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 장 그녀는 소환술사?
찰칵! 탁!
목영호가 탄장을 바꿔 끼운다. 철갑탄이 들어 있는 탄창이다.
목표물과의 거리는 백오십 미터 정도. 목영호의 실력이라면 총을 어깨에 견착시키는 순간 목표물을 날려버릴 수 있는 거리다. 목영호의 얼굴이 굳어 있다. 상대가 아무리 인간이 아니고 중간계의 종족이라도 뭔가를 죽이는 것이 기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다.
라이플을 들어 천천히 내린다. 흔들리지 않게끔 벽 위에 고정을 시킨다. 조준경으로 눈을 가져다 댄다. 흑발 여인의 이마가 조준경의 십자 선에 걸린다. 검지를 방아쇠에 슬쩍 걸어 둔다. 당기기만 하면 끝이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이후 천천히 내쉰다. 숨을 삼분의 일이나 내뱉었을까. 더 이상의 호흡은 없다. 침묵만이 흐른다. 방아쇠에 걸린 검지가 서서히 굽혀진다. 마치 억겁의 세월이 가야만 끝날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진월의 낮은 저음이 블루투스를 통해 흘러든다.
[연사다.]
“…….”
타앙~ 목영호의 몸이 격발로 인한 충격으로 약간 밀린다. 하지만 눈은 조준경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자동 소총이기에 재장전의 필요성은 없다. 바로 이어서 검지가 다시 당겨진다.
타앙~
멀리서 울려오는 총성에 여인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시선이 움직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그녀의 얼굴 부위를 스쳐가는 물체도 있다.
퍼퍽! 총알이 박혔다.
“크아악!”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고통스런 음성이다. 여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이다. 손바닥에서는 하얀 연기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인이 손바닥을 펼쳐 쳐다보고 있다. 여인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것 같기도 했고 당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손바닥 안의 입술이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한다.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그 피를 따라 불길이 피어오른다. 철갑탄을 삼켜버린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었다.
여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바닥 안의 입술에게 말한다.
“그러니 조심해야 된다고 말했잖아.”
“크으! 입천장 다 덴 것 같아.”
목영호의 사격이 신호였다. 최탑의 전면에 그의 비도가 모조리 쏟아져 나온다. 강희는 이미 모습이 사라졌다. 몸을 회복하자마자 다시 능력을 발현했다. 진월의 큐어 덕분에 몇 번의 능력 발현이 더 가능해진 상황이다. 빠르게 움직이며 팔태신술의 태기지르기가 행해진다.
마명을 비롯한 조원들은 탄창을 철갑탄으로 갈아 끼운다. 적의 능력을 봤으니 더 이상의 봐줌은 없다.
쾅! 강희가 강하게 진각을 밟는다.
그녀의 권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웅후한 권력이 그녀의 주먹에서 느껴진다. 진월이 없던 두 달간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후우웅!
갑자기 바람이 느껴진다. 강희도 이미 느끼고 있다. 흑발 여인의 몸 주변으로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전에 대결해 본 적이 있는 블랙이 갑자기 생각날 정도다.
콰악! 진각을 밟았던 강희의 발에 힘이 들어간다. 뻗던 주먹은 그대로 뻗어나가며 목표를 바꾼다. 강하게 지르던 권이 마치 잽을 구사하듯 가볍게 툭 뻗어나간다. 하지만 소리는 가볍지 않았다.
콰앙!
“커억!”
손바닥의 입술에서 나온 신음소리다. 가벼운 잽은 바로 입술을 향한 공격이었다.
“투첼로스!” 흑발 여인이 깜짝 놀라 찢어질 것 같은 음성으로 부른다. 입술의 이름인가 보다.
“어쭈! 이름도 있어.”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해주마.”
“말로는 뭘 못해.”
꽈악! 강희가 입술이 달린 팔을 구속한다. 뒤로 확 꺾어버리는 것이 잘못하면 뼈가 어긋날 수도 있어 보인다.
우두둑! 팔이 꺾이며 괴음을 동반한다.
