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진실
15화. 진실
가게를 나온 태성은 홀로 밤거리를 걸었다. 이상하게 계속 헛웃음이 나는 그였다.
“하...”
자신의 작품을 칭찬해주던 사람들의 글이 거짓이었다니. 물론 모든 글을 은우가 쓴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허무했다. 태성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문장소 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로 들어가 댓글을 확인했다.
- SNS에서 추천 글 보고 왔는데 꽤 재밌네요.
- 저도 SNS 보고 왔어요! 재밌는 소설이네요.
- 갑자기 뜨길래 한번 봤더니 나름 괜찮네요.
- 저도 이 소설 본거 인증하렵니다!
- 작가님이 친구가 많으신 건가? 왜 그렇게 SNS에 올라오는 거죠?
- 저도 SNS에 인증했습니다! 작가님 재밌어요~
어찌 되었건 은우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가 된 건 맞는 듯했다. 물론 태성도 은우의 행동을 이해했다. 기울어진 출판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얼마나 절박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창피했다. 은우가 썼던 글을 독자들이 쓴 글인 줄 착각하고 좋아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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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태성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동안 작품을 작업하고 또 자신의 글을 읽고. 다른 소설도 읽으면서 태성은 많은 경험치를 모았다. 그래서 현재 그의 레벨은 49였다. 이제 레벨을 하나만 더 올리게 되면 레벨 50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최고급 열람실 입장이 가능했다.
“그럼 혁준이랑 떨어져야 하는 건가?”
기왕 작업하는 거 태성은 혁준과 함께 하고 싶었다. 혼자 글을 쓰다 보면 외로워질 때가 있으니.
“지금 혁준이 레벨이 몇이지?”
마침, 태성이 혁준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혁준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혁준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혁준은 얼른 수건을 뒤로 숨겼다.
“형. 왔어요?”
“너 여기서 머리 감은거야?”
“아... 네... 하하.”
혁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숨긴 수건을 보여줬다.
“어제 여기서 잤거든요. 맞다. 어제는 미안해요. 같이 밥 못 먹어서.”
“신경 쓰지 마. 편집자님이랑 같이 먹었어. 근데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그게... 집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가지고요.”
“집에 무슨 일 있었어?”
“그냥. 별일 아닙니다.”
그 순간, 혁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주 크게 말이다.
“너 밥 못 먹었어?”
“네. 아직이요. 이제 편의점 가서 컵라면이나 먹으려고요.”
“그래? 잘 됐다. 나도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같이 먹으러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알잖아. 형 상금 받은 거.”
거짓말이었다. 사실 태성은 도서관에 오기 전에 집에서 든든히 밥을 먹고 왔다.
“오! 정말로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그래.”
이른 시간이었기에 아직 문을 연 가게가 별로 없었다. 태성은 기왕 사주는 거 혁준이 좋아하는 고기를 사주고 싶었지만 문 연 고깃집이 없었기에 도서관 앞에 있는 김밥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밥, 태성이 좋아하는 떡볶이 그리고 고기를 대신해서 왕 돈가스를 주문했다. 혁준은 마치 밥 몇 끼를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너 체하겠다.”
“사실 너무 배고팠거든요.”
혁준은 태성이 건네 준 물을 마시더니 다시 전투적으로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더 시켜줄까?”
“정말로요? 그럼 저 돈가스 더 먹고 싶어요.”
좋아하는 혁준의 반응에 태성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아줌마 여기 왕 돈가스 하나 더 주세요.”
그렇게 왕 돈가스를 한 개 더 끝내고 태성과 혁준은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밤이 오기까지 자신의 작품에 몰두했다.
한참을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태성은 이제 집에 돌아가기 위해 노트북을 닫았다.
“혁준아. 넌 집에 안가?”
태성의 질문에 옆에 있던 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전. 조금만 있다가 갈게요. 내일부터는 글 쓸 시간이 부족할 거 같거든요.”
“그래? 요즘 되게 열심히네. 알겠어. 그럼 내일 보자.”
“내일봐요.”
혁준은 태성이 방을 나가기까지 인사를 했다. 그리고 태성이 방을 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 그럼 나도 취침 준비 좀 해볼까.”
자리에서 일어난 혁준은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 위치한 사물함에서 그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신의 사물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간단한 세면도구가 있었다.
자신의 세면도구를 챙긴 혁준은 곧바로 사람이 가장 없는 4층에 위치한 화장실로 향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혁준은 자신의 세면도구를 이용해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혁준이었다.
“하...”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태성을 만난 이후로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 그였다.
“괜찮아. 그래도 지금 씻고 있잖아.”
간단하게 세안을 끝낸 혁준은 화장실을 나왔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자리로 돌아온 혁준은 의자를 돌려 구석에 위치했다. 그리고 발을 뻗어 책상에 올려놓았다. 제법 편안한 자세였다. 물론 침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이럴 때일수록 빨리 자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우울해지고 생각만 깊어질 테니. 혁준은 빨리 잠을 청했다. 그때였다.
