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3 장 회칼로 육포를 뜨려고?
“다만?” 부사장이 다시 되묻는다.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겠지요.”
너무나도 태연하게 상대를 다치게 만든 것에 대해 표현한다. 절대 승려의 입에서, 그것도 온화해 보이는 얼굴을 지닌 고승의 입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부사장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그의 곁에 있던 황 차장 또한 여차 하면 움직일 태세다. 부사장이 낌새를 눈치 채고 슬쩍 손을 들어 만류한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거래를 하고자 오셨으니 이야기나 들어보십시다.”
검은 머리의 아크가 생각보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부사장을 주시한다.
“생각보다 괜찮지 않습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는 제일 나은 것 같군.”
“…….”
둘은 마치 부사장과 황 차장을 앞에 두고 품평회를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앞에서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좋을 리가 없었다. 결국은 황 차장이란 자가 발끈한다.
“이 자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우리가 상품으로 보이는 거요?”
“뭐, 경우에 따라서는…….” 아크가 수긍까지 해준다.
“……?”
묘한 의문과 침묵이 내려앉는 순간이다.
월미파의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둘을 묻어버리고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 다만 둘의 신원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에 현재 간을 보고 있는 중이다. 동원된 정보라인으로는 둘의 신원 파악이 전혀 되질 않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정말 인적 자료가 없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신분을 은폐한 경우다.
부사장의 손이 황 차장의 팔을 잡고 있다.
“하하! 저희 황 차장이 한 성질 합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아크가 어깨를 들썩하며 괜찮다는 의사표현을 한다.
지장의 경우는 합장을 하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부사장은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본다. 이 정도 덩치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부하들도 그런대로 한가락 하는 놈들로만 골라서 데리고 왔다. 그런데 전혀 기세가 눌려 있는 모습이 아니다. 상대가 그러니 오히려 더 신기해 보인다. 시간을 끌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부사장이 먼저 본론을 꺼낸다.
“우선 믿음이 있어야 거래도 성사될 수 있습니다. 수색에 협조부터 해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아크가 두 손을 옆으로 든다. 마치 상대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덩치 중 하나가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 와서 몸수색을 한다. 전파를 탐색하는 장치까지 동원해서 샅샅이 뒤진다. 부하들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부사장이 손짓을 하고 부하들이 뒤로 물러난다. 넷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부사장이 먼저 말을 꺼낸다.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
“사람!” 아크가 짧게 답한다.
“…….” 부사장은 순간 입을 다문다.
“당신들에게 가면 구할 수 있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우리는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부들을 이야기하시는 것이라면 용역회사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피차 다 알고 왔으니 농은 거기까지만 합시다.”
“뭘 알고 왔다는 말씀이신지?”
“사람거래 말입니다.”
“큰일 날 소리를 하시는군요.”
“두 당 오천에, 월에 열 명 제공, 선불로 내드리지요.”
“…….”
“…….”
부사장과 황 차장 둘 다 입을 벌린다. 그들이 통상적으로 거래했던 금액의 몇 배다. 거기다 선불로 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그 많은 인원은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다시 성질 급한 황 차장이 나선다.
“도, 도대체 어디…….”
“잠깐!” 부사장이 만류한다.
그 모습을 본 아크와 지장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머문다. 하지만 부사장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날카로운 사람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과는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말입니다.”
“아~! 우리 신원 때문에 그러셨군.”
“그렇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으면 거래도 없는 법이지요.”
“흠! 이걸 어쩐다?”
“그러게 말이네. 없는 신분증을 만들어줄 수도 없고 말이야.”
“정말 신분을 증명할 그 어떤 것도 없단 말입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이 거래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시지요.”
부사장이 몸을 일으킨다. 황 차장 또한 부사장을 따라 일어선다.
“쩝!”
아크가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황 차장의 시선이 그런 아크를 향해 날카롭게 빛난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였다. 그런데 아크의 얼굴에 그들을 비웃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황 차장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려 한다. 그때 아크의 경고가 그의 말을 자른다.