고통스러울 법도 하건만 흑발 여인의 표정에 변화는 없다. 오히려 주변에 더 강한 토네이도가 형성되고 있었다. 일어난 바람에 주변에서는 그 안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간다. 최탑 또한 강희가 안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다 비도를 던질 수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인이 그녀의 뒤를 점한 강희를 돌아본다. 붉은 눈빛이 더 강렬한 빛을 발한다.
“여기서 멈추면 용서해 줄 수도 있어. 그리고 나에게 오면 더 강한 힘도 얻을 수 있다.”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이곳은 척박해.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어. 그런데 혼자서는 재미가 없잖아.”
“재미없어서 사람을 죽였냐?”
“호호. 필요해서 죽였지. 네가 나에게 오면 그 사람 죽이는 짓을 좀 줄일 수도 있다.”
“알아서 진술까지 해주는 군. 그만 힘 빼고 순순히 나하고 같이 가지. 어차피 주둥이 놀리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사람을 죽이겠다는 뜻이잖아.”
“나도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렇게 너희 같은 자들과 싸울 일이 생기면 더 그렇게 되지. 당분간을 조용히 지내려 했는데 생각보다 능력되는 자들이 있나 봐. 꽁꽁 숨어 있는 나를 찾아내는 것을 보면.”
“시끄러!”
퍼억! 강희가 흑발 여인의 오금을 찬다. 여인의 무릎이 의도치 않게 꿇리게 된다.
무릎을 꿇게 된 여인이 피식 미소를 짓는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뭔가를 중얼거린다. 언제 깨물었는지 아니면 저절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피가 그녀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다. 내뻗은 그녀의 손앞에 피로 만들어진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려진 마법진을 본 강희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대로 주먹을 내뻗어 여인의 후두부를 가격한다. 하지만…….
우둑!
꺾여진 흑발 여인의 팔에 무시무시한 힘이 들어가며 뒤틀린 팔이 원래 위치를 찾아가는 소리가 난다. 엄청난 거력은 팔을 구속하고 있던 강희마저 당겨버린다. 강희가 지르던 권은 괜한 허공을 두들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여인은 팔을 구속하던 강희를 역으로 잡아 던져버린다.
강희는 엄청난 거력에 공중제비를 돌며 몸을 날린다. 몸을 바로잡기 위해 능력을 사용해야 할 정도다. 더구나 그들 주변에는 토네이도처럼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이 토네이도의 중심부이기에 조용한 상황이었다.
우드드득~ 강희가 바닥을 긁으며 중심을 잡는다.
흑발 여인이 강희를 보며 미소 짓는다.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다. 여유가 없다면 절대 보일 수 없는 모습이다.
“마법을 써서 체력이 약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에요. 전 특별한 마녀니까요.”
“마녀?”
“인간들의 기준으로 특정 짓자면 마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지만 그건 비밀로 하고요.”
여인이 말을 하다가 손바닥을 살핀다.
“많이 아팠겠구나. 우리 투첼.”
여인이 손바닥 안에 있는 입술을 쓰다듬는다.
“우리 투첼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피지요. 당신처럼 힘이 넘치는 피라면 절대 거절하지 않아요.”
“저년은 꼭 내가 먹는다.”
“아껴 먹어야지.”
“그럴 거다.”
“친구들을 불러주겠니? 네 몸을 나눠가진 친구들 말이야.”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라이아!”
여인의 이름이 투첼이라 불리는 입술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라이아가 흑발 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라이아의 손이 붉은 피로 만들어진 마법진으로 향한다. 바로 투첼이 기생하는 그 손이다. 원래부터 둘이 한 몸이었는지 아니면 투첼이 그라이아의 몸에 기생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둘은 원래 하나인 것처럼 뛰어난 협업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엑! 오오옥~”
투첼이 구역질을 하듯 뭔가를 토해낸다. 마치 소화전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튀어나온 조그만 흰색 물체들이 붉은 마법진을 향해 날아간다. 강희의 카메라를 통해 현장을 보고 있던 진월의 입에서 낮은 의문성이 흘러나온다.
“뼈?”
“네? 뭐라고요?”
매수 실장이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되묻는다.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화면에 흰 물체들이 확대되어 뜬다. 창민이 그의 시력으로 잡아낸 물체를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진월의 말처럼 정말 하얗고 조그마한 뼈들이다. 하지만 뼈들이 마법진 근처에 이르자 그 크기가 확 커지고 있었다.
