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7 장 운명이란 것은…….
진월의 신형이 소리도 없이 나타난다. 대기 중의 양자를 변환시킬 수 있게 되면서 그의 능력은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바로 강화 아머들 중 맨 뒤쪽에 서 있는 자의 앞이다. 강화 아머를 입은 자가 투구에 손을 대자 안면 가리개가 양옆으로 벌어진다.
치이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지 공기가 유입되는 소리가 난다.
드러난 얼굴은 진월이 잘 아는 자다. 진월도 그일 것이라 생각해서 온 것이다. 바로 전철 부장이었다. 전철 부장이 진월을 향해 말한다.
“강해졌군.”
“당한 것이 있으니까.”
“이걸 걸치고도 장담하기 힘들 것 같군.”
“그렇게 느껴준다면 그 칭찬, 감사히 받겠소.”
“······.”
전철 부장의 시선이 허공을 응시한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은 탁했다. 구름이 달과 별빛을 가려 칠흑 같은 어둠을 선사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전철 부장은 마치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진월을 보더니 중얼거린다.
“운명이란 것은······.”
“······?”
진월은 갑자기 감상적이 된 전철 부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의 뒤로는 여전히 쿵쾅 거리며 굉음과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화 아머 넷 중 한기는 집중사격을 받아 장갑에 구멍이 뻥뻥 뚫린 채 하얀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다.
진월의 팀원들 또한 이미 삼분의 일은 떡이 된 채 쓰러져 있다. 새로 개발된 강화복은 착용자의 상해 정도에 따라 큐어가 자동으로 투여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져 있을 정도라면 받은 피해가 큐어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사실 아무리 큐어가 회복력을 극대화 시킨다지만 뼈가 어긋나게 부러지거나 다발성 골절로 부러진 경우에는 바로 투여할 수 없다. 뼈를 맞춘 다음 투여해야만 제대로 된 회복도 이루어진다. 더구나 부러진 뼈는 혼자 맞출 수 없다. 중상자가 한명 발생하면 치료를 도와줘야 하는 공격자도 한명이 더 줄어드니 그만큼 손실이 생긴다. 진월 쪽의 전력 손실은 이런 일들로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양쪽 모두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는 중이다.
진월과 전철 부장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더구나 전철 부장이 감상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미안하군. 바쁠 텐데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자네가 듣고 싶은 말이겠지.”
“······?”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말이다. 그 걸로는 부족했는지 한마디 더 붙인다.
“나 또한 죄인이니까.”
뭘 하자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진월은 그저 묵묵히 전철 부장을 바라볼 뿐이다.
“지은 죄로 치면 진즉 갔어야 하는데 말이야.”
“고해성사는 성당에 가서 하시오.”
진월의 대꾸에 전철 부장이 그저 웃기만 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자들은 지켜야겠지.”
진월은 전철 부장이 자꾸 선문답 같은 말만 하니 슬슬 짜증이 나려한다. 하지만 전철 부장은 그치지 않고 계속 한다.
“날 넘어선다면 너 또한 지킬 수 있겠지?”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도 아니고······.”
“하하하, 날 쓰러뜨린다면 좋은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원한다면······.”
촤르륵!
진월의 전신으로 용린의 갑옷이 입혀진다. 검은 날개 또한 길게 펼쳐진다. 그 위로는 삼색의 영력이 솟구치며 불길처럼 일렁인다.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빨리 해결해야만 연구 시설 내에 있는 이연후 회장을 구속할 수 있었다.
진월의 모습이 변화하자 전철 부장 또한 기운을 돋운다.
그의 강화 아머 주변으로 잿빛의 영력이 불길처럼 솟아오른다. 둘의 기운이 색깔만 다를 뿐 형태는 비슷해 보였다. 둘 다 기운을 발하자 주변으로 영력장이 형성된다.
콰앙! 지지지직~
잿빛 영력과 삼색의 영력이 서로 부딪치며 싸움을 벌인다. 두 기운이 만나는 지점의 땅은 움푹 꺼지며 갈라진다.
