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 장 등 뒤에 비수를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국장은 중령에게 몇 가지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시끄럽던 지하 1층이 잠잠해지자 최탑 이하 대부분의 요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도 후속 조치를 명한다. 요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군 병력과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본 후 국장이 진월의 뒤를 따른다.
진월이 야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서 있다.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시민들의 편의와 건강을 위해 조성된 공원이 있는 장소다. 군 병력이 출입을 통제했는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없다. 예전에 진월이 한번 난장판을 만든 곳이라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곳이다.
국장이 어느새 진월의 뒤에 도착해 있다. 진월에게 묻는다.
“또 같은 놈들이냐?”
“네. 그런데 느낌이 좀 다르군요.”
“어떻게?”
“기체에서 특이한 기운들이 느껴집니다.”
“다섯 정도인 것 같구나.”
거리가 가까워졌는지 국장 또한 그들의 기척을 느낀다.
다섯을 제거했는데 또 다섯 기가 나타나고 있었다. 진월을 중심으로 중령 휘하의 병력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뿐만 아니라 NSCT의 요원들도 주변으로 소산하며 뭔가를 설치한다. 진월은 그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철저하시군요.”
“되도록 비밀은 비밀로 두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국장의 말에 진월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알려져서 좋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주변 지역에까지 피해가 번질 수도 있었다.
부우우웅~ 콰과과곽~
엔진소리와 타이어가 지면을 긁는 소리가 같이 들린다. 단단한 몸체에 달린 6족의 다리는 지형에 따라 위로 오르고 내리며 산길을 마치 평지처럼 달린다. 숲에 가려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 지 몇 초나 지났을까. 그대로 진월을 밀어버릴 것처럼 쇄도해 온다. 그러나 진월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태도다. 진월과 불과 10여 미터 정도나 남았을까. 쇄도하던 AWC가 급제동을 건다.
콰아아악~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을 일으키며 흙먼지가 일어난다.
양쪽 다 아무 말도 없다. 디젤 엔진이 구동되는 소리만 들린다. AWC가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지 시각 센서들만 바쁘게 주변을 훑는다.
“쳇!”
AWC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나온다. 진월의 예리한 청각은 그 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간파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면의 조종사용 강화유리창을 통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모습도 확인했다. 평인이라면 불가능하지만 진월의 동물적인 능력은 가능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다. 바로 그라이아가 AWC에 탑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AWC에서 다시 음성이 흘러나온다. 여인의 음성이다.
“그들의 계획도 그다지 믿을 것이 못되는군요.”
“무슨 말이지?” 진월이 묻는다.
“당신 말이에요. 지금쯤 경찰인가 뭔가 하는 것들과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섭섭했나 보군. 미안하게 됐어.”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누명을 아직 못 벗어서 이 일 끝나면 다시 잡혀갈 것이다.”
“…….”
국장이 그라이아를 향해 위로의 말을 전해준다. 진월의 입장에서는 국장이 누구 편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을 건네고 있으니 심장이 철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진월의 시선이 그라이아가 타고 있는 AWC 뒤의 기체로 향한다. 엇비슷한 각도로 겹쳐 있어 진월의 위치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월은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진월이 국장을 향해 슬쩍 고갯짓을 한다.
“…….”
국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진월이 수신호를 슬쩍 보낸다. 그들만이 아는 신호다.
‘전원 소산 또는 대피.’ 를 뜻하는 신호다.
국장이 미간을 구긴다. 그라이아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쾅! 갑작스런 굉음이 울린다. 굉음의 발원지는 국장의 손뼉이다. 손뼉이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그가 기를 실어 두 손바닥을 마주쳤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양자에너지 실드가 전개된다.
군 병력과 NSCT 요원들이 합동으로 펼친 양자에너지 실드다. 주변 오십 미터 정도 일대가 모조리 차장된다. 병력과 요원들 또한 모두 양자에너지 실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소산해서도 경계를 철저히 한다. 가지고 있는 무장도 점검한다. 군이나 요원들이나 무장 정도가 절대 가볍지는 않은 상황이다. 아무리 AWC의 성능이 뛰어나다해도 쉽게 당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주변 상황이 변화되었음에도 AWC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마치 여왕벌의 명령에 따르는 일벌들 같은 분위기다. 그라이아가 탑승하고 있는 AWC의 기체 위로 푸른 기운이 감돈다. 그녀가 마력을 발현해서 생긴 현상이다. 왠지 서늘한 기운이 풍기는 것이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뒤쪽의 기체를 향해 말한다. 물론 무선을 통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동물적인 진월의 청력에 AWC 내부에서 하는 말들이 들린다.
“너를 알아본 것 같은데?”
“…….”
“왜 대답이 없어? 혹시 잘 아는 사이야?”
“아니요.”
그라이아의 물음에 답하는 자도 여인이다. 여인의 목소리를 듣자 진월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반응한다.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기운이 요동친다.
탁! 국장이 진월의 어깨를 잡는다. 요동치던 기운이 잠잠해진다.
그라이아의 시선도 급격하게 변화한 진월의 기운에 반응해 바라본다.
“어?”
“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래? 그럼 너한테 좋지 않은 감정이 많은가 보구나. 뭐, 잘 됐네. 어차피 저 자와는 오늘 결판을 내야할 것 같으니까.”