“올 때는 너희들 마음이었지만 갈 때는 내 허락이 있어야 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돈을 준다고 할 때 얌전히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지장 또한 아쉬워한다. 마치 둘은 전혀 걱정이 없고 숫자가 많은 상대가 걱정된다는 어투다.
두 눈으로 딱 보기에도 숫자 상 12 대 2 다. 아니 부사장과 황차장을 합하면 14 대 2 다. 절대 불리한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아크와 지장은 월미파를 걱정해준다.
황 차장이 끝내 완전히 폭발한다.
“이 새끼들 미친놈들입니다.”
“…….”
부사장도 고개를 슬쩍 끄덕인다. 동의의 표시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의 본능이 자꾸 경고를 보낸다. 그를 이 자리까지 올려 준 본능이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젊은 피인 황 차장은 이미 눈이 뒤집어졌다.
“오늘 육포 한번 제대로 떠보겠습니다.”
황 차장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부하들도 황 차장이 움직이자 둘의 주변을 향해 둘러선다. 황 차장의 손에는 언제 빼들었는지 은빛으로 번쩍이는 사시미 회칼이 들려있다. 회칼을 본 아크가 한마디 한다.
“회칼로 육포를 뜨려고?”
“이런 개새끼가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대고 지랄이야.”
“거네. 걸어. 걸어서 구걸은 잘하겠다.”
“…….” 황 차장이 어이가 없어 주둥이를 다문다.
그때 아크는 지장을 보며 어떻게 할 것인지 눈빛으로 묻는다.
“자네가 하면 죽일 것이 분명하니 내가 맡도록 하겠네.”
“그러시지요. 전 정말 죽일 것 같습니다.”
“미친~ 개새끼들! 쳐!”
황 차장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친다. 부하들 손에도 무기는 하나씩 들려있다. 각목부터 쇠파이프, 도까지 다양했다. 모두 운동을 몇 년씩은 한 자들이라 움직임도 날렵했다. 그들은 모두 지장과 아크를 향해 달려든다. 그 순간 아크의 모습이 꺼지듯 사라진다. 아크를 노리고 달려들던 자들은 순간 목표를 잃고 당황한다. 그들의 시선은 아크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아크를 발견한 곳은 창고의 출입문 앞이다. 순간적으로 이동한 아크는 경고까지 아끼지 않는다.
“도망가는 놈들은 죽는다.”
깡~
아크의 경고와 거의 동시에 금속음이 귀를 울린다. 지장의 육환장이 시멘트 바닥을 찍는 소리다.
차라랑~ 육환장에 달린 고리들이 세차게 흔들린다.
웅웅웅~ 음파처럼 진동이 퍼져나간다. 달려들던 자들이 모두 똑같이 답답함을 느낀다. 그들이 달려들던 속도 또한 확 줄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장의 오른발이 슬쩍 들렸다. 바닥을 딛는 것 같더니 그의 몸이 선을 그리며 앞으로 쭉 치고 나간다. 부사장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진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라는 의문과 동시에 그의 부하 넷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파파파팡! 지장의 오른손이 가슴에 올라간 것 같았는데 그의 손바닥 네 개가 허공에 만들어졌었다. 손바닥 네 개가 사내들의 가슴을 때렸다. 사람의 손이 어떻게 네 개지? 라는 의문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력에 맞은 부하들이 공중에 떠 있는 사이 지장의 오른손은 한 번 더 움직인다. 이번에는 손가락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내듯이 손가락을 튕긴다.
슈슈슈슉!
네 개의 조그마한 빛 덩이가 허공을 가른다. 부하들의 검은 양복 한 귀퉁이에 하나씩 박힌다. 모두의 표정에는 극도로 놀란 빛이 떠오른다. 두 눈 또한 동그랗게 뜨여져 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그대로 밀랍 인형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부사장의 고개는 빠르게 1초에 총 세 번을 움직였다. 지장의 움직임이 그만큼 빨랐다는 의미다. 마지막 움직임이 멎은 곳은 남은 부하 넷이 있는 곳이다.
