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8 장 블랙의 의문
블랙과 전철 부장이 마주 앉아 있다. 모든 보고를 끝내고 나온 후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전철 부장 또한 블랙이 살아 있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지만 두 달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칫! 걱정되면 아저씨……. 아니 부장님이 직접 찾아오지 그러셨어요.”
“마음은 굴뚝같았지.”
“말만 번드르르 해요.” 블랙이 눈을 흘긴다.
편하게 앉아있던 블랙이 탁자에 몸을 가져다 붙인다.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답을 해주실 건가요?”
“질문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제가 던지는 질문이야 항상 곤란한 질문이지요.”
“들어나 보지.”
“난 왜 회장님을 못 믿겠지요?”
“무슨 의미지?”
“석판을 모으는 것만 해도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과 수명 연장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이었잖아요. 우리가 비밀리에 이런 작전을 수행하는 것 또한 각 국가나 정부에서 유전자에 대한 변형을 금지하고 있으니 별 수 없는 거였고요.”
“…….”
블랙이 전철 부장의 눈을 주시한다.
“그런데…….”
“그런데?”
“전 말이지요. 요새 회장님이 개인의 욕심 때문에 모든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의문이 들어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요?”
“그래. 네 생각이 틀렸다.”
“헐! 바란 내가 미친년이지.”
블랙의 반응과 표정에 전철 부장의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머문다. 단호하게 답을 했으면서도 뭔가 씁쓸함이 남는 미소다. 블랙은 전철 부장을 잘 안다. 그 미소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그녀의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하지만 티를 낼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다.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으니 그러면 다른 질문?”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질문 하나 하겠다는데 여기서 법까지 따져야 되요?”
“말로는 도저히 못해보겠군.”
“그러니 그냥 순순히 답을 주면 되잖아요. 이러다가 부장님도 못 믿게 생겼어요.”
“그냥 질문을 해라.”
“지신족이라고 들어보셨어요?”
“…….” 전철 부장의 얼굴이 약간 경직된다.
“표정을 숨긴다고 숨기는 것이 그 정도밖에 안 돼요?”
“어디서 들었지?”
“그 중간계에서요. 부장님이 아마 웅족의 후손일거라는 말까지 하던걸요.”
“…….”
“그게 사실이라면 진월, 그 사람과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잖아요.”
“괜한 소리를 하는군.”
“이 사실, 회장님도 알고 있나요?”
“……모르신다.”
“호오~! 자, 이제 불어 봐요. 제가 회장님한테 부장님이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불기 전에 회장님의 진짜 목적이 뭔지 말해 봐요.”
“이 놈이!”
“왜요? 그러니 진실 규명을 하라고요.”
“뭐가 그렇게 의심스럽지?”
“……제 기억이 의심스러워서요.”
“……?”
“제 기억이 선명한 것은 14살 이후뿐이에요. 그 전 기억은 마치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뿌옇지요. 더구나 간혹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들은 단편적인 것들 뿐이지요.”
“그건 네가 우리를 만나기 전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그런 것뿐이다. 언젠가 기억이 온전히 되돌아 올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글쎄요. 전 왜 단편적인 어릴 적 기억조차도 인위적으로 조작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요. 더구나 민서, 그녀가 변하는 과정을 본 이후로는 더 하답니다.”
“너한테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보증하지.”
전철 부장이 강한 확신을 담은 눈동자로 블랙을 바라본다. 블랙 또한 뚫어질 듯 전철 부장의 눈을 주시한다. 그러다가 허탈한지 피식 웃는다.
“쩝! 회장님은 못 믿는다 쳐도 부장님은 믿으니까.”
“…….”
전철 부장이 굳은 표정으로 블랙을 주시한다. 블랙이 진월과 이계를 다녀온 이후 갑작스레 보이는 태도 변화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블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질문을 던진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석판이 이제 하나 밖에 없다면서요?”
“그래. 그것도 거의 근처까지는 파악이 되었다.”
“이번에는 귀천님이 가셨다면서요.”
“네가 간 곳 말고는 가장 찾기 힘든 곳에 있으니까.”
“설마 그것도 타천에 있나요?”
“그건 비밀이다.”
“저한테도 비밀이에요?”
“그건 아니지만……. 그래. 다른 하늘 아래 있다. 그곳도 신기한 곳이지. 인종 자체가 다른 곳이니까.”
“인종이 다르다고요?”
“그래. 완전히 외계인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다르다.”
“어떻게 그런 곳에 석판이 존재하지요?”
“그러니 미스테리지.”
“정말 인류의 기원이 외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네요.”
“석판을 모으면서 느끼는 점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과연 처음부터 신이였까? 하는 의문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흐음. 과학이나 정신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게 된 종족이 미개한 곳의 신이 되었다. 뭐, 이런 논리인가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아주 높을 수도 있고…….”
“저 또한 그 의견에 약간은 표를 줄 수도 있어요. 그러면 마지막 석판만 찾으면 지도를 구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이번에 네가 가져온 석판의 모형을 보니 굳이 모든 석판을 꼭 다 모으지는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문명이 발전하지 못한 과거였다면 석판을 다 모아야만 영력의 힘이 작용해 위치를 드러냈겠지만 지금은 과학이란 학문이 있으니까.”
“결국 제가 잘 했다는 말이네요.”
“그래. 모두 네 덕분이다.”
“자! 칭찬! 쓰담쓰담 해봐요.”
블랙이 전철 부장 앞에 머리를 들이민다. 쓰다듬으라는 제스처다. 전철 부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별 수 없다는 듯 그 커다란 손으로 블랙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블랙의 얼굴에도 베시시 미소가 떠오른다.
잠시 후 그들의 대화주제가 바뀐다.
