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9 장 좁혀지는 추적망
화면 하단에 분석된 데이터가 표시된다.
체형의 일치율은 각기 다 달랐다. 하지만 걸음걸이의 일치율이 96%로 나타났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통제실의 요원들이 모두 입을 벌린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말도 안 돼요.”
요원들의 입에서 저마다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진월 또한 화면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체형도 다르고 체격도 달랐다. 모두 다른 사람이란 의미인데 걸음걸이가 거의 일치했다. 손발의 흔들림이나 척추가 움직이는 각도, 다리가 뻗어나가는 각도까지 같았다. 물론 보폭이 달랐기에 완전한 일치는 보이지 않았다.
진월이 묻는다.
“어떻게 발견했지?”
“눈동자의 색깔과 내부에 묘한 빛을 머금고 있습니다. 일반 육안으로는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주변이 어두워서 잠깐잠깐 비치는 것을 잡아냈습니다.”
“잘했다.”
“헤헤.”
창민이 진월의 칭찬에 좋은지 웃는다.
“수고는 했는데 앞으로가 더 힘들겠구나.”
“……?”
“찾아내야지.”
“끄응!”
창민이 응가 보는 소리를 낸다. 진월의 말이 뜻하는 바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전부 다 골라냅니까?”
“그래야지. 체형 별로 얼굴 별로 다 분류해 내야지.”
“죽어나겠군요.”
“네가 스스로 벌었지.”
“그러네요.”
“형태변형자 같으냐?”
“네. 그런데 뭔가 다릅니다. 더 주도면밀하고 눈빛에 일렁이는 빛이 사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어요.”
“흠!”
진월이 생각에 빠져든다. 형태변형자라면 IUC가 관여하고 있다고 백퍼센트 생각할 수 있다.
“지장과 아크란 자와의 연관성은?”
“아직까지 파악된 바는 없지만 차원의 균열을 통해 나타난 자들이 아니라면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직들을 두들겨 패서 사람 거래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내 역할인데…….” 민서가 분석까지 하는 창민을 보며 한마디 한다.
진월은 아차 싶어 이마를 슬쩍 짚는다. 민서가 자리를 비운 동안 팀의 머리 역할을 했던 사람은 진월과 창민이었기 때문이다. 민서가 돌아왔지만 그녀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작전에도 못나가게 해. 역할도 빼앗아가. 뭐하려고 팀에 넣어두고 계시는 건지…….”
“…….”
“입은 멋으로 달고 다니시나 봐요?”
“크흠!”
“그건 말이 아니잖아요?”
“미안하다.”
진월이 사과까지 한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다. 모두들 눈이 동그래져서 진월을 바라본다. 그들도 힘의 서열의 재정립에 눈을 뜨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둘 사이에 뭔가 있고 진월이 민서에게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구석에 박혀 있던 목영호와 마명은 민서를 향해 엄지까지 추켜세우며 수신호를 보낸다. 최고라며 벌써부터 아부를 한다. 둘 다 줄타기의 천재들이다. 진월이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다. 공기 흐름의 미세한 변화까지 읽어내는 사람이다.
“목영호, 마명!”
“넵!”
“물이라도 떠가지고 와서 상 차려라.”
“네?”
“무슨 상을……?”
“음식이 없으니 물이라도 떠놓고 빌어야지. 너희들 제사상이 될 테니.”
“…….”
통제실 안은 또 다시 침묵이 흐른다. 민서 또한 따질 것만 따지고 빠진다. 괜히 앞서갔던 둘만 결국 진월에게 또 다시 찍힌다. 매수 실장이 확인 사살까지 해준다. 고문에서 풀려난 그는 더없이 총명한 모습을 보인다. 총명이 뭐 있겠는가? 진월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조하면 된다.
“팀장님이 그러신다.”
“……?” 둘 다 멍하니 매수 실장을 본다.
“너희 둘 곁에 돌아가신 할아버님들 와 계신단다.”
“헉!”
“조만간 만날 것을 반가워 하신다는데…….”
목영호와 마명의 고개는 그대로 책상 위에 박힌다. 조만간 받게 될 기합의 강도가 예상된다. 삶의 의미까지 없어지고 있었다.