“혁준아. 너 뭐해?”
태성의 목소리였다. 간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오자 놀란 혁준은 급하게 일어나다가 그만 쿵 하고 의자에서 떨어졌다.
“아!!”
“혁준아!!”
태성은 혁준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을 이어갔다.
“너 왜 여기서 자는 거야?”
“형.. 그게...”
혁준은 쉽사리 말을 이어가지 못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태성도 참을 수 없었다.
“너 혹시 집 못 들어가는 거야?”
“...네. 괜히 글 쓴다고 알바 안 해서 이렇게 됐네요. 부모님한테는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내일 알바 면접 보기로 했거든요. 몇 달만 버티면 작은 원룸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괜찮아요.”
그제야 태성은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오늘 아침 젖은 머리로 화장실에서 나온 태성이. 마치 굶은 사람처럼 밥을 먹던 그의 모습까지 말이다.
“혹시 어제 밥 못 먹은 것도 이거랑 관련 있는 거야?”
“네. 집 문제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다 밝히자 창피해진 혁준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안 좋으면 말을 했어야지! 너 언제부터 여기서 이러고 지낸 건데?”
“아직 며칠 안됐어요.”
“너 형 집에서 지내라.”
가족이 아닌 누군가한테 하기 쉬운 말은 결코 아니었다. 태성이 그런 말을 하다니. 혁준은 놀란 눈치였다.
“정말로요?”
“어차피 혼자 살기는 넓은 집이야. 당분간 들어와서 지내.”
“형... 고마워요.”
혁준은 고마움에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숨이 뚫린 기분이었다. 태성은 천천히 다가가 말없이 혁준의 등을 토닥거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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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태성이의 ‘시작부터 만렙이야’는 또다시 문장소 공모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은우는 이제 작품의 홍보는 충분하다 생각했다. 또한, 더 이상 연재를 계속하게 된다면 유료로 전환하기 너무 늦어질 거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출판을 생각할 때였다.
출판을 하기 위해선 최상의 퀄리티가 필요했다. 물론, 지금의 퀄리티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글이란 건 고치면 고칠수록 더 좋아지는 법.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분량을 꼼꼼히 다시 읽고 고쳐갔다.
현재 그녀의 레벨은 89였다. 태성의 작품을 작업하면서 얻은 경험치 덕분에 레벨이 88에서 한 단계 오른 것이었다. 빨리 레벨 100이 되어 작품 스캐닝을 얻고 싶었다. 그 스킬만 있다면 작업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테니.
“하.. 그나저나 작가님이 아직 화나셨을라나?”
은우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날 이후, 태성을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그저 핸드폰으로 필요한 연락만 주고받았다.
- 그렇다면 은우 씨는 정말 나쁜 에디터네요
그날 이후 태성이 한 말이 잊히지가 않았다. 물론 그다음 말도 뚜렷이 기억났다. 분명 태성은 자신이 작가를 창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 내가 미쳤지. 술을 먹고 왜 그런 소리를 해가지고는.”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의 실수였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1등 했잖아.”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은우는 자신의 핸드폰에서 태성의 번호를 찾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출판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쉽게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혁준씨한테 연락해 볼까?”
은우는 태성과 친한 혁준이한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태성 작가님 지금 어디 계신지 아세요?]
다행히 곧바로 답장이 왔다.
[형 지금 집에 있어요. 급한 일이시면 여기로 오세요.]
어? 지금 오라고? 현재 시간은 밤 9시였다.
잠시 후 온 문자에는 정확한 집 주소가 찍혀있었다. 그 문자를 보며 은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출판을 서둘러야 할 거 같았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오늘 해결하자.”
다행히 아직 늦은 시간도 아니었으며 태성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곧바로 퇴근할 생각이었다. 은우는 자신의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은우의 차가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혁준이 보내준 주소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밖에 보이는 건물을 번갈아 쳐다봤다.
“진짜 여긴 거야?”
아직 신인 작가가 이렇게 고급 아파트에 살 다니. 하긴 레벨도 안 되는데 작가로 전직한 것도 그렇고.
“금수저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도대체 무슨 돈으로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산단 말인가. 은우는 차를 주차하고 아파트 입구로 걸어갔다. 그녀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통화 연결음이 들렸다.
“혁준씨가 나 올 거라고 말했겠지? 그냥 작가님한테 연락하고 올 걸 그랬나?”
그 순간, 뒤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태성이 서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이다.
“어머. 작가님 괜찮으세요?”
“얘기는 나중에 합시다. 인천 가야하니.”
“네?”
“지금 인천으로 가야한다고요!!”
한 손에 자동차 키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운전을 할 생각인 듯 보였다. 하지만 빨개진 얼굴. 그리고 코를 찌르는 술 냄새를 보니 절대로 운전을 시키면 안 될 거 같았다.
“작가님. 지금 운전 못하세요.”
“뭔 상관이야! 난 지금 가야한다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도대체 무슨 사연인 걸까? 아무래도 인천을 가겠다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그럼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작가님 인천으로 데려다 드리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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