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 장 AWC(Armored weapon carrier)라 불리는 것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의 남성들과 군복을 입은 장성이 빙 둘러 앉아 있다. 민서가 만났던 박지환 의원도 그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년의 남성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다. 가슴에 금배지를 달고 있는 것으로 봐서 국회의원들이다.
국방위원회 회의를 위해 모여 앉았다. 원래는 국회의원들과 국방장관, 병무청장, 방위사업청장 등이 참석해서 회의를 하지만 오늘은 별 세 개 이상의 장성이 한 명 보인다. 별 세 개면 군단장급이다. 군단장은 회의가 시작될 때쯤 해서 갑자기 들어왔다. 위원장 이하 의원들이 조금 당황하는 눈치다.
“김 중장께서는 갑자기 왜 참석을 하신 겁니까?”
“참석요청을 받았습니다.”
“누가……?”
“박지환 의원 측에서 요청하셨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박지환 의원을 향한다. 무슨 의도냐는 의미다.
“제가 질문을 좀 드릴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이 회의는 위원이 아닌 사람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동의도 받지 않고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위원장을 뺀 과반수의 동의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 의원들의 수가 과반수는 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의 말대로 야당 측 의원들의 수가 절반이다.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예의가 아니었다. 어떤 통보도 없이 갑작스레 이뤄진 초대다. 쉽게 수긍할 수 없다. 하지만 초대받은 이의 지위와 입장을 생각해서 무례를 범하기도 쉬운 상황이 아니다. 군단장 급의 중장이면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고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지환 의원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한다.
“어차피 군의 기밀 대부분에 대해 열람권한이 있는 분 아니십니까?”
“…….”
사실이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여당인 위원장과 국방장관은 그래도 뭔가 꺼림칙하다. 분명 뭔가는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말 못할 비밀도 분명히 있다. 야당 모르게 저지르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개이겠는가? 야당 또한 여당일 시절에 똑같은 짓을 저질렀었다. 그러니 절대 모를 리 없었다.
별 수 없이 위원장의 주재 하에 회의가 시작된다. 기본적인 국방 예산의 결정 및 그 예산이 잘 쓰였는지를 심사한다. 불청객의 참석을 잊어버렸는지 여야 국회의원들의 갑론을박으로 회의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질문 세례를 받는 국방장관, 병무청장, 방위사업청장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식기를 계속 반복한다. 마치 감사를 받듯 행해지는 질문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때론 인상이 구겨지기도 하고 때론 조소가 어린 미소를 날리기도 한다. 공부를 제대로 해온 의원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으니 생기는 현상이다. 결국 일은 안하고 돈 벌이에만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은 필히 있기 마련이다.
그런 공방 속에서도 박지환 의원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다. 평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김재섭 중장의 참석에 대해 항변하던 방금 전의 모습과도 다르다. 특히 평소에 야당의 입장에서 여당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견제하던 사람이다. 한참 뜨겁던 분위기가 마무리 단계로 향하는지 침묵이 흐른다. 위원장 또한 더 이상의 질문과 정책에 대한 견해가 없는지 살피는 분위기다. 그의 눈빛 또한 박지환 의원을 향한다. 분명 할 말이 있으니 중장을 초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박지환 의원이 손을 들어올린다.
“네. 박 의원님. 말씀하십시오.”
“국방 예산으로 지출되는 모든 항목은 저희 회의를 일차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근래에 만들어진 NSCT로 들어가는 예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질 않는군요.”
“크흠!” 위원장이 헛기침을 한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국방장관을 향한다.
국방장관의 시선은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김재섭 군단장을 향한다.
‘군단장을 불러 온 이유가 그거였군.’
국방장관의 얼굴에 약간 곤혹스런 빛이 스쳐지나간다. 표정의 변화를 눈치 챘을까? 박지환 의원이 다시 묻는다.
