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대면 (2)
46화. 대면 (2)
올해부터 카페에 새로 알바를 잡은 혁준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첫 출근하는 날은 떨려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떨리냐. 카페 알바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그동안 카페에서 알바를 한 짬밥이 얼마였던가? 카페일은 자신 있었다. 누구보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고 청소도 깔끔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떨리는 이유는 아마...
“방송국 근처 카페라서 그런 건가?”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카페는 방송국 옆, 작가들이 모여 사는 일명 작가 아파트 앞에 있는 카페였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그에게 있어서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혁준아. 떨 필요 없어. 그들도 어차피 사람이야. 그리고 미래의 내 선배님들이고.”
그는 쿵쾅쿵쾅 뛰고 있는 심장을 애써 진정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원고마감을 앞둔 작가들은 마치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생들처럼 카페에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을지.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의 종류는 무엇인지.
“혹시 나도 같은 종류의 커피를 마신다면 좋은 기운을 얻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떠오른 질문은 너무나도 터무니 없었다.
“아휴. 내가 미쳤나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고개를 돌려 바로 앞으로 보이는 약간은 낡은 아파트를 바라봤다.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외관에서는 낡아 보였지만 안은 넓고 땅값은 비싼 곳이었다. 아무래도 방송국 바로 앞이었으니.
“저기다. 작가 아파트.”
아파트의 진짜 이름은 여의도 아파트였다. 하지만 방송 작가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지금은 작가 아파트라고 불렸다.
이곳에 작가들이 모여 사는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 방송국과 가깝다는 것. 둘째, 대한민국 방속 작가 1기였던 대선배 작가들이 그곳에서 합숙을 하며 시작됐었다.
“언젠가는 나도 꼭 작가가 돼서 저기다 작업실 얻어야지.”
물론 자기 돈으로 집을 사는 거에 있어서 직업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그러지 않았다. 작가 아파트라고 불리는 이상 작가가 되어야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도 할 수 있다!”
속으로 파이팅을 크게 외친 이후 그는 미소를 지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면접날 만났던 40대 중반의 중년인 여사장은 혁준에게 카페 일들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 정도면 다 설명 한 거 같은데. 혹시 질문 있나?”
교양 가득한 말투였다.
“어.. 사실 하나 있습니다.”
“그래? 질문이 뭔데? 부담 없이 물어. 편하게.”
“여기 카페가... 작가 아파트 근처잖아요.”
“그치.”
“그럼 여기에 드라마 작가님들 많이 오시겠네요?”
그의 질문에 카페 사장은 재밌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혹시 배우 지망생? 그래서 알바 하는 거 라면 꿈 깨.”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사실은 제가...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거든요.”
혁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어머. 진짜? 그래서 여기 카페에서 일하는 거야? 혹시라도 좋은 기운 받을까봐?”
“뭐.. 겸사겸사해서요.”
“그렇다면 실망하겠네. 여기가 작가 아파트 근처에 있는 건 맞지만 여기에 오는 작가들은 없어.”
“네!? 없다고요?”
“응. 와도 드라마 보조 작가들이나 와서 커피 사가지. 나도 작가들이 너무 안와서 물어봤거든. 도대체 왜 안 오는지. 다들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또 너무 예민해서 밖에서 사람들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 한다고 하더라고.”
“아.. 그렇구나...”
무엇을 특별하게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니 괜히 힘이 빠지는 혁준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잡을걸.
“그래도 한명쯤은 오지 않을까요?”
“알바생. 드라마 작가들 진짜 만나고 싶나보네.”
“네...”
“맞다! 내가 깜빡한 게 있었네. 며칠 전부터 이곳으로 직접 와서 글 작업하는 작가 한명이 있거든.”
태양빛이 내리 쬐는 사막에서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그런 기분이었다.
“정말로요? 진짜요?”
질문을 하는 혁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래. 되게 예쁘고 젊은 작가야.”
“그분 이름이.. 아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글쎄... 미안. 기억이 안 난다. 되게 유명한 드라마 썼다고 했는데.”
“드라마 뭐요?”
