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 장 혈투(血鬪)
푸욱!
용린조차 가볍게 뚫리고 있었다.
“윽!”
진월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온다.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만큼 투첼이 뿜어대는 힘은 가공함을 담고 있었다.
촤르르륵~ 진월의 주먹으로 용린이 몰린다. 진월 주먹 크기의 몇 배는 됨직한 권이 만들어진다. 그 위로 순식간에 영력의 불길 또한 만들어진다. 영력의 불길은 바로 영사와 영강의 단계로 이어지며 과거에 펼치던 거대한 팔이 만들어진다. 용린까지 더해졌으니 그 위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다. 한방을 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듣기에 거북한 소리가 들려온다.
치이익~ 진월의 흉부에 박힌 투첼의 손이 진월의 몸을 녹이고 있다.
보이는 모습으로는 투첼이 진월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는 형태다. 용린을 뚫고 진월의 피부까지 파고들었다면 관통을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투첼의 팔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투첼의 표정이 좋지도 않다.
“이익! 뭐 하는 짓이지?”
“…….”
투첼이 놀라서 진월을 향해 묻는다. 하지만 진월의 답은 없다. 대신 거대한 힘이 투첼을 향한다. 투첼이 악에 받쳐 소리친다.
“미친 놈!”
투첼의 몸에서 백염의 불길이 터져 나온다. 폭발하듯 터진 백염의 불길은 진월의 몸에서 발산되는 영력의 불길과 부딪친다.
쿠우우우~ 기운끼리 격돌하며 큰 울음을 터트린다.
둘의 대치가 팽팽해진다. 여전히 흉갑에 박힌 손은 진월의 용갑과 피부를 태우고 있다. 하지만 투첼의 손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유인 즉, 투첼이 진월의 가슴에 박아 넣은 팔을 진월이 잡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에 잡고 있는 진월의 용갑도 녹아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끝까지 쥐고 있으니 투첼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 용린의 위로 끊임없이 용린이 재생되며 영력의 불길이 영강으로 변화한다. 금빛과 담흑빛이 섞인 영강이 윤기까지 띤다. 같은 강도의 오러블레이드가 아니라면 절대 부술 수 없다. 열기 또한 버텨내고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투첼 또한 그것을 느낀다.
둘이 대치하고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말 몇 마디 던질 몇 초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변화들이다.
투첼의 시선이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곳을 슬쩍 본다. 그가 공격한 이후 갑작스레 생성된 힘이다. 이미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고 있었다.
피하거나 막아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진월이 그의 팔목을 으스러질 듯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크두두둑~ 움켜쥐어진 투첼의 팔목이 패여 들어간다.
“크으으!”
투첼의 입술이 벌어지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난다. 그도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백염의 불길로 이루어진 화막(火幕)을 꿰뚫고 진월의 거대한 권이 틀어박힌다.
콰아앙! 투첼의 몸이 들썩인다.
“커억!”
투첼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뿜어져 나온 피가 진월의 영력의 불길에 부딪친다.
치이익~ 화아아악~
피가 타오르고 영력의 불길도 타오른다. 그런데 영력의 불길 중 일부가 타오른 만큼 사라진다.
투첼의 코로 뭔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흰 연기가 쑥 들어간다. 진월의 가슴에 박힌 투첼의 손에서도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투첼의 팔목을 쥐고 있던 진월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우두둑! 진월이 투첼의 팔을 꺾어버린다.
“큭!”
투첼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투첼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진월의 거대한 권이 옆구리에 박히며 그의 몸통을 구성하던 삼분의 일의 물체가 사라졌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신체구조를 가진 생물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반응이다. 진월의 발이 들린다. 물론 보이지도 않는 속도다. 현재 그의 다리에 실린 힘 정도라면 탱크의 포탄보다도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콰앙!
위력에 걸맞은 굉음이 울린다. 투첼의 몸통에는 진월의 족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투첼의 신체가 뒤로 날려간다. 그의 입은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는다.
날아가던 투첼의 몸이 뒷면의 양자에너지 실드에 부딪친다.
지지지직~
밖에서 지켜보던 자들은 갑작스런 소음에 시선을 집중한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람의 형상이 양자에너지 실드를 뚫고 나올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었다. 물론 등 쪽의 모양이 선명했다.
