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날의 기억 (1)
47화. 그날의 기억 (1)
홀로 거리를 걷고 있는 태성은 마지막으로 그가 들었던 최 이사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애초에 김 대표를 쓰러뜨릴 때 함께 쓰러뜨릴 걸 그랬다라...”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아마 아무도 듣지 못 할 거라 생각했겠지.
“역시 그런 거였군.”
아무리 생각해도 김 대표가 쓰러지고 하늘 출판사가 흔들릴 때 제국 출판사를 건설한 최 이사의 타이밍이 정확하게 떨어졌었다.
“이거 잘만하면 최 이사를 완전히 무너트릴 수도 있겠는걸?”
하지만 이걸 어떻게 증명하지? 아무리 태성이 자신의 뛰어난 청력으로 최 이사의 말을 엿들었어도 이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선 지금 김 대표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겠지?”
그걸 알아볼 방법은 하나였다. 태성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은우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지금 어디세요?]
“방금 제국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네..?]
태성이 제국 출판사에 찾아갔다니. 예상치 못한 장소였다. 은우는 놀란 듯 말을 이어갔다.
[거기는 왜 가셨는데요?]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김 대표님이 입원하고 계시는 병원이 어디인지 알려주실수 있습니까?”
뜬금없게 제국 출판사를 찾아가더니 이번에는 김 대표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의 주소를 알려달란다.
[뭐... 알려드릴 수야 있죠. 근데 거긴 또 왜요?]
“그 역시 만나서 알려드리겠습니다.”
.
.
.
한편, 혁준은 새롭게 시작하는 카페 아르바이트에 적응을 잘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삼 일째였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해주고 있었다. 비록,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작가 아파트를 바라보며 하루에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 반드시 드라마 작가가 되어서 저 아파트에 입성한다!”
그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작가 아파트를 보며 또 한 번의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하고 있던 마른 수건으로 창문을 닦는 일을 이어갔다. 그때였다. 그의 시선으로 카페 구석에 위치한 4인용 테이블이 보였다. 워낙 안쪽에 위치한 테이블이라 카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몇 권의 책들과 함께 예약석이라는 푯말이 놓여있었다.
- 저 테이블은 절대로 건드리지마. 테이블의 주인이 매우 예민하거든.
테이블의 주인이라... 그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듣는 소리였다. 자고로 카페의 테이블은 먼저 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장님의 말에는 마치 저 테이블의 주인이 따로 있는 듯 보였다.
“도대체 저 테이블의 주인이 누구지?”
삼일이라는 시간동안 저 테이블에 앉은 손님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혁준은 그 주인이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 혁준은 테이블의 주인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설마 사장님이 말씀해주신 작가는 아닐까?”
물론,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미리 알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혁준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예상대로 테이블의 주인이 작가인지 아닌지 말이다.
“그나저나 테이블 위에 놓여진 책들은 전부 심리학 책이란 말이지...”
그럼 그 작가님이 심리학과 관련된 드라마를 집필중이신건가? 아님 그냥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인가?
“그게 누가 됐든 궁금하단 말이지.”
테이블의 주인이 누가 됐든 오늘은 부디 카페에 왔으면 하는 게 혁준의 바램이었다.
.
.
.
김 대표의 병실이었다. 병실의 주인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침대에 누워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은우가 서있었다.
“대표님. 작가님이 이곳에는 왜 오고 싶어 하시는 걸까요?”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김 대표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이 작가님 글을 보시면 정말 좋아하실 텐데.”
태성의 소설을 읽으며 즐거워 할 김 대표의 모습이 눈에서 그려지는 은우였다.
[똑똑.]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가님 오셨나봐요. 잠시만요.”
은우는 마치 김 대표가 깨어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식물인간도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정신은 깨어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그녀는 믿고 있었다. 지금 김 대표가 그녀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다고.
스르륵 옆으로 열리는 문틈 사이로 태성의 모습이 보였다.
“은우 씨 괜찮습니까? 표정이 안 좋은데...”
“그냥 대표님이 지금 깨어있으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거 같아요.”
그녀의 말에 태성은 눈을 돌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김 대표의 얼굴을 쳐다봤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저 분이 김 대표님이신가 봅니다.”
“네. 맞아요.”
병실 안으로 들어와 스르륵 문을 닫은 태성은 조심히 김 대표에게 다가갔다. 오랜 시간 잠이 들어서 그런지 얼굴이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대표님 인상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쵸? 저희 대표님 되게 좋은 분이세요. 근데 무슨 일로 저희 대표님이 계시는 이곳에 오고 싶다고 하신 거예요?
그녀의 질문에 태성은 눈을 감고 있는 최 이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질문으로 대답했다.
“혹시 대표님이 어쩌다 이렇게 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자동차 사고였어요.”
자동차 사고라... 그럼 최 이사가 그 사고를 냈다는 건가?
“혹시 그 사고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럼요. 제가 알고 있는 건 대표님이 술을 드신 상태에서 산길을 운전하시 다가 그만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신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이렇게 살아 계신 것 도 기적이에요. 사고 현장이 정말 처참했거든요.”
은우는 그날의 사고 현장을 눈을 목격하지는 않았다. 그저 사진으로만 확인했을 뿐. 하지만 처참한 사진 속 모습을 회상하는 은우의 눈이 떨려왔다. 앞 범퍼는 완전히 찌그러졌고 김 대표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었다.
