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 장 몽타주를 만들 필요가 없다.
박지환 의원이 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경호원들은 앞좌석에 앉아 있다. 수행비서는 의원의 옆에 앉아 있다. 수행비서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수신 측에서 전화를 받자 스피커폰으로 전환을 한다. 그 다음 행동이 더 재미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 박지환 의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마치 그들의 대화를 누군가가 듣기를 바라는 행동이다.
“들어가신 일은 잘 되었습니까?”
“잘 됐네. 감사를 하기로 했지.”
“회의록에도 모두 남았겠군요.”
“그렇지. 정 의원이 당에 보고를 한 후 감사 준비를 하게 될 것일세.”
“그러면 NSCT의 감사는 언제 진행되는 겁니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수일 내로 진행되겠지.”
박지환 의원이 어둠이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이 차창에 비친다. 무심코 얼굴에 시선이 간다. 자신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춘다. 약간은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괴리감을 느낀다.
‘뭐지?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의문을 느낀다.
“젠장!”
갑작스런 경호원의 음성이다. 운전을 하던 경호원이 갑자기 앞에 나타난 뭔가에 깜짝 놀란 모양이다. 의문을 느끼던 박지환 의원도 상념에서 깨어난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의 음성이 들린다.
“도로 상에 웬 남자가……?”
“미쳤군.”
빵~ 빠방~ 자동차 경적이 크게 울린다.
어둑해지는 시점이라 보였던 순간부터 사람의 모습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십여 미터가 남은 지점임에도 도로 상에 있던 남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끼이이익~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바닥에는 스피드 마크가 그려진다.
휙! 남자가 날아오른다.
마치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알았다는 듯 그 순간 뛰어올랐다. 뛰어오른 남자가 떨어져 내린다. 자동차 보닛 위로 착지한다.
쿠웅! 보닛이 움푹 파인다.
차 또한 출렁거린다. 급정지를 한 효과에 남자가 보닛을 찍어 누른 충격까지 더해져 운전석과 조수석은 에어백이 터졌다. 경호원들이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닛을 밟고 선 남자의 손이 전면 차창과 차 지붕이 연결된 지점을 파고든다.
콰곽! 우두두둑~
차 지붕이 마치 납판처럼 뜯긴 채 들린다. 엄청난 괴력이 아닐 수 없다.
차 지붕이 뜯기자 내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경호원들은 에어백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뒤쪽에 타고 있던 박 의원과 수행비서는 앞으로 쏠렸던 몸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찰칵! 금속음이 들린다.
남자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다. 낯이 많이 익은 권총이다. Glock 17이다. 9밀리로 탄창 하나에 17발까지 들어간다. 권총을 빼든 남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타타타탕~ 네 발의 총성이 밤하늘을 울린다.
타앙! 마지막 한 발을 더 쏜다. 확인 사살을 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남자는 사격이 끝나자 볼 일 다 봤다는 듯 돌아서서 뛰어간다. 그 속도 또한 놀랍기 이를 데 없다. 남자가 사라진 도로 상에는 정적만이 흐른다. 지나가던 차들이 하나 둘 멈춰 선다. 일이 벌어질 때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던 차들이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 누군가 신호등까지 조작해서 박 의원의 차만 통과시킨 것 같았다. 너무나도 계획적인 범행이다.
사람들은 도로 한 중간에 멈춰선 차를 확인한다. 어떤 이들은 구토를 하고 어떤 이들은 전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밤중에 도로 상에 네 명의 남자가 미간에 총을 맞은 채 죽어 있었다.
* * *
경찰이 현장에 도착을 했다. 사고 현장을 수습 중이다. 구급차와 기자들까지 얽혀 있어서 교통의 혼잡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형사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신원은?”
“박지환 의원입니다.”
“뭐라고? 국회의원?”
“네. 맞습니다.”
“허! 무슨 간첩이라도 침투한 거야? 어떻게 시내 한복판에서 경호원까지 딸린 국회의원이 암살을 당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도 도로 상에서.”
“차 보닛에 난 발자국 보십시오. 차 지붕도 힘으로 뜯겼습니다. 그리고 빵!빵!빵!빵! 나머지 한 발은 저기 있는 스마트폰을 맞췄습니다.”
“명사수군. 그런데 약이라도 먹은 것일까?”
“아무리 약을 먹었다고 저게 가능합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최근 지침 사항 기억나지? 이해 불가한 건들은 감찰부로 연락하라는 것 말이야.”
“네. 기억합니다. 저 아는 형님도 그런 건 하나 처리했다고 하던데요. 연락하면 멋지게 생긴 사람들이 나타나서 사건 가져간답니다.”
“이 건 이해불가 건이지?”
“그렇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넘겨야지요.”
“그렇긴 하다. 살인사건은 확실한 것 같고, 현장 파악도 끝났고, 지문은 과학반 애들이 뜬 것 같고, 뭐가 남았나? 그러고 보니 블랙박스는?”
“그게 참 희한합니다.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블랙박스를 처리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요.”
“그래? 작동은 되고 있었나?”
“네. 지금 형석이가 보고 있습니다.”
후임 형사가 가리킨 곳에는 승합차 한 대가 서 있다. 과학수사 마크가 붙어 있는 차다. 뒷문이 열려 있다. 형사 하나가 그곳에서 랩탑을 통해 뭔가를 확인하고 있다. 옆에 SD카드가 꼽혀 있는 것이 박 의원 차량에 있던 블랙박스 메모리를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형사가 형석이란 형사 곁으로 다가간다.
“뭐 좀 나왔냐?”
“괴물인데요. 그런데 이 옷은 군복인가요? 좀 특이하네요. 색깔만 얼룩이면 군복하고 거의 비슷할 것 같은데요.”