화악! 양자에너지 실드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불타오른다. 동시에 소멸한다.
퍼퍼퍽~ 드드드득~
투첼이 밖으로 튕겨 나와 바닥을 구르다가 지면을 긁는다.
따닥~ 따닥~
땅거죽조차 그의 열기를 이기지 못한 채 녹아내리고 있었다. 쓰러져 있음에도 그의 몸에서 발생하는 열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투첼의 모습에 뭔가 부조화가 보인다. 있어야 할 그의 팔 하나가 팔꿈치부터 보이지 않는다. 진월의 흉갑에 박아 넣었던 손이 붙어 있던 팔이다.
진월이 양자에너지 실드 밖으로 나온다. 그들의 싸움에 양자에너지 실드는 더 이상 구속 장치가 될 수 없었다.
진월의 손에는 투첼의 끊어진 팔이 들려 있다.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아서 뜯겨 나간 것이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진월의 몸에서는 폭발적인 영력의 불길이 일어난다.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다. 녹아내린 용린의 안쪽으로 타버린 육신이 복원되고 있었다.
진월이 투첼의 팔을 들어올린다. 그의 손에서는 검은 영력의 불길만이 일어난다. 검은 영력의 불길이 검은 영사로 변한다. 윤택이 나는 검은 영사들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투첼의 잘린 팔을 꿰뚫는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파고든다. 주홍빛 불덩이 하나하나가 검은 영사에 꿰뚫린 채 분해되어 나온다. 검은 영력의 특성이 바로 음이 기운이고 투과성이며 상대의 기운에 동화되어 침투한다. 상대의 능력을 빼앗을 수는 없지만 상대의 능력을 깨뜨릴 수는 있다.
진월이 잘린 팔을 공중 분해해 버린 후 쓰러져 있는 투첼을 본다.
“그대로 죽여주길 바라지는 않겠지?”
“……크크크, 좀 쉬려고 했더니 그럴 시간조차 주지 않는군.”
후두둑~ 투첼이 언제 쓰러졌냐는 듯 서서히 일어선다. 바닥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몸이 그대로 떠오른다.
“훌륭한 한방이었다.”
“두 방이다.”
“그렇군.”
투첼이 자신의 몸을 살핀다. 한쪽 옆구리는 텅 비어 있다. 안쪽에 있는 그라이아의 몸이 보인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그라이아의 몸 또한 멀쩡하지 못했을 것 같다. 복부는 움푹 파여 있다. 바로 진월의 발자국 때문이다.
“원래 나도 복원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네 기운 때문에 더 넘치는군.”
“…….”
화아악~ 투첼의 몸에서 백염이 다시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 나 있던 상처들이 사라진다. 뻥 뚫린 옆구리조차 금세 복원된다. 진월의 회복력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복원력이다. 잘렸던 팔에도 백염의 불길이 붙는다. 백염의 형태가 팔처럼 만들어진다. 점점 식으면서 원래의 팔 모양이 만들어진다.
투첼이 새로 재생된 팔을 들어 올리며 돌려 본다. 어디 흠이라도 있는지 면밀하게 확인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우둑!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다. 진월을 향해 슬쩍 뻗는다.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러나 잠시 후.
훙! 진월의 면전에서 풍압이 일어난다. 후끈한 열기도 느껴진다. 마치 블랙의 진공파를 블링크로 옮겨 놓은 것처럼 나타났다. 진월의 얼굴과는 주먹 하나 차이다.
느낀 순간 진월의 고개도 꺾인다.
퍼엉!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했다. 진월의 전신에 일어나 있던 영력의 불길이 바람에 날린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진월의 신체 또한 뒤로 밀려난다. 그 순간에도 진월의 눈은 투첼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켜보던 진월의 시야조차 투첼의 모습을 놓친다.
진월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진월의 신형이 옆으로 휘돌려 한다. 그의 턱이 있는 부위에 강한 압력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릭!
퍽! 진월의 안면에 투첼의 권이 박힌다. 백염이 이글거리는 권이다.
백염의 권이 닿는 순간 용린이 뒤틀리며 녹아내리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진월의 손 또한 그 권을 막아내고 있었다.
콰앙!
