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안녕, 황실 기사단 친구들.
마룡이 피를 흘리며 죽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레안 역시 피를 웅큼 뱉어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역시 이런 마기 더미 속에서 마룡의 독이 담긴 마기 섞인 상처하며, 이런 오염된 공기라니 아무리 그녀라 해도 멀쩡하기는 무리였다. 특히 어찌나 상처가 깊은지 피가 꾸룩꾸룩하며 나오는 모습은 다소 기괴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들 생전 부상을 입은 레안을 볼 줄이야. 하지만 마룡과 싸워 단지 저 정도의 부상에, 거기다 마룡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부상을 입었다 할 지라도 엄청나게 대단한 존재로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한방 맞고 잘도 기절한 탓에 레안에 비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하륜이 걱정스레 레안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레안에 비해 경미한 것이지 그도 나름 마지막 마룡이 죽기 직전에 날린 공격에 맞아 그 역시 가슴 부근에 마룡의 발톱이 스쳐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다만 레안은 제대로 앞쪽으로 긁혀 상처가 심각하지만 그는 손등으로 맞아 말 그대로 살짝 긁혔을 뿐이었다.
“네가 보기엔 잘도 멀쩡해 보이냐?”
굳이 그렇게 묻는다면 상처만 아니라면 상당히 멀쩡해보였다. 저게 진짜 힘들어서 주저앉은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좀 쉬려고 주저앉은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상처 치료.. 해야 되지 않습니까?”
“약 따위 안 들어. 마룡의 독이 묻은 상처라. 냅두면 알아서 자연 치료 돼.”
그렇게 말을 한 레안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천을 꺼내 옆구리를 칭칭 감았다. 하얀 천이라 그런지 쉽게 피에 물들어 빨갛게 변했다.
“넌.. 치료 안해도 되겠네.”
마룡 꼬리에 맞아 부러진 갈비뼈는 융합된 피 때문에 순식간에 치료 된 것 같고 마룡의 발톱에 긁인 상처는 별로 심각하지도 않고, 크게 독이 묻은 것 같지도 않아 대충 성수 좀 뿌려주고, 약을 바르면 될 것 같았다.
“레안님.”
“꼬라지들이 다들 훌륭하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흘끗 바라본 레안은 우르르 아주 거지꼴을 하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나름 걱정했는데 그래도 큰 상처 없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왜인지 모르게 기뻤기 때문이었다. 거의 처음이다시피 레안의 미소를 본 일행들은 잠시 멍했다. 정말 자신들이 제대로 본 것이 맞나?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감히 레안에게 지금 웃었어요? 웃은 거 맞죠? 라고 물어볼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없지 않았다.
“지..지금 단장님이 웃은거야? 그런거야?”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리엔이 벙, 카엘에게 물었다.
“미친놈.”
그러나 카엘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레안이 던진 천조까리가 리엔을 향해 날아왔고, 도대체 어떻게 던지면 천쪼가리에 맞았는지 아플 수 있는지 리엔이 아픔을 호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모든 임무를 마치고, 죽음의 숲을 벗어나는 그들의 표정은 한결 후련했다. 특히나 마룡이 죽고, 그가 품은 마력석 역시 파괴했기 때문인지 처음 들어왔을 때 보다는 죽음의 숲을 나가는 것이 편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죽음의 숲이라 한없이 편하고 쉽지는 않았지만.
각자 폐인의 몰골이 되어 황성에 도착하자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든 임무였기에 다들 저런 몰골로 돌아온 것인지. 그나마 레안이 가장 멀쩡했지만 그녀 역시 평소와 비교하면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기사들의 시선에 일일이 반응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죽음의 숲을 나온 이후 이왕 나온 김에 나머지 일을 처리하자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온갖 마물을 처리하게 시킨 덕에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싶을 만큼 피곤했다.
거기다 중간에 쉴 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빨리 돌아가자며 얼마나 닦달을 해대는지.
진짜 죽음의 숲에 가기까지 얼마나 레안이 그들을 배려해준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럼 가서 쉬어. 난 황제 만나러 가야 될 것 같으니까.”
레안의 말을 끝으로 그들을 제각각 자신의 숙소를 향해서 갔고, 레안만 잠시 방에 들러 깨끗하게 몸을 씻은 후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레안~~! 괜찮아?”
허어? 지금 가녀린 여자를 사지를 몬 것이 누군데 저런 말을 하는지 레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자신에게 달라붙는 유리안은 거칠게 떨어뜨렸다.
“일은 잘 했어?”
드디어 귀찮은 일을 해결했다는 생각 덕분인지 레안의 밀어냄에도 싱긋 웃으며 유리안이 물었다.
“아니, 못했는데?”
애초에 이렇게 돌아온 것을 보면 잘 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텐데 굳이 저렇게 물어보는 꼴에 레안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냉정히 대꾸했다.
“그보다 같이 임무 나간 애들 휴가를 주는 것이 좋겠지.”
“맘대로.”
어차피 그녀도 고생한 그녀석들을 보니 좀 쉬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유리안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해결했고, 계약 만료 기간도 다가오니 이제 슬슬 그만둘 때가 되었다.
거기다 분명 눈치 빠른 몇몇은 레안의 정체를 알아챘을 수도 있으니 지금쯤 그만 두는 것이 딱 좋았다. 물론 이왕이면 더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그만 두고자 하는 의도도 50%이상 작용하고 있었지만.
“그만 둘 생각인거야?”
