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7 장 돌아온 자들
진월과 쉐인은 IUC측에서는 불청객이다. 하지만 블랙이 같이 있으니 제재를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없었던 두 달 동안의 일에 대해서 실장이란 자가 상세하게 브리핑을 했다. 진월은 뜻하지 않게 중간계에서 넘어온 여인의 얼굴 사진까지 얻었다.
쉐인의 능력이 다시 발동한다. 둘의 모습은 언제 있었냐는 듯 훅 사라진다. 실장이 신기한 듯 진월과 쉐인이 있던 자리를 한참 살핀다.
“저대로 보내도 되는 겁니까?”
“안 보내면?”
“나중에 징계라도 받을까 무섭습니다.”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과장님도 계시는데 설마요?”
“저 두 사람 중 한명이라도 내가 이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입니까?”
“우리와 맞서는 쪽에서는 거의 최강자들이야. 진월, 저 사람은 더 강해져서 돌아왔고. 이 사실을 회장님이 알면 어떨까?”
블랙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머문다.
“이 메모리 카드 내용 본부로 전송해. 그리고 내일 내가 본부로 직접 들어간다고 연락도 넣어놓고.”
“알겠습니다.”
“아! 하나 더 있다.”
“뭡니까?”
“저 레이저 철창. 한 세 겹 더 가져다 붙여.”
“네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실장은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중간계를 겪은 것은 블랙이다. 그녀가 필요성을 느꼈다면 꼭 설치가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 * *
한편 황군과 군장이 멀리 떨어져 있는 균열의 틈새를 보고 있다. 늙어서 그런지 멀리 있는 것은 정말 잘 바라보는 원시들이다.
“잘 갔겠지?”
“그랬겠지요.”
“그나저나 이제 좀 조용해지겠군.”
“엄청 조용해질 겁니다.”
“크크, 그렇지. 그 문제아를 보냈으니 말이야.”
“진월이 그놈 머리 좀 아프겠지요. 천방지축인 놈을 데리고 갔으니 말입니다.”
“한 이천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것 같네.”
“사악하십니다. 그러니 승천을 못하시지요.”
“나한테 승천은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지. 여기서 이렇게 누리고 사는데 굳이 저 높은 곳에 올라가 따까리 노릇 할 필요는 없잖아.”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원래 머리가 안 되면 손발이 고생을 하는 것이지. 바로 너처럼! 승천하면 누가 떡이라도 준다던?”
“뭘 모르시네. 제일 보기 싫은 사람 안 봐도 된다는 사실은 모르시나?”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구나. 네가 나를 득도에 이르게 하는구나.”
둘의 쇼를 보며 아케드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더 보고 있다가는 본인도 닮아갈까 두렵다. 휙 돌아서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꼴값들 한다.”
“뭐라?”
“어린 놈의 자슥이 어디서 주둥이를…….”
“어? 드라고가 떼로 날아갑니다.”
아케드의 말에 황군과 군장의 고개가 다시 균열로 향한다. 문제아 하나 보냈다고 좋아하면서도 사실 진월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 *
NSCT 본부 내 지하주차장에 빛무리가 번쩍인다. 보안팀과 통제실에서는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잔뜩 긴장한다. 더구나 그들의 중심축인 진월이 우울병 증상을 보이다가 실종된 지 두 달이나 지났다. 조직 자체가 잔뜩 침체기에 들어있는 상황이었다.
삐~ 삐~
바로 경고등이 들어온다. 훈련은 잘 되어 있다.
진월과 쉐인의 모습이 완벽하게 드러났다. 경고등을 울린 보안 요원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란 듯 한참을 살핀다.
“어? 팀장님?”
“그러면 나 말고 팀장 또 있나?”
“아, 아니요. 실종되셨다고 하셔서…….”
“실종? 바람 쐬러 다녀온 것도 실종인가?”
“두 달씩 되면 실종 맞습니다. 항간에는 산중에서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소설을 쓰는군.”
진월이 됐다는 듯 통제실 방향을 향해 돌아선다. 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선다. 쉐인이 멀어지는 진월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뭐야? 왜 안 따라와.”
