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4 장 프로토 K-11D
“흐음!”
쉐인이 턱에 손을 괸 채 입술은 내밀고 있다. 뭔가 잔뜩 고민스러운 눈치다. 그러고 보니 쉐인이 있는 곳은 깊은 산중이다. 울창한 수림이 있는 곳이고 길은 당연히 없는 곳이다. 물론 근처에 큰 길이 있기는 했지만 눈앞에 있는 발자국의 주인공은 길을 이용하지 않았다.
“전생에 동물이었나? 왜 좋은 길을 두고 자꾸 숲으로 다니는 건지?”
“······.”
바알의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지만 대답은 없었다. 쉐인은 그것도 의아했다.
“왜 말이 없어요?”
“······가까이에 있다.” 바알이 드디어 대답한다.
“누구요? 천휘연인가 하는 그 자 말씀입니까?”
“······.”
“이 양반이 혼자서 꿀을 처먹었나? 왜 이렇게 대답을 안 하시는 겁니까?”
“또 다른 나······.”
“네에?”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 잠깐만요.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한 거지?”
“우린 천휘연을 뒤쫓고 있는 거잖습니까?”
“그렇······.”
바알도 대답을 하다가 멈칫한다.
“이거 이거······.” 쉐인은 짚이는 부분이 있다.
“이연후, 그 놈이 부족한 부분을 천휘연을 통해 채우려 하는 것일까?”
“그런 것 같습니다. 바알님의 빈자리를 그를 통해 메우려 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군요.”
“천휘연의 흔적 또한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일이 복잡해지는군요.”
쉐인이 멀리 있는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천휘연의 기운이 향하고 있는 곳이다.
* * *
이연후 회장이 머물던 사무실에 낯익은 사람 둘이 보인다.
전철 부장과 블랙이다.
“넌 여기 있어라.” 전철 부장이 블랙에게 말한다.
“왜죠?”
“굳이 너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런다.”
“비밀이 많아지셨네요.”
“비밀은 없다.”
“그런데 왜 저한테는 어디를, 무엇 때문에 간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거지요? 그냥 대기하고 있으란 말만 하면 저는 그렇게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저한테 말을 해주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비밀이신 건가요?”
“회장이 불러서 갈 뿐이다. 그가 요청한 것은 최근에 만든 아머 부대뿐이다.”
“회장님은 절 믿지 못하시나 보지요.”
“너만 제외시킨 것이 아니지 않느냐? 백동 또한 부르지 않았다.”
“······.”
전철 부장의 말에 블랙이 입을 다문다. 더 이상 따져봐야 서로의 감정만 상할 뿐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쭐게요.”
“······.” 전철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이 많이 틀어진 건가요?”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회장께서 생각해 두었던 복안과는 좀 다르게 일이 진행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틀어졌다고 해도 그가 생각해 두었던 여러 대안들 안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만해라. 이곳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행동 조심하고······.”
전철 부장이 남긴 마지막 말은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전철 부장은 나가면서 블랙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는다. 마치 아빠가 딸에게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블랙 또한 떨어져 나가는 전철 부장의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한다. 전철 부장은 이미 돌아섰기에 블랙의 그런 행동은 보지 못했다. 다만 그의 등 뒤로 블랙의 작은 읊조림만이 전해진다.
“조심하세요.”
“······.”
전철 부장이 문을 나서면서 고개만 슬쩍 끄덕인다.
* * *
교회의 일을 수습한 진월 일행은 NSCT 본부로 돌아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원들이 많이 다쳤다. 물론 큐어 덕에 빠르게 회복했지만 부상의 정도가 심한 대원들이 많았다. 다행이라면 민서, 강희, 최탑의 노력으로 생명을 잃은 대원이 없다는 점이었다.