미묘한 레안의 분위기 속에서 레안의 속내를 알아챈 유리안이 씁쓸한 표정으로 레안에게 물었다. 그가 굳이 그녀를 황실 기사단의 총단장으로 잡아둔 것은 그녀가 용족이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그가 믿을 수 있는 존재이자 기댈 수 있는 존재로 그녀는 어떨지 몰라도 그는 그녀를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안은 별 생각 없이 어쩌다 보니 그저 우연하게 그를 구해준 것일수도 있었지만 유리안은 그 이후 삶에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레안을 더없이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정체를 알고서도 친근하게 대할 수 있던 것이었고.
그런 그녀가 이제 황성을 벗어난다라.
무언가 가슴이 뻥 뚫려버린 느낌과 함께 괜스레 눈이 시큼했다.
하긴, 언제나 그랬다. 이젠 제법 강해진 유리안이었건만 여전히 간혹 레안 앞에서는 약해졌다. 그러니 이렇게 감정 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하고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이겠지.
“뭔가 섭섭하네.”
무심한 그녀의 시선이 그를 흘끗 향했다.
“병신 같기는.”
왜인지 모르게 그런 유리안의 모습을 보니 레안도 괜히 기분이 착잡했다. 언제 그만두나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런 반응을 보자니 내가 잘못했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작은 감정에 휘둘려 계약 기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 정도 유리안을 도와주었으면 충분했다. 레안이 그만 둔다는 말에 유리안이 저런 반응이니 다른 황실 기사단 녀석들이 들으면 더 격한 반응을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굳이 그녀석들을 위해서 이 이상 그녀의 시간을 희생시킬 마음은 없었다.
다른 용족들이 성인식을 하고 바로 수면기를 가지는 것에 비해 그녀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인간들과 어울리느라 소비했다. 이제 슬슬 몸도 피곤해져오고, 상처도 치유할 시간을 가질 겸 수면기에 들어 쉬는 것이 좋았다.
“나중에 한번 놀러오던가. 자주만 아니라면, 그리고 무언가 부탁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면 박대는 안하도록 하지.”
피식.
선심 쓰는 듯한 레안의 말에 유리안이 작게 웃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용족이 감히 인간을 자신의 영역을 침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호의인지. 그래도 아예 그녀가 무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유리안은 환하게 웃으며 레안을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당장에 내던질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순순히 안겨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자 결국 유리안을 던져 버리긴 했지만.
“어쩌면.. 레안 님은..”
조용히 가라앉은 단장, 부단장들의 숙소에서 라힌이 작게 입을 열었다. 그럴 리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룡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레안의 그것은 분명 용의 불꽃이 맞았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되었다.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몸에서 그런 기운을 내뿜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용의 불꽃이 맞았고, 그 말은 결국 레안이 용족이라는 말과 같았다.
하긴, 인간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지. 단지 인간치고 강하다라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녀가 용족이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 인간인 그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것들을 그렇게 쉽게 처리했지.
“라힌 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라힌이 정확히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죽도록 책을 읽은 탓에 지식이라고 차면 넘칠 정도로 많은 카렌이 라힌이 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하고 물었다.
“솔직히, 레안 님이라면 납득이 되니까요.”
만약 그녀가 용족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애초에 용족인 그녀가 인간들의 나라인 제이로 제국에서 인간들과 기사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르고.
“뭐가 그렇다는 겁니까?”
오직 라힌과 카렌만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에 의미 이해가 안된 바론이 짜증을 부리며 물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의 궁금함 가득한 시선이 라힌과 카렌을 향했다.
“레안 님은 용족 일지도 모릅니다.”
설마. 카렌의 말에 일행들이 에이, 그럴 리가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왠지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레안이 인간이라는 사실 부터가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과연 자신들이 안다고 변하는 것이 있나? 어차피 그녀가 용족이든 인간이든 레안이고, 황실 기사단의 총단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터인데.
“글쎄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사실도 아닐뿐더러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지요. 거기다 레안 님 본인도 어떻게 생각할 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긴, 그러고 보니 용족은 쉽게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워낙 은둔자 같은 성격이라 같은 용족끼리도 어울리지 않고 구석에 쳐박혀있기 바빴다. 어찌 되었든 그녀가 용족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었다는 것은 레안에게 그닥 반가운 소식이 아닐 것이다.
하아. 어쩌면 이렇게 헤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단장과 부단장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사실이야?”
단장들의 숙소에선 레안의 정체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하륜과 친구들의 숙소에선 하륜의 정체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런 경악할 만한 사실이라니.
특히 리엔에게 그가 마룡의 하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보단 그것때문에 폭주하고 죽을 뻔한 하륜을 레안이 구해주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녀를 사악무도한 나쁜 존재로 인식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랄까 다소 충격이랄까?
“그래.”
그간의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하륜의 표정을 한결 후련해보였다. 그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인데 이런 식으로 어떤 이유든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었고, 드디어 이렇게 비밀을 털어놓게 되니 마음이 편했다. 그들이라면 하륜의 이야기를 듣고 절대 두려워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말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크큭, 그렇게 된 거군.”
그리고 역시 하륜의 예상대로 그들은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이 고마워 하륜이 밝게 웃었다.
- 작가의말
하하.. 뭐 그런거지요.
향란지몽 님/ 펜그렘 님/레드러너 님/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뭐, 재미를 위해서 확실히 훗날 제 2세대 기사단 이야기를 쓴다면 레안을 포함한 이전 기사들 엑스트라로 잠시 등장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들은 전설이 되었고....!!
이제 정말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그냥 기념 하고 싶어서.. 혹시나 궁금한 거 없으세요?!!
어떤 것이든!! 완결 화에서 제가 특별 Q&A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누가 제발 댓글로 질문 좀 해주세요.
Comment ' 4