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 장 도주? 함정?
쉐인이 사람들을 모은다. 넓은 범위로 퍼져 있으면 그도 순간 이동을 시키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주지사항도 언급한다.
“싸우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장소로 바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이동 중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걸로 인생 마감해야 하니 말입니다.”
“빨리 가기나 해요.” 강희가 재촉한다.
“가장 안전한 장소로 갈 겁니다.”
“남자가 정말 말 많네. 높은 공중만 아니면 되지. 뭐가 걱정인데요.”
“…….”
강희가 자꾸 핀잔을 주자 쉐인이 입을 다문다. 지금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진월 포함 최탑과 강희뿐이다. 쉐인이 입을 다문 채 룬어를 허공에 쓴다. 이동과 규율에 관계된 룬어인 라이도(raidho)가 붉은 색으로 허공에 써진다. 진월이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연다.
“어디로 이동할 것인지 정도는 알려 주지 그래?”
“높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지요.”
“이 인간이…….” 강희가 소리친다. 강희의 그 뒷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미 통제실에서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아산호 위에 빛무리가 생긴다. 쉐인에 의해 순간 이동된 진월 일행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희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시선의 높이가 분명 허공이기 때문이다.
“젠장!”
강희의 음성과 동시에 그들의 몸은 떨어져 내린다. 떨어지지 않는 자는 쉐인 뿐이다.
최탑은 이미 빠질 준비를 마쳤다. 강희는 쉐인을 올려다보며 소리친다.
“이 꽉 물고 기다려!”
“데려다 준 것이 어딘데 저러실까?”
쉐인이 능글맞게 대꾸하며 피식 웃는다.
진월의 몸에서는 영력의 불길이 일어난다. 금빛과 담흑빛의 영력이 타오르는 불처럼 일어나더니 주변으로 퍼진다. 영력의 불길이 거대한 날개처럼 펼쳐진다. 진월의 신체 또한 강화 과정을 순간적으로 거친다. 그의 손등에 드러난 굵은 혈관만 보더라도 팽팽하게 긴장한 근육을 느낄 수 있었다.
타탁! 강희와 최탑의 뒷덜미가 진월의 손아귀에 잡힌다.
그 모습을 보던 쉐인이 입을 벌린다.
“어? 그러면 안 되는데…….”
쉐인의 손에서는 이미 흰빛의 빛이 번쩍이며 허공에 알기즈(algiz)란 룬어가 새겨지고 있었다. 보호를 뜻하는 룬어로 사슴뿔 모양의 글자다. 말은 싸가지 없이 했지만 사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주문을 걸어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빗나가고 있었다. 진월이 두 사람의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등 쪽에 만들어진 영력의 날개로 뒤쪽 공간을 후려친다.
쐐액~ 최탑과 강희를 잡은 진월의 몸이 빛살처럼 앞으로 뻗어나간다. 점점 하강하는 모양새가 비행기가 착륙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쉐인은 그 모습을 보며 멍해져 있다. 그가 만든 보호의 구는 애꿎은 수면만 때리고 사라진다.
진월의 발이 지면과 맞닿는다.
콰드드득~
지면에 두 개의 긴 도랑이 만들어진다. 최탑과 강희 또한 뒷목의 구속이 풀리자 속도를 죽이기 위해 바닥을 구른다. 진월은 착지한 후 전방을 주시하며 들으라는 듯 말한다. 쉐인을 향한 말이다.
“이는 확실히 꽉 물어야 할 것 같군.”
“…….”
언제 나타났는지 곁에 있던 쉐인은 침묵한다. 맞을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에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가 지체한 시간이 불과 3분 정도나 됐나요?”
“그랬지.”
“정말 빠르네요.”
“정리하고 빠지는 데는 도가 튼 자들이니까.”
헬기는 이미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쉐인이 쫓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분명 준비도 없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눈앞에 펼쳐진 현장부터 정리해야 할 때였다.
“최탑과 강희는 내부를 살핀다.”
“네.”
강희와 최탑이 시설 내부를 향해 움직인다.
진월과 쉐인은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현장을 살핀다. 그들의 눈에 유독 띠는 물체가 하나 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거한이다. 코와 입에서 허연 냉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으로 봐서 죽지는 않았다.
쉐인이 거한의 뒤쪽을 보며 말한다.
