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 장 그러면 그 동안 우리 집은 감옥?
창민은 지금 매수 실장과 함께 만든 추적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고글과 전자장비가 달린 헬멧을 쓰고 작은 룸 안에 들어가 있다. 매수 실장이 창민이 수집하는 데이터를 모니터로 들여다보며 묻는다.
“창민아! 뭐 잡히는 것 없냐?”
“…….”
“왜 대답이 없어?”
“내가 낚시 하는 것도 아니고 잡기는 뭘 잡아요?”
“크음! 그럼, 특이한 것은 없냐?”
“없으니 이렇게 눈 빠지게 보고 있지요. 힘들어 죽겠구만.”
“그러니까 말이다. 이놈들이 요새 너무 조용한 걸.”
“뭔가를 꾸미고 있으니 조용하겠지요.”
“그러니 찾아보라고 하겠지요.”
“못 찾겠는 것을 어쩝니까?”
“…라고 내가 한마디 했었다. 팀장님한테…….”
“그랬더니요?”
“그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시더라.”
“에이~ 설마요?”
“그 양반 잘 하는 말 있잖아.”
“뭔데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그리고 내가 가져다 놓은 것 안 봤나보구나.”
“뭘요?”
“구석에 놔뒀다. 큰 것으로다가.”
“…….”
창민이 말이 없다. 고글에 표시되는 구석의 물체는 바로 페트병이다. 1.5리터짜리다. 최소한 두 번 이상은 쌀 수 있는 크기다. 창민은 어이가 없어 바람 빠지는 웃음을 웃는다.
“허~ 진짜 너무 하시네. 그러면 큰 것 보러갈 때는 어쩌라고요?”
“걱정하지마라.”
“뭘 걱정하지 마요.”
스으응~ 창민의 질문과 거의 동시에 통제실의 자동문이 열린다. 통제 요원 중 하나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다. 매수 실장이 그를 보며 반긴다.
“딱 때맞춰 들어오는구나. 사왔냐?”
“네. 여기…….”
물건을 건네는 요원의 표정이 가히 좋지는 않다. 창민의 고글에는 건네는 물건이 표시된다. 상품명과 회사이름까지 명확하게 디스플레이 된다.
상품명 : 피셔프*** 런투 유아변기
창민은 제품을 본 후 거품을 물 지경이다.
“이 씨…….”
“정신 건강에 해롭다. 진정해라.”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안 주는 것보다는 낫잖아. 안 줬으면 어쩔 뻔 했냐?”
“내가 이 짓을 그만두고 말…….”
스으응~ 통제실 문이 다시 열린다. 이번에는 익숙한 남자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통제실 안을 울린다.
“많이 힘든가 보군.”
“팀!장!님!”
“왜?”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뭘?”
“저 물건은 뭡니까?”
진월의 시선이 유아용 변기로 향한다. 하지만 그도 궁금한 모양이다. 진월 또한 아기를 키운 적도 없고 주변에서 아기를 키우는 집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본 적이 없는 물건이다.
“저건 뭐지?”
“팀장님이 시키셨다면서요? 나오지 말라고!”
“내가?”
“네.”
“내가 언제?” 진월의 반문에는 황당하다는 기색이 어려 있다.
“어?” 매수 실장은 진월의 반응에 당황스럽다. 하지만 진월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매수 실장의 심장이 갑작스럽게 강하고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죄지은 자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할 때의 증상과 같았다. 창민의 청력은 아주 좋다. 심장 소리의 변화 정도는 껌 씹는 정도로 잡아낼 수 있다. 문제는 진월이야 원래 철석간장(鐵石肝腸)이니 전혀 변화가 없다. 현 상황에서는 누가 의심스러운지 금방 드러난다.
“실장님?”
“어어…….”
매수 실장의 시선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진월과 창민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진월은 매수에게서 돌아선다. 그리고 걸어 나간다. 나가면서 조용히 주지만 준다.
“창민이 네가 날 모르지는 않지. 내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
“…….”
창민과 매수 실장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창민이야 진월이 진심어린 말을 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매수 실장이야 억울해도 항변할 길이 없다. 항변했다가 무슨 시련을 겪게 될지 그것이 더 두려워진다.
