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4 장 상대가 너무 나빴다.
지장은 진월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문제는 단거리 이동 마법진의 폭발이었다. 마법진 위에 서 있던 아크는 물론이고 지장 또한 타격을 입었다. 지장은 뒤쪽의 폭발에 대해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불길이 가라앉자 드러난 둘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내부의 충격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폭발의 불길에 탄 모습이다. 특히 지장의 복장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큭! 크크크!”
아크가 어이가 없는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린다.
“이거 꼴이 말이 아닙니다.”
지장 또한 본인의 모습을 보며 말한다.
“이 정도로 수모를 받았으니 끝은 봐야겠습니다.”
“네. 그러셔야지요.”
아크의 말에 지장 또한 동의를 한다. 지장은 옷에 뭍은 그을음을 털어본다. 쓸데없는 짓이다. 고개를 들어 진월을 바라보는 눈빛이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살심을 가득 품은 눈빛이다.
쾅! 쾅!
지장의 두 발이 지면에 강하게 박힌다. 합장을 한 그의 두 손에 백염의 불길이 타오른다.
진정으로 모든 힘을 모아 공격을 하려는 동작처럼 보였다. 그때 지장의 시선이 갑자기 아크를 향한다. 지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의 열기와 흰 연기 사이로 붉은 안개 같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미간이 꿈틀거린다. 특히나 붉은 안개의 기운이 접근하고 있는 아크는 더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굳이······.”
“별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
붉은 안개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진월과 쉐인도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진월은 이미 창민에게 민서 쪽 상황보고를 받은 후다.
붉은 안개의 형태를 지닌 혼미스트가 아크의 몸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것은 순간이었다. 아크의 몸 주위로 붉은 빛이 슬쩍 감돈다. 눈빛 또한 붉게 한 번 빛난다.
아크가 관자놀이 부근에 손을 얹은 채 머리를 흔든다. 약간의 현기증과 두통이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손을 내린 채 주먹을 쥐어본다.
“좋군요.”
“마음대로 움직이지 마시오.” 아크가 짜증이 난 듯 말한다.
한 몸에서 두 개의 의식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원래는 혼미스트가 신체에 빙의되면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지만 아크의 경우는 예외였다. 원체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혼미스트 또한 완전히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두 의식이 뭔가 의견을 교환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지장을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아크가 버클에 달린 해골 모양을 한번 만질 뿐이다. 지장이 버클을 보더니 고개를 가만히 끄덕인다. 그 와중에도 지장의 자세는 풀리지 않고 있었다. 백염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는 손이 풀리더니 갑자기 진월을 향해 뻗어나간다.
훙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허공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권영이 날아가거나 장이 날아가지도 않았다. 지켜보던 진월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동시에 진월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휘휙!
진월이 서 있던 곳에서 바람이 일어난다. 뭔가 지나쳤다. 희뿌옇게 생긴 권영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진월의 잔상을 관통하듯 뒤로 날아갔다.
콰과광~!
폭탄이 터지듯 폭발이 일어난다. 땅거죽이 일어나고 커다란 소나무가 꺾이거나 뽑힌다.
파악! 아크가 대지를 박찬다.
“이런!”
쉐인이 아크의 뒷모습을 보며 놀란다. 아차, 싶었다. 둘이 하나가 되어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나 싶었는데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아크이니 한 번의 도약으로 수십 미터를 건너뛴다.
쉐인도 스펠을 전개한다. 아크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마력을 통해 스펠을 전개하는 쉐인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크는 무작정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편, 지장의 자세는 공격을 행함에도 그대로다. 기마자세를 유지한 채 권만 뻗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진월의 움직임을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 그의 권 또한 진월을 노리고 바람을 가른다.
훙~ 훙~
콰광! 쾅!
그의 권이 바람을 가르면 어김없이 대지가 신음한다.
진월은 보이지 않는 권을 피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빠르게 뒤를 점하려 하면 귀신처럼 방향을 전환하며 뒤를 내주지 않는다.