“여자는 없군요.”
“잡아갔나 보군.”
“핏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부상을 당한 것 같은데요.”
“처음 보는 무기였을 테니 방비책을 몰랐겠지.”
진월은 답을 하며 거한의 상태를 살핀다. 숨은 붙어 있지만 가슴 부분에 파열된 상처가 보인다. 고도로 강화된 육체를 지녔지만 블랙이 지근거리에서 진공파를 터트리자 내부에서부터 부서진 것이다. 만약 제창협이 뒤에서 구속을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고 흘려낼 수도 있었다. 제창협의 구속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타고난 막심의 신력과 능력이 가미되었음에도 풀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 구속을 풀기 위해 신경을 쓰다 보니 블랙에게 힘없이 당한 것도 있다.
퓩~ 진월이 큐어 한방을 놓아준다.
“커억~”
막심의 숨통이 트이는 소리가 들린다.
진월은 막심의 곁에 떨어져 있는 물체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사람의 손이 떨어져 있었다. 손 자체가 통통해 보이는 것이 주인이 뚱뚱한 자 같았다. 막심의 두 손은 다 붙어 있으니 주인은 다른 자라는 뜻이다. 진월이 고개를 갸웃한 이유는 손목 부위에 보이는 금속과 전선들 때문이다.
“인조인간이라도 만들었나?”
“그러게 말입니다.”
진월이 잘려 있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진월이 보고 있는 장면은 창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창민이 손에 있는 지문을 분석한다.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사실 기계로 만들어진 손에 인조피부만 씌워져 있는 것이니 지문이 나올 리가 없었다.
“크으! 당신들은……?”
“정신이 좀 드나 보군.”
“이, 이리나는?”
막심은 정신이 들자마자 이리나부터 찾는다.
“잡혀간 것 같다.” 진월이 대답해 준다. 쉐인은 신기한 듯 진월을 본다.
“러시아어도 할 줄 압니까?”
“조금.”
“인재야. 인재!”
쉐인은 깔수록 양파 같은 진월에 감탄한다. 사실 특작요원이기에 몇 개 국어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진월이 드러내지 않아서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막심이 아직 덜 회복된 몸을 일으키려 한다.
“구, 구하러 가야 한다.”
“이미 떠나고 없다.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도 찾아봐야 한다.”
“아직 근처에 있다.”
“……?”
진월이 이마를 구기며 막심을 본다. 일어서자 진월보다 손 하나는 더 있는 거구다. 무조건 근처에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아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알 수 있지?”
“그 애와 난 힘으로 연결되어 있다. 근처에 있다면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점점 멀어지고 있다. 빨리 쫓지 않으면…….”
“방향과 거리는?”
“내가 간다.”
“이러고 있는 중에도 멀어질 텐데…….”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그때 따라오면 된다. 아니면 이 자가 남아서 당신과 같이 움직일 수도 있다.”
진월이 쉐인을 가리킨다. 주지사항도 준다.
“아마 당신 정도 체력이면 회복되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
진월의 말처럼 막심은 몸에 점점 더 활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생각도 든다. 몸을 회복시켜 준 자이니 우선은 믿고 보는 것이 맞았다.
막심의 손이 마안산 너머를 가리킨다.
“창민, 그쪽 방향에 의심되는 것 보이나?”
창민은 도주로로 활용될 수 있는 모든 도로를 뒤진다. 시골 길이기에 CCTV도 많지 않아 자료는 많지 않았다. 잠시 후 창민의 음성이 들려온다.
“39번국도 교통감시카메라에 두 대의 험비와 비슷해 보이는 승합차가 보입니다. 현 상황에서는 가장 의심이 가는 차량들입니다.”
차량 두 대가 줄줄이 가는 모습이 보인다. 험비같이 생긴 승합차로 단단해 보이는 차량이다. 아니 오히려 험비의 업그레이드 판 같았다. 장갑은 더 두꺼워 보이고 전체적으로 더 단단해 보이는 모습이다. 색깔이 검고 일반 자동차처럼 도색이 되어 있을 뿐이다.
“누가 타고 있는지는 파악 안 되나?”
“선팅이 너무 짙습니다.”
“별 수 없군.”
