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5 장 깨어난 이리나.
진월은 내부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능력자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 양자에너지!
능력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무기로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능력자들은 그들의 뇌와 신체에서 발현되는 기운으로 주변의 양자들을 움직인다. 양자에 각각의 능력에 부합되는 성질을 움직이도록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양자를 이용해 힘을 발현하니 반대로 양자를 이용해 그 힘을 분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원리다. 한마디로 같은 에너지로 상쇄시켜 힘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양자의 크기가 아주 작다는 것이다. 에너지량의 최소 단위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다. 당연히 사람의 신체 내로 들어와 능력자들의 능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도 가능했다.
‘어차피 같은 양자라면…….’
진월은 생각한다.
‘하나씩 얻으려 하면 하나씩 잃고 하나씩 버려 가면 점차 가득해 지리라.’
진월의 뇌리에 예전에 국장이 했던 말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국장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 또한 지금 진월과 같은 과정을 거쳤기에 그에게 해준 말일 것이다.
진월은 채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양자에너지의 파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발현하려고 애를 쓰던 능력조차 거두어들인다. 정신을 집중한다. 무념의 상태에서 양자를 느끼려 노력한다. 일반인들이 양자를 움직이는 예도 현실에서 발생한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엄마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는 것 또한 주변에 있는 양자에너지를 움직인 것 중 하나다.
양자에너지는 일반적인 신체 능력에는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저 이능력의 발현이나 중화에만 관여할 뿐이다. 이처럼 능력이 없는 자도 엄청나게 강한 의지로 양자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월은 그를 향해 밀려드는 양자에너지를 거부하지 않는다. 세포 구석구석에 가득 채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진월의 편이 아니었다.
제창협이 다가왔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칼날이 달린 주먹을 날린다.
푸욱!
“헉…….”
진월의 두터운 가슴 근육과 뼈까지 가르며 칼날이 박혀든다. 제창협은 칼날을 빼지 않은 채 전달되어 오는 심장 박동을 느낀다. 잠시 후 진월의 심장이 멎는다. 그제야 제창협은 칼날을 빼든다. 원한이 사무쳐 똑같이 목을 비틀어주고 싶었지만 확실을 기하기 위해서 칼을 썼다.
뚝뚝! 제창협 칼날 끝에서 진월의 붉은 피가 방울져 떨어진다.
털썩! 진월 또한 힘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다. 그를 구속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떨어져 나갔다. 심장에 들어 있던 피가 상처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제창협이 진월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 본다. 힘없이 앞뒤로 흔들린다. 블랙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이런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준비한 덫은 너무나 완벽했다.
특히 제창협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금속은 아다만타이트와 미스릴로 만들어진 합금이다. 진월의 진동 단검에 완전히 뚫리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개발한 아머에 쓰인 합금으로 제창협의 신체를 재구성했다. 제창협은 로보캅처럼 뇌와 척수만 복원해 인조인간으로 부활한 것이다.
힘없이 흔들리는 진월의 머리를 보면서도 제창협은 믿음이 쉽게 가지 않나 보다. 진월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숨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확인까지 한다. 천천히 손을 뻗는다. 진월의 머리채를 잡아간다. 칼날은 진월의 목을 향한다. 확실히 하기 위해 목을 자르려 하는 것 같았다.
블랙이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제창협이 고개를 쳐든다.
“과장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그래도…….”
블랙이 반박을 하려하자 백동이 그녀의 손을 슬쩍 잡는다. 그만하라는 의미다. 이 무대는 블랙의 시험 무대이기도 했다. 제창협의 복원은 어디까지나 이연후 회장이 직접 지시하고 행했다. 직급을 떠나 제창협은 이연후 회장의 명령을 직접 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블랙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 * *
“하아~”
승합차 안에 있던 이리나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솟아오른다. 이제까지 죽은 듯이 있던 그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진월과 승합차가 강하게 충돌했을 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서서히 눈을 뜬다. 흐릿하게 주변이 보인다. 차량의 안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 한다.
“윽!”
복부의 통증 때문에 일어나려다가 다시 눕는다. 바깥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총성도 들리고 충돌음도 들린다. 총에 맞은 것까지는 기억한다. 총알은 특이하게도 그녀의 능력을 꿰뚫고 들어와 박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총알이 다가서는 중간에 그녀의 능력이 몇 번이고 발현되었다. 순식간에 형성되는 냉기의 실드 때문에 총알도 그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생성되는 냉기의 실드가 무효화되듯이 사라진다.
안 되겠다는 판단은 순식간에 내려졌다.
그녀의 양손과 전방에 파란 불꽃이 생성된다. 얼음 불꽃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능력이다.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능력이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블랙을 비롯해 직접 총을 쏜 백동까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주변의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쩌저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모든 것이 얼어간다.
파악! 날아가던 특수철갑탄조차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앞으로 나아가던 힘조차 잃고 떨어져 내린다.
타타앙~
백동이 아공간으로 몸을 숨기며 두 발의 탄환을 더 쏘았다.
퍽! 한발이 전방에 떠 있던 얼음 불꽃과 충돌한다. 불꽃이 바람에 날리는 촛불처럼 휘청거리며 꺼지려 한다. 하지만 이리나의 눈빛이 빛나자 불꽃이 다시 확 일어난다.
쩌적! 작았던 얼음 불꽃이 사람 키만큼 큰 불꽃 모양의 얼음덩어리로 순식간에 변한다. 그 얼음 안에 특수철갑탄 한발이 들어가 있었다.