쾅! 지장의 한 발이 움직이며 다시 진각을 밟는다. 마치 전신의 기운과 대지의 기운을 같이 끌어다 쓰는 것 같은 모습이다. 빠른 방향 전환은 진월이 뒤를 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반면 빠르게 움직이던 진월이 몸을 피하는 아크의 뒷모습을 본다. 쉐인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움직이면서 지장을 향해 묻는다.
“희생하겠다는 건가?”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라오.”
“해보지 않아도······.”
훙! 진월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나타난다.
지장의 권도 이미 진월을 향하고 있었다. 지장의 무형권(無形拳) 또한 이미 발출된 상태다. 진월의 모습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백염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주먹이 향해 있으니 말이다. 진월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내다가 손 하나 정도의 거리만큼 앞으로 내딛는다.
무형권이 희뿌옇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진월의 바로 등 뒤에 나타난다. 무형권의 특성이 상대의 위치에 모습을 드러내며 내부를 부수는 권이었다. 지장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너무 나빴다. 너무 뛰어난 기감과 육체 능력으로 인해 파훼법을 임기응변으로 터득해 낸 것이다.
진월이 순간적으로 한발을 더 내딛는 것을 본 지장의 반대 손이 다시 뻗어나간다.
퍽! 지장의 손이 뻗어 나오다가 막힌다.
화르르륵~ 백염의 불길이 강하게 일어나며 진월의 손을 불태운다. 하지만 진월의 몸에서도 세 가지 빛깔의 영력이 일어난다.
화악~! 쩌적! 쩌적!
기운끼리 격돌하며 서로 싸움을 벌인다.
지장의 양 주먹을 움켜쥔 진월의 손이 검은 색으로 변해간다. 순식간에 진월의 양 손에는 용린의 장갑이 형성되어 있다. 날카로운 용의 발톱처럼 끝이 구부러지며 백염의 불길을 파고든다.
콰곽!
“윽!” 지장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온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지.”
우둑! 진월이 힘을 가하자 지장의 권이 풀려버린다. 진월의 악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뼈가 부러졌거나 탈골되는 소리다. 지장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통증을 참아내고 힘을 쥐어짜고 있는 모습이다. 쥐어지지 않는 손에 힘을 집어넣는다.
“하압~!”
지장이 그런 상황에서도 기합을 넣는다. 순간적으로 그의 발이 진월의 중심을 차 간다. 진월의 무릎 또한 빠르게 들리며 막는다.
퍼억!
지장이 차는 것 같더니 진월의 무릎을 있는 힘껏 밟으며 뒤로 몸을 빼낸다.
투드득~!
진월의 용린의 장갑에 잡혀있던 손이 갈라지며 빠져나온다. 붉은 선혈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장은 빠르게 움직인다. 그의 다리가 풍차가 회전하듯 휘돌며 진월의 하단과 상단을 연이어 노린다.
후웅~ 휘돌리는 발차기에 기의 폭풍이 일어나고 주변의 바위에는 기다랗고 깊은 상처가 생긴다. 나무들은 잘려나가며 쓰러진다. 하단을 노린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상단을 노리는 공격이 다시 쇄도한다.
콰앙! 지장의 발길질이 진월의 팔에 막힌다. 둘이 부딪친 충격파에 주변의 대지가 일렁인다.
방어와 동시에 진월의 권이 지장의 품을 파고든다.
훙! 대기가 요동치며 충격파까지 같이 딸려 들어간다.
한 다리로 버티고 있던 지장의 두 손이 마치 태극처럼 휘돌며 쇄도하는 진월의 권을 감싸 안는다. 충격을 최소화시키거나 힘을 흘려보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콰앙! 폭발음이 터진다.
지장의 신형이 뒤로 날려간다. 그가 막기에는 너무 강한 힘이었나 보다. 그러나 뒤로 날려가는 와중에도 신형을 뒤집더니 일정 부분의 충격을 뒤로 날려 보낸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진월을 찾는다. 지장의 입가에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핏줄기가 보인다.
파팍!
지장의 팔이 빠르게 움직인다. 갈라지고 찢어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나와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 보지도 않고 진월이 다가서는 방향을 향해 장을 날린다. 핏줄기가 섞인 대반야장이 허공에 생성되며 나아간다.