“최근 매스컴에 보도되는 기이한 사건들과 도심에서의 총격전 등이 모두 NSCT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건들은 희한하게도 금방 묻혀버리더군요. 보상 또한 빠르게 종결되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흠흠! 박 의원님, 그 건은 국방예산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위원장이 브레이크를 건다.
“그렇지요. 문제는 저희 쪽 예산이 그쪽으로 빠져나가니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김재섭 중장!”
“…….”
“그렇지 않습니까? 대답을 해주시지요.”
“저는 그 문제로 여기에 출석을 한 것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문제로 나온 것이라 생각하신 겁니까?”
“새로 개발 중인 기동장갑 로봇의 질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호오~! 그래요? 모델명이 어떻게 됩니까?”
“……?”
김재섭 중장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국방장관과 위원장의 미간이 구겨지는 것이 원치 않는 안건이 튀어나왔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분위기를 직감하는 것만큼은 빨랐다. 그의 시선이 국방장관의 시선과 마주친다. 국방장관은 그의 육사 선배이기도 했다. 국방장관이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짚는다. 머리를 슬쩍 가로젓는 것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재섭 중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연다.
“AP-025입니다.”
의원들의 고개가 책상에 처박힌다. 그들의 자료 중 개발 목록을 살핀다. A로 시작하는 목록에 AP-025라는 모델은 없었다.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의원들의 고개가 하나둘씩 들린다. 그들은 오늘 큰 것 한 건을 물었다고 생각한다.
박지환 의원은 애초에 알고 있었다는 듯 의원들의 확인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묻는다.
“없군요. 무슨 모델인지 궁금하군요? 자세히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한 브리핑만 해주시면 됩니다.”
“…….”
“말씀하기 힘드신가요? 그러면 제가 말씀드릴까요?”
박 의원의 말에 위원장과 국방장관의 고개가 팩 돌아간다. 절대 극비리에 행해진 개발이었다. 아무리 야당의 정보통이 좋다하더라도 알아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군내에서 개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연을 할 때만 몇 번 군부대 내의 비밀 훈련소를 썼을 뿐이다.
“많이들 당황하시는군요.”
“어떻게……?”
“전장 3.1미터, 전고 2미터, 폭 1.92미터의 소형 기동 장갑 로봇으로 일명 AWC(Armored weapon carrier)로 명명됨. 여기까지 맞습니까?”
“…….”
박지환 의원이 재원을 읊고 물음에도 침묵만이 흐른다.
“엔진은 2500cc 직렬 4기통 직분사식 터보 디젤엔진으로 최대 속도는 100km이상이라고 나와 있군요. 무장은 20mm 기관포와 포탄100여발,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토우 대전차 미사일 7기를 장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6족 보행이 가능하고 타이어 장착식이군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리를 잃게 되었을 시 본체에 숨겨진 캐터필러에 의해 시속 50km의 속도를 낼 수 있다고도 되어있군요. 더 인상적인 것은 인공지능이란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인식으로 2명의 조종수가 탑승할 수 있도록 되어 있군요. 중장님, 맞습니까?”
“…….” 중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미미하게 고개만 끄덕인다.
“정말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물어도 되겠습니까?”
다 까발려 놓고 물어도 되느냐고 묻는 속사정을 들어보고 싶다.
대답은 중장이 아닌 국방장관에게서 나온다.
“질문하십시오.”
“하하, 화통하십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이 기종은 정말 획기적인 모델입니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개발이 가능한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술력으로 이렇게까지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겁니까?”
“군 외부의 기술이 많이 접목되었습니다.”
“외부라면?”
“IUC의 기술입니다.”
의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여당 측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위원장과 국방장관, 방위사업청장 뿐이었다. 박지환 의원이 그 대답에 피식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다.
“그렇다면 하나 더 질문을 드리지요. 저희 쪽 예산에서는 그 정도를 개발하기 위해서 지출된 비용이 없습니다. 비용은 어떻게 조달한 겁니까?”
“그것 또한 IUC에서 거의 모든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저희가 투자하게 될 부분은 양산 작업뿐입니다.”