흰 뼈들이 붉은 마법진을 관통한다.
툭 투둑 툭툭툭~
피를 뒤집어 쓴 뼈들이 바닥을 뒹군다. 모두 여섯 개다.
화악~ 붉은 화염이 뼈에 묻은 피에서 일어난다.
크게 일어난 화염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자들이 더욱 선명해진다. 검은 그림자가 흰 뼈로 변해간다. 형성된 모습은 일반적인 스켈레톤과 흡사했다. 다만 가죽 갑옷을 모두 갖춰 입었고 체격이 서로 달랐다. 붉은 화염을 뒤집어 쓴 것 또한 달랐다.
전방에 선 둘은 검사였다. 방패까지 착용하고 있어 검투사처럼 보였다.
그 뒤로 다른 해골들보다 한배 반은 커 보이는 전사가 서 있다. 전사의 뒤를 이어 궁사로 보이는 자 둘이 서 있다. 마지막에는 그라이아라 불린 마녀가 들고 있는 스태프와 똑같은 것을 들고 있는 메이지가 있었다.
“소환술사?” 강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요.”
“한 가지 더 있다는 비밀이 이건가?”
“에이 설마요. 이런 걸 비밀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말이 많으시네요. 우선 상대나 해보시지요. 전 당신의 실력을 구경할 테니 말이에요.”
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에 서 있던 두 본 마스터가 강희를 향해 달려든다. 뼈로 만들어진 해골들의 움직임이라고 하기엔 신속했다. 더구나 불길이 전신을 감싸고 있어 상대하기가 영 곤란했다. 강희는 견제 차원에서 회피를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눈과 몸으로 익힌다.
훅~ 후웅~ 불길이 붙은 검이 강희의 몸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친다.
강희가 권에 슬쩍 기를 불어넣는다. 정권에 박힌 검은 광석에 검은 기류가 휘돈다. 강희가 두 본 마스터의 검을 피하며 권을 지른다.
콰쾅! 굉음이 울린다.
강희의 권이 출발할 때는 보였지만 중간에 사라졌다. 그만큼 빠르게 질렀다. 그런데 그 공격을 방패를 들어 막았다. 물론 두 본 마스터의 방패에 실린 불길이 사라졌다. 방패의 중앙 부분도 정권에 의해 움푹 패여 있다.
쉬쉭! 날카로운 파공성이다.
강희의 몸이 빠르게 옆으로 구른다. 화염이 실린 화살이 강희가 있던 자리를 지나친다. 화살은 그대로 날아가 그라이아가 만들어 놓은 토네이도를 뚫고 나간다. 물론 바람에 막혀 원래의 진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밖에서 안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최탑 이하 대원들이 화염이 실린 화살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젠장! 들어가야겠는데요.”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냥 들어갔다가는 하늘로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데 방법 없습니까?”
“한번 해 보지.”
최탑이 앞으로 나선다. 그의 팔목에 채워진 토시에서 와이어를 잡아 뽑는다. 비도 중 뒤에 고리가 달린 것에 와이어를 묶는다. 최탑이 토네이도를 향해 와이어를 날린다.
슉! 비도가 토네이도를 뚫고 날아가는 것 같더니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로 휙 떠오른다.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최탑이 비도와 와이어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얼굴에 나타난다.
“이야압!”
최탑의 기합소리와 함께 비도가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최탑의 손가락이 땅을 향한다. 비도를 바닥에 박기 위한 동작이다. 비도에 바람의 저항이 느껴지지 않자 행한 동작이다.
이미 그라이아의 시선은 땅에 박힌 비도를 보고 있다. 뭐가 재미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연신 미소가 머물러 있다. 아예 자리까지 잡고 강희와 해골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감상 중이다. 화살을 막 피한 강희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 거대한 풍압이 그녀의 얼굴을 압박한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본 워리어가 이미 성큼 다가와 있었다. 본 아처들이 시선을 끄는 사이 접근한 모양이다.
성인 손바닥 넓이만한 불붙은 대검이 강희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