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5 장 능력 되잖아.
최선을 다해준 것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을까? 아니면 큰 고통 없이 마무리를 지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지장은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진월을 향해 피하라고 말한다. 지장 본인의 수준을 알고 진월의 실력을 알면서도 피하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월도 그렇게 판단한다. 그 위력이 엄청난 폭발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했다.
진월의 시선이 육환장을 보고 있다.
피할 것인가? 아니면 막을 것인가?
찰나의 고민이 진월의 뇌리를 지배한다.
진월이 육환장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한다. 군에서 특수전 전문이었으니 폭발물에 대한 조예도 깊다. 육환장의 환이 달린 위부분에서 신관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폭발물은 대부분 하단에 몰려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이런 경우는 특별한 신관 장치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신관만 날려버리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사일의 경우가 그랬다. 신관이 작동 불능이 되면 폭발하지 않고 불발탄이 생기는 경우다. 제작자가 장난을 쳐서 신관이 파괴되면 무조건 폭발하도록 만든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위의 경우와 같았다.
문제는 육환장의 재질 자체가 아다만타이트와 미스릴의 합금이다. 그것을 폭발시키기 위한 폭발물이라면 그 위력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폭발의 파급효과가 수백 미터는 미칠 것이란 예상도 언뜻 가능했다. 진월은 여기서 폭발을 할 경우를 상정해 본다. 나무가 많은 숲이다. 그 불길로 인해 가까운 주택지가 큰 피해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상황은 피할 수 없다로 결론 내려지고 있었다.
IUC는 이런 것조차 노렸을까? 지장이 만약 시가지 안에서 죽게 된다면 어떤 피해가 생길 것인지를 알면서도 만든 것이다. 도덕적으로 용인 받지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지장 정도를 제거하려면 사실 진월 이외 상대가 될 만 한 자가 몇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지장의 죽음은 필히 상대편의 중요한 전력의 손실을 야기하게 만드는 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진월의 손이 육환장을 향해 들린다.
스르륵! 거대한 용린의 칼날이 만들어진다.
용린의 칼날에는 세 가지 빛깔의 영력이 오묘하게 뒤섞인 영강이 덧씌워져 있었다. 대결 중에도 자르려 했지만 잘리지 않았던 육환장이다. 물론 그때는 제 몸집을 크게 부풀린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신기한 현상이었다. 아마도 양자에너지를 이용한 구현화의 기술이 접목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로 진월이 영력을 구현화 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가능성이 높았다.
진월의 두 손이 검을 쥐는 자세를 취한다. 용린의 칼날에서 손잡이 형태가 만들어지며 진월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칼날이 닿을 위치를 한번 가늠한 진월의 신형이 세차게 휘돈다.
후웅~
칼날이 대기를 가르며 360도 역으로 회전한다. 진월이 몸을 휘돌리며 칼날에 모든 힘을 싣고 있었다. 검은 빛살이 진월의 주변으로 검은 원반을 만든다. 드문드문 금빛과 백색의 줄무늬가 보인다. 꼭 토성의 띠를 보는 것 같았다.
용린의 칼날은 어느새 진월의 곁에 세워져 있다. 칼날이 지나친 것은 분명한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칼날이 스쳐지나간 부분으로 추정되는 곳에 흰색의 선이 생긴다. 그 흰빛이 주변으로 퍼져 나온다.
폭발하는 것일까?
IUC는 신관에 조차 장난을 쳐놓은 것일까? 폭발 시간의 임박을 알리는 경고등은 점점 더 붉은 빛을 향해 달려간다.
번쩍!
침묵이 흐른다.
탱강! 짤랑~
육환장의 머리 부분이 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그에 맞춰 지장의 눈도 완전히 감긴다. 피가 흥건한 그의 입술이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진월은 육환장의 앞에 가서 선다. 잘린 부분에서 스파크가 약간 튀고 있었다. 언제 폭발한다고 해도 의심스럽지 않을 상황이다. 진월이 잘린 부분을 비교하며 관찰한다. 그가 자른 부분은 기폭제의 바로 위였다. 조금만 더 내려갔다면 폭발했을 가능성이 정말 높았다.
