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1 장 자유에 대한 대가다.
창민의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진월은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장과 아크는 분명히 IUC와 연관점이 있는 자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구속하는 방법뿐이었다. 문제는 구속을 한다하더라도 그들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으리란 법도 없었다. 민서의 능력이 있기는 했지만 진월처럼 정신력이 뛰어난 자들일 수도 있었다. 거짓 정보를 내놓아도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다.
잡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잡는 방법도 문제였다.
고민하던 진월이 우선 창민에게 인사부터 건넨다.
“우선 고생했다.”
“네. 그런데 거래일이 내일입니다.”
“그렇지.”
“준비라도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주변에 초소형카메라를 설치하도록 해 두었으니 여기서 네가 상황을 분석할 수도 있다.”
“귀신같은 자들인데 눈치 채지 못할까요?”
“그런 것까지 눈치 챈다면 나보다 뛰어난 자들이니 어쩔 수 없겠지.”
“그게 그렇게 되나요?”
창민은 허탈해 하면서도 내심 걱정되기도 한다.
“작전 설명 같은 것도 없어요?” 민서가 묻는다.
“이번 작전은 모두 대기한다.”
“네?” 창민이 의아해한다.
“그러면 그냥 두는 겁니까?” 강희가 깜짝 놀라 되묻는다.
“그냥 두지는 않지. 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두들겨 팬 놈이 몇 인데…….”
“묻어버린 놈들도 있습니다.” 최탑이 강조해준다.
“그러고 보니 그 자들 빼줬나?”
“한 이틀 묵혀 뒀다가 빼줬습니다.”
“숙성이 잘 됐겠군.”
“요산까지 첨가되어서 간이 잘 되어 있던데 말입니다.”
“오늘 한번 가봐야겠어.”
“아마도 영접할 준비를 잘 해놓고 있을 겁니다.”
“노숙인 옷도 준비해 놓으라고 하지?”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정확히 열 벌 말입니다.”
강희가 진월과 최탑의 대화를 듣더니 발끈한다.
“팀장! 지금 뭡니까? 왜 우리만 빼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건데요.”
“이제까지 거래에 여자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자들만 투입해야겠지?”
“그러네요.” 민서가 대꾸하며 다시 묻는다.
“그러면 노숙인 분장을 하고 직접 거래물이 되시는 건가요? 그것에 대해서는 탑 오빠와 이미 작전협의를 하신 거고요?”
“그랬지.”
“같은 팀인데 너무 비밀이 많으신 것 아닌가요?”
“소수가 알수록 보안에는 좋으니까.”
“참나! 그건 그렇고 나머지 여덟 명은 누가 가나요?”
“뻔한 것 아니냐?”
진월의 시선이 구석에 앉아 있는 인물들을 향한다. 그들의 시선은 애써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마치 대화 내용이 멀어서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태도다.
“…….”
침묵이 흐른다.
진월이 조용히 한마디 한다.
“너무 놀린 거지?”
“…….”
사실과는 많이 달랐다. 얼마 전 죽기 일보직전까지 굴렀다. 돌아가신 조부모님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으니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 어이가 없어서 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놀고 싶어 하니 내가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무슨 기회 말입니까?” 마명이 고개를 들고 묻는다.
“계속 놀 수 있는 기회 말이지?”
“그러니 그게 뭡니까?”
“영원히 거지가 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이참에 그냥 작전 나가면서 주저앉아라. 노숙인으로…….”
“아~! 그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걱정 없는 삶이니…….” 마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어찌 보면 진월에게 개기는 대답이다.
“후우~!”
옆에 앉아 있던 목영호는 마명의 태도를 보며 한숨을 푹 쉰다. 아무리 친구지만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권력을 쥔 자는 진월이다. 그러면 최소한 비위는 맞춰야 하는데 가만 보면 본인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아니면 일부러 개기는 것인지 이해불가한 놈이었다. 목영호가 정말 궁금해져서 마명에게 묻는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 마명은 단호했다.
“그러면 왜?”
“생각해 봐라. 얼마나 편하겠냐? 얼굴에 철판만 조금 깔고 손바닥 내밀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아. 더구나 요새는 사랑의 밥차들도 많잖아. 돌아다니면서 끼니 해결하면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겠지?”