“제가 맡지요.”
민서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한다. 그에 따라 그녀가 타고 있던 AWC가 앞으로 나온다.
모든 대화 내용을 직접 들은 진월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민서는 그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사실 민서와 진월 사이에 어떤 밀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끌림이라는 것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말이다. 진월은 극도로 본인의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다. 당연히 애정 표현 또한 할 줄 모른다. 그저 좋은 감정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눈앞에서 민서를 빼앗겼다. 동료를 잃어버린 아픔과는 또 달랐다. 동료가 맞지만 그 이상의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가 애써 부인해 보지만 그의 심장은 솔직했다.
진정이 됐음에도 요동치는 진월의 기운에 국장이 앞으로 나서는 AWC를 본다.
“누구냐? 혹시 민서라도 타고 있는 것이냐?”
“…….”
진월이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인다.
“그랬구나.”
“뒤의 세 기, 시간 좀 벌어주십시오.”
“이제는 아낄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내가 맡도록 하마.”
국장의 몸이 사라진다. 한 발짝 내딛자 이제는 오 미터 정도가 아니라 그 두 배는 건너뛴다. 그의 몸에서 흐릿한 기운들이 솟구친다. 그의 손에는 따닥 거리는 기운이 구형의 형체를 형성한다.
콰광! 굉음과 함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진다.
국장이 AWC들과 격돌을 시작했지만 진월과 전방의 AWC 두 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탐색전을 벌이는 것일까? 이미 상당 부분 능력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진월의 입장에서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가 고민일지도 모른다. 민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갑자기 흥분하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의 남자에게 느끼는 적개심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왜지?’
민서의 기억 속에 진월과 회장, 부장이 싸우는 모습들이 각인되어 있다. 진월이 그들의 적이라는 증거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이런 적개심을 느끼는 이유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적개심을 넘어 죽여야 한다는 낱말이 계속 떠오른다.
‘죽여라. 죽여라!’
민서가 고개를 흔든다. 그녀의 이성과 성격과는 상충되는 단어다. 또 다른 이면에는 적개심과는 다른 푸근함도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사람이다. 그녀의 이런 느낌이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 * *
“괜찮겠습니까?” 전철 부장의 음성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네.”
전철 부장의 물음에 회장이 답을 했다.
“그래도 불안합니다. 저번처럼 잠재된 의식이 깨어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아깝겠지.”
“그러면 호위라도 더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호위라면 그라이아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녀가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하지만 그 정도로는…….”
“허허, 자네가 조바심을 낼 때도 있군.”
“민서는 아주 중요한 전력이 되었습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정말 대단한 능력이지.”
“그런데 왜 둘만 보내십니까? 아무리 AWC가 있다지만 말입니다.”
“깨질지도 모를 그릇이어서 테스트가 필요하다네.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더 깨지면 복구불가일 확률이 높아.”
“그 말씀은……?”
“워낙 정신력이 강한 아이였잖은가? 저 아이의 기억에서 동료들을 지우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네. 아마도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그 아이는 백지가 될 것일세.”
“…….”
“깨지면 아무리 귀한 것도 필요가 없어지지 않겠나?”
“그렇군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등 뒤에 비수를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네. 이번 시험을 통과하면 그 아이는 이제 정말 귀한 자산이 되는 것이지.”
“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귀천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직 연락이 없군.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말이야. 그가 돌아온다면 영생의 비밀도 거의 푼 거나 다름없겠지.”
“…….”
인자해 보이던 이연후 회장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진다. 그의 눈빛 또한 길게 늘어져 사악해 보인다. 전혀 대조적인 모습이 어둠 속에서 드러난다.
* * *
민서가 탑승한 AWC의 기체 위로 붉은 불길이 일렁인다. 타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붉은 불길이 물처럼 뚝뚝 흐른다. 바닥에 떨어진 불길은 옆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물이 번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AWC에서 민서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퍼져라!”
화악~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붉은 불길이 양자에너지 실드 내부를 모조리 뒤덮는다.
화르르륵~ 따닥! 따닥!
불길이 양자에너지 실드까지 들러붙는다. 막이 출렁거리는 것이 대기 중의 마나와 공조를 하는 기운임에는 틀림없었다. 양자에너지 실드까지 태워버리겠다는 듯 불길이 강하게 일어난다.
“동생!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야?”
“…….”
민서의 답은 없다. 마치 그녀의 고뇌를 이 공격으로 씻어버리겠다는 듯한 태도다.
그녀가 펼친 붉은 불길이 에너지 실드 안의 모든 사물에 옮겨 붙는다. 진월과 국장의 몸에도 당연히 옮겨 붙었다. 국장의 몸 위로 형성된 기막의 겉에서 맹렬하게 불길을 뿜어대는 중이다. 서로 성질이 다른 기운임에도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 국장이 기운을 더 내뿜어 털어내려 해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시 엉겨 붙는다. 국장의 입장에서는 뭔가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이다. 민서의 음성이 울린다.
“멈춰!”
“윽!”
“…….”
국장과 진월이 동시에 움찔 놀란다. 민서의 언령의 힘은 놀랄 정도로 진보해 있었다. 진월조차 전신이 굳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진월의 근육 자체가 굳는 것이 아니다. 뇌가 지배를 받아 그 스스로 근육을 긴장시켜 가고 있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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