진월의 몸이 먼저 나아간다. 두 영력이 서로를 견제하며 부딪치다가 진월의 움직임에 의해 순간적으로 합쳐진다. 원래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서로 다른 두 성질의 기운이 부딪치면 폭발이 일어나야 맞다. 하지만 두 기운은 서로를 상쇄시키고 있었다.
조용한 폭발이란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힘이 서로를 빨아들이고 밀어내며 블랙홀의 원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백색의 빛이 생긴다. 소리는 들리지 않고 폭발만 일어난다. 밝은 빛이 폭사되며 주변 일대를 하얗게 물들인다.
콰아아앙~ 폭발 소리는 한참 있다가 발생한다.
반경 30여 미터에 이르는 지역의 모든 나무가 사라졌다. 대지 또한 마치 집을 짓기 위해 기초공사를 한 것처럼 평평하게 변해버렸다. 때 아닌 핵폭탄급 폭발에 적, 아군 모두 바닥을 구르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쉐인이 정문 앞에서 마법진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가 폭발을 목격한다.
“적당히 하지, 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분위기인데요.” 최탑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그러면 안 되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안에는 더 괴물이 버티고 있을 텐데······.”
“저 여자는 과연 누구 편을 들까?”
“······.”
강희가 눈초리를 세우며 곁으로 다가온 블랙을 보며 말한다. 민서도 블랙을 바라본다. 고운 시선은 아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강희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블랙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애써 둘의 싸움도 외면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탁도 했다.
진월의 두 손이 검을 잡는 자세를 취한다. 동시에 그의 팔은 검을 강하게 베는 자세로 변환된다. 순식간에 동작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에 잡혀 있는 검이나 무기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팔이 내려올 때 길고 날카로운 칼날 또한 같이 떨어져 내린다. 정말 빠른 생성이다. 그의 의지가 곧 힘이 되는 경지가 되어 있었다.
슈칵~ 거대한 용린의 칼날이 대기를 가른다.
콰앙!
전철 부장은 진월의 칼날을 팔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충돌하는 힘이 엄청났다. 강화 아머를 걸친 전철의 몸이 옆으로 밀려난다.
카각!
용린의 칼날과 부딪친 아머가 갈리는 소리가 난다. 강화 아머의 팔 부위에는 언제 솟아올랐는지 단검 형태의 블레이드가 튀어 나와 있었다.
카가각~ 용린의 칼날이 합금을 가르며 점점 더 깊숙이 들어온다.
전철 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용린의 칼날을 막고 있는 그의 팔이 약간씩 떨린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신은 강화슈트에 강화 아머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파워에서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달랐다. 힘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거대한 체격을 지닌 전철 부장의 허리가 뒤로 확 꺾인다.
진월의 칼날이 전철 부장의 흉갑을 스치며 지나간다. 전철 부장은 절대 보일 수 없을 것 같은 유연함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신형이 세차게 휘돈다. 굳건히 버틴 다리 힘과 빠르게 튕겨지는 허리힘을 바탕으로 그의 권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실린다.
큐웅~ 전철 부장의 권이 대기를 부수며 진월을 향해 날아든다.
진월은 칼날을 크게 휘둘러 자세가 흐트러져 있는 순간이다. 그의 옆구리를 향해 전철 부장의 권이 파고든다.
콰앙! 충돌음이 퍼진다.
진월이 디디고 선 바닥의 대지가 파도가 치듯 일어난다. 진월이 자세를 낮추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그런 진월의 왼손은 역수 자세로 전철 부장의 권을 쥐고 있다. 뒤틀린 자세에서도 전철 부장의 공격을 막아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월의 권이 전철 부장의 안면을 향해 날아간다.
쾅! 굉음이 일어난다.
전철 부장이 팔을 들어 진월의 권을 막았다. 하지만 파괴력이 엄청났다. 막았음에도 충격파가 그대로 전달된다. 전철 부장의 얼굴이 그 충격파로 인해 휙 돌아간다. 진월의 권을 막은 그의 팔을 감싸고 있던 아머 또한 권영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둘의 싸움은 특정한 기술이 쓰이지 않고 있다. 그저 순수한 무투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권 하나하나에 실린 기운은 바위를 가르고 쇠를 뚫을 수 있는 위력이었다. 전철 부장은 진월의 순간적인 공격을 막긴 했으나 팔이 쩌릿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전철 부장은 아니다.
