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6 장 천상천하 유아독존
침묵이 자리한 후 먼지도 가라앉는다.
진월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런 진월의 몸에는 조준경의 레이저에 의한 붉은 불빛이 여러 개 찍혀있다. 목영호와 마명의 조원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진월의 모습은 왼팔이 약간 뒤로 들려 있는 모습이다. 팔꿈치로 뭔가를 막고 있었다. 바로 마명이 절묘하게 날린 단검을 차단하고 있었다. 단검의 날은 영강 형태의 갑옷을 약간 뚫고 들어갔다. 그대로 뒀다면 진월 또한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는 공격이다. 그런데 어떻게 진월의 갑옷을 뚫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기를 운용할 줄 알아도 진월의 갑옷을 부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진월의 물음에서 해결된다.
“성능이 괜찮군.”
“크크, 그렇지요? 실력만 쌓으면 나도 팀장을 제거할 수 있다고요.”
“네 본심이지?”
“설마요. 영약의 보고(寶庫)이신데 어찌 그런 만행을 저지르겠습니까.”
“약쟁이! 네 눈에는 내가 약으로만 보이는 모양이지?”
“…….”
대답이 없다. 마명의 머릿속에는 상당 부분 그렇다는 의미다.
목영호가 다가오며 한마디 한다.
“저 자식, 어제 강화복을 받고나서 입고 잤습니다. 테스트 한다면서요.”
“그렇다면?”
진월이 마명을 본다. 설명은 당연히 목영호가 해준다.
“일부러 자해를 하던데요.”
“그리고?”
“느꼈지요. 약의 기운을 충분히. 눈까지 뒤집어가면서 말입니다.”
“큐어는 보급량에 제한이 있을 텐데?”
“쟤들 것 하나씩 뺏었답니다. 강압으로!”
“친구란 새끼가…….”
마명이 목영호를 죽일 듯이 바라본다. 친구가 치부를 다 까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월은 별말 하지 않고 마명의 얼굴을 본다. 권기에 의해 잘렸던 상처 또한 모두 아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군. 내성 생긴 약쟁이한테 이 정도의 효과면 쓸 만한 것 같다.”
“네. 성능은 좋습니다. 방탄력은 현재 나와 있는 어떤 방탄복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근력과 스피드의 강화는 두 배 이상인 것 같고요. 센서까지 부착되어 있어서 상처가 나면 자동적으로 큐어가 투입되니 생명력 보장 또한 탁월합니다. 군에 보급되면 전투력 면에서는 굳이 로봇을 개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로봇은 필요하겠지. 큐어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 강화복은 힘이 강한 자가 창으로 찌르는 정도의 힘이면 뚫릴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품은 아직 없어.”
“하하. 그런가요?”
“…….” 진월이 고개만 끄덕인다.
탁! 진월이 마명의 단검을 뺏어 쥔다. 손잡이를 꽉 잡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칼날이 초당 수천 번의 진동을 반복하며 양자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진월의 영강 갑옷을 뚫고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유심히 보고 있던 진월이 어이없는 것처럼 웃는다. 사실 진월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무기 중 하나다.
“꼭 날 잡으라고 스스로 만든 무기 같다.”
“있잖습니까? 슈퍼맨도 크립토나이트란 약점이 있으니 팀장도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지요. 너무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면 안된단 말입니다.”
큐어 건으로 야단을 맞을 줄 알고 조용히 있던 마명의 주둥이가 드디어 열렸다. 진월이 그런 마명을 보며 고저 없는 음성으로 말한다.
“너 또한 약쟁이로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면 안되겠지?”
“거기까지만 입니다. 더 이상은 하지 않을 겁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뭔데요?”
“딱 한잔만이다. 그러고 나서 폐쇄병동 같은데 갇히고 나서 반성을 하지. 나가게 되면 절대 안 먹는다는 말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목영호가 곁에서 돕는다.
“99.9퍼센트는 다시 먹지. 중독이 무서운 이유다.”
“저는 조절 능력이 탁월한 아이입니다.”
“봐라. 벌써 뇌가 썩어 들어가니 나이 구분도 못하는 것 아니냐? 네 나이가 몇 인데 아이지?”
“표,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요.”
“급하지?”
“뭐가 말입니까?”
“이 상황 면해보기 위해 변명하는 것이 급하지?”
“벼, 변명이 아닙니다.”
“내가 널 진정한 약쟁이로 만들어주지. 큐어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서 절대 중독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게 만들어주마. 아예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말이야.”
“무,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약이 좋아 죽잖아? 그러니…….”
