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8 장 일부러 놓치다.
지장의 손이 양자에너지 실드에 닿는다.
지지징~
양자에너지 실드가 이물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반응한다. 하지만 지장의 능력이 있으니 막는 것은 불가했다. 금빛의 거대한 손이 지장의 손을 통해 발출되는 순간 아주 찰나의 시간이지만 양자에너지 실드가 소멸된다. 서로 상쇄하기 위해 빈틈이 생긴 것이다. 지장은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진월은 쫓지 않고 지장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다.
“안 쫓으실 겁니까?”
가장 멀쩡한 마명이 와서 묻는다.
“견제는?”
“보셨지 않습니까? 휙 사라지는 것······.”
“핑계는······.”
“정말입니다.”
그때 최탑과 대원들이 다가온다. 진월과 아크의 대결로 인한 충격파와 파편들로 오히려 그들이 더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최탑이 다가오더니 한마디 한다.
“날개달린 옷, 차라리 저를 주시지 그랬습니까?”
“맞습니다. 애초에 저놈을 입힌 것이 잘못입니다.” 목영호가 동조한다.
“그래도 최전방에 서잖나.”
“전방에 서면 뭘 합니까? 하는 것이 없는데······.”
“다 이유가 있다.” 진월이 이유를 들먹인다.
“무슨 이유입니까?” 최탑이 묻는다.
“아무것도 안 해주고 죽어버리면 우리 책임이잖나.”
“그래서?”
“음.”
진월의 대답에 최탑과 목영호가 마명의 모습을 본다. 용린 갑옷은 아직까지 입혀져 있는 상태다. 최탑이 중얼거리듯 한마디 한 후 어딘가로 향한다.
“한마디로 수의(壽衣)였군요.”
“그랬군요. 죽을 가능성이 높아서 죽어도 해줄 것은 다해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
진월은 답을 하지 않고 최탑이 향한 방향으로 간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왠지 지장과 아크가 도망간 것에 대해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더 아쉬운 것은 마명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것 같았다.
최탑이 신호를 하자 대원 중 하나가 밖에서 뭔가를 가지고 온다. 휴대용 랩탑이다. 좌절하고 있는 마명은 놓아둔 채 랩탑에 드러난 화면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진월이 블루투스를 통해 묻는다.
“창민!”
[네. 빠른데요. 벌써 2킬로미터 밖입니다. 화면에 표시됩니다.]
깜박 깜박
랩탑의 화면에 붉은 점이 표시되며 깜박 거린다. 한번 깜박거리면 수십 미터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날아다니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빨랐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단 몇 십초 사이에 몇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있었다.
“괴물이네요. 누구처럼······.”
다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본다. 언제 왔는지 마명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참 회복이 빠른 인간이다. 아니면 속이 없는 인간이다.
“언제 붙이신 겁니까?”
“도포자락이 펄럭이니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GPS 추적 장치를 몰래 붙여 놓은 것이다. 원래는 본인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하나씩 지니고 있던 것을 지장에게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남쪽으로 향하는 것 같지?” 진월의 묻는다.
[네.]
“위치 파악 후 보고한다.”
[알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진월을 향한다. 다음 작전에 대한 지시가 내려질 것 같았던 것이다.
“우선 합류부터 하지.”
“······?”
다들 맹한 표정이다. 그들만 나왔는데 합류라니······. 무슨 뜻인가 싶다.
진월이 무작정 움직인다. 진월을 따라 이동한 곳에는 서현실업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어두워진 밤임에도 불구하고 훤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서현실업의 건물 앞에 시커먼 승합차 두 대가 세워져 있는데 낯이 익다. 바로 그들의 임무 차량이었다. 건물 내로 들어서자 무장한 요원들 몇이 인사를 건넨다. 밖에서 갑자기 보니 더 반가운 모양이다. 서로 손을 마주친다.
