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 장 소환! 블러드 인페르노
“놓아!”
“그럴 수는 없다.”
“놓으라고! 놔아~!”
“…….”
민서가 크게 소리친다. 어둠이 일렁이며 주변으로 쭉쭉 뻗어 나간다. 민서의 의식을 구속하고 있던 흑천조차 아득해지는 정신에 주춤한다. 그때 외부에서 커다란 충격이 느껴진다.
“윽!” 흑천의 신음소리다.
그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민서의 지배력이 확대된다.
“호호호호!”
민서의 웃음소리가 호기롭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성격 또한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흑천이 무슨 일인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의 의식 자체도 민서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바로 진월에게 있었다.
그의 흉갑 한쪽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피부 또한 상당 부분 손실되어 있다. 더구나 진월은 지금 서 있는 상태도 아니다. 폭발의 충격에 의해 뒤로 날려가 바닥을 구른 후의 모습이다. 진월이 피해를 입자 기생하는 흑천 또한 타격을 입었다. 그 상황에서 흑천의 의식 속에는 민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민서에게는 절호의 기회였고 흑천의 의지를 누르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흑천의 용린이 일어난다. 진월의 몸을 덮고 있던 부분들까지 모조리 일어나 허공으로 떠오른다. 허공에는 거대한 검이 한 자루 만들어진다. 다가서려던 그라이아가 움찔 한다. 그렇게 당했음에도 아직까지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지켜보던 그라이아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혹시 동생?”
“…….”
“흐음, 맞는 것 같은데…….”
“네. 맞아요.”
“그렇지. 호호. 뭘 주저해. 없애버려.”
“…….”
누워있는 진월의 위쪽 허공에 거대한 용린의 검이 떠 있다. 그대로 떨어져 내리면 심장에 박힌다. 심장이 상하면 아무리 진월이라도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흑천의 의식 속에는 매끈한 검은 피부를 자랑하는 민서의 모습이 떠 있다. 그녀의 손이 들린 채 아직까지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다. 손을 내리려 하는 그녀의 기억 속으로 한 장면이 떠오른다. 붉은 검에 관통당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진월의 모습이다. 갑자기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앞에서 진월이 하고 있는 말이다.
‘지켜주지 못해 내가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라는 진월의 음성이 계속 메아리친다. 민서가 고개를 흔든다. 그녀의 손도 흔들린다. 그에 따라 용린의 검도 미세한 떨림을 보인다. 그녀의 내적 갈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무리 이연후 회장이 세뇌를 시키고 암시를 걸었어도 그녀의 마음을 백 퍼센트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연후 회장이 걱정했던 것 또한 이런 모습이다.
AWC 본체 안에서 모든 것을 조망하던 민서가 눈을 질끈 감는다. 진월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꾸 그녀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묘한 기억이 떠올랐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보지 않는 것이 답이었다.
민서의 들린 손이 아래로 향한다.
슉!
거대한 용린의 검이 떨어진다. 진월의 심장에 박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용린의 검이 너무 날카롭기 때문일까? 뚫고 들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 늙은이가……?”
그라이아의 목소리다. 그녀의 의문처럼 쓰러진 진월의 곁에는 국장이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허연 기파가 민서의 힘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은 용린의 검을 양쪽에서 잡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무극상의 힘을 발휘했다. 용린의 검 옆면에는 하얀 빛의 손이 여러 개 달라붙어 있다. 국장이 힘으로 흑천의 힘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용린의 검이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간다.
“큭!” 국장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국장이 감당할 수 없는 거력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위에서 아래로 무게까지 실어 내리찍는 중이다. 국장의 드러난 팔뚝에 핏줄이 울룩불룩 솟는다. 허연 기파 또한 더 확장되며 기파가 퍼져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틍~
금속음을 내며 용린의 검이 내리 꽂힌다.
푹! 진월의 가슴에 검 끝이 박혀든다. 국장의 발이 바쁘게 움직인다.
퍽! 진월의 몸을 힘껏 찬다. 국장의 기력이 있으니 진월의 몸이 옆으로 죽 밀려난다. 물론 검에 의해 피부가 상하기는 했지만 심장은 구했다. 국장이 안도하며 숨을 거칠게 내쉰다. 무극상이란 8식은 쉽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기력을 소모한다. 국장도 꽤 지친 기색을 보인다. 하지만 안광만은 형형하다. 허리를 꼿꼿이 펴며 말한다.
“모든 것은 저들의 운명인 것이지.”
“…….”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국장이 무작정 민서가 탑승하고 있는 AWC를 향해 쇄도한다. 조종사들이 타고 있어 공격에 조심성을 기하다 보니 그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 이렇게 하다가는 결국 무덤 안에 들어가야 할 쪽은 그들 쪽이 될 것 같았다.
국장이 결단을 내리고 움직인다. 그의 전방으로 AWC 세 기가 나타난다. 민서가 국장의 의도를 눈치 채고 그녀의 전방을 봉쇄한 것이다. 하지만 국장 또한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힘을 동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이러는 것은 진월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국장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흰빛의 번쩍임만 어두운 공간에 드러난다.
터터터텅~ 금속을 세차게 두드리는 음향만이 난무한다. AWC 한 기의 하부에서 번쩍이던 빛이 회오리처럼 휘돌더니 다른 기체의 후면에 나타난다. 주먹을 그러쥔 국장의 모습이 잠깐 보인다. 그의 팔 전체가 흰빛에 휩싸이더니 쑥 사라진다. 기체의 뒷면을 깊숙이 파고들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잠깐 사이 국장의 몸은 땀투성이가 되어 있다.