태성은 그런 은우를 안아주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은우 씨는 이렇게 멀쩡해서.”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최 이사의 말을 들은 태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은우가 이렇게 날 괴롭힐 줄 알았다면 애초에 김 대표를 쓰러트릴 때 함께 쓰러트릴걸 그랬어.
태성은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만약 최 이사가 김 대표와 함께 은우를 보내버렸다면 지금 은우는 이 자리에 없었을 테니.
한편, 은우는 태성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태성에게 되물었다.
“작가님. 방금 하신 말 무슨 말이에요?”
태성은 은우를 자신의 품에서 풀어주며 대답했다.
“어쩌면 대표님의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닌 거 같습니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니요? 그럼 누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누가요?”
질문을 하는 순간 은우의 머릿속에 누군가 스쳐갔다.
“설마... 그 사람이 최 이사님은 아니겠죠?”
“아직 확실한건 아니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그 순간, 은우는 머리가 띵하며 어지러웠다. 그때였다. 김 대표에게 부착된 심장 박동 측정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삑삑]
너무 요동친 나머지 경고음마저 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은우였다.
“뭐야? 대표님! 대표님!!”
그녀는 김 대표의 몸을 흔들며 그를 다급하게 불렀다. 한편, 당황한 은우와 달리 태성은 침착하게 간호사를 부르는 비상 호출버튼을 눌렀다.
“여기 환자가 이상합니다. 빨리 와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태성은 은우를 보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간호사가 온 다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작가님. 이러다 우리 대표님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죠?”
“아닐 겁니다. 절대 아닐 겁니다.”
태성은 자신의 품에 안긴 은우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차분하고 확실한 그의 말투와 부드러운 터치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미세하게 꿈틀거린 김 대표의 왼쪽 검지손가락이 태성의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김 대표님이 깨어날 순간이 멀지 않겠는데?’
병실의 문이 다급하게 열리며 두 명의 간호사와 한명의 의사가 들어왔다. 세 사람은 서둘러 응급조치를 취했다. 의사 한명은 김 대표의 감긴 눈을 손으로 열어 자신의 의료 손전등을 비추었다. 신경계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명의 간호사는 김 대표와 바늘로 연결된 튜브에 안정제를 투입했다. 또한, 다른 간호사는 김 대표와 연결된 호흡장치를 확인했다.
.
.
.
한 번의 폭풍이 지나가고 은우는 멍하게 복도에 앉아있었다. 그런 그녀 앞으로 캔 커피가 쥔 손이 보였다. 태성의 손이었다.
“이거 마시면서 진정하시죠.”
“네. 감사해요.”
은우는 태성이 건넨 캔 커피를 두 손으로 잡았다. 태성이 전자레인지에 살짝 올려온 탓에 캔 커피는 매우 따뜻한 상태였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대표님이 금방 진정 되셔서.”
“그러게요. 저 오늘 대표님이 저러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대표님 진짜 어떻게 되시는 줄 알고 놀랐거든요. 근데.. 정말 그 사고가 최 이사님의 짓이에요? 그걸 작가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은우씨도 알지 않습니까. 제 청력을.”
“아... 그럼 최 이사님이 조용히 혼잣말 하는 걸 들으셨나 보네요.”
“네. 맞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최 이사님이 그 사고를 내신건지 알아봐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최 이사 그 자를 완전히 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만약 진짜 그러셨다면 그건 명백히 범죄이니.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증거를 찾아야겠죠. 확실한 증거를. 혹시 제국 출판사 안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편이 되어줄.”
그의 질문에 은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거라면 당연히 있죠. 두 명 정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그럼 그 두 사람을 제가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될걸요? 제가 연락해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태성이 말끝을 흐리자 은우는 그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그리고 뭐요?”
“최 이사가 왜 그런 짓을 한 거 같습니까?”
“글쎄요... ”
“혹시 사고 당일 날, 대표님이 어디 간다고 말하고 나갔는지 기억합니까?”
“사고 당일이요?”
자그마치 3년 전 일이었다. 이제 한해가 바뀌었으니 정확히 말하면 4년이었다. 은우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잘 떠오르지는 않네요.”
“아무거나 좋습니다. 분명 저희한테 도움이 될 겁니다.”
“하... 그때..”
그 순간, 사고 사진 속 김 대표가 입고 있던 녹색의 체크무늬 셔츠가 떠올랐다.
“그 셔츠를 입은 날... 대표님이 어디를 간다고 하신거 같은데...”
도대체 어디를 간다고 하신거지? 어디를 가시는 길에 사고가 난 걸까? 최 이사님이 저지른 일이라면 대표님이 가시는 그 곳 역시 최 이사님이 알았다는 건데...
“맞다. 계약.”
“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날 무슨 드라마 제작 관련된 계약을 하신다고 했어요. 맞아요!”
뭔가가 떠오르자 표정이 밝아진 은우였다.
드라마 제작이라... 이상하네. 아까 최 이사는 갑.을.썸의 드라마 제작 판권을 사고 싶다고 했잖아. 그때도 드라마 제작... 지금도 드라마 제작... 우연은 아닌거 같은데... 결국 김 대표님의 사고도 드라마 제작과 관련된 건가?
- 작가의말
46화 수정합니다. 최 이사는 갑.을.썸의 영화 판권이 아닌 드라마 판권을 원했던 겁니다. 제가 실수했네요 ㅠㅠ 42화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주, 업로드가 한 화 밖에 되지 않은 점 사과드립니다. 제가 많이 아팠네요.. 여러분들도 감기 조심하세요.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