“운이 좋았군.”
진월은 간단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기폭제를 통째로 뽑아낸다. 그의 영력의 불길에 갇힌 기폭제가 허공으로 떠오른다.
콰앙! 영력의 불길 안에서 기폭제가 폭발하며 사라진다.
[폭발하면 어쩌시려고······?]
창민이 이제야 말을 건넨다. 그 또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지는 않았겠지.”
[그건 모르는 거잖습니까?]
“모르지. 그러고 보니 폭약이 신물질인 것 같은데?”
[가져오시면 분석 의뢰하겠습니다.]
“······.”
콰광! 산 아래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진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한다. 쉐인의 능력을 알기에 도주하는 아크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도주하는 아크는 상당히 지능적이었다.
몸을 날리는 아크의 양손이 주변의 주택을 향한다. 검붉은 불길이 일어나며 그의 손에서 마력탄들이 쏘아져 나간다. 마력탄이 건물에 작렬하며 폭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루루루~
시멘트 골조로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분명 성치 못할 정도의 파괴다. 이동하던 쉐인은 어김없이 그런 건물 앞에 선다. 심지어 아크의 전방을 막아섰다가도 다시 되돌아간다.
“베르카나(Berkana)!”
“잉구즈(Inguz)!”
재생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룬어다. 쉐인의 영창과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는 초록빛과 노란빛의 마력이 뒤덮인다. 무너져 내리던 건물이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처럼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 또한 죽지만 않았다면 상처가 회복되며 낫고 있었다. 시끄러운 폭발음과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집들마다 하나씩 불이 켜진다.
쉐인의 인상은 점점 더 구겨진다.
“저 인간이······.”
[인간이 아닙니다.] 창민이 지적해준다.
“······.”
쉐인이 짜증이 나는지 블루투스를 빼버리려 한다. 그때 건물을 막 복원시킨 쉐인의 고개가 확 돌아간다. 엄청난 마력이 허공에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솟아오른 아크의 발밑에는 특유의 마법진이 형성되어 있었다. 검붉은 불길이 솟아오르는 마력진에서는 무수한 마력탄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다. 마치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쉐인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이 쩍 벌어진다.
“젠장!”
[잘 막아 봐!] 진월이 명령조로 말한다. 진월이 있는 곳에서도 아크의 마법진과 마력의 불꽃은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진월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이 쉽지. 저걸 어떻게 다 막습니까?”
[능력 되잖아.]
“쓰벌!”
[합치더니 욕만 늘었군.]
“케나즈(Kenaz)!”
쉐인의 첫 번째 영창이다. 그의 손에는 붉은 불길이 피어오른다.
“에이화즈(Eihwaz)!”
두 번째 영창에 붉은 불길에 파란 빛이 감돈다. 불길은 더욱 더 강해진다. 동시에 쉐인의 발밑에도 룬문자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형성된다. 금빛 찬란한 마법진이다. 아크의 마법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쉐인의 손에 들린 마력의 불길에는 케나즈의 상징인 횃불과 에이화즈의 뜻인 최후의 승리를 기원하는 힘이 깃들었다. 마력은 두 개의 스펠을 통해 중첩되며 강력해진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인 마력의 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붉은 불덩이들을 향해 세차게 날아간다. 그 모습이 마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떨어져 내리는 탄도미사일의 신관을 노리고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그런데 숫자가 부족했다. 아크가 날려 보낸 마력탄의 숫자가 더 많았던 것이다.
“라이도(Raidho)!”
이동과 규율에 관계된 스펠이 전개된다. 쉐인의 신형이 번쩍 빛을 발하며 사라진다. 아마도 그가 커버하지 못한 마력탄이 날아드는 곳을 향해서 움직인 것 같았다. 무작정 쏘아 보낸 마력탄과 그것을 맞춰 파괴하기 위해 쏘아 보내는 것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한 공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정신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콰과과과광~ 하늘에서는 불꽃축제가 벌어진다. 오묘한 빛깔의 마력탄들이 서로 부딪치며 하늘에는 나타나지 말아야 할 오로라들까지 등장하고 있었다.