* * *
다음 날, 통제실 책상에 앉아 있는 창민의 눈 밑에는 시커먼 그늘이 져 있다. 날밤을 새가면서 진월이 요구한 데이터를 만드느라 초죽음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창민이 아니었다면 수십 일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종 신고가 된 자들 중 행적 추적이 가능한 자들을 추려냈다.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이상한 자들의 영상을 모두 확보했다. 말이 쉬워서 확보지 거의 쥐어짜다시피 해서 만들어 낸 자료다. 증가된 수백 명의 실종 건들을 하룻밤 만에 모두 뒤졌으니 창민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진월이 모니터에 나열된 자들의 모습을 훑는다. 총 20여명의 모습이다. 분명 더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가 주로 변하는 모습이 있었다.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인 이상 습관이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고생했다.”
“구토 나올 것 같습니다. 너무 들여다보고 있었나 봅니다.”
“내가 너무 밀어붙였나 보구나.”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창민은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도 웃는다. 사명감과 의무감이 없다면 행하기 힘든 일이다. 창민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팀을 위해 희생하려는 의지는 강했다. 어쩌면 진월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며 더 배우고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진월이 모니터를 보며 말한다.
“이 정도면 형태변형자가 확실하군. 그런데 이 자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어.”
“그렇습니다. 저번 지장과 아크란 자가 찍힌 영상 컷 근처에서도 저들 중 하나가 포착되었습니다.”
“그랬군. 그것만으로도 셋의 연관성은 짐작할 수 있겠어. 그런데…….”
“뭔가 미심쩍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문제는 피해자들이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혹시 저들 중 민서 누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자가 있을까요?”
“모를 일이지. 서현실업에서 나온 말로는 지장이란 자만 싸웠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 둘 중 누군가 그런 능력을 지녔다면 굳이 싸움을 할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그것도 그러네요.”
“저항의 흔적도 없고 피하려고 한 흔적조차 없다면 뭔가 희생자의 이지를 제압했다는 의미인데…….”
“혹시 형태변형자가 그런 능력까지 지니고 있을까요?”
“IUC가 유전자에 농간을 부렸다면 배제할 수는 없겠지.”
“정말 무서운 자들입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 단언할 수는 없다.”
“요새 너무 조용한 것이 더 의심스럽습니다.”
“그렇긴 하지.”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민서가 끼어든다.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뭐지?”
“만약 희생자들을 모두 태워 흔적을 없앴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
“그리고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파악해 봤니?” 민서가 창민에게 묻는다.
“찾아는 봤는데 딱히 나오는 게 없었어요. 연령도 다양하고 물론 성별로는 여자가 좀 많기는 했지만…….”
“그래? 우리가 최초 발견한 형태변형자는 본능에 따라 범죄를 저질렀지만 분명 이번에 나타난 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요. 그렇다면 그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요.”
“음. 창민이 너는 우선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 봐라.”
“……네.” 창민이 주저하며 대답한다.
“좀 쉬고 나서.”
“헤~!” 쉬고 나서란 말에야 헤벌쭉 웃는다.
그런 창민의 머리를 진월이 쓰다듬어 준다. 진월은 주변의 요원들을 돌아본다. 작은 일을 하건 큰일을 하건 참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존재들이다. 통제실의 요원들 또한 놀고 있지 않았다. 창민이 모으고 분석해 놓은 데이터를 가지고 여러 각도로 다시 분석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속도가 느리고 빠른 시간에 다양한 해석을 내놓지 못할 뿐이었다.
창민이 통제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4시간 후다. 날짜는 계속 흘러가고 있고 거래일은 불과 이틀 뒤다. 그 전에 뭔가를 찾아내야만 작전에 변화도 줄 수 있었다.
창민이 찾아낸 실종자들의 인적 정보에 통제실 요원들이 덧붙여 놓은 데이터가 서버에 차곡차곡 쌓인다. 창민이 비교 분석을 하기 편하게 데이터를 만들어 놓는 중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매수 실장의 능력도 대단히 뛰어났다. 다만 가끔 맹한 짓을 해서 진월에게 구박을 받는 점을 뺀다면 말이다. 그것 또한 귀신이 정말 떨어져 나갔는지 아니면 고문의 효과인지 요새는 총명함만 번뜩이는 것 같았다.