“훅!”
국장이 숨을 짧게 내쉰다. 기체에 박혔던 팔을 빼내더니 급하게 자리를 옮긴다. 붉은 불빛이 번쩍이며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박힌다. 그 짧은 순간 20mm 기관총이 국장을 노리고 사격을 했었다.
사라진 국장을 찾기 위해 AWC들의 포탑이 바쁘게 움직인다. 민서가 탄 기체가 허공을 향해 시선을 준다. 사라졌던 흰빛이 그곳에 나타났다. 떨어져 내리는 흰빛의 덩어리가 전방을 막던 마지막 기체의 포탑에 박힌다.
콰앙! 콰지직!
포탑이 그대로 찌그러진다. 마치 위에서 쏟아지는 포탄이라도 맞은 형상이다. 찌그러진 포신 위에 서 있는 것은 사람이다. 바로 국장이 그대로 떨어져 내리며 발로 밟아 만든 장면이다. 기계가 고장을 일으키는지 지직거리며 방전 현상이 일어난다. 국장 또한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의 몸을 덮고 있던 기파 또한 많이 흐려져 있다. 너무 많은 잠력을 폭발시킨 결과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장면에 그라이아가 입을 벌린다.
“참! 볼수록 놀라운 인간들이 많아.”
“더 놀라게 해줄 수도 있다.”
“늙은이가 힘도 다 쓴 주제에 입만 살아서 떠드네요.”
“글쎄. 그건 붙어봐야 알지 않겠나?”
국장이 그라이아를 자극하며 슬쩍 진월의 모습을 본다. 진월은 아직까지 미동조차 없었다. 조금 이상했다. 발로 찰 때 느낀 진월의 혈맥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살리기 위해서 찬 것만은 아니었다. 그 한방에도 기를 동원해 의식을 차릴 수 있도록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왜 안 깨어나는 것이냐?’
국장은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촤르르륵!
국장의 상념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진월을 찌르려다 땅속 깊숙이 박혔던 용린의 검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쉭! 국장을 향해 빠르게 허공을 가른다. 국장 또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움직임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빠르게 모습을 감춘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그라이아가 타고 있는 기체의 바로 밑이다. 용린의 검이 국장을 향해 다시 날아간다. 기체의 다리와 다리 사이로 깊숙이 파고든다. 국장이 바로 그곳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장은 그곳에서도 모습을 감췄다. 용린의 검이 다리 사이를 지나치려 할 찰나 손잡이를 잡는 손이 있다.
턱! 국장이 검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용린의 검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국장은 버틴다.
드드득! 국장의 발이 끌린다. 하지만 국장이 전신에 힘을 실어 옆으로 휘돈다. 검 또한 갑작스런 힘의 전환으로 인해 휘돌게 된다.
스스슥~ 날카로운 검날에 의해 금속으로 만들어진 AWC의 한쪽 다리들이 몽땅 잘린다. 잘리고 난 이후 용린의 검날들이 낱개로 분리된다. 민서가 아차 하고 용린을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쿠웅~ 한쪽 다리가 모두 잘리자 그라이아가 타고 있던 기체가 한쪽으로 주저앉았다.
“꺅! 동생?”
“…….”
입이 몇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쩌저적! 그라이아가 타고 있던 기체가 절반으로 갈라진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자 그라이아가 안에서 반으로 갈라버리며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조종사가 들려 있다. 그러나 이미 목내이가 된 것처럼 삐쩍 말라 보인다. 점점 더 말라가는 것이 투첼이 계속 그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국장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조각조각 나눠진 용린의 조각들이 국장을 전 방위에서 덮치고 있었다.
타타타타탕~ 날아들던 용린의 조각들이 국장의 무극장(武極掌)과 부딪치며 튕겨 나간다. 어둠 속에서 국장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입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눈에 보일 정도다. 국장의 손이 지나치는 길에는 흰빛의 기의 줄기들이 만들어진다. 춤추듯 펼쳐지는 그의 권장에 의해 주변에 기막이 촘촘하게 만들어진다. 용린의 조각들은 없어 보이는 틈조차 뚫고 들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날아든다.
그라이아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는다. 왠지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미소다.
“이제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그라이아의 음성과 함께 그녀 주변의 기운이 변화한다. 왠지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디디고 선 바닥이 쩍쩍 갈라진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균열의 틈에서 마그마가 솟구치듯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그라이아는 그 뜨거운 열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다.
그녀가 디디고 선 대지에 균열들로 만들어진 마법진이 형성된다. 민서가 펼쳐놓은 어둠의 공간도 그라이아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걷힌다. 그 공간을 뜨거운 열기가 차지한다.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불길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라이아의 손바닥이 하늘을 바라보는 형태로 들린다. 그 손에는 투첼이 자리하고 있다.
투첼의 입에서 붉은 피들이 서서히 흘러나온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엄청났다. 흘러나온 피들이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흡수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라이아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양이다.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신들은 없는 편이 나을 것 같으니까.”
“…….”
국장은 편린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그라이아를 슬쩍 본다. 절대 좋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아니었다. 그도 지금 지쳐가는 중이다.
그라이아가 국장을 보며 말한다.
“당신도 우리 투첼의 힘이 되어주면 좋을 거예요.”
“크크, 그래. 저 자의 피까지 취한다면 더욱 더 강해지겠지.”
어느새 그라이아의 손바닥에 있던 입술은 피로 만들어진 인간 형태의 입술이 되어 있었다. 투첼이 원래 그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블러드 인페르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국장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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