 별 신경 안 쓰실걸요. 대본이 재밌으니 분명 시청률 오를 거라며 자신 있어 하실 거예요. 그러다 마지막까지 시청률이 낮으면 되게 창피할 거예요. 그쵸?”
“누가 보면 시청률 낮게 나오기를 은근 기대하는 사람 같다?”
“아! 언니!”
지수의 짜증에 은하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알겠어. 알겠어. 그만할게. 빨리 먹어.”
힝! 지수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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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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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멜로디의 2화 시청률은 상승했다. 1화보다 1.4% 오른 4.4%였다. 태성은 1.5배 올랐다며 만족했지만 지수는 아직 5% 미만이라며 실망했다. 태성은 낮은 시청률에 촬영 현장 분위기가 다운될까 염려되어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푸드트럭을 보냈다.
한편, 아레스의 6화 시청률은 5화보다 소폭 하락한 20.0%를 기록했다. 0.1%라는 매우 작은 하락이었다. 아직 멜로디와 비교한다면 4배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그럼에도 아레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드림 픽처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드라마는 무려 1.5배로 시청률이 상승한대에 비해 아레스의 시청률은 하락했다면 기사를 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언론플레이였다.
마치 멜로디의 시청률이 매우 높아진 것처럼 떠드는 기사에 파티오의 여 대표는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제작했던 드라마들 중에서 회당 가장 높은 제작비가 든 드라마가 아레스였다.
그는 20.0%대의 시청률을 턱걸이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에 당장이라도 열불이 났다.
“이놈의 시청률은 왜 이렇게 안 오르는 거야!!”
시청률 20.0%를 돌파했던 3화 이후로 아레스의 시청률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까닥하다가는 20.0%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어떻게 배우들 열애설 기사라도 퍼트릴까요?”
여 대표와 함께 파티오의 대표실에서 기사를 보고 있던 오 피디의 제안이었다. 배우들의 열애설을 퍼트려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는 치졸한 방법이었다. 보통의 경우 배우들에게 관심이 생기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기 마련이었다.
“그걸 뭐 하러 물어? 당장 퍼트려.”
“네.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꺼내든 오 피디든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청률 높게 안 나오면 아름답지 않다며 미친 노인네 또 지랄한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청률 높여.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아.. 스트레스받아!!”
“오늘 ‘거기’ 가시겠습니까?”
거기를 말하는 오 피디의 눈썹이 찡긋 올라갔다. 그러자 분노로 가득했던 여 대표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방금 오 피디의 입에서 나온 거기는 여 대표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동안 너무 일만 했으니 좀 놀아야겠지?”
“네. 준비하겠습니다.”
그날 밤,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는 아레스에 출연하고 있는 두 남녀 배우의 열애설 기사로 가득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알 수 있었다.
- 어머. 어머. 어쩐지 연기가 리얼하더라.
- 와... 그럼 그 키스신이 진짜였다는 소리네?
- 연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개이득이네. 부럽.
- 힝 ㅜㅜ 우리 오빠 뻇겼어.
사람들의 높은 관심에 두 배우의 소속사에서는 절대 아니라며 열애설을 부인하는 기사를 퍼트렸다. 이렇게 되자 두 배우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런 현상에 매우 만족한 사람이 있었으니 파티오의 여 대표였다. 그의 바람대로 아레스의 7화 시청률은 상승했다. 6화 보다 2.2%를 상승하며 22.2%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레스의 시청률이 상승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멜로디의 시청률이 하락했을 거라 기대한 여 대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희망과는 달리 멜로디의 시청률도 소폭 상승했다. 멜로디의 3화 시청률은 2화보다 0.8% 상승하며 5.2%를 기록했다. 아레스와 마찬가지로 멜로디 역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현재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지상파 드라마는 세 편이었다. 즉, 아레스와 멜로디 말고도 다른 드라마가 한 편이 더 있다는 소리였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연애의 비법으로서 어젯밤 방송했던 15화에서 6.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총 16부작인 이 드라마는 이제 단 한 회의 방송만을 남기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 드라마 시청률 대전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시청률 1위와 2위의 경쟁구도로 기사를 작성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1위의 시청률이 월등히 높을 경우라면 2위와 3위의 경쟁구도를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하지만 아레스와 멜로디가 동시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자 언론에서는 두 드라마의 경쟁 구도로 기사를 작성했다. 연애의 비법은 마지막 회라는 관심을 받아도 결코 아레스의 시청률을 넘길 수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결코 재미있는 경쟁구도는 아니었다.
또한, 아레스와 멜로디는 같은 날 종영되는 드라마였다. 그러니 기자들 입장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처럼 보이는 이 두 드라마의 경쟁 구도가 더욱 재밌는 기삿거리였다.
결국, 연애의 비법은 마지막 회에서 7.0%라는 시청률로 15화보다는 소폭 상승한 시청률로 끝이 났다. 연애의 비법이 시청률이 오른 탓인지 아레스의 8회 시청률은 1.0% 하락한 21.2%를 기록했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자마자 또다시 하락한 셈이었다. 아레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한편, 멜로디의 4회 시청률은 또다시 상승했다. 비록 0.5%라는 적은 수치였지만 5.5%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이제 다음 주면 연애의 비법 후속 작으로 희망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된다. 하지만 전작의 화제성이 낮았다는 점과 드라마의 주연들이 약하다는 점.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아레스와 멜로디의 경쟁 구도 때문에 희망의 시청률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어떻게 보면 멜로디는 연애의 비법의 시청자들을 유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비록 시청률 경쟁에서는 꼴찌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분위기가 좋았으니. 그렇기에 멜로디는 5회에서 시청률이 크게 상승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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