“제가 따라가야 합니까?”
“같이 작전을 세워야 할 것 아니야.”
“왜, 왜요? 이건 완전히 제가 꼬봉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참! 살려준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데 말입니다. 힘 좀 세졌다고 눈에 뵈는 것이 없지요?”
“잘 아네. 뵈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못하지.”
진월이 씩 웃는다. 참 거절하기 힘들게 하는 미소다.
“그래요. 그래. 같이 갑시다.”
“아무래도 넘어온 여자가 마법을 다루는 것 같으니 당신이 전문가일 것 같아서 말이야.”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시겠다?”
“그렇지.”
“팀~장~!”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다. 급하게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도 요란하다. 엘리베이터로 오기에는 마음이 너무 급했나 보다.
콰앙! 비상통로의 문이 부서질 듯 열린다.
강희가 문을 박차고 나타났다. 진월을 보는 강희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다. 겉보기엔 선머슴 같지만 마음은 여자가 맞나 보다. 강희의 뒤를 이어 창민과 최탑도 나타난다. 진월을 보는 눈동자들에 반가움과 안도가 담겨 있다. 모두 당장에라도 진월이 손만 벌리면 달려들 태세다. 진월이 그들을 멀뚱히 보더니 한마디 한다.
“누가 죽었나?”
“…….”
“…….”
다들 침묵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강희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한다.
“으~! 이 화상아! 차라리 나가 죽어 버리지 왜 돌아왔어? 사람들 걱정하는 것은 모르고. 왜 취미야? 사라졌다 죽어서 나타나지를 않나, 행방불명되어서 두 달 만에 거지꼴로 나타나지를 않나. 잘 하는 짓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나가 죽어. 팀장이란 인간이 책임감이 없어. 책임감이!”
강희가 분노를 터트린다.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안에 담겨 있던 것을 다 토해냈는지 기운이 빠진다. 그녀의 곁에 언제 다가섰는지 진월이 서 있다.
진월의 두꺼운 손이 강희의 어깨를 두드린다.
“미안하다. 걱정 끼쳐서…….”
“히잉~! 나쁜 놈!”
“누나! 팀장님한테 너무 그러지 말아.” 창민이 말한다.
“멀쩡히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탑이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뒤로 또 한명의 인물이 뒷짐을 지고 조용히 서 있다. 하지만 얼굴은 붉은 홍시가 되어 터지기 직전이다. 진월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복귀했습니다.”
“푸헐~”
국장이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얼굴이 붉어진 이유가 숨을 참고 한달음에 달려오느라 달아올랐나 보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걱정을 할 분이 아니시지요.”
“썩을 놈!”
“멀쩡히 돌아왔으니 된 것 아닙니까?”
“네놈 때문에 내 수명이 한 십년은 줄었다. 쯧!” 못마땅함에 혀는 차도 얼굴에는 미소가 머문다. 어디 나가서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사라진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동안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둘 다 우선 씻기부터 해야겠다.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군.”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쉐인이 다름을 묻는다.
“그런 것을 보고 요새 도찐개찐이라고 하더군.”
둘은 두 말하지 않고 용모부터 단장하러 간다. 사실 진월의 경우야 상태가 말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방호복은 너덜거릴 정도로 잘렸고 얼굴에는 피와 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강물에 씻었다 해도 이틀 동안 쉴 틈 없이 싸웠으니 깨끗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진월이 쉐인의 손을 덥석 잡는다.
“가지.”
“저, 전 안 씻어도 되는데…….”
“내가 깨끗이 씻겨주지.”
“그, 그럴까봐 말입니다.”
쉐인의 말과 행동에 갑자기 웃음바다가 된다. 둘은 조직의 침체된 분위기를 나타나자마자 바꾸고 있었다.
* * *
광택이 나는 검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연후 회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는 블랙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다.
“고생했구나.”
“뭘요? 전 보조자 역할만 했을 뿐인걸요. 진월, 그 사람이 대부분 다 처리했어요.”
“허허, 그 자에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구나.”
“…….”