진월의 턱을 스치고 지나간 투첼의 백염의 권이 대지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다. 폭발의 여파에 일어난 흙먼지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린다. 사실 보인다고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촤르르륵~ 진월의 몸을 감싸던 용린이 더욱 더 강화된다.
화아악~ 영력의 불길 또한 그 위를 덮는다. 불길이 나풀거리며 영사가 된다. 나풀거리던 영사는 뭔가가 느껴지자 날을 세운다.
티티팅~ 강도가 더해진 영사가 부러진다. 뭔가 더 강한 물체에 의해서다.
투첼의 백염의 권이 갑자기 허공에 나타나 진월의 복부를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 나타난다. 아마도 그라이아의 마법에 의한 순간이동인 것 같았다. 블링크라 해도 지독하게 빨랐다.
콰앙! 한방 한방이 폭탄이 터지는 위력이다.
“흑!” 진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충격의 여파 때문에 내지른 소리가 아니다. 진월의 두 손은 투첼의 권이 복부에 닿기 전에 막았다. 그런데 그의 몸에서 뿜어지던 영력과 영사의 불길이 훅 줄어든다. 갑작스럽게 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나가자 나온 소리였다.
투첼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백염의 권이 다시 한 번 진월의 안면을 노린다. 잡혀 있는 우완은 그대로 둔 채 좌완이 진월의 안면을 향한다. 위력은 방금 전보다 더 강해 보인다. 진월의 힘을 흡수한 효과처럼 보인다.
콰앙!
진월의 흉갑에 투첼의 권이 박혔다.
쩌저적~ 검은 흉갑 위로 얼음이 깨지듯 뭔가 갈라진다. 투첼의 표정 또한 ‘이건 뭐지?’라는 의문을 담고 있다. 그의 백염의 권이 박혔으면 상대의 힘을 흡수해야 함에도 그런 반응조차 없었다. 진월 또한 엄청난 위력의 권을 맞았음에도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의 발이 지면을 더 파고들었을 뿐이다. 진월의 발이 박힌 주변으로는 크레이터가 넓게 만들어 지고 있었다. 충격의 위력을 뒤로 흘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투첼의 모습이 깜박이며 잠깐 나타난다. 그의 음성 또한 흘러나온다.
“대단하군.”
“…….”
“하지만 이건 어떨까?”
백염의 권이 허공에 수십 개가 만들어진다. 그 뒤를 이어 백염의 불기둥 또한 따른다. 말이 불기둥이지 창이나 다름없다. 투첼의 스피드에 그라이아의 마력까지 합쳐져 진월조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속도를 발휘한다.
콰과과과광~
폭발과 굉음이 이어진다. 진월 또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
백염의 권영 하나하나를 모조리 쳐낸다. 하지만 막아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때마다 진월의 몸이 휘청 인다. 백염의 권영이 용갑에 박히면 방금 전과 같이 깨어지는 담흑빛의 조각들이 흩어진다. 바로 영력이 영강이 되어 호신강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강이 투첼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었다.
콰앙! 백염의 권 하나가 다시 견갑 부위에 박힌다.
쩡~ 영강이 깨진다. 진월의 몸에서는 다시 담흑빛의 영력이 순식간에 일어나며 그 부위를 감싸려 한다. 그때!
퍼억! 백염의 창이 그 부위에 박힌다. 마치 빈틈이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치지직~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영력의 불길 또한 흡수되며 사라진다.
퍼퍽! 백염의 창이 박히는 부위가 늘어난다. 그때마다 진월의 힘은 빠져나간다. 진월 또한 백염의 창이 박히자마자 잘라내고 부순다. 하지만 날아드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투첼의 밥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다.
투첼은 진월의 앞에서 자신에게 흘러드는 기운을 음미하고 있다. 진월은 점점 약해지고 투첼은 점점 더 강해지는 형국이다. 진월이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상황이다. 그 순간 투첼이 서서히 고개를 내리더니 진월의 모습을 본다. 진월도 그 모습을 보았다. 투첼이 다시금 진월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진월이 흠칫 놀란다. 상대의 기도가 놀라보게 달라졌다. 그리고 뒷골에서 쭈뼛함이 느껴졌다. 그의 본능이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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