“균열의 틈새를 넘어온 여자가 있던데 말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쫓고 있다. 네가 없어서 일의 진척이 조금 느렸다. 아마도 NSCT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그래요? 별일이네요. 우리보다 빠르다니.”
“경찰의 정보망을 모두 가져다 쓰니 일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접근이 더 빠르다. 더구나 그쪽 실장이란 자가 최근에 뭔가를 발명했더군.”
“뭔데요?”
“위성 통제권을 얻는 것 때문에 트러블이 많았나 보더라. 그래서 열 받는다고 만든 것이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한 추적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헐! 데이터 처리양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그 많은 양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쪽에 창민이란 아이가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나?”
“오감에 의한 능력 말고도 해킹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지요. 그 아이가 나섰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네요. 마음먹고 했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된답니까?”
“만약 현재 네가 스마트 폰을 들고 나를 찍고 있다면…….”
“그러면요?”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스마트 폰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란 말도 있다.”
“…….”
블랙이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정도라면 못 찾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통신망이 뚫린 곳에 있는 자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건 찾아낼 수 있다는 이론이 가능해진다. 블랙의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보던 전철 부장이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그, 그렇지요.”
“놀라기는? 하지만 창민이란 아이가 직접 제어를 해야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네가 말한 대로 엄청난 정보량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최고의 슈퍼컴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더구나.”
“어찌되었든 점점 더 상대하기 까다로워지네요.”
“그렇지. 너조차도 진월이란 놈한테 마음을 빼앗길 정도인데 오죽하겠느냐?”
“무, 무슨 망발이세요?”
“발끈하는 것을 보니 사실인가 보군.”
“아니거든요. 흥!”
블랙이 콧방귀를 뀌더니 세차게 고개를 돌린다. 강하게 부정했지만 블랙은 본인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 무뚝뚝한 전철 부장이 넘겨짚을 정도라면 심각한 문제일수도 있었다. 블랙은 절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가 자신의 기억에 의문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진월은 어디까지나 그들과는 적대하고 있는 자였다. 절대 이어지려야 이어질 수 없는 사이다.
* * *
NSCT 내의 통제실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화면 하나로 합쳐진다. 카메라 하나에 잡힌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디스플레이 된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한국 여인은 아니다. 외모로 봤을 때는 분명 서양 계통이다.
복장은 편안한 진에 붉은 티를 입고 있다. 외국인 특유의 볼륨감과 늘씬한 키를 뽐내는 여인이다. 여인의 모습이 화면 전체에 펼쳐지더니 중앙으로 점점 축소된다. 주변의 모니터에 다른 모습들도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인의 주변 모습이 다른 모니터에 들어오는 중이다. 모니터에 들어오는 화면들이 마치 한 사람이 조종하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변화한다. 꼭 사람의 생각과 시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진월이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멋지군.”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매수 실장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한다.
“창민이 아니면 효율이 10% 이하라면서.”
“아하하! 그, 그렇지요.” 매수 실장이 여로운지 웃는다.
진월의 시선은 뒤쪽의 유리 룸에 들어앉은 창민에게 향해 있다. 창민은 선이 많이 달린 헬멧과 시커먼 고글을 쓴 채 앉아 있다. 위성뿐만 아니라 유무선 인터넷 망에 접속된 모든 통신 매체의 데이터를 끌어오고 분석하는 중이다. 집중되는 데이터는 각 중계 기지의 서버에서 일차적인 가공이 이루어진다. 1차 가공이 끝난 데이터는 NSCT의 증설된 서버로 집중된다. NSCT의 서버에서 가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민이 분석을 한다. 창민의 엄청난 시력이 이때 필요했다. 음파가 새긴 흔적까지 읽어내는 시력이다. 제공된 데이터를 고속으로 읽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거기에 더해 창민에게는 최근 육감에 의한 예지 비슷한 능력도 생겼다. 묘한 느낌을 주는 자료들의 경우 역추적으로 추론도 해낼 수 있었다.
지금 창민이 하고 있는 작업은 바로 최근 몇 건의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는 여인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중간계에서 넘어온 여인이다. 진월이 IUC의 기지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인해 작업이 한층 빨라졌다. 문제는 여인이 처음의 얼굴과는 약간 달라졌다는 점이다. 영리한 여자였다. 능력도 뛰어난 여자로 분석된다. 똑같은 얼굴만 찾았다면 절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인의 얼굴은 변해 있었다. IUC에서 그녀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창민이 지금 비추고 있는 여인이 바로 그 여자였다. 창민의 경우는 사진을 보고 만짐으로써 그녀의 느낌을 기억했다. 그의 육감에 의해 찾아낸 것이다. 진월이 멋지다는 표현을 한 이유다. 절대 사진만으로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여인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여자들의 경우는 화장만으로도 180도 달라진다. 거기에 더해 얼굴 윤곽을 조금만 손을 봐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녀는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진월이 확인 차 묻는다.
“저 여자가 맞나?”
“맞는 것 같습니다.” 창민의 음성이 통제실 내에 울려 퍼진다.
“어떻게 확인하지?”
“잠시 만요.” 창민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여인이 현재 있는 곳은 여성 옷 매장이다. 마치 현대의 여성처럼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절대 중간계에서 넘어온 여인으로 보기 힘들었다.
삐삐삐삐~
매장 안의 사설경비업체 경보기가 갑자기 울린다. 쇼핑을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여인의 반응은 달랐다. 소리가 들려오며 불을 반짝이는 경보기를 직시한다. 통제실 내의 모니터에는 여인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된다. 처음에는 약간 찡그리는 표정이었지만 이후 전혀 동요되는 표정이 아니다.
그녀의 작고 도톰한 입술이 열린다.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녀의 눈빛이 미약하게 번들거렸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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