웬만한 드라마는 전부 본 그였다. 이름만 들어도 누가 썼는지 바로 떠올릴수 있었다.
“어...그니깐...”
혁준은 사장님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니깐 드라마 이름이 뭔데요?
“내가 드라마를 잘 안 봐서. 그것도 까먹었다. 미안. 다음에 카페에 오면 내가 소개시켜 줄게. 알바생이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라고.”
“네. 감사합니다.”
이름 모르는 그 작가를 아직 만난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를 벌써 만난 기분이 들었다.
“과연 누구실까? 이곳에 와서 커피를 드시고 작업하시는 분이.”
.
.
.
한편, 유리를 유치원에 보낸 태성 역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그 였다.
‘은우 씨랑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지금 그가 만나러 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최 이사였다. 이미 갑.을.썸의 모든 분량이 무료로 공개되었다. 즉, 소설의 원고를 훔쳐 책을 출판 하려고 한 최 이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렇게 끝이 났건만 또 무엇을 원한단 말인가?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태성은 제국 출판사의 사옥에 도착했다. 겉에서 보는 건물의 크기는 매우 크고 화려했다. 하늘 출판사와 비교 할 수도 없을 만큼 만이다.
“이렇게 큰 회사에서 고작 내 소설을 훔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의 출판사라면 분명 팬 층도 두텁고 필력이 뛰어난 작가를 많이 보유하고 있을 테니.
“내 소설이 그렇게 뛰어난 글 이었나?”
자신의 소설은 분명 재미있고 뛰어난 글이었다. 로맨스 소설답게 로맨틱한 재미와 함께 독자들에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을 주는 소설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럴게 거대한 출판사의 대표가 목 맬 정도로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분명 뭔가가 있다.”
오늘 그를 만나 그 뭔가가 뭔지를 알아내야했다. 그래야만 최 이사가 은우를 그만 괴롭힐 테니.
“그럼 들어가 볼까?”
태성은 건물 입구에 있는 회전문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그리고 멋지게 걸어갔다. 허리와 목은 곧게 새웠고 어깨와 가슴은 옆으로 쫙 폈다. 큰 키와 다부진 몸매에서 몸까지 최대한 넓히자 그 누구보다도 당당해 보이는 태성이었다.
“이렇게 만나서 매우 영광입니다. 한태성 작가님.”
대표실 안으로 들어온 태성을 보며 매우 밝은 미소를 짓는 최 이사였다. 참으로 가식적인 미소였다. 최 이사는 태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도 영광입니다. 최 대표님.”
태성은 최 이사와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여유가 넘치는 미소 말이다.
그의 여유로움에 왠지 모를 진 기분이든 최 이사였다.
“요즘 핫한 작가님이 먼저 만나자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최 이사는 먼저라는 말을 강조했다.
“대표님이 제 작품에 관심이 아주 많으신 거 같아서요.”
이번에 태성은 아주라는 말에 강조했다. 최 이사로 하여금 자신이 한 짓을 떠오르게 함과 동시에 자신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그의 짓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 저와 그 작품 얘기 좀 하실까요?”
“좋습니다.”
마주보고 있는 두 남자 사이의 테이블 위로 커피 두 잔이 놓여졌다. 예리였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세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방을 나오는 순간까지 그녀의 모든 신경은 태성에게로 향했다.
‘저 분이 갑.을.썸의 작가님이시라는 거지?’
그나저나 저분이 이곳에는 왜 오신 거지? 대표님이 사과를 하려고 부르신 건 아닐 테고...
한편, 대표실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두 남자의 신경전이었다.
“올해 작가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태성을 향해 최 이사가 던진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형 일테니. 먼저 나이로 그를 누르겠다는 계산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한가하고 의미없는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잰틀하게 들리면서도 시크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의 말에 최 이사는 움찔했다. 한순간에 자신이 한가한 나머지 시덥지 않은 질문을 한 사람이 됐으니.
“뭐 좋습니다. 어차피 이 자리는 소설 작가과 출판사 대표가 만나는 자리이니. 먼저 보자고 한건 작가님이었습니다. 궁금하군요. 그 이유가.”
