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 장 잘못되면 모두 당신 책임이다.
촤르르륵~
진월과 민서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용린이 사라진다. 빛이 들어오고 드러난 장면은 민서가 진월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다. 민서의 가슴에 기복은 없다. 숨이 멎어 있다는 뜻이다. 그녀의 몸에 박힌 용린의 칼날 또한 그대로다. 진월이 일부러 뽑지 않은 것 같았다. 진월이 민서를 안은 채 사라진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양자에너지의 실드를 뚫고 밖으로 나간다. 포탄의 공격도 막아내는 양자에너지 실드지만 진월의 힘을 억누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쿠웅! 진월이 지면에 착지한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의 주위로 강희를 비롯한 요원들이 급하게 다가선다. 품에 안긴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봤기 때문이다.
“헛!”
누군가 헛바람을 삼킨다. 진월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오, 오데……. 아니, 민서씨가 왜 이 모양입니까?”
쉐인이 놀라서 묻는다. 더구나 민서의 몸에 박혀 있는 용린의 칼날은 딱 봐도 누구 짓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진월은 대꾸하지 않은 채 민서를 내려놓는다. 최탑이 그 모습을 보며 진월에게 바로 큐어를 내민다. 말하지 않아도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민서의 숨이 멎은 것은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다. 뇌에 피해를 미칠 시간도 아니다. 큐어의 효과만 잘 듣는다면 충분히 살려낼 수 있었다. 진월도 그것을 알기에 바로 달려온 것이다. 진월은 우선 큐어부터 주사한다. 이후 그가 박아놓은 용린의 칼날을 회수한다. 칼날이 회수되자 민서의 몸에 나 있던 검상이 서서히 아무는 모습도 보인다. 진월의 손은 이미 민서의 가슴에 닿아 있다.
투웅! 진월의 손에서 충격파가 방출된다.
민서의 몸이 충격에 바닥으로 눌렸다가 다시 떠오를 정도다. 심장제세동기가 따로 필요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창민의 고개가 좌우로 저어진다. 아직 심장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진월이 다시 한 번 충격을 가한다.
두근!
심장이 슬쩍 뛰기 시작한다. 창민 뿐 아니라 진월도 들었다. 진월의 우악스런 손이 민서의 심장부위를 여러 차례 압박한다. 진월의 힘이 있으니 적당히 눌러도 적절한 심폐소생술이 된다. 잠깐 멈춘 후 인공호흡도 시행한다. 호흡도 서서히 돌아온다. 민서의 생체신호가 돌아온다고 느낀 순간 진월이 쉐인을 본다.
“잘 왔어.”
“일을 벌이려면 말씀 좀 하고 하시지요.”
“벌임을 당했지. 우리가 벌인 것은 아니야.”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이번에는 뭘 해드릴까요?”
“민서 좀 구속해 줘.”
“…….”
쉐인은 진월의 의도를 눈치 챈다. 이 상태로 민서가 깨어나서 다시 능력을 발현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쉐인의 검지와 중지가 그의 이마에 닿는다. 잠깐 집중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연다.
“에이화즈(eihwaz)!”
민서의 몸 주변으로 룬어가 나타난다. 어두운 파란색 계열의 룬어다. 모양은 기역과 니은이 위아래로 합쳐진 모양이다. 파란 빛이 민서의 몸을 휘감는다. 쉐인이 구현한 에이화즈에 의한 마력은 상대의 힘에 제한을 건다. 민서의 몸을 휘돌던 파란 마력이 민서의 머리와 눈에 집중적으로 몰린다. 파란 빛은 한 번 번쩍거리더니 씻은 듯이 사라진다.
민서는 상처가 회복되었음에도 의식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고른 숨소리만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모두 숨죽여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민서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다. 또 너무 강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미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그 보다 더한 충격은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잘못되면 모두 쉐인, 당신 책임이다.”
“……?”
쉐인은 눈이 동그래져서 진월을 쳐다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구속을 해달라고 해서 힘에 제한을 건 것뿐이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게 전부다. 전신에 세 개나 되는 큰 칼날을 찔러 넣어 숨을 끊어 놓은 것은 분명 진월이었다. 쉐인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물에 빠진 놈의 보따리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뭐라고 입을 벌려 말을 하려는 순간 진월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쉐인의 귀에 똑똑히 전달되어 온다.