후우웅~ 공격을 함과 동시에 지장의 몸이 빠르게 휘돌며 이차 공격을 감행하려 한다. 돌아선 순간 지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금빛의 대반야장 앞에 담흑빛과 백색의 빛의 섞인 비슷한 크기의 장인이 떠있었던 것이다. 둘이 격돌을 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장인이 부딪쳤음에도 아무런 소리도, 반응도 없었다.
“어찌······?”
후웅~!
지장의 음성은 진월이 다시 날린 권에 묻힌다. 빛살처럼 날아드는 검은 권은 마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먹이를 보고 날아드는 수리부엉이의 모습과 같았다.
콰앙! 손을 들어 막았음에도 충격이 그대로 전달된다.
지장의 손에는 대반야장과 똑같은 형태의 장인이 맺혀 있었다. 공격하려던 공력을 방어로 전환했음에도 진월의 담흑빛 권은 꿰뚫고 들어왔다.
우두둑! 그나마 멀쩡하게 남아 있던 모든 뼈가 바스러지는 것 같았다. 충격파는 그대로 전달되며 지장의 안면까지 후려친다.
퍼어억!
“컥!”
신음소리와 함께 하얀 빛깔의 옥수수들이 우수수 빠져 나간다. 충격에 지장의 몸 또한 공중으로 붕 떠오르며 휙 휘돈다.
피리릭! 콱!
그런 타격을 입었음에도 회전을 하며 바닥에 떨어질 때 중심을 잡는다.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그의 몸이 세차게 휘돈다. 눈빛은 아직까지 살아서 진월의 위치를 본다. 허리가 꺾이며 옆으로 몸이 눕혀진다. 다리가 세차게 뻗어나간다.
휘잉!
진월의 상단을 노리고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진월 또한 이미 지장의 품을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콰아앙! 굉음이 울린다.
지장의 발차기는 진월의 팔에 막혔다. 지장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진월의 전신을 뒤덮은 검은 용린의 갑옷은 위압감을 넘어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진월의 고저 없는 음성이 지장의 귀를 두드린다.
“최선을 다해주지.”
파앙! 진월의 팔에서 일어난 영파(靈波)로 인해 지장의 발이 튕겨나간다.
지장의 신체 또한 그 영향 때문에 휙 휘돈다. 이미 내부는 상당히 부서진 상황이다. 뛰어난 회복능력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서있기도 힘들 상황이다. 숨 쉴 틈이라도 있어야 상처가 회복되겠건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휙 휘도는 와중에 멀리서 빠르게 움직이는 아크의 모습이 슬쩍 보인다. 그가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그는 희생을 선택했다. 그가 떠난 이후 단 몇 초의 싸움일 뿐이었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진월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
갑자기 왜 이런 희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밀려들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입에서 단내가 나고 힘이 빠져나가면서 이상하게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내가 죽게 되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라는 원초적인 질문이 그의 뇌리를 지배한 것이다.
흐트러졌던 지장의 자세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진월의 정면이다.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올라간다. 방어를 위한 동작이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몸이 스스로 반응해서 올라간 것이다. 그의 눈동자 또한 흔들린다. 행동 또한 자연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진월은 분명 최선을 다해준다고 경고까지 했다.
진월은 이미 지장에게 권을 날렸다.
쾅!
막아든 지장의 팔이 허공으로 들리고 그 사이를 담흑빛 빛살이 파고든다.
콰앙! 지장의 가슴이 함몰된다.
“크헉!”
지장이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날려간다.
콰과광! 그의 신체가 박힌 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진다. 진월의 권이 적중한 가슴 부위가 시커멓게 변해간다. 안에서부터 타올라서 생기는 증상이었다. 진월은 저들의 강화된 신체의 특성을 잘 알기에 심장을 내부에서 태워버린 것 같았다.
지장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그와 함께 진월의 뒤쪽에서 ‘삐삐’ 거리는 신호음이 들린다. 지장의 육환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피, 피하시게······.”
지장은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그의 의식에 대한 반복적인 세뇌를 행하는 기억이었다. 그 중 하나가 그가 죽게 되면 육환장 또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위력이 사방 수백 미터는 잿더미로 만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