연구실에서는 진월이 가져온 지장의 육환장을 구성하는 금속에 대해서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현재 진월에게 있어서는 금속에 대한 분석이 가장 최우선이었다. 그의 능력이 있기에 용자룡과 대적이 가능했다. 만약 그의 대원들이 그와 싸웠다면 절대 그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구팀과 창민, 진월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국장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놈, 어땠냐?” 국장이 뜬금없이 묻는다.
“누구요?”
“누구긴 누구냐? 네가 저 세상 보내 준 놈 말이다.”
“제가 저 세상 보낸 사람이 어디 한 둘입니까?”
“그냥 곱게 답해주면 어디 탈이라도 나느냐?”
“그놈,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크흠! 그놈, 이름은 내 입에 담기 싫어서 그런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시나 봅니다.”
“······.” 국장은 대답하지도 않고 시선을 회피한다. 용자룡은 그의 첫 번째 제자였다.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자였지만 심성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했지만 그의 습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미련의 끈을 버리기 힘들었다.
“훌륭했습니다. 신체조건이나 자질만은 최상이라고 평할 정도로. 아마 바르게 배웠다면 국장님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래. 그랬었지.” 국장의 눈빛에 회한이 가득해 보였다. 천장을 보다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 상태로 진월에게 묻는다.
“고통은 없이 갔느냐?”
“맞았는데 안 아프면 그게 인간입니까?”
“꼭 말을 해도······.” 진월은 국장의 갖은 상념을 깡그리 깨버린다.
“마지막은 깨끗했습니다.”
“······.”
둘의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진다. 엉겹결에 연구진과 창민도 침묵을 한다. 데굴데굴 눈만 굴리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합금을 만지고 있다. 잠시 후 모니터에 분석 결과가 도출된다.
‘1. 아다만티움!’
‘2. 불명!’
그 외 여러 가지 성분의 금속들이 표기된다. 단 두 가지만을 섞은 합금은 아니었다. 결과를 본 창민이 말한다.
“두 번째 불명인 금속은 지구상의 물질이 아니란 뜻입니다. 사실 아다만티움도 지구상에서 보기 힘든 광물이지요. 예전에 누군가 데이터베이스에 넣어놓은 자료가 있어 표기된 것뿐이고요.”
“그렇군. 이 정도의 강도를 자랑하는 것은 결국 저 두 가지 금속 때문인 것이고.”
“그렇습니다. 문제는······.”
창민의 말에 진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월은 벌써 두 번째 이 합금과 부딪쳤다. 죽었다 살아난 제창협의 몸체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도 바로 이 합금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합금을 가지고 보호 장비를 만든다면 그들의 현재 화력으로는 해결이 불가했다. 저번에 나타났던 AWC의 장갑을 이 합금으로 덮는다면······.
창민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몸서리를 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팀장님 아니면 답이 안 보이는데요.”
“······.”
진월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항상 만약이란 게 있고 사람들이 말하는 안 좋은 만약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먼 산만 보고 있던 국장이 입을 연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고민하기는······.”
“······?” 진월과 창민이 둘 다 국장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 바라본다.
“정 실장! 가져와 보지?” 국장이 연구진 중 책임자를 보며 말한다.
“아직 테스트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쓰다 잘못되면 그것도 그놈들 운명이지. 지금 바쁜데 이것저것 따질 땐가?”
“그렇기는 해도······.”
“안 가져와?”
“······.”
연구진 모두가 쭈뼛거린다. 정실장이 인상을 팍 쓴다. 본인도 싫다 해놓고 정작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화를 내고 있다. 결국 막내 둘이 같이 움직인다. 그들이 들고 온 무기를 본 진월과 창민이 인상을 쓴다. 생긴 것은 멋지게 생겼다.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종족 중 마린이 들고 있는 관통 소총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진월이 인상을 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보통 사람이 들고 쏘기는 힘들겠군요.”
“보통 사람이 쏠 것이 아니잖아. 전부 강화복 입고 있잖아.”
“그래도 무게와 반동이······.”
진월이 슬쩍 들어본다. 역시 묵직했다. 그만큼 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란 짐작도 가능했다.
