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 장 유사인종
부서진 용린의 틈을 탠덤탄두의 주 탄두가 파고든다. 검붉은 화염이 용린의 날개 안쪽으로 뿜어져 들어온다. 바라보던 진월에게는 직격탄이다. 어떻게 막고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총을 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화염이 진월의 전신을 덮친다.
그것으로도 부족했을까? 남은 두 기의 AWC는 미친 듯이 남은 화력을 쏟아 붓는다.
60mm의 남은 포탄과 토우미사일이 모두 동원된다. 붉은 화마의 기운은 쉬지 않고 치솟아 오른다. 잔해를 남기면 누가 그들을 벌할까 봐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두 발의 토우미사일이 틀어박힌다. 두 발 모두 탠덤탄두다.
콰과광~ 마지막답게 검붉은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집중된 포화에 의한 충격과 열기에 위아래를 구분 짓던 천장과 바닥은 날아가고 없다. 진월이 갈라버린 기체 또한 무너지는 바닥에 의해 지하 2층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와 동시에 허공을 날아가는 물체도 보인다. 용린의 날개도 펄럭이며 흐늘거린다. 의지에 의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충격과 불길에 휩싸여 날려 보내진 것이다.
우당탕탕~ 콰아아악~
진월의 몸이 바닥을 된통 구른다. 용린의 날개는 바닥에 기다랗고 깊게 패인 자국까지 만든다.
만약 이곳이 지하가 아닌 1층이었다면 지지하던 구조물이 모두 날아가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폐허로 변해간다. 진월이 굴러간 지역의 기둥도 진월이 부딪치며 부서졌다.
잠시 후 침묵이 자리한다.
따닥따닥 거리는 화마(火魔)가 미상의 물체를 태우는 소리만 간혹 들린다.
징징 거리며 AWC의 시각 센서가 진월의 상태를 탐색한다.
콰두두두~ AWC의 타이어가 지면을 할퀸다. 급하게 회피 기동을 하며 생기는 현상이다.
그들의 센서에 뭔가 잡혔기 때문에 반응했다. 적이 달려들면 공격 무기가 모두 소진된 지금의 상태에서의 답은 회피 기동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월의 팔이 움찔거리며 움직인다.
촤르르륵~ 그의 등판에 돋아난 용린의 날개가 허공으로 치솟는다. 토우미사일에 의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날개는 순식간에 나뭇잎 모양의 용린이 다시 생성되며 복원된다.
피해는 작지 않았다. 진월의 몸에 걸친 방호복까지 군데군데 그을리고 탔다. 그만큼 포탄과 미사일의 화력은 강했다. 드러난 곳의 피부 또한 화상을 입어 울긋불긋하다. 피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진월의 몸에 다시 영력의 불길이 솟아오른다. 그에 따라 그의 몸에 난 상처 또한 봄눈 녹듯 사라진다.
진월의 두 손이 허공을 향해 들린다. 그의 손짓에 따라 날개를 구성하던 용린이 전방으로 날아간다. 기다랗고 날카로운 창 두 개가 허공에 만들어진다. 엽형(葉形)의 용린이 줄을 서듯 이어진 모양의 창은 4미터 이상 된다. 두께는 두꺼운 부분이 5밀리, 너비는 10센티 정도다. 쉽게 표현해 성인 손바닥만 한 용린들이 길게 늘어서 연결된 모양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용린의 창은 생성됨과 동시에 대기를 가르며 앞으로 쏘아진다. 마치 시위에서 발사된 화살과 같은 움직임이다. 용린의 창 위로 검은 영력의 불길도 피어올라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용린의 창의 뒤로 검은 영력의 꼬리가 길게 이어진다. 진월이 영력을 통해 조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콰곽! 기동하던 AWC의 정면 장갑을 시원하게 뚫고 들어간다.
조종사들이 다칠까 저어된다.
진월은 그런 것 따위 고려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고려한 상황이다. 방금 전 장갑을 갈라봤기에 조종사들의 위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조종사들의 위치를 피해 깊숙이 박혀든 용린의 창은 반대쪽까지 뚫어버린다.
지직~ 지지직~
엔진 뿐 아니라 보조 전원 장치까지 꿰뚫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AWC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진월의 두 손이 위로 올라간다. 그에 따라 용린의 창도 장갑을 자르며 위로 솟구친다. 마치 레이저로 강철을 잘라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쿠구궁~ 기동하던 AWC들이 움직이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기둥과 벽을 들이받는다.