“허~! IUC가 나라를 상대로 자선 사업을 한답니까?”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한다는 의미도 있고 양산은 그들이 맡게 되니 그들로서도 손해 날 일은 아니지요.”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비밀로 하시는군요. 그러면 저희가 모르는 비밀이 도대체 얼마나 많다는 의미일까요?”
“AWC의 개발 건 이외의 비밀은 없습니다.”
“정말이실까요? 하나 더 묻지요. 그러면 AWC의 프로토 타입은 얼마나 있습니까? 아니지요.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이미 실전 배치된 AWC는 몇 기나 됩니까?”
“실전 배치된 것은 아닙니다. 테스트 중일뿐이지요.”
“그거나 이거나 오십보백보지요.”
“……5기갑 여단에 10기가 배치되어 테스트 중입니다.”
“참 믿을 수가 없군요. 저희가 국방위원회 위원이 맞기나 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해도 너무하십니다.”
국회의원들이 동요를 한다. 그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비밀스럽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밀 하나가 드러나자 이젠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생각했는지 박지환 의원이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아까 하다 만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NSCT에 관한 건이지요.”
“그 건은 국방예산과 관련이 없는 건입니다.” 이번에는 위원장이 단호하게 선을 긋고 나온다. 위원장은 NSCT의 창설에 많은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도 군 출신의 국회의원이며 NSCT의 고국장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박지환 의원이 위원장을 보며 비긋이 웃는다.
“김 중장께서 맡고 있는 제6군단의 수리비용이 갑자기 늘었더군요. 멀쩡하던 전차가 고장이 많이 나고 전에 없던 정비 비용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질문은 김 중장에게로 향하고 그도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최근 훈련이 많아서 정비할 일이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 파헤쳐 봐도 되겠습니까?”
박 의원이 위협성 질문을 던진다. 김 중장의 인상이 구겨진다. 군인으로 지내온 것만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위협을 받았다는 것에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칠 지경이다. 분위기를 파악했을까? 위원장이 중간에 나선다.
“이미 자체 실사를 통해 증빙 자료까지 다 제출된 상황입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박 의원님.”
“전 다만 국민의 세금이 바르게 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밀스럽고 음흉한 일에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우리의 의무 아닐까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분들이 증명도 되지 않은 무기의 도입을 비밀에 부치십니까? 같은 국방위원회 위원들까지 속여가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IUC가 아무리 봉사의 차원에서 연구비를 지원했다고 해도 그들도 얻는 것이 있으니 행한 것 아닙니까? 혹시 은밀한 뒷거래라도 있으셨는지 궁금하군요.”
“이보세요. 박 의원! 말을 가려서 하십시오.”
“찔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왜 흥분은 하고 그러십니까?”
박지환 의원은 느글거리는 미소를 띤 채 위원장을 바라본다. 위원장은 박 의원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 둘 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는 이미 백단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다. 흥분을 잠재우라는 듯 위원장을 가만히 둔 채 박지환 의원은 다시 눈앞에 놓인 서류로 눈길을 준다. 박 의원은 서류에 눈을 둔 채 조용히 입을 연다.
“제가 이 서류를 유심히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말입니다.”
숨을 고른다. 꼭 폭탄을 던질 것 같은 분위기다.
“NSCT의 예산이라고 해봐야 이 인원의 월급에 관리비 정도가 다 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감찰부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그쪽에서 지원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 상 아니었습니까? 예산은 저희 쪽에서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창설에 반대를 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감사를 하도록 하지요. 어차피 신설된 지 1년이 다 되었고 한번 들여다 볼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꼭 그래야 하시겠습니까?”
“알 권리지요. 국민의 알 권리.”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거야 힘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상황이지요. 힘 없는 우리가 봐도 그런지는 보고 나서 판단하도록 하시지요.”
“…….”
“결과가 발표되면 청문회 준비하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지환 의원이 마지막 말을 남기며 몸을 일으킨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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