훙! 진월의 주먹이 다짜고짜 마명의 안면으로 향한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명이 빠르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주먹은 훨씬 빨랐다. 마치 제트 추진기라도 달린 것처럼 빠르게 다가온다. 그가 본 주먹의 잔상은 뒤에 있었고 그를 강타하는 잔상은 이미 코앞이다.
퍽!
“억!”
눈이 밤탱이가 되는 순간이다. 번갯불이 번쩍하며 시야가 어두워진다. 생존 본능으로 그 순간에도 멀쩡한 눈으로 진월을 보려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쪽의 팔에 갑작스런 통증이 느껴진다.
우둑!
“우악~!” 마명의 입에서 괴성이 터진다.
왼팔이 부러졌으니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진월의 권이 상완골에 틀어박히자 부러진 것이다. 하필 그 부위는 큐어와 센서가 심어진 부위다. 뼈가 부러질 정도의 타격이었으니 두 장치가 멀쩡할 리도 없다. 일부러 그곳을 때린 것 같았다.
“크윽! 해, 해도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약 기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살만한가 보지?”
“…….”
진월의 말대로 방금 전에 투여된 큐어의 기운이 남아서 상처가 회복되고 있었다. 어느새 진월은 마명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친절하게 두부를 보호하게끔 만들어진 모자까지 씌워준다. 핏줄이 불거진 진월의 팔이 마명의 가슴에 가 닿는다. 심장 부위다.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속도가 좀 느려질 거야.”
파아앙~! 진월의 손과 마명의 가슴 사이에서 압축 공기가 터지듯 압력파가 폭발한다.
“커헉!” 마명의 입에서 침이 울컥 쏟아져 나오며 뒤로 날려간다. 한참을 날려가던 마명이 대지 위를 떼굴떼굴 구른다.
철퍼덕! 개구리가 사지를 뻗고 누운 것처럼 마명 또한 대자로 뻗었다. 간질 환자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신기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상처가 약간씩 회복되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다. 진월이 인상을 구긴다. 그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처를 회복시킨 것이 몇 번인데 약효가 계속 지속되고 있었다.
“큐어의 효과가 좋기는 하다지만 예상 범위를 넘는데……?”
“제가 보기엔 장복의 효과입니다.” 목영호가 설명을 한다.
“장복?”
“장기복용 말입니다. 저놈 특기가 약쟁이 아닙니까? 빼돌려서 아침마다 차처럼 조금씩 복용을 하더니 돌연변이가 됐나 봅니다.”
“허~!”
진월조차 어이가 없었다. 어찌 보면 부작용인데 좋은 방향의 부작용이다. 설마 정말로 자가치료능력이 생긴 것은 아닌지 정말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궁금하면 풀어야 한다. 진월이 목영호와 조원들을 향해 말한다.
“궁금하지?”
“네.” 모두 한 목소리다.
“그러면 밟아라.”
“……?”
“단체로 밟으라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네.”
명령이니 거리낌 없이 밟는다. 마명은 정신 좀 차릴 만하니 다시 몰매를 맞는다. 마명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보다 더 큰 조원들의 목소리에 묻힌다.
“죄송합니다.”
“명령입니다.”
“이해하시지요?”
“악, 아악~ 이, 이해 못…….”
퍽! 남자의 중심에 갑자기 한방이 박힌다.
마명의 눈이 뒤집힌다. 흰자위가 눈 전체를 채운다. 가운데를 찬 것은 다름 아닌 목영호다. 지켜보던 진월조차 인상을 구긴다. 엄청 아플 것 같았다. 조원들 또한 같은 남자이니 마명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넘친다. 때리던 것도 멈추고 오히려 목영호를 보며 좀 너무했다는 눈빛들을 보낸다. 그래도 거기는 좀 아니라는 눈치들이다.
목영호가 머쓱한 듯 조원들을 보며 말한다.
“궁금하잖아. 그것도 잘 회복되는지 말이다.”
“…….”
조원들 모두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그것도 그렇다는 수긍이다. 마명의 조원 중 하나가 마명의 가운데를 뚫어져라 본다. 평소에 쌓인 감정이 많았나 보다. 왠지 한 대 더 칠 것 같은 모습이다. 목영호 또한 그 살기를 느꼈다.
“아서라! 한 대면 충분하다. 가루 만들 일 있냐?”
“그래야 제대로 된 테스트가 되지 않겠습니까?”
“…….”
목영호가 조원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 틀린 말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물고를 잘못 튼 본인의 잘못 같았다. 갑자기 이글거리는 열기에 주변을 돌아본다. 조원들 여섯이 모두 한 번씩 차고 싶다는 표정이다.
“독한 새끼들! 내가 저러고 있어도 그럴 거냐?”