“K-11 복합 소총을 기반으로 더 크게 강화했을 뿐이다. 탄은 특수 제작된 15밀리 탄을 쓴다. 탄 또한 특수철갑탄에 탠덤탄두다. 탄두는 다이아몬드 강도의 인조광석에 두 번째 탄두는 탱크 장갑도 가볍게 관통하는 초합금이다. 물론 고성능폭약이 내장되어 있어 한발 당 수류탄의 파괴력과 맞먹는다.”
국장의 손에는 15밀리 탄환 하나가 들려 있다. 그 길이가 1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인다. 진월이 탄환을 보더니 뭔가를 찾는다.
“탄창이?”
찰칵! 정실장이 곁으로 오더니 멈치처럼 생긴 것을 누르자 총열 부분의 하단이 툭 떨어져 나온다. 보통 총열 덮개가 있어야 할 부분과 총구까지 모조리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이유가 이제야 설명이 되었다.
“탄이 크니 하단부가 전부 탄창이었군.”
“네. 그래야 육십 발 정도가 들어갑니다.”
탄창 크기만 작은 상자 크기다. 그러니 진월이 들기에도 묵직했던 것이다. 화력과 성능이야 좋겠지만 보통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화기였다.
“놀고 계시지만은 않으셨습니다.”
“저번에 AWC 사건 이후로 연구하라고 한 거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다. 뛰어난 화력을 지닌 기동병기에 대한 방어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적들은 어떤 무기를 들고 나타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월이 눈빛을 반짝인다. 이 정도 무기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월이 국장을 바라본다. 국장도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혹시 반란이라도 꿈꾸시는 겁니까?”
“······?”
“나라 돈을 함부로 쓰십니다.”
“허~! 쓰기 싫으면 내 놔라.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기에 만들어 줘도 지랄이냐?”
찰칵! 찰칵! 진월은 국장의 염장을 질러놓고 화기만 매만지고 있다.
그때 곁에서 정 실장이 국장을 보며 입을 오물거린다. 뭔가 할 말이 있나 보다. 진월 또한 느꼈는지 정 실장을 쳐다보며 눈을 껌벅인다.
“사실 저희가 만든 건데 말입니다.”
“그렇군요. 정실장님이 만들었군요.” 진월이 동의해 준다.
“······.” 국장은 이래저래 어이없어 조용히 입을 다문다.
진월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더 추가해준다.
“결국은 모두 공범입니다. 전부 다 연구자금 유용으로 콩밥 좀 드셔야겠군요.”
“······.”
모두 다 조용해진다. 어쩌면 진월의 말이 정답이었다. 정부의 일이 그렇듯 허가받지 않은 일에 공적 자금을 쓰는 것은 불법이었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은 놓아둔 채 진월이 연구실 한쪽에 마련된 발사장으로 간다. 그의 손에는 육환장의 머리 부분이 들려 있었다. 하단부는 폭약이 있으니 실험 대상으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프로토 K-11D로 명명된 화기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진다.
두두두~ 묵직한 소음이 발생한다. 3발 점사까지만 발사하게 만들어져 있어 세발씩 나간다.
티티팅~ 콰과광~ 금속에 부딪치는 소음과 폭발음이 거의 동시에 발생한다. 진월은 조준경에서 눈을 뗀 후 육환장을 바라본다. 뛰어난 시력을 지니고 있으니 표적을 가까이 가져올 필요도 없다. 진월이 고개를 갸웃한다. 국장도 궁금한지 진월의 곁으로 바짝 다가선다.
“어떠냐?”
“안 뚫리는 군요.”
“······.” 국장이 상당히 아쉬워한다. 연구진 또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진월은 조준경에 다시 눈을 붙이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에는 연속해서 9발까지 쏴본다. 지하 연구실에서는 굉음과 함께 진동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정말 대단한 자들입니다.”
“그렇구나.”
진월과 국장이 육환장의 머리 부분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뒤로 금빛이 반짝하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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