블랙의 시선은 창가에 서 있는 민서에게 향한다. 갑자기 진월 생각이 더 난다. 민서는 블랙을 슬쩍 본 후 다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뭔가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네가 가져온 메모리 카드의 내용은 모두 분석이 끝났다.”
회장의 곁에 있던 전철 부장의 음성이다.
“벌써요?”
“장비가 좋으니까. 그리고 보내온 혈액에 대한 분석은 지금 진행 중이다.”
“이제껏 우리가 얻었던 어떤 혈액 샘플보다도 뛰어난 유전자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분석 결과다.”
“다크 하이 엘프라고 하더군요.”
“다크 하이 엘프라…….”
“엘프의 변종 같았어요. 어둠에 물든 엘프 정도? 그 중 하이 엘프라 불리는 이들은 사람들로 치면 귀족 같은 종들이고요. 더 뛰어난 능력과 더 긴 수명을 지니고 있답니다.”
“그랬군. 어쩐지 두 샘플의 유전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니만……. 두 유전자의 차이점을 분석하면 뛰어난 능력과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찾아낼 수 있겠군.”
“대단히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얻었느냐?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면 얻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더구나 중간계 정도 되면 이쪽보다는 한 수 위의 실력들일 텐데 말이다.”
“그것도 진월, 그 사람이 한 거예요. 전 그 틈에 피만 슬쩍 했고요.”
“진월, 그 자의 능력이 그렇게 늘었나?”
“강화복까지 줬거든요. 능력도 좀 향상된 것 같았고요. 상대도 인간이 설마 하는 마음들도 있었겠지요.”
“그랬군.” 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간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느냐?”
“좋은 질의 샘플을 말하시는 거지요?”
“그렇지. 양이 아닌 질로.”
“더 좋은 것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제가 메모리에 담아 온 석판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인데요. 진월, 그 사람과 연관이 깊은 곳이더군요. 용족의 성이었어요. 그곳에는 그 다크 하이 엘프란 자조차 꼼짝 못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희가 이제까지 찾아온 석판을 수호하는 종족들 말이에요.”
“석판을 수호하는 자들이라…….”
“제 판단으로는 현재 저희가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회장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저도 모르지만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들 또한 결코 회장님의 아래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계를 구분하는 벽이 있었어요. 그 벽은 허락받지 않은 자들은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진월, 그 사람이 두 배나 강화된 능력으로 중첩의 힘을 여러 차례 더해 쳤지만 벽은 자가복원을 해서 멀쩡할 정도였습니다.”
“대단하군.”
“솔직한 심정으로는 신에 가까운 신선 정도의 수준이란 말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전설 속의 용을 보았으니까요.”
“용? 네 메모리 카드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없을 수밖에요. 이상하게 패드가 먹통이 되더라고요.”
“들을수록 구미가 당기는군.”
“저희 쪽으로서는 좋지 않은 정보랍니다. 진월, 그 사람. 그곳에서 그 용을 몸에 품었습니다.”
“…….”
“…….”
이연후 회장과 전철 부장, 두 사람 모두 침묵을 한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그들이 이계를 넘나들고 각종 몬스터들을 잡아 들였지만 신화 속의 신수들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거로도 모자라 몸에 품었다니 이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들의 의문을 해소해주기 위해 블랙의 음성은 차분하게 계속 이어진다. 그녀의 내뱉는 말 중에 유독 진월이란 이름이 많이 거론된다. 그때!
뜨등~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긁었을 때 마찰이 일어나며 나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의 시선이 유리창 쪽으로 향한다. 그곳엔 민서가 서 있다. 그들은 이야기에 심취해 있느라 몰랐지만 창문에는 진월이란 이름이 여러 개 쓰여 있었다. 민서의 작고 도톰한 입술이 벌어진다.
“진…월…!”
그리움에 사무친 음성일까?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는 붉은 홍염이 일어나 있었다. 민서의 눈빛을 일견한 블랙이 어지러운지 슬쩍 비틀거린다. 그 모습을 보던 이연후 회장의 웃음소리만이 실내에 울려 퍼진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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