창민이 룸으로 들어가자 매수 실장이 말을 건다.
“분석하다보니 재미있는 것이 있더라.”
“뭡니까?”
“전부다 기독교 신자다.”
“……?”
“물론 우리나라가 기독교 신자들이 많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가 분류한 실종자 전원이 기독교 신자라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냐? 천주교나 불교는 한명도 없고 전부다 기독교 신자야.”
“한 건 하셨네요. 칭찬 받으시겠습니다.”
“저, 정말?”
“저도 발견 못했던 거잖아요.”
“크흑! 드디어…….”
매수 실장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드디어 진월에게 칭찬 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생애 최초, 입사 후 최초로 벌어지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 그래.”
창민이 데이터 검수 작업에 들어간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창민이 모든 데이터를 다 살펴봤다. 매수 실장의 말처럼 종교는 모두 개신교였다. 물론 교파는 서로 달랐지만 모두 같은 종교라는 것은 특이점이 분명했다.
창민은 그들의 행적을 다시 분석한다. 그들이 자주 갔던 경로를 모두 뒤지기 시작한다. 또 다시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는지 ‘웅웅’거리며 울어댄다.
실종자들의 종교와 교회를 알았으니 주말마다 그들의 동선이 파악된 것이다. 안면 인식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실종자들의 모습이 저장된 CCTV 화면에서 찾아진다. 그들의 동선이 하나씩 파악이 되고 그들이 갔던 곳들에 대한 정보가 하나씩 누적이 된다. 한 사람의 한 달간의 행적 분석이 끝나고 나면 다른 사람의 행적 분석이 들어간다. 정말 많은 시간의 데이터이고 지루한 작업이 반복된다.
그때 진월이 창민의 콜 사인을 받고 통제실로 들어온다. 전면의 모니터에는 창민이 하고 있는 작업들이 디스플레이 된다. 다시 자료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진월이 매수 실장을 보며 말한다.
“한 건 했다면서?”
“아하하! 별 것 아닙니다.” 겸손까지 보여준다.
“잘했어!”
“벼, 별…….” 다시 겸손을 떨려던 매수 실장의 말이 중간에 끊긴다.
파앙! 진월의 손바닥이 매수의 등판을 후린다. 격려의 손길이다.
“커헉!”
“겸손도 지나치면 실례야.”
“꺼~!”
“이런 이렇게 허약해서 밤일은 하겠어.”
진월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격려의 손길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살인 무기였다. 가벼운 손길 한번이 호흡곤란과 전신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칭찬을 안 받고 만다. 그리고 밤일? 할 시간이나 주고 걱정해 주시지. 젠장~! 그러고 보니 팀장은 좋겠수. 그놈의 밤일…….’
만약 진월이 이런 매수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매수는 지금쯤 관 속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치 뻔 한데 진월이 모를 리도 없다. 가벼운 손길이지만 통증이 있다면 분해할 것이라는 것쯤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안다.
“스트레스로 인해 기맥이 약해진 것을 뚫어준 것뿐이니 원망은 하지 마라.”
“……?”
진월의 말에 매수 실장은 의문을 느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 안 구석구석이 시원하게 뚫리는 현상을 느낀다. 요새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오목 가슴이 막힌 것 같은 느낌까지 한꺼번에 개선되고 있었다. 매수 실장의 시선이 갑자기 진월을 향한다. 그 눈빛에는 극도의 존경이 담겨 있다. 진월은 보지도 않고 아나 보다.
“부담스럽다. 사랑까지는 하지 마라.”
“자, 자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다 잘못 맞으면 죽는다.”
“큐어가 있습니다.”
“총명해졌어.”
“모두 주군의 덕입니다.”
방금 전의 원망은 사라지고 주군으로 신분의 극상승까지 이뤄진다.
그 사이에도 창민이 분석한 데이터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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