“에라~ 이!”
퍼억! 목영호의 주먹이 마명의 뒤통수를 갈긴다.
일부러 개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더 맞는다. 순수와 바보는 다르다. 마명은 정말로 바보처럼 스트레스 받고 사느니 노숙인의 삶을 택하는 것이 더 좋겠다 생각한 것이다. 물론 생각은 자유지만 말이다. 목영호가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자신에게 더 화가 나서 친구를 개 패듯이 팬다.
“너 같은 놈을 친구라고…….”
퍽퍽퍽!
“차라리 나가 뒈져라.”
마명의 뒤통수에 연달아 손바닥이 작렬한다. 눈이 튀어나오게 생겼다.
“바보가 더 바보 되겠다.” 강희가 한마디 보탠다.
하지만 진월은 더 살벌한 말을 날린다.
“그렇게 해가지고 죽겠나? 내가 해줄까?”
“…….”
목영호의 손이 우뚝 멈춘다. 두들겨 맞던 마명 또한 목영호를 향해 눈을 부릅뜬다.
사실 둘 사이에는 밀약이 존재했다. 서로를 보호해주자는 밀약이다. 물론 마명이 더 바보짓을 많이 하니 많이 맞을 각오는 했다. 어떤 실수가 되었건, 아니면 지금과 같이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를 상정한 밀약이다. 기합이나 맞을 일이 생기면 진월이 가해를 하기 전에 먼저 서로를 가해하게 되면 좀 더 가벼운 벌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의 발로였다. 일명 동정표 사기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도출되고 있었다.
목영호가 당황하며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제가 좀만 더 손보고 끝내는 선으로…….”
“부족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피 정도는 봐야지.”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둘이 동시에 침을 삼켰다.
진월이 마무리를 한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
진월의 눈에는 딱 봐도 티가 났나 보다. 그의 말과 동시에 실감나는 연기가 펼쳐진다. 목영호는 있는 힘껏 때리고 마명의 안면은 책상에 제대로 박힌다.
콰앙!
“커헉!”
마명의 신음과 동시에 책상이 부서진다. 둘 다 어느 정도 기를 다룰 줄 아니 그 위력이 보통이 아니다. 진월이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조금 구긴다.
“부서진 책상 값은 둘 월급에서 차감하도록 해.”
“…….”
결국 둘은 이래저래 손해만 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월이 한마디 더 한다.
“강해지긴 강해졌군. 피가 안 나네?”
“……?” 마명이 아파하면서도 손을 들어 확인한다.
정말 얼굴에 대고 있던 손에는 피가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책상이 부서졌지만 결국 그의 안면보다 책상이 약했다는 뜻이다. 목영호가 어느새 곁에 와 있다. 그의 눈에는 안쓰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개기지 말지 그랬어?”
“내 자유다.”
“그래. 자유에 대한 대가다.”
목영호가 마명의 뒤 머리카락을 잡아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는다. 만약 피가 나지 않고 바닥이 부서지면 바닥 공사비용까지 대야할지도 모른다.
* * *
버려진 창고에 노숙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 주위에는 검은 양복을 걸친 자들이 지키고 서 있다. 도주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노숙인 중 유독 지저분해 보이는 자가 하나 보인다. 그의 얼굴에는 밴드와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멍도 들어 있는 것이 얼마 전에 호되게 당한 자의 얼굴이다. 눈두덩 하나는 부어 있어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바로 마명의 모습이다.
피 한 방울 흘리기 위해 무던히도 많이 맞은 모양이다.
마명이 엉덩이를 이리저리 뒤튼다.
뿌우웅~ 엉덩이 골에서 가스가 길게도 방출된다. 옆에서 노숙인들을 지키던 사내들이 인상을 구기며 씨부렁거린다.
“염병~!”
“웩! 냄새도 심한 것들이 가지가지 한다.”
“확! 똥구멍을 몽둥이로 틀어막아 버릴라…….”
꺼억~! 이번에는 트림이다. 창고가 울릴 정도로 큰 트림이다. 정말 추접한 짓은 혼자 다 하고 있었다.
“막아보씨오. 아래를 막으믄 입으로 가스가 나 나올 것인께.”