로비의 한쪽 벽면에는 시커먼 양복을 입은 자들이 여러 줄로 반듯하게 도열해 있다.
민서가 진월을 발견한다.
“어? 빨리 오셨네요. 좀 걸릴 줄 알았는데?”
“도주했다.”
“그러면 못 잡으신 거예요?”
“일부러.”
“······.”
민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진월이 도열해 있는 눈앞의 사내들을 보며 묻는다.
“다 모은 거냐?”
“네. 밖에 나가 있던 놈들까지 전화해서 모두 불러 모았어요.”
“민서한테 맡겨두면 조직 소탕하는 것은 끝장날 것 같습니다.” 강희가 웃으면서 말한다.
옆에서 보고 있어도 신기하기 그지없었나 보다.
진월의 시선이 도열해 있는 조직원들의 모습을 훑는다.
전 사장 이하 임원들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진월의 모습을 보자 몸이 알아서 반응하고 있었다. 민서의 현혹과는 별개로 두려움에 의해 반응하는 것 같았다.
“혼자 잡혀 들어가려니 억울하지?” 진월의 갑작스런 질문이다.
“······?” 전 사장이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본다.
주변에 백여 명이나 되는 조직원들이 있는데 혼자라고 하니 의아할 뿐이다.
“네 조직원들 말고.”
“그러면 혹시······?”
“아마도 네가 말하는 것이 맞지 싶다.”
“그, 그 말씀은 우리 보고 직접 잡아서 데려다 넣으라는 말씀이신 건지?”
“잘 아는군.”
“그, 그게 말이 됩니까?”
“두 당 두 명씩만 더 잡아다 넣도록 하지.”
두 명씩만 더 라는 말에 전 사장의 시선이 좌우에 있는 부사장과 이 전무를 향한다. 하여튼 잔머리 굴리는 것에는 도가 튼 인간으로 보인다. 진월이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다.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인적 파악되었으니 제외다.”
“······.”
“같은 등급으로 하지.”
“무슨 말씀이신지······?”
“너도 사장이니 사장 두 명으로.”
“헉!”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진월의 말대로라면 같은 조직 두 개를 본인들 손으로 박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진월이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며 돌아선다.
“건투를 빈다.”
“저놈들이 제대로 할까요?” 최탑이 걱정되는지 한번 묻는다.
진월이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민서를 본다. 민서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벌린다.
“커피 시키셨지요?”
“넵! 시켰습니다.”
우렁찬 함성이 건물을 뜯어 눕힐 것 같았다. 정말 목청이 터져라 다들 외친다.
진월이 친절히 설명까지 해준다.
“암시라는 거다.”
조직원들이 웅성거린다. 자신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 암시 뒤에는 하나가 더 숨어 있다. 너희들은 기억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진월의 강조에 강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희는 옆에 있으면서 민서가 하는 것을 다 지켜봤기 때문이다. 진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희가 전 사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작게 말한다.
“파라!”
“······.”
전 사장이 두 말 하지 않고 앉더니 바닥을 파기 시작한다. 꼭 개가 땅바닥을 파려는 것과 꼭 같았다. 대리석 바닥이 파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판다. 손톱이 상해서 피가 날 정도로 판다.
꿀꺽! 꿀꺽!
사방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요동을 친다.
사실 계속 지속되는 암시는 아니었다. 일정 기간만 지속된다. 하지만 그것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구덩이에 들어가 죽지 않기 위해서 같은 일에 종사하는 자들 두 명은 필히 잡아서 자수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했다.
진월이 건물을 나서면서 창민에게 연락을 한다.
“인적데이터는 모조리 넘겼지?”
[네. 감시만 하고 아직 잡아들이지는 말라고 전했습니다.]
“잘했다. 그리고······.”
창민과 대화를 나누던 진월이 갑자기 멈춘다. 뭔가를 느꼈나 보다. 진월의 시선이 전방의 어두운 하늘을 바라본다. 움직이던 진월이 멈추자 뒤를 따르던 대원들도 모두 제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펄럭!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검은 코트를 걸친 여인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철컥! 찰칵!