진월은 힘을 가진 자가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후 사라진다. 그리고 주지사항도 남긴다.
“그놈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는 반드시 찾아야겠지?”
“…….”
사람을 정말 혼란스럽게 만드는 발언이다. 일에 대한 강요를 남기는 것을 보면 분명 강조한 것 같기도 했다. 매수 실장의 반응도 그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다만 입을 벌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앞에 놓인 유아용 변기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분해서 일까? 아니면 억울해서 일까? 통제실 안은 한참동안 침묵만이 유지된다.
* * *
콰과광~
인천 부두에 쌓여 있던 컨테이너 중 일부가 폭발하듯 터져 나간다. 부두에서는 비상음이 울리고 보안카메라는 소란이 일어난 지점을 비춘다. 쌓여 있던 컨테이너 중 한쪽 면이 무너져 내렸다. 쇠로 만들어진 컨테이너가 종이 찢어지듯 찢어져 있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거대한 얼음 기둥이 쓰러지려는 것을 받치고 있는 것도 보인다. 특이한 모습이다. 마치 액체 질소라도 터진 것 같은 모습이다.
주변으로는 하얀 서리가 끼어 있고 눈발도 날리는 것 같았다. 모니터로 지켜보던 항만 관리 직원들은 그들이 보는 것이 맞는지 의아해 한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모니터에는 사고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가는 직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관리자의 시선이 모니터를 주욱 훑는다. 뭔가 수상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 모습이다. 그런 그의 눈에 이상한 옷차림을 한 남녀가 들어온다.
“저 자들은 뭐지?”
“…….”
모두의 시선이 그 모니터로 향한다.
남자는 거대한 체격을 지닌 거한이다. 모니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됨직한 덩치로 보인다. 여자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남자의 덩치가 너무 커서 그런 것 같았다. 둘의 복장 또한 특이했다. 가죽으로 세공된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 흰털까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남자는 여자를 에스코트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여자는 눈을 감은 채 뭔가를 느끼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여인의 미간 위로 작은 빛이 반짝거린다. 그 빛의 주변으로는 은빛의 파동이 형성되는 것이 보인다. 잠시 후 여자가 눈을 뜬다. 푸른색의 깨끗한 눈동자가 드러난다. 마치 파란 얼음을 깎아 놓은 것 같이 예쁜 눈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찾았느냐?”
“응! 우선은 저쪽으로.”
여자가 동쪽을 가리킨다.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 것 같은 외모다. 푸른 눈동자 때문에 이국적이지만 민서의 느낌도 풍긴다. 동양적인 냄새가 많이 묻어나는 것이 혼혈 같았다.
남자는 거대한 체격에 단단해 보이는 외모를 지녔다. 각진 얼굴에 눈은 작았다. 완벽히 동양인의 외모다. 흰 수염이 섞인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어 나이는 조금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르릉~ 남자가 지면에 내려놓았던 뭔가를 들어올린다.
거대한 배틀 액스다. 양면에 도끼날이 달렸다. 도끼의 면적만도 성인의 몸통보다 컸다.
“그러면 가지?”
“막심!”
“왜?”
“우리 복장 너무 눈에 띠는데…….”
“그렇군.”
막심이라 불린 남자가 그와 여인의 복장을 살피며 답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했나 봐. 좀 살살하지 그랬어?”
“위에 그렇게 많이 쌓여 있을 줄 알았겠어?”
“하긴 그 덕에 깔려 죽을 뻔하긴 했지.”
여자가 먼 곳을 본다. 경보음이 울리고 있는 곳이다. 그 소리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항만에 비상이 걸리니 경찰들이 출동하고 있었다. 항만보안공사 요원들도 이미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여자가 막심이란 남자를 보며 묻는다.
“어떻게 할 거야?”
“우리는 밀입국 한 거다. 잡히면 감옥행이지.”
“그러면 뚫고 가야하는 거네?”
“…….” 막심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가 도끼를 어깨에 들쳐 맨 이유였다. 그가 앞으로 걸어 나간다. 주변으로 경찰차들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포진한다. 노면 상에 스키드 마크가 생겨난다.
끼이이익~
검은 복장의 기동 경찰 병력은 신속하게 주변을 에워싼다.