지상에서도 폭음이 발생한다.
진월도 언제 도착했는지 쉐인이 커버하지 못한 마력탄을 쳐내고 있었다. 아크를 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우선은 민간인의 안전이 최우선 조건이었다. 쉐인 또한 이동한 후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떨어지는 검붉은 마력탄을 그의 패트리어트 마력탄으로 쳐낸다.
“재밌군.”
아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도주할 생각을 포기했는지 공격을 한 이후에도 그대로 떠 있었다. 아니면 여유가 있는 것일까?
“저자들의 약점이 이것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아크의 몸에 빙의한 혼미스트가 물었다.
“역시 당신 말을 듣기를 잘했군.”
“정의로운 척 하는 인간들이 하는 짓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크크! 그렇군.”
아크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웃고 있다. 그러다가 진월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진월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크의 시선이 급하게 산 쪽으로 움직인다. 그의 시력 또한 뛰어났다. 황폐화된 산등성이에 지장으로 보이는 자가 파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크윽! 저 자가······.”
어차피 잘 안될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너무 빨랐다. 아크의 몸에서 검붉은 불길이 더욱 더 크게 피어오른다. 지장과는 정이 많이 들어 있었다.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 보니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었다. 그런 그가 먼저 떠나버린 것이다.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혼미스트가 흥분한 아크를 진정시키려고 한다.
“알고 있소. 하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소.”
아크의 손이 허공을 향한다. 그의 손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던 검붉은 불길들이 소용돌이치며 몰려든다. 아크의 손바닥이 태풍의 눈처럼 보인다. 모여든 기운의 크기가 집채만 한 크기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쩌적! 쩍!
검붉은 불길의 거대한 마력탄이 주변의 대기를 불태운다. 집채만 한 마력탄이 지면에 떨어질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마을의 블록 하나는 쑥대밭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력탄이 향하는 곳 또한 진월이 있는 곳이다. 아크는 지체하지 않고 진월을 향해 던졌다. 진월이 있는 곳 또한 마을의 건물들이 있는 곳이었다. 진월이 피한다면 그곳은 지상에서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좀 막아 보지?” 진월이 쉐인에게 말한다.
[진월 팀장은 뭐하고요?]
“따로 할 일이 있어.”
“무슨······?” 쉐인은 어느새 빛을 번쩍이며 진월의 곁에 나타났다.
“저놈, 이걸 우리한테 던져 놓고 사라지려고 해.”
“차라리 제가 방해를 하는 것이······.”
뿌득! 후웅~!
쉐인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진월이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른다.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최초 도약의 탄성은 순수한 근력의 힘이다. 이후 영력으로 반동을 만들어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그의 등 뒤로는 마치 타천사처럼 시커먼 색의 날개가 형성되어 대기를 휘젓는다. 전신으로는 순식간에 용린의 갑옷이 뒤덮인다. 진월에게 깃든 흑천의 힘이 구현화 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쉐인이 투덜거린다.
“자기도 날 수 있으면서 꼭 나를 교통수단으로 써요. 에이~! 쓰~ 젠장할!”
욕을 하려던 쉐인은 황급히 손을 들어올린다. 아크가 날려 보낸 마력탄이 바로 머리 위까지 접근해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아~
쉐인의 발밑에 형성되어 있던 마법진에서 솟아오르는 마력과 충돌하며 괴음이 터진다.
쿠쿵! 두 에너지의 충돌에 의한 충격파가 아래로 향한다.
드드드드~ 건물들이 마치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잘게 떤다.
쉐인이 집채만 한 마력탄을 떠받치며 이를 간다.
“으득! 괴물 같은 것들!”
[···것들은 맞네요. 쉐인까지 포함해서······.]
창민이 힘들어 보이는 쉐인의 푸념에 동조해준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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