모두 한 몸이 된 듯 총을 겨눈다. 나타난 여인이 바로 블랙이기 때문이다.
블랙은 상대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임에도 그저 피식 웃는다. 어둡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벗어버려 그녀의 예쁜 눈매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얼굴만 본다면 절대 그녀가 나쁜 일을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전월은 얼마 전에 그녀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도 있으니 사실 이를 갈아야 맞았다. 하지만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말을 던진다.
“저번에는 꽤 위험했었어.”
“그 정도로 죽지는 않으실 거라 생각했어요.”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아.”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민서가 갑자기 끼어든다.
“어머, 오랜만이야. 동생!”
“허! 누가 동생인데요?” 민서가 날이 서서 되묻는다.
“기억 안나?”
“기억나지. 당연히. 당신 나쁜 년이잖아.”
“나? 나 그렇게 나쁜 년 아닌데. 네가 좋아하는 진월 오빠도 살려줬잖아.”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어요.”
“내가 무슨 말을 잘못 했지?”
“LIKE가 아니라 LOVE라고요?”
“아하! 미안하게 됐네. 벌써 그런 사이가 되셨어?”
블랙이 진월을 보는 눈매가 묘해진다. 뭔가 서운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인들의 감각은 그쪽으로는 탁월한가 보다. 민서가 그 눈빛에 또 앙칼져진다.
“도대체 둘이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진월은 갑작스런 민서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정말?”
민서의 눈빛이 진월을 잡아먹을 듯 변한다. 진월이 정말 꾹 누르다가 딱 한마디 던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
“오~!”
마명이 감탄사를 터트린다. 진월이 변명 비스무리한 말을 한 것 자체가 신기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블랙의 한마디 때문이다.
“어머! 섭해라!”
“······.”
블랙의 한마디에 진월은 입을 다물고 민서의 아미는 구겨진다. 민서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블랙이 나타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 적인 주제에 둘 사이에 끼어들기까지 하려 한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블랙의 의도다.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태였다. 민서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어른거린다.
“뭘 원하는 것이지요?” 민서가 묻는다.
“······.”
블랙이 답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현혹이 펼쳐진 것 같았다.
“대답해 봐요.”
“그건······.”
블랙이 입을 열려했다. 그때 진월이 민서의 팔을 잡는다.
“풀어줘라.”
“왜요? 왜 그래야 하는 건데요?”
“나쁜 의도로 우리에게 접근한 것 같지는 않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 대답하려 하잖아요.”
“난 저 사람의 진실 된 의중을 알고 싶다. 강압에 의한 것 말고 말이다.”
“······.”
민서가 대답하지 않고 진월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민서는 진월의 눈에서 진실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정말 블랙과의 사이에 아무 일도 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찾을 수는 없다. 무심한 무저갱 같은 눈동자는 어떤 의중도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바라는 내가 미쳤지요.”
“알면 됐어.”
블랙이 깨어났는지 대신 대꾸해준다. 확실히 능력자라 그런지 회복이 빠르다. 민서는 블랙의 대꾸에 더 기분이 나빠져서 그녀를 노려본다. 블랙이 그런 민서를 보며 피식 웃는다. 그녀가 느끼기에 민서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많이 까칠해졌는데?”
“당신이 그렇게 잡혀있었어 봐요. 나처럼 되지 않는지······.”
“글쎄, 사실 네 모습을 본 후 나도 그렇게 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이 의구심이 가.”
“무슨······.”
“네가 온 목적을 듣고 싶다.”
진월이 민서의 말을 끊고 나선다. 민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진월이 강경하게 나오자 뒤로 물러난다. 블랙이 진월의 눈을 뚫어져라 주시한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사랑한다고요.”
“······.”
진월의 뒤에서 한기가 넘실거린다. 민서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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