진월이 달려 나간다. 아니 몸을 날린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마치 치타가 최대 속력으로 지면을 박차고 나가듯 진월의 몸 또한 탄성을 지닌 채 앞으로 치고 나간다. 차량은 길을 따라 가야 하지만 진월은 길을 따라 갈 필요가 없다. 39번 국도가 가로로 지나간다면 진월은 세로로 달려 나간다.
그 모습을 보던 쉐인이 투덜거린다.
“결국 나한테 짐을 맡겨놓고 본인은 즐기러 가는구만.”
“짐?”
“뭐, 뭐야? 한국말 할 줄 아는 겁니까?”
“아~주 조금!”
“재수가 없으려니…….”
“재수?”
“헉!”
쉐인은 막심이 아는 몇 개 안되는 단어를 계속 썼다. 막심의 몸에서는 냉기가 풀풀 풍겨 나오고 있었다.
편도 2차선의 국도에는 그렇게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지는 않는다. 그만큼 속도를 내기도 좋다는 뜻도 된다. 군용처럼 생긴 차들이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는 되는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느리게 가는 차들을 추월하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두 대의 차에는 창민이 예상한 것처럼 블랙 일행들이 나눠 타고 있었다. 앞선 차에는 백동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급하게 운전을 하던 백동이 뭔가 궁금한지 블랙을 향해 묻는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있던 것이 확실합니까?”
“통제실에서 한 말이니 맞겠지.”
“그러면 우리가 잡아온 여자애 때문에 장소가 들통 난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그 창민인가 하는 녀석이 처음부터 그들을 추적했다고 보면 답은 금방 나오니까.”
“저들도 기술이 많이 늘었군요.”
“우리와 자꾸 접촉을 하다 보니 그런 것도 있어.”
“전쟁을 하면 10년 걸릴 기술 개발이 1년 만에 이루어진다더니 딱 그 꼴이군요.”
“그렇지. 그런데 저 여자애…….”
블랙이 말을 하다 만다. 궁금했다. 성배와 검이 있는 장소를 알고 바로 찾아왔다. 그것도 성배와 검에 대한 분석이 모두 끝나서 보관 장소로 옮긴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어떻게 보면 IUC 내부에서 정보가 샜다고 의심을 해도 될 정도다.
백동은 블랙이 말을 하다 말자 더 궁금해진다.
“여자애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지. 물건은 납으로 차단시킨 것이 맞겠지?”
“네. 이중으로 처리하도록 이미 조치해뒀습니다.”
블랙이 귀를 살짝 만진다. 소형 블루투스가 있는 곳이다.
“창협! 여자애는 어떻지?”
[잠들어 있습니다. 상처는 얼어붙어 손을 쓸 수도 없습니다.]
“그래? 네 손목은?”
[여분이 있어 손을 봤습니다.]
제창협의 두 손 중 하나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원래 손보다도 훨씬 컸다. 제창협은 어울리지 않는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펴본다. 움직이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블랙의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
“수고 좀 해줘야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통신이 종료된다. 제창협은 두 대 중 뒤를 따르는 차에 타고 있었다. 이리나 또한 뒤차에 실려 있었다. 백동이 블랙에게 묻는다.
“굳이 여자애를 잡아올 필요가 있었을까요?”
“명령이니까.”
“그랬군요.”
“미끼로 쓸 수도 있다. 시험해 볼 것도 있고 말이야. 그러려면 되도록 멀리 가야지. 더 밟아.”
“네.”
블랙은 서류가방 같이 생긴 기다란 케이스를 쓰다듬는다. 길쭉한 것으로 봐서 검인 것 같았다. 성배가 들어있을 것 같은 케이스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헬기로 실어 보낸 것 같았다. 둘 중 하나라도 지키기 위한 양동작전처럼 느껴졌다.
진월이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진월의 블루투스로 창민의 음성이 들려온다.
“21번 국도를 타고 예당저수지 방면으로 향합니다.”
“거리는?”
“약 3분 뒤 교차 가능합니다.”
진월이 달려온 거리만 벌써 30킬로가 넘는다. 그럼에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정말 괴물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벌써 산을 몇 개 넘었는지 알 수 없다. 진월의 시선에 검은 빛깔의 차 두 대가 달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월이 몸을 날린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7권 분량 시작 부분입니다. 많이 달려왔군요.
이 글은 8권 분량까지입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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