얼음 불꽃이 이리나의 주변을 휘돌며 방어를 한다. 특수철갑탄조차 그 얼음 불꽃을 뚫지 못한다. 이리나가 주변을 둘러싼 강화 인간들을 향해 얼음 불꽃을 던진다.
쾅! 콰앙!
쩍! 쩌적! 주변이 온통 얼음과 얼음벽들로 채워진다. 백동이 만들어 놓은 주박술조차 그 얼음 불꽃에 얼어 부서진다. 이리나를 구속하던 것조차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백동의 입장에서는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쳤다. 아공간에 숨어 있던 그가 이리나의 모습을 유심히 본다. 지금 그녀는 백동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블랙 일행에게는 사실 시간이 없었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왔지만 이미 그들이 올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보물과 그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이용해 판 함정이다. 조만간 그들이 정말로 목적하는 자가 찾아올 것이기에 시간 자체가 촉박했다.
별 수 없이 숨겨놓은 패를 쓴다. 그것은 바로 양자파동기다.
강화인간들에 의해 붉은 빛이 쏘아진다. 양자에너지와 파동이 이리나를 향해 쏟아지자 이리나도 흔들린다. 하지만 그녀가 펼쳐놓은 얼음벽들이 있어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시간만 걸린다는 것뿐이다. 이리나가 충분히 당황할 정도의 공격은 된다. 그녀가 무너져 내리는 냉기들을 보며 당황하고 있을 때 백동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그녀의 복부에는 이미 특수철갑탄이 박히고 있었다. 특수철갑탄은 주변을 차단하고 있던 냉기와 얼음벽들을 뚫기 위해 양자에너지를 모두 소모했지만 철갑탄으로서의 위력은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리나 또한 대단한 여자였다. 철갑탄이 박히는 그 순간에도 능력을 발현했다. 전신을 막심처럼 냉기의 기운으로 강화했다. 그랬기에 철갑탄이 그녀의 복부를 꿰뚫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손이 복부를 만져 본다.
아직까지 탄환이 그대로 박혀 있다. 이미 양자에너지는 모두 소모했기 때문에 그저 일반 철갑탄일 뿐이다. 그녀의 손이 복부 위에서 마치 뭔가를 돌려 빼듯이 움직인다. 분명 허공에서 움직임에도 그녀의 손끝을 따라 얼음이 만들어져 빙그르 돌아간다. 고드름 같은 얼음의 줄기가 허공으로 떠오른다. 고드름의 끝에는 붉은 피가 얼어붙은 탄환이 얼음 속에 들어 있었다.
툭! 투툭!
탄환과 하나가 된 고드름이 차 바닥을 구른다. 그녀가 구멍이 뚫린 복부를 지그시 누르자 쩍 소리를 내며 상처가 얼음으로 채워진다. 지혈과 함께 상처의 보호까지 행한 것이다. 이리나가 몸을 일으킨다.
“끙!”
상처에서 아직까지 통증이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슬쩍 움직여 깨어진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본다. 시끄럽던 싸움이 끝이 났는지 너무 조용했다. 그녀와도 싸움을 했던 강화복을 입은 강화인간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막심과 싸웠던 덩치 큰 인간도 보인다. 그런데 몸이 엉망이었다. 입고 있던 옷은 듬성듬성 타 있었고 피부 또한 벗겨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피부 밑에 드러난 물질이었다. 온통 은빛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 금속 같았다.
‘인간이 아니었나?’
그녀가 의문을 느낄 때 덩치 큰 인간이 묶인 남자 앞으로 다가간다. 그는 뭐라고 말을 하더니 주저하지 않고 가차 없이 찌른다. 칼을 맞은 남자를 구속하던 채찍들이 풀리자 그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흡!”
이리나는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를 손을 들어 막는다. 본능적으로 누가 들은 사람은 없는지 확인한다.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바로 블랙이다. 블랙의 시선이 이리나를 향해 있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블랙은 들었다. 그녀는 타천에 다녀온 이후 바람의 정령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그녀가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속삭여 많은 소리를 가져다주곤 했다.
이리나는 이미 들켰다고 생각을 한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있으면 결국 쓰러진 남자와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막 움직이려 할 때 블랙의 고개가 미세하게 가로로 흔들린다.
“…….”
이리나가 잠깐 멈칫한다. 분명 블랙의 고갯짓은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녀와 대립해 싸웠으니 반감이 크다.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혼자서 싸워도 벗어날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잠깐 갈등하는 사이 블랙이란 여자가 비대한 남자가 하려는 행동을 저지하려 한다. 그녀와 비대한 남자의 대화에서 쓰러진 남자와의 원한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비대한 남자가 쓰러진 남자의 목을 자르려 한다. 이미 죽은 자였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움직여야 했다. 다시 한 번 블랙의 모습을 본다.
이리나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는 블랙의 머리가 슬쩍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긍의 의미이고 긍정의 의미다. 움직여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블랙의 손이 이리나를 향했다.
“저년이……?”
이리나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움직여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놓고 공격을 가하려 했다. 결국 믿을 수 없는 여자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순간이었다.
쩌정! 이리나가 힘을 쓰자 차체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인다.
쩍! 파악~ 블랙이 날려 보낸 바람이 차량을 뒤덮은 얼음을 깨부수며 날린다.
이리나는 그 틈을 이용해 차량의 뒤 유리창을 뚫고 빠져나간다. 소란이 일자 모두의 시선이 차량 쪽으로 몰린다. 블랙의 음성이 명령임을 명확히 하며 제창협을 향한다.
“잡아!”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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