“이미 잘 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에 최 이사는 피식 웃었다.
“역시 갑.을.썸이군요.”
“네. 맞습니다. 대표님이 하신 일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 거기에 대해 방비도 잘 하셨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물론이죠. 아쉽게도 갑자기 무료 공개가 되어 많이 당황했지만요.”
“네. 맞습니다. 즉 이번 일은 모든 게 끝났다는 거죠. 그럼에도 대표님은 은우 씨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또 무슨 일을 꾸미시는 겁니까?”
돌려 말하느니 돌직구를 던진 태성이었다.
“그게 궁금하셔서 절 만나자고 하셨군요. 그 전에 작가님과 은우는 무슨 사이입니까?”
최 이사는 은우에 대한 질문으로 태성의 대답을 회피헀다. 아무래도 자신이 한 짓이 떳떳하지 못했으니.
“소설의 내용도 그렇고. 이렇게 직접 나서서 은우를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단순한 편집자와 작가의 사이는 아닌 거 같아서.”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렇군요. 일도하고 연애도 하고 아주 행복하시겠어요.”
“네. 아주 행복합니다. 그래서 들이는 질문입니다. 은우 씨한테 또 무슨 말로 괴롭히시려고 전화를 하신 겁니까?”
“전 아주 좋은 제안을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제안이라 하셨습니까?”
소설의 원고를 훔친 주제에 이제 와서 제안이라니. 태성은 그의 말이 너무 웃겼다.
“네. 하늘 출판사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제안일겁니다.”
“좋습니다. 들어나 보죠. 그 제안이 뭡니까?”
“갑.을.썸의 드라마 제작 판권을 저희 출판사에 파시라는 제안입니다. 소설을 무료로 공개한 덕분에 돈이 필요한 하늘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섭섭할 겁니다. 그러니 드라마 제작 판권을 사겠다는 저의 제안은 은우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갑겠죠.”
드라마 제작...? 최 이사가 그리는 큰 그림이 드라마 제작이었어?
“유감스럽게도 대표님은 잘 못 아시고 계십니다.”
그의 말에 최 이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며 태성이 말을 이어갔다.
“현재 하늘 출판사의 경제적 상황이 대표님 생각보다 좋다는 겁니다. 그러니 굳이 그 판권을 대표님에게 팔 이유가 없죠. 즉, 돈을 무기로 저와 은우 씨를 상대하신다면 실패하실 겁니다.”
“오호. 그래요?”
돈으로 상대하면 실패한다고? 태성이의 말에 최 이사는 코웃음을 쳤다. 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건 없으니깐.
“근데 말입니다.”
태성이 최 이사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이 제 소설의 드라마 판권을 굳이 가지셔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의 질문에 최 이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사업가입니다. 돈이 될 만한 게 뭔지 잘 알고 있죠.”
돈이 된 다라... 아무리 출판사의 규모가 크다 한들 드라마 제작으로 사업을 확장할 정도로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뒤에 누가 있다는 건가...?’
태성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습니까? 유감입니다. 전 작가입니다. 제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죠. 대표님에게 제 글의 판권을 결코 드릴 수 없습니다. 얘기는 끝난 거 같으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애초에 최 이사가 원하는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태성이었다. 다른 말로 말해, 이 대화에 주도권을 가진 사람은 태성입니다.
“그래요? 저한테 판권을 파시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요.”
“그럴리가요.”
태성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하게 최 이사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아 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보며 최 이사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문을 열고 나가는 태성을 보며 최 이사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말이다.
“은우가 이렇게 날 괴롭힐 줄 알았다면 애초에 김 대표를 쓰러뜨릴 때 함께 쓰러뜨릴 걸 그랬어.”
그는 당연 태성도 듣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능력을 몰랐으니. 냉동인간에서 깨어난 후, 태성의 감각은 일반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청각 역시 그러했다. 문을 나가는 태성의 귀에는 마지막 최 이사의 혼잣말이 똑똑히 들렸다.
‘응...? 김 대표를 쓰러뜨린 게 최 이사였어?’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