“큐어 빼앗긴 만큼만 할 겁니다.”
“뭐?”
“얼마나 귀하고 좋은 건데 말입니다.”
“……보, 보셨습니까?”
목영호의 시선이 진월을 향한다. 진월 또한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려 한다. 마치 무협에서 영약을 빼앗기고 그것에 대해 복수를 행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
“으, 으으으으~”
기절했던 마명이 그새 의식을 찾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빨리 의식을 찾고 있었다. 부러진 팔조차 멀쩡히 붙어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회복력이 좋아서야 벌을 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벌떡! 마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일으킨다. 목영호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내린다.
“잡아!”
목부터 시작해서 사지에 한명씩 달라붙는다. 진월이 이미 곁으로 다가와 있다.
“벗겨봐라.”
“전부 다 말입니까?”
“잘 회복되었는지 봐야 할 것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마명이 안쓰러워진다. 괜히 버릇 한번 잡는다고 말을 꺼냈다가 사람을 잡게 생겼다.
“수모를 겪으면 좀 덜해지겠지. 안 그러냐?”
진월이 마명을 향해 묻는다. 하지만 마명을 잘못 알았다.
“뭐, 까짓것 못 보여드릴 것도 아니고 보십시오. 샤워하면서 숱하게 봤는데 그것 못 보여드리겠습니까?”
“그렇지.”
“회복도 다 되었는지 아프지도 않습니다.”
“정말 장복의 효과냐?”
“그런 것 같긴 합니다. 먹지 않아도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발견이군. 약쟁이 때문에 득보는 일도 있군. 네 눈에는 내가 산삼으로 보이겠구나.”
“어디 산삼을 팀장님한테 가져다 댑니까?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요. 헤헤.”
참 뻔스럽기 이를 데 없다.
“혹시 실험도 해봤나?”
“신기해서 여러 번 해봤습니다.”
“알면서도 다른 놈들한테 이야기는 안 하고?”
“알면 저놈들이 주지 않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안했습니다.”
“햐~! 이 지독한 새끼!”
목영호가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대변해 준다. 움직이는 폼이 한 대 더 때릴 것 같다. 진월이 목영호를 제지한다.
“얼마나 지속되지?”
“아침마다 반 앰플씩 일주일 복용을 하니까 먹지 않아도 십일 정도는 지속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하고 같이 제약회사 하나 차리시면 어떠시겠습니까? 대박 날 것 같습니다.”
“…….”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마명이다. 진월이 무릎을 굽히며 앉는다.
“내가 회복력이 좋아 피를 뽑아도 빨리 회복되니 그나마 필요로 하는 양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 물론 피를 뽑고 나면 먹는 양도 엄청 늘어나지. 나도 사람인지라 그러고 나면 조금 힘들다. 반복되는 일들이 성가시고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떤 놈은 그걸 건강식품으로 여기고 아침마다 장복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절대…….”
“됐고.”
“정말입니다.”
“버릇은 확실히 잡기로 했으니…….”
“이미 너무 많이 잡으셨습니다.”
마명이 주변의 조원들을 보며 강조한다. 정말 팔다리에 하나씩 붙어 있으니 많이 잡기는 했다. 마명의 유머 같지 않은 유머에도 진월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테스트할 때 손가락도 잘라봤나?”
“그, 그렇게까지는 안 해봤습니다. 안 자라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군.”
“설마 손가락을…….” 차마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는 거냐는 말은 꺼내지 못한다. 말을 하면 정말 자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던 진월의 입술이 슬쩍 비틀린다. 왠지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미소다.
“손가락 정도가지고 무슨 걱정을 하고 그러나?”
“아, 안됩니다. 그러다…….”
마명은 어떻게든 상황을 면해보려 입을 벌린다. 진월이 몸을 일으키며 목영호를 본다. 그러는 그의 손에는 아까 마명에게 빼앗은 진동 단검이 들려 있다.
“벗겨보지?”
“네? 무엇을……?” 듣고 있던 목영호도 의문이다.
진월의 시선이 마명의 가운데로 향한다.
“서, 설마?”
“아악! 안돼요. 안됩니다.”
마명이 울부짖는다. 정말 심각함이 묻어나는 고성이다.
진월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낮게 말한다.
“그 정도는 잘라줘야 테스트라고 하지 않겠어? 혹시 알아 다시 자라나는데 더 크게 자라날지 말이야.”
“…….”
목영호를 비롯해 조원들 모두 침묵한다. 그들의 목젖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린다. 그들의 팀장은 역시 보통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안 벗기나? 실험 대상이 바뀔 수도 있는데 말이야.”
진월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마명의 옷이 벗겨지는 것은 찰나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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