“…….”
사내들이 할 말을 잃는다.
“야야! 냅둬. 어차피 팔려갈 놈들 아니냐.”
“에이~ 씨발! 더러운 새끼.”
사내들이 다들 한마디씩 내뱉는다. 노숙인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노숙인으로 보인다. 추접한 마명의 연기가 제대로 한몫하고 있었다. 진월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많이 늘었다.”
“제대로 하라면서요.”
마명과 이야기를 나누던 진월의 시선이 창고 밖을 향한다. 인기척이 느껴졌나 보다. 진월이 낮게 말한다.
“진즉 와 있었다. 이미 주변 정찰 한번 다 하고 문으로 접근한다.”
“…….”
진월 외에는 그런 것을 느낀 사람이 없으니 나타난 자들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가사(袈裟)를 걸친 사람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그 뒤를 따라 검은 머리의 사내가 어슬렁거리듯 들어온다. 이미 두 번의 거래 경험이 있으니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아는 얼굴을 찾는다.
주변을 돌아보던 지장이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아는 얼굴이 한명 밖에 없습니다 그려?”
“아~ 네.” 아는 얼굴인 이 전무가 나선다.
“이번에 조직원들 물갈이 좀 했습니다.”
“흐음! 그래요? 이런 일은 원래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거래 규모가 커서 말입니다.”
“커요? 오히려 금액은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아~! 그런가요?” 모사란 별명을 지닌 이 전무가 연기에는 영 꽝이었다. 너무 이래저래 당한 것이 컸는지 트라우마가 심한 것 같았다.
“병신 같은 새끼! 네 목숨은 뭐 몇 개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전 사장이 답답해 못 보겠다는 듯 앞으로 나선다. 역시 조직의 수장까지 올라선 깡이 있다.
“죄송합니다. 서현실업 사장인 전인두라고 합니다.”
“아~! 드디어 우리 사장님 얼굴을 뵙습니다.”
“네. 저희한테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는 샅샅이 보고를 받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허허. 어째 말 속에 뼈가 가득하십니다. 그려?”
“아는 얼굴이 한명밖에 없는 이유는 그쪽이 더 잘 아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글쎄요? 왜지요?”
“너무 뻔뻔하십니다. 모조리 황천 구경 하려다 돌아왔는데 나오려 하겠습니까? 아직까지 병원에 누워있는 놈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직접 나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물건 값도 제대로 좀 받으려고 말입니다.”
전 사장의 연기력이 거의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감이었다. 전 사장은 진로 선택을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요? 뭘 따지시렵니까?”
“이제까지 일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따질 것도 없겠습니다?”
“아니지요. 저기 있는 인간들…….”
전 사장의 손가락이 노숙인들을 가리키며 말을 하려다가 잠깐 멈춘다. 그러는 전 사장의 손가락 끝이 약간씩 떨리고 있다.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심장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갈등도 있었다.
‘여기서 싸움을 붙여버려 말아? 둘 중 한쪽만 남으면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짧은 순간 수많은 갈등이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장이 그런 전 사장을 보며 묻는다.
“물건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물건 상태를 좀 보십시오. 제시하신 금액으로는 저희가 너무 손해가 큽니다.”
“딱 보기에도 좋아 보입니다만…….”
“좋아보시지요? 그러니 가격을 조금만 더 올려주십시오.”
“손해가 크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네. 그렇지요.”
“저 물건 만드느라 들어가신 비용이 있기나 합니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놈들이 그냥 저 체격을 유지한 줄 아십니까? 우리가 저 체격 유지시키느라 들어간 식비가 얼마인데 이러십니까?”
“사실 우리는 말라도 상관없습니다.”
“…….”
“밥 먹이느라 들어간 비용은 결론적으로 쓸데없이 돈을 썼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먹여댔으니 방귀나 뿡뿡 끼고 앉아있지 말입니다.”
지장의 말에 마명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생리적인 현상을 가지고 뭐라 하니 갑자기 발끈했던 것이다. 그 순간 뒤쪽에 조용히 서 있던 아크의 눈빛이 반짝인다. 갑자기 휙 돌아본 마명에게서 뭔가를 느낀 것일까?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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