“의식은 꼭 돌아오게 만들어.”
“야~ 이씨…….” 쉐인의 입에서 욕이 나오려다 차마 못 뱉는다.
민서가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욕을 하며 싸울 수는 없다. 더구나 민서는 예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인 오데뜨와 너무나 닮은 사람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애틋한 감정이 생기는 여인이었다. 그도 어떻게든 민서가 의식을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진월은 개의치 않고 양자에너지 실드를 향해 달린다. 사실 쉐인이 욕을 해도 상관없다. ‘이 진월’이니 ‘이씨’인 것도 맞다. 노출된 음성만으로는 그에게 욕도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성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특하다.
진월이 향하는 방향의 양자에너지 실드가 사라진다. 진월의 출입을 쉽게 해주기 위한 조치다. 동시에 큰 굉음과 충격파가 뻗어 나온다. 막혀 있을 때는 잘 들리지 않던 소리다. 양자에너지 실드의 방음 효과가 훌륭하다는 반증이다. 에너지 실드가 열려 있는 곳에서 엄청난 열기가 후끈 불어온다. 불꽃도 튀긴다. 그런 화염의 중심에서 꼿꼿이 서 있는 늙은이가 보인다. 바로 고명철 국장이다.
군데군데 그을리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도 탔다. 상당히 지쳐 있음에도 투첼이란 놈의 무식한 공격을 막아내며 버티고 있었다. 대단하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장의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정말 시험을 해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미 한계다. 진월 또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장의 몸에서 발산되던 기파가 불규칙해지고 있었다. 기의 전달이 고르지 못하다는 것과 남아 있는 내공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진월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으로 들어서자 다시 양자에너지 실드가 가동된다. 그라이아의 능력을 알기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접근은 방해만 될 뿐이다. 진월이 들어서자 투첼의 시선이 진월에게로 향한다.
“드디어 오셨군.”
“이젠 내가 상대하지.”
“순서는 내가 정한다. 잠깐 기다려!”
투첼이 말을 하면서 국장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손바닥으로부터 무형의 파동이 느껴진다. 그 순간 국장이 서 있던 지면으로부터 폭발적인 힘이 느껴진다.
콰아아앙~ 쾅! 쾅! 쾅!
지면이 터져 오르며 불기둥이 솟구친다. 들어설 때 들리던 굉음이 바로 이런 폭발이 일어나는 소리였다. 국장의 몸이 투첼의 힘을 느낌과 동시에 움직인다. 폭발의 불기둥은 그런 국장의 움직임을 따라 빠르게 뒤따른다.
“미꾸라지 같군.”
투첼이 투덜거린다. 하지만 조급해보이지는 않는다. 이유가 있었다. 폭발의 파편들이 피하는 국장의 몸에 닿는다. 엄밀히 말하면 몸이 아닌 국장이 방출하는 기파에 닿는다.
화악~ 불기둥의 파편들이 더욱 강하게 타오른다.
반대로 국장이 내뿜는 기파는 파편이 닿은 부위가 훅 꺼진다. 마치 촛불에 바람을 부는 것처럼 사라졌다.
“…….” 국장의 표정이 구겨진다.
“흐음~!” 투첼의 표정은 마치 뭔가를 음미하는 것 같았다.
“늙었지만 좋은 기운을 지니고 있어.”
“늙은이 힘 빨아먹는 것이 그리도 좋으냐?”
“크크,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도대체 몇 명이나 잡아먹은 것이냐?”
“너는 네가 먹은 밥 그릇 수를 세고 살았나?”
“그렇군.”
투첼의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생물의 정(精)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생명체이니 사람이 밥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흡혈귀와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존재다. 흡혈을 하는 방법도 특이했다. 만약 폭발의 기둥이 국장을 덮쳤다면 불길을 유지하는 재료는 국장의 정기가 된다. 그리고 타오르는 정기는 바로 투첼에게는 식량이 된다.
투첼이 주변을 한번 돌아본다. 양자에너지 실드 안의 넓이를 가늠하는 것 같다.
국장 또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진월이 들어서기 전에 몇 번 격돌했기에 주의를 하고 있다. 그가 가한 공격이 오히려 투첼에게 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장 또한 방법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투첼도 국장의 그런 고민을 아는 것일까?
“고민만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 나 또한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시간 끄는 것도 싫어하고 말이야. 모두 한 번에 보내주지.”