잠시 후 침묵이 자리한다. 매캐하게 피어오르던 연기도 군데군데 작동하는 스프링클러의 물줄기에 의해 조금씩 가라앉는다. 진월의 몸 주변에 만들어져 있던 용린의 조각들도 사라지고 없다. 다만 그의 몸에서 발생하는 열기가 대단했다. 스프링클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몸에 닿자마자 증발하고 있었다.
국장이 곁으로 다가온다.
“펄펄 끓어오르는구나.”
“흑천의 기운을 억누르느라 그렇습니다.”
“하긴 신적인 존재의 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긴 하지.”
“…….”
진월은 대꾸하지 않는다. 국장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몸 안에서 요동치는 흑천의 기운을 갈무리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전신으로 퍼졌던 흑천의 기운이 다시 진월의 왼팔로 모여든다. 작은 용린의 조작들이 문신을 새기듯 진월의 왼팔에 흑천의 모습을 그린다. 국장 또한 바로 곁에 있으니 진월의 기운이 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대단하구나. 혹시 지금 보여준 것보다 더 강한 영력을 발현할 수 있느냐?”
“신체에 부담을 준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네 몸이야 부담 준다고 부서지는 것도 아니니…….”
“저도 사람입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내 보기엔 유사인종이다.”
“비슷한 인종끼리 그러시는 것 아닙니다.”
“그게 그렇게 되냐?”
“그나저나 밖에 있는 저치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중령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인 것 같다. 그 윗선에서 뭔가를 조작한 것 같아.”
“저 기체의 안쪽 모니터를 보니 국장님이 테러리스트로 기록되어 있던데 말입니다.”
진월은 그 짧은 순간 AWC의 내부 모니터에 기록된 사항을 읽어낸 것이다.
“그러게 말이다. 넌 국회의원 살인범, 난 테러리스트다. 이러니 우리가 범죄 집단으로 둔갑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이 기회에 그쪽으로 전업이나 해볼까?”
“나쁘지 않군요. 기분도 꿀꿀한데 이대로 그쪽 놈들 손 좀 볼까요?”
진월이 국장에게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입구 쪽으로 돌아선다.
“우선 저치들부터 처리하고 말입니다.”
진월의 음성에 지하로 들어서던 중령 이하 장교들이 움찔 놀란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내부의 모습을 보던 장교들의 입이 모두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다. AWC의 기동 모습과 위력은 테스트를 해봤기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기나 되는 AWC가 모두 조각이 나 있었다. 이게 과연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그들의 뇌리를 계속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믿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어둠 속에 슬쩍슬쩍 보였던 AWC의 기동과 화력, 눈앞의 인간들의 움직임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월이 경고를 던진다.
“싸울 것이 아니라면 거기서 멈추시기 바랍니다.”
“…….” 중령이 멈춰 선다. 자연스럽게 호위 병력들도 멈춘다.
진월 또한 상급자이기에 예를 갖춰준다.
“질문 몇 개 해야겠습니다.”
“…….” 중령이 끄덕인다. 지금도 그는 혼란스럽다.
“누가 명령을 내린 겁니까?”
“여단장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네.”
“최소한 여단장을 쥐어 패야 한다는 뜻이군.”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내뱉는다.
“그, 그건…….”
“왜 안 되나? 하극상이라고? 왜 이래? 나도 명예 준장이야. 대령 예편 몰라? 더구나 내 나이쯤 되면 별 단 놈들 다 내 후배들이지. 그런데 나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어. 내 직접 멱을 따주지.”
“멱이라고 하니 돼지 잡는 것 같잖습니까? 모가지라고 하시지요.”
“열이 받아서 말이다. 이것들 5기갑 여단이지. 그러면 6군단 소속이구만. 현재 김재섭이가 그쪽 군단장으로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야. 김재섭이 이 자식 모가지를 따버리겠어.”
“헉!”
중령의 안색이 파리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군 조직도를 그림 보듯이 꿰고 있었다. 더구나 중령에게 김재섭 중장 쯤 되는 장성은 하늘같은 사람이다. 아무리 대령 예편을 했고 국가 비밀 기관의 장으로 있는 사람이라지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호위 병력이 드러난 적개심에 대응을 하려 한다.
진월이 놀라는 그들을 향해 다시 경고한다.