경찰들의 경고성이 더해진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걸어 나가던 막심이 그를 향해 있는 총구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도 눈치는 있으니 상대가 원하는 것이 뭔지는 알아차린다. 걸음을 멈춘 후 뒤를 돌아본다.
“이리나! 뭐라고 하는 거냐?”
“시킨 대로 했으니 됐어. 멈추래.”
“그래? 그러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왜 그래? 청개구리 고기 먹었어. 총 들고 있잖아.”
둘의 대화에서는 전혀 긴장감을 찾을 수 없다. 무장 병력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지만 전혀 위해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현장을 지휘하던 경감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갸웃한다.
“러시아어인가?”
“맞습니다.”
“통역 좀 데리고 와 보지?”
“그럴 필요 없어요.” 이리나라 불린 여자가 말한다. 발음도 똑 부러지는 유창한 한국어다.
“어?”
“잘 됐군. 순순히 따라가서 조사를 받으면 된다.”
“막심이 그러는데 우리는 밀입국이라 감옥가야 된다는데요.”
“…….”
이리나의 말은 현재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 준다. 경감 또한 상대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었다. 다행인 것은 상대가 그다지 초조해하지도 않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경감은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대한다.
“조사를 받고 후속조치는 판결에 따르면 된다.”
“그러면 그 동안 우리 집은 감옥?”
“…….”
이리나의 질문에 경감도 입을 열지 못한다. 어쩜 요점만 쏙쏙 뽑아서 묻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 흰 피부에 작은 얼굴, 오똑한 외모는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다. 그런 얼굴이 웃으니 강압적으로 하기도 힘들다. 역시 인물은 예쁘고 봐야 뭐든 이득이다.
“어쨌든 당신들은 우리를 잡아야 하겠네요?”
“…….” 경감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잡히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어요. 호호!”
“저항을 하면 발포를 할 수도 있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막심!”
“응?”
“밀고 가죠!”
“오케이!”
후웅~ 막심이 거대한 도끼를 휘두른다.
콰앙! 도끼가 시멘트 바닥을 두드린다. 굉음과 함께 전방으로 힘의 파동이 뻗어나간다.
화악~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의 면전으로 엄청난 풍압이 전달된다.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고 상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압력이다. 경찰들 중 그래도 경험이 많은 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막심에게 집중하려 한다. 이미 총구도 막심을 향해 있다. 하지만 바로 쏠 수는 없다. 위협사격으로 경고를 먼저 하는 것이 원칙이다.
타앙! 총성이 울린다.
“머, 멈춰!”
경고성과 함께 막심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막심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경고 사격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막심을 찾기 위해 고개를 쳐든다. 그의 시야가 미치는 범위 내에는 막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쩌저적! 뭔가 얼어붙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스레 소리가 들린 곳을 본다. 그들의 머리 위다. 막심의 거대한 덩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과 도끼에는 빛을 발하는 얼음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며 얼어 있었다.
***
매수 실장이 보고 있던 모니터로 새로운 영상들이 펼쳐진다. 곧 전면의 중앙 모니터들에도 화면이 들어찬다. 인천 항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매수 실장이 곧바로 묻는다.
“이게 뭐냐?”
“저 여자 능력자예요. 남자도 그렇고요.”
“팀장님은?”
“이미 호출했으니 오고 계실 겁니다.”
“빠르구나.”
“저도 이 방안에서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나가야지.” 진월의 대답이다.
언제 들어왔는지 소리도 없이 나타나 화면을 보고 있다. 매수 실장은 문이 언제 열렸나 궁금한지 문만 보고 있다. 바로 곁에 서 있지만 믿어지지 않아서 꼬집어보고도 싶다. 놀라서 딸꾹질이 나오게 생겼다. 그 순간 화면에서는 막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끼로 바닥을 치고 하늘로 뛰어오른다. 손에서 발현된 냉기가 도끼를 뒤덮는다.
“냉기를 다루나 보군.”
“네. 여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창민이 대답한다. 그때 막심이 떨어진다.
콰앙! 경찰차 위로 떨어졌다. 경찰차가 두 조각이 난다. 도끼에서 뻗어나간 냉기가 마치 칼날처럼 길게 뻗어나가며 정확하게 두 쪽으로 잘라버렸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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