진월 또한 바로 후속 공격을 행한다.
그의 발이 들린 채 날카롭게 찔러간다. 전신의 기운이 모두 발로 집중되어 있다. 이 한방이면 탱크의 강판조차 두부 뚫듯이 파고들 위력이다.
진월의 공격을 확인한 전철 부장의 몸이 움츠러든다. 방어를 위한 자세로 보였다. 전철 부장의 몸 주변으로 녹색 기운이 일렁인다. 빠직 거리는 전격도 형성된다. 두 팔은 방어를 위해 이미 모아진 상태다. 강화 아머의 위로 녹색의 육각판이 들러붙는다. 진월의 용린과 비슷했다.
진월의 공격이 행해지는 그 짧은 순간 전철 부장은 두 겹의 방어를 추가했다. 영력의 집중도를 올려 중력장을 주변에 둘렀고 그의 힘의 원천인 현무의 힘을 이용해 현무의 갑옷을 생성했다. 전철 부장의 주변에 형성된 중력장은 빨아들이는 중력장이 아닌 밀어내는 중력장이다. 중력장이 발현하는 힘이 공격을 하는 자에게 향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반탄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월은 그런 힘을 느끼면서도 무시하고 전진한다. 그 속도나 힘 또한 감소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전철 부장의 시선 또한 불쾌한 빛이 떠오른다.
큥~! 진월의 발끝이 바람을 가른다.
퍽! 중력장을 마치 풍선 터트리듯 뚫어버린다. 그리고······.
콰앙! 쩌적!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일어난다. 중력장을 뚫어버린 진월의 발끝이 전철 부장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 충격파가 전철 부장의 전면으로 퍼져나가며 땅과 허공으로 분출된다. 현무의 갑옷 또한 적중당한 부위를 중심으로 금이 가고 있었다.
쿠드드득~ 쩌저저적~
지표면이 갈라지며 움푹 파인다. 그러다 마그마를 머금고 터져 오르는 용암처럼 폭발하며 솟구친다. 동시에 잔뜩 움츠리고 있던 전철 부장이 몸을 활짝 편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현무의 갑옷이 폭발하듯 터진다. 그 파편이 진월을 향해 무수히 날아간다.
퍼퍼퍼퍽~!
뛰어난 강도 때문일까? 폭발하는 속도 때문일까? 둘 다 합쳐진 힘에 의해 현무 갑옷의 파편이 진월의 용린 갑옷을 파고든다. 동시에 엄청난 체구의 전철 부장이 허공을 나른다. 거대한 곰이 덤비는 것 같았다.
진월이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 슬쩍 손을 든 순간이다.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 일부러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닐까 착각을 하게 될 정도의 타이밍이다.
전철 부장은 전신에 힘을 돋워 그대로 진월의 흉갑을 들이받는다.
콰앙! 쩡!
“윽!” 진월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올 정도의 공격이었다.
용린으로 만들어진 흉갑에 금도 갔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콰곽! 전철 부장의 두 발이 대지를 파고든다. 착지하며 자세를 잡고 있다 느낀 순간 이미 그의 권은 진월의 옆구리를 파고든다.
쩡! 쩌적! 전철 부장의 권이 용린의 갑옷을 부수고 파고든다. 진월의 몸도 옆으로 크게 꺾인다. 그만큼 충격은 컸다. 진월은 그 순간에도 피하려 한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전철 부장의 한 손이 진월의 어깨를 이미 잡고 있었다. 진월은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하려 한다. 하지만 전철 부장이 한발 더 빨랐다. 그의 권은 이미 노출된 진월의 턱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콰아앙! 주먹 한방에 굉음이 터지고 대기가 떨린다.
하늘로 향한 전철 부장의 권에서는 영력이 폭발할 듯이 솟구쳐 오르고 있다. 저 기운이 모두 진월의 턱을 향해 집중되었다는 의미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머리가 사라지고 절명을 했을 공격이다.
진월도 충격이 컸을까?
그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려간다. 그런 진월을 향해 마지막을 날리겠다는 듯 전철 부장의 몸이 빛처럼 빠르게 쏘아져 간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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