“…….”
투첼의 몸에서 거대한 화염이 일어난다. 그의 몸 자체를 태우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신체 주변 대기가 따닥 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들어 한다. 그때!
저벅 저벅
누군가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다.
투첼의 시선이 발소리가 들린 곳을 향한다.
진월이 천천히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다. 투첼이 지금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국장의 기파가 타오르는 모습을 봤으니 투첼이 힘을 쓰면 어떻게 될 것이란 것 또한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유 있는 모습이라니…….
투첼은 갑자기 짜증이 확 치민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더 뒤로 향한다.
그라이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진월이 노리는 대상은 바로 그라이아였다. 그라이아 또한 진월이 다가오자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기분이 나빠진다. 어찌 보면 본인을 깔보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투첼은 상대하기 힘드니 소환자를 잡아버리겠다는 의지로 보이니 말이다.
“흥!”
그라이아가 코웃음을 치며 스태프를 치켜든다. 그녀의 눈빛도 붉은 색으로 다시 바뀐다.
휘이이잉~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난다. 토네이도다. 그런데 토네이도의 주변으로 얼음 알갱이들이 생겨난다. 날카로운 눈보라도 겹친다. 작은 얼음 알갱이들은 그 크기가 순식간에 커진다. 토네이도의 주변을 도는 얼음 덩어리들이 최탑의 비도처럼 날카롭게 만들어지며 커진다. 바람이 휘도는 속도로 봤을 때 부딪친다면 갈기갈기 찢길 정도의 위력이다.
토네이도에서는 작은 토네이도가 뿜어져 나오며 진월을 향해 날아든다. 모두의 관심이 일순간에 그쪽으로 쏠린다. 토네이도들의 쇄도가 진월과 부딪치려는 찰나 진월의 신형이 사라진다. 그의 모습은 흐린 검은 색으로 표시되며 토네이도와 토네이도의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라이아도 그것을 짐작했을까? 진월이 마지막으로 도착할 위치에는 피할 공간을 모두 점유한 거대한 토네이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촤르르륵~ 진월의 뒤쪽에서 용린이 생성된다. 거대한 날개 형상으로 만들어진다. 이제껏 만들어진 날개보다 훨씬 컸다.
후웅~ 날개가 대기를 밀어낸다. 진월의 주변에서 갑작스런 풍압이 발생한다.
용인 흑천이 일으키는 바람이다. 용은 비와 바람을 주로 다룬다. 과연 누구의 바람이 더 셀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진월의 주변에서 만들어진 바람이 토네이도를 향해 몰아친다. 그냥 바람이 아니다. 진월의 영력의 불길까지 동원되었다. 흑빛과 금빛의 영력이 바람의 형상을 허공에 그린다. 영력이 영사가 되고 영강이 된다. 용린과 같은 형상의 엽형 비도가 바람 속에 만들어진다. 흑빛과 금빛이 섞인 엽형 비도다.
얼음의 비도가 섞인 토네이도와 진월이 날려 보낸 바람이 격돌한다.
까가가강~ 결정들이 부딪치며 경쾌한 금속음을 낸다. 그치지 않고 지속될 것 같던 소리가 변하기 시작한다.
콰과과광~ 굉음이 터져 나온다. 두 기운이 부딪친 접점에서 주변으로 바람이 터져 나가기 시작한다. 양자에너지 실드에까지 부딪친다. 지직 거리는 소음이 발생하며 에너지 실드조차 흔들린다. 투첼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길조차 흔들린다. 불어오는 모든 바람을 다 태우지 못하고 흔들린다. 당연히 투첼의 표정도 일그러진다.
그라이아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용린의 날개가 한 번씩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그라이아의 몸에서는 녹색 마력의 불길이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그녀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촤르르륵~ 용린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아니 새롭게 소환된 용린들이다. 날개의 형상은 그대로 유지된 채 소환된 검은 용린들이 진월의 전신을 감싼다. 영력의 불길 또한 더욱 더 강하게 일어난다. 지저의 흑천사가 찰갑을 입고 있다면 지금 진월의 모습과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진월은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단 한 번에 모든 승부를 거려는 것처럼 보인다.
진월의 시선이 투첼을 슬쩍 본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눈앞의 토네이도 안으로 훅 사라진다. 과연 누구를 노리고 움직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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