“어디 좀 보자.”
두 형사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한다. 그곳엔 거구의 사내가 차 지붕을 뜯고 있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블랙박스의 화질이 좋아 얼굴까지 자세하게 보인다.
“몽타주를 만들 필요도 없군. 저놈 몸에도 총알은 박히겠지.”
“그, 그렇겠지요.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우선 본서로 전송해서 안면 인식 프로그램 좀 돌려보라고 해. 저 정도면 충분히 나올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형석이란 형사가 대답한다.
“감찰부로 연락을 해야 할까?”
“영상 보면 본서에서 결정하겠지요. 현장 정리하고 그만 들어가시죠.”
두 형사가 돌아선다. 모니터에 띄워진 범인의 얼굴은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다. 굵은 선을 가진 호남형의 미남이다. 바로 진월의 얼굴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 *
또각! 또각!
여인의 하이힐 소리다. 박지환 의원이 살해되고 있던 그 시간, 민서는 다른 곳을 걷고 있다. 그녀는 또 어디를, 누구를 향해 가는 것일까? 그녀가 걷고 있는 곳은 또 다른 고급 주택가다. 이미 박지환 의원을 이용해 NSCT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도록 현혹을 걸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박지환 의원은 진월로 보이는 남자에 의해 살해가 되었다.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으니 아직 알 수 없으나 민서는 그 다음 수순의 일을 벌이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멈추자 넓은 골목을 돌아서는 차가 보인다. 고급 관용차다. 차량 넘버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붉은 보드에 금빛 별들이 박혀있다. 군 장성이 타는 차다. 차가 멈추고 수행관들이 내린다. 여자 하나에 남자 하나다. 여자는 부사관, 남자는 위관으로 보인다. 뒷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재섭 중장이다. 아마도 국방위원회 회의가 끝나고 자택으로 돌아오는 중인 것 같았다.
“수고들 했네. 내일 보도록 하지.” 김 중장이 수행관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수행관들 또한 김 중장이 집에 들어설 때까지 기다린다. 그때 여인의 옥음이 들려온다.
“김재섭 중장님이신가요?”
“……?”
모두의 고개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한다. 어둠 속이지만 날씬하고 큰 키에 멋진 체형을 지닌 여인이 말을 걸었다면 사람들은 우선 의심을 지운다. 물론 같은 여성이라면 다르다. 여인인 부사관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난다.
“무슨 일이시지요? 늦은 밤의 갑작스런 방문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알고 있답니다.”
민서의 알고 있다는 답에 부사관이 움찔 한다. 이미 민서의 현혹은 펼쳐졌다.
“좀 천천히 하려했는데 암고양이 하나 때문에 용건만 간단히 하지요.”
“…….”
모두 마치 뭔가에 홀린 듯 굳어 있다.
“김재섭 중장님!”
“예.”
“제6군단에 5기갑 여단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기갑 여단 휘하에 특수 부대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단장 휘하에 최근 창설한 부대가 있긴 합니다. 아직 작전에 부합하는 성능을 갖췄는지 시험 운용 중입니다.”
“있는 것이 맞긴 하군요.”
“그렇습니다.”
“어떤 부대지요?”
“AP-025로 불리는 프로토 타입의 기동 장갑 부대입니다.”
“맞네요. 주기준 여단장에게는 이미 말을 해놓았답니다. 제가 필요할 때 연락을 드릴 겁니다. 그때 출동을 시켜주시면 된답니다.”
“알겠습니다.”
의문이 생겨 묻거나 안 된다는 답변 한 번 없다. 그만큼 민서의 현혹은 무서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 품에다 꼭 간직하세요. 내일 당장 그 사진을 여단장 휘하의 그 부대에 전해주세요. 어차피 수배대상이 되겠지만 제가 먼저 전해 드리는 이유는 그 기동 장갑 로봇의 메모리에 직접 입력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랍니다. 그 사람에 대한 처리 조건은 나중에 전화로 연락을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연락드리는 건은 상부의 오더를 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단장님 독단으로 행하면 되는 작전이랍니다.”
“예.”
김재섭 중장이 철석같이 알았다는 듯 답을 한다. 민서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미소다. 민서의 예쁜 얼굴에 저런 미소가 맺힐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민서는 볼일 다 봤다는 듯 돌아선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김재섭 중장 이하 수행관들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봤다면 그들이 마네킹이라고 된 줄 알 정도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모두 동시에 눈을 깜박인다. 오랫동안 눈을 뜨고 있었는지 눈이 까칠하다. 다들 눈을 비빈다. 김재섭 중장이 목이 뻐근한지 한 바퀴 돌려본다. 그런 후…….
“다들 들어가지.”
“아! 네.”
두 수행관이 경례를 붙인다. 군인으로서의 예의를 차린다.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 행동이다. 김재섭 중장은 돌아서며 가슴에 손을 얹는다. 사진이 만져진다.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의 뇌리에 각인된 기억을 원래 자신의 기억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다.
* * *
뚜르르 뚜르르~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시간은 저녁 8시쯤 된 시간이다. 모두 퇴근하고 없는 시간에 전화벨이 울리는 사무실에는 누군가 앉아 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자가 전화를 받는다.
“네. 고명철 국장입니다.”
전화를 받은 이는 바로 NSCT의 고 국장이다. 상대방이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고 국장의 인상이 구겨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난 사건입니까?”
[저녁 7시 경입니다. 그 시간 이진월 팀장의 행적을 제출해주셔야겠습니다.]
“…….”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블랙박스에 찍힌 진월의 얼굴이 너무나 선명했기에 추적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진월이 용의자로 지목된 순간이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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