도를 들고 있는 자가 지장을 향해 휘둘렀다. 물체가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휘둘렀다.
깡! 지장의 육환장에 막혔다. 그리고 검을 든 그의 팔목이 기형적으로 꺾인다. 지장의 쥐어진 검지가 팔목에 닿은 결과다. 이후 무형의 기운에 그대로 날려간다. 갑자기 불어 닥친 기풍에 근처에 있던 자들의 눈도 감긴다. 감겼던 눈이 뜨여졌을 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천정을 보고 있었다. 모두 입은 벌어진 채 침을 사발로 뱉어내고 있었다.
부사장의 시선이 빠르게 마지막 남은 자를 바라본다. 바로 황 차장이다. 이미 그의 앞에는 지장이 서있다.
황 차장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손에 들고 있던 사시미 또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현실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맞은 부하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귀를 어지럽힌다.
“시주께서는 육포를 떠본 적이 있소?”
“…….” 황 차장의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가로저어진다.
“결국은 떠본 적도 없으면서 허언을 하셨구려.”
“…….” 이번에는 위아래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말이오. 난 떠본 적이 있다오.”
황 차장의 사시미 회칼이 어느새 지장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언제 뺏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황 차장의 시선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가 지장의 손을 다시 본다. 왜 그의 칼이 지장의 손에 잡혀 있는지 궁금했다.
번쩍! 은빛의 번쩍임이 황 차장의 동공을 채운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지장의 손에 들린 회칼은 언제 움직였냐는 듯 제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황 차장은 벌벌 떨리는 그 순간에도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자신에게 겁만 준 것 같았다. 갑자기 오기가 치밀어 오른다. 미친 깡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도 차지할 수 없었다. 오로지 깡 하나로 버티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주먹이 쥐어지고 부르르 떨린다. 지장은 그가 주먹만 강하게 뻗으며 충분히 닿고도 남을 거리에 서 있다. 다리에 힘을 가득 넣고 치고 나간다.
“우아악~!”
퍽! 때렸다.
황 차장은 주먹에 느껴지는 감촉에 희열을 느낀다.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주먹이 때린 지장의 면상을 보기 위해 집중한다. 주먹에 가려진 지장의 얼굴이 옆으로 서서히 드러난다. 뭔가 이상했다. 옆으로 드러나는 얼굴은 그의 주먹이 닿은 것 같지 않았다.
근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부사장의 얼굴을 핼쑥하게 변한다.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아크가 지장을 향해 한마디 한다.
“그러실 거면 차라리 죽이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허허, 그런가?”
“…….”
황 차장의 입에서는 신음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그의 팔에서 뒤늦게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회칼의 손잡이가 정권과 정권의 사이에서 보인다. 칼날은 팔의 요골을 꿰뚫고 들어가 팔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황 차장은 뭐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칼에 찔린 팔은 위아래로 흔들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팔을 잡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툭!
그런 그의 콧등으로 뭔가 떨어진다. 붉은 피도 같이 흘러내린다.
정수리와 이마의 정중앙에 커다란 붉은 반점이 보인다. 오백 원짜리 동전의 크기로 머리가죽이 잘린 채 떨어져 내렸다. 처음 회칼이 번쩍였을 때 잘린 것이 이제야 떨어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아크가 한마디 덧붙인다.
“평생 원형 탈모로 살아야할 것 같습니다.”
“잘 붙이면 될 듯합니다.”
“뭐 그럴 수도…….”
둘의 장난스런 대화를 뒤로 하고 황 차장은 머리카락이 붙은 채 떨어져 있는 두피 가죽을 손에 들고 벌벌 떨고 있다. 그리고 부사장의 목젖은 위아래로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아크가 부사장을 바라본다.
“이제 거래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
부사장의 고개는 무의식적으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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