“무기를 드는 놈부터 먼저 이승과 작별을 고한다.”
“…….”
그때!
띠리리링~ 띠리리링~
옛날 전화기의 벨소리가 들린다. 진월의 시선이 분위기를 깨는 소리에 국장을 바라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국장의 핸드폰 벨소리인 것이다. 용케도 그런 거친 싸움에서도 핸드폰이 손상되지 않은 채 멀쩡했다. 국장의 몸에 상처 하나 없다는 것은 그 또한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하지 않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빼들더니 화면에 뜬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누군가 중요한 인물 같아 보인다.
“마침 전화 잘했네.”
국장의 첫마디와 함께 그쪽에서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 하나 보다.
“그러면 자네들도 몰랐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
“지금 장난해? 내가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는데?”
정말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 진월이 살인범 되어 있는 것은?”
잠깐 뜸을 들이는 모양이다. 그러다 답이 나왔다.
“진월은 범인이 확실한 것 같다 이 말이지?”
국장의 시선이 진월을 향한다. 진월의 아미가 팍 구겨진다. 진월은 사실 뛰어난 청력으로 전화 음성을 모두 듣고 있다. 진월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던진다.
“부장님께 말씀드리시지요. 목 씻고 기다리시라고 말입니다. 부장님 멱은 제가 따드린다고…….”
“정 부장! 들었지?”
상대편에게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감찰부에서 걸려 온 전화다. 그들조차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장이 통화를 종료하고 중령을 본다.
“중앙에서 모르는 일인데 자네들이 왔다는 것은……?”
“정말입니까?” 중령이 깜짝 놀라 되묻는다.
“감찰부에서 온 전화다. 너 정도 되면 중앙감찰부에 줄 좀 있지 않나? 확인해 봐. 그러고 보니 정 부장, 이 자식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갔으면 몸은 괜찮으냐는 안부 한 번도 안 묻네.”
“쉽게 죽을 늙은이가 아니라 생각했겠지요.”
“나도 사람이다.”
“유사인종!” 진월이 못을 박는다.
둘은 이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며 피식 웃는다.
웃음을 그친 국장이 상황을 정리한다.
“이쯤 되면 저놈들은 독자행동이란 판단이 서고, 너나 나나 누명이란 말인데…….”
국장의 말에 진월이 주변을 본다. 지하 1층은 복구하려면 시간이 꽤 소요될 것 같다. 상부의 1층과 지하 2층까지 많은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누명을 입은 것치고 사람보다는 물적인 피해가 너무 컸다.
중령은 그 사이에 그가 아는 줄을 통해 상부에 확인 중이다. 그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간다는 것은 뭔가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뜻한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심적인 타격이 꽤 큰 모양이다. 국장이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쯧쯧. 옴팡 다 네가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상황이다.”
“…….”
중령은 답이 없다. 국장의 말 대로다. 여단장이 문서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저 불러서 작전 설명과 명령만 내렸을 뿐이다. 그가 그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떼면 전부 다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은 중령이었다. 중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온다.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 그래도 말입니다.”
“이 자식이! 죽을 놈 살려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거네.”
“선배님!”
언제 다가왔는지 중령이 무릎까지 꿇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매달리는 것의 기본자세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장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자리한다.
“그러면…….”
“네. 그러면?”
“네 목숨 걸어라.”
“…….”
“못 걸어?”
“거, 걸겠습니다.”
“부하들 앞에서 쪽 팔린다. 일어서라.”
“아! 예.” 중령은 국장의 배려에 감명을 받는다. 진월은 옆에서 피식 웃기만 한다. 국장이 어떤 사람인데 당신은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니나 다를까 국장의 입이 열린다.
“네 목숨 값 수리비로 받도록 하지.”
“무슨 수리비 말씀입니까?”
“여기 수리비!”
“아! 아? 설마?”
중령의 손이 위아래 지하 전체를 가리킨다. 그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어간다.
“제 월급으로 어떻게…….”
“공병대대장 중에 동기들 많을 것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목숨으로 받을까?”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능력껏! 기간은 딱 일주일 준다.”
“…….”
진월이 그러면 그렇지란 표정으로 둘을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병력들의 뒤쪽을 휙 돌아본다. 뭔가 산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엔진 소리다. 진월의 신형이 순식간에 병력들을 스쳐 지나간다.
진월의 본능이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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